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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문학관.한국시낭송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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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사철 게시판 스크랩 [차마고도(茶馬古道) & 청장열차] 고대 인류 최고의 교역로
지리산문학관.계간시낭송 추천 0 조회 222 17.03.06 11:1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출처 : http://cafe.naver.com/overseastheme/110

 

1 Day

>[OZ353-08:40] 인천 출발

>[OZ353-11:30] 중경(重慶) 도착

>[CZ8129-15:20] 중경 출발
>[CZ8129-17:10] 샹그릴라(香格里拉) 도착
>시내로 이동하여 석식 후 호텔 체크 인 (7Km, 15분 소요)
고대 인류 최고(最古)의 교역로 차마고도(茶馬古道)

중국의 역대 왕조들은 차마고도를 통한 이차역마(以茶易馬) 정책을 통해 군사력을 증강했습니다. 중국 서남부에서 티베트~네팔~인도에 이르는 고대 교역로 차마고도는 횡단산맥(橫斷山脈)과 서장고원(西藏高原) 사이에 위치하며 서남지구 각 민족 간 경제 및 문화를 교류의 중심축이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차마고도는 대략 서한(西漢) 시기에 형성되었으며, 중국 차 문화의 발전 및 전파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서한(西漢)시대 감로연간(BC 53년~BC 49년) 감로사(甘露寺)의 승려 보혜선사(普慧禪師) 오리진(吳理眞)이 인류 역사상 최초로 차를 재배한 사천성과 보이차로 대표되는 운남성은 기후가 온난습윤하여 차의 생장에 적합하고 차를 가공하는 방법과 전통을 유지하고 있어, 차를 운송하고 저장하는데 탁월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육식위주인 서장고원 지역의 민족들은 환경적 제약으로 채소가 결핍되어 차마고도로 운송되는 차를 통해 생존에 필요한 비티민을 공급받았습니다.

마방들이 말과 야크를 이용해 중국의 차와 서장의 말 등 물품의 교역을 위해 다녔으며, 이를 통해 문화의 교류도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전성기에는 유럽까지도 연결되었습니다. 차마고도는 주요 8개 노선이 있는데, 운남성 시솽반나(西雙版納)~푸얼(普?)~다리(大理)~리강(麗江)~더친(德欽)~차위(察隅)~방다(邦達)~린즈(林芝)~라싸(拉薩)~네팔~인도의 전장공로(?藏公路) 차마고도와 사천성 야안(雅安)~다두허(大渡河)~캉딩(康定)~더거(德格)~서장~네팔~인도로 이어지는 천장공로(川藏公路) 차마고도가 마방들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 경로였습니다.

이들 경로는 길이가 약 5,000Km로 평균 해발고도가 4,000m 이상인 높고 험준한 길이지만 눈에 덮인 5,000m 이상의 설산들과 금사강(金沙江), 란창강(瀾滄江), 누강(怒江)이 수천 Km의 아찔한 협곡을 이루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꼽히며 이 세 강이 이루는 협곡은 “운남 삼강병류 보호지(Three Parallel Rivers of Yunnan Protected Areas)”라는 명칭으로 2003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고, 2007년 KBS 다큐멘터리가 제작되면서 국내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 호텔(4성급) : 자씨델레대주점(香格里拉?西德勒大酒店)
식사
  • 조식기내식
  • 중식중경공항 내 식사(불포함-개별매식)
  • 석식현지식

1 Day

 
▣ 유토피아 샹그릴라(香格里拉, 해발 3,459m)

운남성(雲南省) 디칭티베트족자치주(迪慶藏族自治州)의 현(縣)으로 쿤룬산맥(崑崙山脈) 서쪽 끝에 있으며, 원래 지명은 중뎬(中甸)이었으나, 2001년 샹그릴라로 개명했습니다. 샹그릴라는 영국 소설가 제임스 힐튼(James Hilton)의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 1933년)>에 나오는 지명으로, 지상에 존재하는 가장 평화롭고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유토피아로 묘사되었으며, 티베트어로 '마음 속의 해와 달'이라는 뜻입니다. 1997년 중국 정부에서 중뎬이 샹그릴라라고 공식 발표하였다. 티베트족ㆍ회족ㆍ묘족 등의 소수민족이 살고 있으며, 그중 티베트족이 43%입니다. 평균 해발 3,459m의 고산지대로 산악지형이 전체 면적의 93%이며, 여름 평균 기온은 15℃입니다. 설산, 계곡, 호수, 울창한 숲 등이 어우러져 경관이 아름답고, 동식물 등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승려의 수가 700여 명에 이르는 운남성 최대의 티베트 라마교 사원 [송찬림사(松贊林寺)]
- 포탈라궁(布達拉宮)의 배치를 모방하였고 건축물은 산 위에 층층이 세워져 있는데, 그 기세가 비범하여 '작은 포탈라궁'이라고 불립니다.

