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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알이랑 코리아 선교회 - 알이랑민족회복운동 원문보기 글쓴이: 셈의장막재건자
셈 ․ 수메르 ․ 코리아
유석근 목사
한국인이 셈의 후손임을 알려주는 외증(外證)은 없을까? 우리 겨레가 노아의 작은 아들 셈의 후손이라는 사실은 ‘내증’(특별계시인 성경)과 ‘외증’(성경 밖의 근거) 양자 모두가 충분하여 의심의 여지를 불허한다.
슈메르/수메르는 노아의 아들 셈(쉠)의 이름에서 유래한 지명인데, 수메르 문명을 건설한 수메르인의 본고향이 셈의 현손(玄孫) 욕단의 땅이었던 동방의 ‘스발’이다(창 10:21~30).
그리고 욕단은 한국인의 성경상의 직계 조상이다. 수메르인은 우리 한국인의 친족으로서 고대에 동방에서부터 서쪽으로 역이동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문명을 건설했다.
모든 문명의 아버지인 수메르인
수메르인들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이 흐르는 메소포타미아의 평야에 정착하면서 최초의 문명(B.C. 3500년)을 이룩했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앞선 문명을 형성하며 근 2천년간 지배하다가 사라졌지만, 그들이 어디에서 왔고 어떤 민족인지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은 신비의 민족이다. 그러나 학자들에게서 ‘수메르 문명’은 인류문명 전체의 뿌리에 대한 비밀을 간직한 민족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History Begins at Sumer)>의 저자로 유명한 사뮤엘 크레이머 교수는 최초의 창조설화를 비롯한 교육제도, 사법제도 등 인류 최초의 39개 사건이 모두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그가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됐다고 역설하는 것은 학교, 정부, 재판, 법전, 의학, 철학, 문학, 도서관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문화의 시초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최초의 법률로 알려진 함무라비법전보다 훨씬 앞서 반포된 수메르왕 우르-남무의 법전은 함무라비법전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인류 역사상 최초의 왕정과 관료제도 등을 이룩했다.
특히 그들의 문헌에서는 성경의 천지창조, 에덴동산, 노아의 홍수, 바벨탑 이야기 등과 유사한 내용들이 발견된다. 에덴동산에 남자와 여자가 있었고, 동산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는 금기, 그런데 슈메르에서는 여자가 아닌 남자가 먼저 따먹는다는 등, 그리고 홍수가 나서 사람들이 다 죽는데 지아슈드라는 의인이 있어서 배를 만들어 사람들을 구한다는 등...
수메르인들이 남긴 문화유산은 그 후 인류사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수메르인들의 기술과 생활양식, 종교, 문학 등은 그들 주변의 많은 민족들에게 하나의 전형이 되었고, 수메르의 뒤를 이은 바빌론, 아시리아, 히타이트제국, 그리고 멀리 이집트 등에도 큰 영향을 남겼다. 마치 오늘날 청바지와 햄버거, 코카콜라로 상징되는 미국문화가 세계를 지배하듯이 인류 역사의 초기 단계에서 수메르 문화는 고대 중동세계의 보편 문화로서의 역할을 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부터 배우는 인류문명의 4대 발상지 가운데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말 그대로 ‘meso-potamia’로 양강(兩江) 사이란 뜻이다. 양강이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을 두고 하는 말이다. 기원전 35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한 무리의 인간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거기에 정착하기 시작한다. 이 한 무리의 인간들을 ‘수메르인 Sumerian’이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양강 지역에 올 때 문자와 학교제도와 법제도 등 고급문화를 이미 가지고 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도대체 어디서 있다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이주해 왔을까...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남겨져 있는 이 수메르인들의 유래 문제를 소위 ‘수메르 문제 거리 Sumer Problem’라 할 정도이다.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문명도 수메르보다 무려 1000년 이후의 것이며, 인도의 인더스강 유역 문명도 그와 비슷한 후기 문명이다. 수메르인들이 가지고 온 문명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급문명으로서, 당시 그들은 설형문자라는 것을 사용했고 직조기술을 발견하여 이미 옷을 물들여 입고 다녔다. 건축술도 발달하여 2층 가옥을 지을 정도였다.