>해발 4,292m의 백망설산(白茫雪山)을 지나 더친(德欽)으로 이동 (175m, 5시간 소요)
▣ 사천(四川)과 티베트의 접경 더친(德欽, 해발 3,485m)

옛 이름은 티베트어로 '극락태평(極樂太平)'을 뜻하는 아둔쯔(阿墩子)입니다. 란창강(瀾滄江)과 금사강(金沙江) 연안에 위치하며, 당(唐)나라 때는 토번(吐蕃)의 땅이었습니다. 1935년 더친으로 개칭하였고, 1952년 장족(藏族)자치구였다가 1956년에 현으로 바뀌었습니다. 쌀보리ㆍ밀ㆍ옥수수ㆍ약재 등을 산출하며, 매리설산(梅里雪山)은 삼림자원이 풍부하고 목축업도 활발합니다.

▶청해성 남부 위수현(玉樹縣) 바탕허강(巴塘河)으로부터 사천성과 티베트의 경계를 남쪽으로 흘러 운남성으로 흐르고, 사천성 이빈(宜賓)에서 민강(岷江)과 합류하는 양자강 상류의 [금사강 대괴만 관경대(金沙江大拐灣觀景臺)]
- 길이 2,308km, 유역면적 49만 500㎢이며, 사금이 채취되어 명명되었고, 제갈량(諸葛亮)이 이 강을 건넜다는 고사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해발고도 5,000m의 고산지대에 계곡이 깊고 험해 유명한 호도협(虎跳峽)이 있고 수리자원이 풍부합니다. 1935년 5월 마오쩌둥(毛澤東)이 지휘한 홍군의 2만 5000리 장정(長征) 도중에 금사강 건널목에서 장제스(蔣介石)의 부대와 벌인 전투가 바로 유명한 장투진사강(强渡金沙江)입니다.

▶횡단산맥(橫斷山脈) 중간 부분에 위치하는 해발 4,210m의 [백망설산(白茫雪山)]
- 백망설산은 해발 5,430m의 주봉을 비롯해 5,000m 이상의 봉우리가20개나 있습니다. 보호구역 내에는 국가 1급 야생보호동물 22종, 2급 야생보호동물 44종과 함께 국가중점보호식물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티베트어로 '설산의 신(雪山之神)'을 뜻하는 매리설산 전망 포인트 [무농정 관경대(霧濃頂觀景臺)]
▶매리설산의 최고봉 해발 6,740m의 카와보거봉을 비롯해 태자십삼봉으로 불리는 평균해발 6,000m의 13개 봉우리를 조망할 수 있는 [비래사 관경대(飛來寺觀景臺)]
- 북쪽부분은 매리설산, 중간부분은 태자설산(太子雪山), 남쪽부분은 벽라설산(碧羅雪山)이라고 부릅니다. 매리설산에 있는 원시림은 흑곰, 금전표범, 작은 판다 등 113종이 서식하는 야생동물의 천국입니다. 매년 티베트인들이 찾아와 적게는 7일, 길게는 반달 정도 산을 돌며 기도를 합니다.

>운남성과 티베트의 경계를 지나 옌징(鹽井)으로 이동 (100Km, 2시간 30분 소요)

▣ 소금계곡 옌징(鹽井, 해발 2,500m)

차마고도 전장공로 상에 위치하는 망캉현(芒康縣)에 속하는 티베트의 첫 마을 옌징은 란창강 연안의 골짜기에 위치하는 작은 마을입니다. 예로부터 소금물이 담긴 무게 10Kg이 넘는 대나무통을 하루에 100여 통씩 실어 나르며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방법으로 소금을 만들었습니다. 프랑스 전도사에 의해 세워진 천주교당이 있는 상염정(上鹽井)과 티베트 라마교를 믿는 나시족(納西族)이 살고 있는 하염정(下鹽井) 두 개의 마을이 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사다리를 이용해서 몇 m에서 십여 m 깊이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 이곳의 소금물을 끌어온 뒤 염전에 대고 햇빛을 쏘여 소금을 생산하는 과거의 제염 방식을 유지하고 있으며, 매년 음력 2~3월에 소금 생산량이 가장 많습니다. 란창강 서쪽 연안에서 생산되는 소금은 옅은 붉은 색을 띄고, 도화(桃花)가 만개하는 계절에 생산되는 소금을 '도화염(桃花鹽)' 또는 '홍염(紅鹽)'이라고 합니다. 동쪽 연안에서는 수량이 적고 비싼 백염(白鹽)이 생산됩니다.

▶차마고도의 중요 역참으로 1200년 전 당(唐)나라 초기 란창강 연안의 옌징에서 소금을 생산했다는 기록이 전해지는 [천년고염전(千年古鹽田)]
▶1865년 천주교가 전래된 후 1949년까지 17명의 외국인 신부가 봉직했던 [천주교당(天主敎堂)]
>취즈카로 이동 (10Km, 20분 소요)
♣ 호텔(2성급) : 취즈카
식사
  • 조식호텔식
  • 중식현지식
  • 석식현지식

1Day

 
>해발 4,220m의 홍라산(紅拉山)을 지나 망캉(芒康, 해발 3,876m)으로 이동 (105Km, 2시간 30분 소요)

▶동쪽으로 사천성, 남쪽으로 운남성과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 [망캉대초원(芒康大草原)]

>해발 4,376m의 라우산(拉烏山)을 지나 주카(竹?)로 이동 (50Km, 1시간 30소요)

▶청해성 남부의 탕구라산맥(唐古拉山脈)에서 발원해 서장자치구에서 급류를 이루며 운남성에서 400Km를 흘러 라오스에서 메콩강이라고 불리는 [란창강대협곡(瀾滄江大峽谷)]

>해발 3,911m의 자오바산(脚巴山)과 해발 5,008m의 둥다산(東達山)을 지나 티베트어로 '야크의 잔등'을 뜻하는 쭤궁(左貢, 해발 3,750m)으로 이동 (110Km, 3시간 소요)

>방다(邦達, 해발 4,110m)로 이동 (105Km, 2시간 30분 소요)
▣ 티베트의 역사

사천성(四川省) 서부의 깐즈장족자치주(甘孜藏族自治州)는 옛 티베트의 영토로 장족이 많이 거주하여 동티베트로 불립니다. 아름다운 고산초원과 티베트 본토보다 문명에 물들지 않은 순수함 속에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티베트인들의 삶과 문화를 볼 수 있는 곳입니다. 6세기 최초로 티베트를 통일한 후 토번을 건국한 송첸칸포(松贊干布)가 네팔 브리쿠티 데비, 당나라 문성공주(文成公主)와 정략 결혼을 하면서 티베트에 불교가 전래되었습니다. 티베트인들의 삶과 밀접한 종교, 티베트 불교(라마교)는 주술을 중시하는 토속 신앙인 본교를 배척하지 않고 혼합된 형태로 토착화하였습니다. 8세기 인도의 샨티 락시타와 파드마삼바바(蓮華生)가 밀교(密敎)를 전한 후 티베트 불교의 근본은 밀교가 되었습니다.