1830년대 처음으로 이라크에서 수메르 문자가 발견되면서 가장 충격을 받은 곳은 기독교였다. 왜냐하면 가장 최초의 사건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생겼을 것이라 여겨져 왔고 에덴동산도 그 지역 어딜 것이라 믿어 오던 터에 창세기의 창조 기사와 홍수 이야기 등이 수메르의 토판 속에 그대로 그 원형이 기록돼 있었기 때문이다.
수메르 이름의 기원은 셈
수메르인들은 자신들을 "검은 머리의 사람들"(black-headed people)이라고 불렀으며, 자신들이 사는 땅을 수메르(Sumer)라고 불렀다. 수메르인이라는 말은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의 원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수메르’는 무슨 뜻이며, 이 말의 어원은 무엇일까?
수메르인은 ‘탈락 자음’이라고 부르는 것 -어말(語末)에서는 생략되거나 발음되지 않는 자음- 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신’을 뜻하는 ‘딩기르’(dingir)’는 ‘딩기(dingi)’로 발음되었다. ‘r’ 자음은 설형문자로 기록되긴 했지만 발음은 되지 않았다. ‘수메르(Sumer)’라는 말은 설형문자 문헌에서는 ‘슈메르(Shumer)’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낱말이 성경에 나오는 ‘쉠’(Shem, 한글성경의 셈)이라는 이름과 유사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노아의 아들인 셈은 앗수르, 엘람, 아르박삿, 룻, 아람 다섯 아들을 낳았다. 셈은 이들의 조상이며 특히 셈족의 정통성을 승계한 셋째 아들 아르박삿의 손자 에벨의 직계 조상이다. 에벨의 장자 벨렉은 유대인의 조상이 되었고(창 11:1~10; 12:1~3), 작은 아들 욕단은 동방으로 멀리 스발(스바르~시비리~새벌~시베리아)로 천동(遷動)해서(창 10:21~30) 우리 한국인의 선조가 되었다. 에벨(에베르)은 ‘히브리’의 호칭적 기원이다. 따라서 유대인이 서부 히브리인이라면 한국인은 동부 히브리인이다. 한국인도 에벨의 혈통이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셈족의 현저한 두 가지 벨렉과 욕단의 후손>
‘슈메르(Shumer)’는 ‘쉠’(Shem, 한글성경의 셈)이라는 인명과 유사한데, 이 ‘셈’이 수메르라는 지명의 기원이 되었다. 뛰어난 수메르 학자 크래이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①히브리어의 모음 ‘e’는 설형문자의 모음 ‘u’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름’을 뜻하는 히브리어 낱말 ‘shem’도 그런 경우다.
이것은 아카드어의 ‘shum’에 해당한다.
따라서 수메르어의 ‘슈메르(Shumer)’는 히브리어에서 ‘세메르(shemer)’가 된다.
②끝자음 ‘r’은 생략할 수 있는 자음으로서, 발음되지 않는다.
따라서 ‘슈메르’가 히브리어에서는
‘셈’으로 발음된다는 피할 수 없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니까 수메르인들은 그들의 선조로 기억하고 있는 노아의 아들 셈의 이름을 따서 자기들을 ‘수메르인’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수메르인과 한국인, 셈 계열의 동일 종족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수메르인과 한국인은 언어, 체형. 풍습 등이 확연히 같은 동일 종족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인이 셈의 후손이라는 결론은 필연적이다. 앞서 확인한 바 처럼 수메르인은 셈의 후손이었기 때문이다.
수메르인들은 머리털이 검고 곧으며, 후두가 편평하며, 태음력을 사용하였고, 한국어와 어순이 비슷한 교착어를 썼다. 대영백과사전에는 수메르인의 교착어가 한국어와 같다고 지적하고 있다.
교착언어란 우리말의 주어나 목적어 다음에 ‘은, 는, 이, 가’ 등이 붙는 언어를 의미한다. 이는 우랄 알타이언어의 공통된 현상이다. 그런데 支那語와 인도어는 일단 교착언어가 아니다. 그래서 수메르어와는 그 특징에 있어서 같지 않다.
다음으로 문법 구조에 있어서 수메르어는 '주어+목적어+동사'이다. 이는 영어 혹은 支那語와는 다르고 우리말과는 같은 구조이다. 수메르어는 우리말 ‘은, 는, 이, 가’ 처럼 토씨를 사용하는 교착어이며, 모음조화현상과 ‘주어+목적어+서술어’의 어순 등 동일한 문법체계를 가졌다. 또한 기본단어들까지도 유사하다. 수메르어와 한국어는 뜻과 음이 일치하는 단어가 아주 많이 있다.
한국어의 광명을 뜻하는 ‘밝’은 BAR-BAR, 금은 GUSH-KIN(KIN은 금, 누런 금속이라는 뜻, 삼국시대까지만 해도 우리 겨레는 금은 ‘구지’라고 했다), 길은 GIR, 굴(穴)은 GUR, 구릉(산보다 낮은 언덕)은 KUR, 노래는 NAR, 님(높은 분에 대한 존칭어)은 NIM, 달(月)은 DAL, 대갈(머리)은 DAD-DIL, DA-GAL, 독(장독)은 DUG, 밭(田)은 BAD, 빛은 BIR, 어른은 UR, 하늘(한알)은 AN-UR(가장 높다는 뜻), 칼은 KAR, 엄마는 UMMA, 아빠는 ABBA 등 유사한 말이 굉장히 많다. 특히 수천 년 동안 거의 변화가 없었던 인칭대명사나 지시대명사는 더욱 일치한다. 나는 NA(나), 너는 NE(네), 그는 GE(게), 지시대명사 이는 I(이)로 각각 발음되고 뜻도 같다.
수메르인은 우리처럼 머리카락을 묶어 상투를 틀었다. 그리고 고구려, 가야, 신라 등에서 쓰인 회도를 사용했다. 또한 파미르 고원이 원산지인 파를 즐겨 먹었다. 게다가 우리와 똑같은 형태의 씨름을 했다. 아래의 사진 자료를 보라. 더 이상 무슨 증거가 요구되겠는가!
▲씨름하는 사람 청동상 향로 두 남자가 머리에 단지를 이고 씨름하는 장면을 묘사한 BC 2400년경의 수메르 유물.
상대의 샅바를 붙들고 있는 모습을 보라. 우리 겨레 고유의 씨름과 똑같은 형태이다.
바그다드의 동쪽 하파자(khafajah)의 닌투 신전에서 출토되었다. 이라크 바그다드 박물관 소장.
▲서역인과 고구려인이 씨름하는 모습을 그린 각저총 벽화 왼쪽 선수는 코가 큰 서역인, 오른 쪽에 지팡이 들고 서 있는 사람은 심판이다.
이 모든 증거들은 한국인과 수메르인이 셈 계열의 동일 종족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입증하는 것이다. 수메르인들은 대홍수 후 알이랑(하느님과 함께) 고개(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 동방으로 이동했던 욕단 족속 곧 우리 한국인의 친족들로서, 바이칼호(天海)에서 출발하여 서쪽으로 다시 역이동해 중앙아시아(실크로드)를 거쳐서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들어가 문명을 일으킨 것으로 추정된다. “History begins at Sumer”의 저자인 S. N. Krammer 박사는 수메르인은 동방에서 왔다고 주장한다.
추천도서:
①새뮤얼 노아 크레이머,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서울, 가람기획), 2000
②데이비드 롤, 문명의 창세기(서울, 해냄), 1999
③문정창, 한국 ․ 슈메르 ․ 이스라엘 역사(서울, 한뿌리) 1979.
*이 글은 월간 플러스 인생(신앙계) 2012년 2월호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알이랑 코리아 제사장 나라
유석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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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