9세기 라마교가 종교 이상으로 세력화되자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랑다르마 왕은 경전을 불태우고 승려를 감금하는 등 라마교를 탄압하였고, 결국 승려계층에 의해 랑다르마 왕이 암살되면서 티베트는 분열되었고 오랜 암흑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이후 일정한 세력을 가진 라마교 종파들이 사찰을 중심으로 작은 국가와 같은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각 종파들은 정치적 주도권을 잡기 위해 이전투구를 거듭했습니다.
12세기 몽골에 의해 점령당했으나 문화적으로 몽골에 앞선 티베트는 13세기 라마교를 몽골에 전파하면서 라마교는 원(元)나라의 국교가 되었습니다. 14세기 말 몽골의 세력이 약해지자 파크모두 왕조가 일어나 티베트 통치를 자임했으나 통일왕조를 세우지는 못했습니다. 15세기 라마교 최대 종파인 거루파(格魯派=黃帽派)의 창시자 총카파(宗喀巴, 1357~1419년)는 반야중관(般若中觀) 사상을 기초로 타락한 밀교를 개혁하여 화려한 종교문화를 꽃피웠으나 티베트의 군사력이 약해지면서 평화를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총카파의 제자 중 겐둔그룹(1391∼1475년)은 초대 달라이 라마가 되었고, 몽골은 거루파 지도자를 '위대한 스승'을 의미하는 달라이 라마라고 호칭하였고, 달라이 라마 제도는 오늘날까지 티베트 사회에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17세기 거루파는 외세인 몽골을 끌어들여 닝마파(寧瑪派=紅帽派)를 축출하면서 달라이 라마 정권이 티베트를 재통일하였으나, 18세기 만주족이 청(淸)나라를 건국한 이후 강희제에 의해 보호령으로 전락하였습니다. 그러나 청나라는 달라이 라마를 국사로 임명하고, 달라이 라마는 황실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티베트의 지지기반을 다지는 긴밀한 협력관계가 1912년 청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200여 년간 이어졌습니다.

이후 티베트는 독립을 선언하고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의 일원으로 활약했지만,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면서 1951년 모택동은 무력을 동원하여 티베트를 점령하였습니다. 초창기 중국은 달라이 라마 14세에게 주요 요직을 주며 회유하기도 했으나 1959년 티베트 공산화에 반대하는 봉기가 발생하면서 120만 명에 달하는 티베트인들이 희생되었습니다. 1959년 달라이 라마 14세는 인도 맥그로드 간즈로 망명하여 티베트 망명정부를 세웠고, 1960년대 문화대혁명으로 티베트의 종교 유산은 대부분 처참하게 파괴되었고 승려들은 강제적으로 환속되었습니다. 중국은 티베트의 자치를 허용하고 있지만 달라이 라마는 보다 높은 수준의 자치를 요구하며 중국과 대립하고 있습니다. 티베트인들은 자신의 국가를 관음(觀音)의 정토(淨土)로, 198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달라이 라마 14세를 관음의 화신으로 믿고 있습니다.

♣ 호텔(게스트하우스) : 방다(邦達)
식사
  • 조식호텔식
  • 중식현지식
  • 석식현지식

1 Day

 
▶천장북로(川藏北路)와 천장남로(川藏南路)가 교차하는 길이 약 80Km, 너비 20Km의 [방다초원(邦達草原)]
- 웡산(翁山) 중심 산등성이의 광활한 대지 위에 분지 형태로 나타나며, 누강(怒江)의 지류인 위취허(玉曲河) 양쪽 연안의 저습지대에는 낮고 가는 초습지 식물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초원의 북쪽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해발에 위치하는 방다공항이 있습니다.


>72개 굽이의 해발 4,658m 예라산(業拉山)을 지나 바쑤(八宿, 해발 3,280m)로 이동 (95Km, 2시간 30분 소요)

- 800여 Km의 누강은 청장고원의 탕구라산맥 남단에서 발원하여 6~7m/초의 속도로 흘러 파도 소리가 웅장해 '노한 강'이라는 뜻에서 누강(怒江)이라고 불리며, 운남성, 미얀마, 인도를 지나 인도양으로 흘러갑니다.

>해발 4,475m의 안지우라산(安久拉山)을 지나 란우호(然烏湖, 해발 3,850m)로 이동 (90Km, 1시간 45분 소요)

▶남서쪽에 강리가부설산(崗日?布雪山), 남쪽에 아자궁라(阿紮貢拉) 빙하, 북쪽에 라이구(來古) 빙하, 북동쪽에 보수라령(伯舒拉嶺) 등 사방의 설산에서 눈이 녹아 형성된 [란우호(然烏湖)]
- 탕구라산맥과 횡단산맥의 합쳐지는 곳에 위치하는 천장공로(川藏公路)에 인접한 전형적인 지진 호수로 그 아름다움을 가리켜 '빛나는 진주'라고 불립니다. 면적 22만 ㎢, 길이 26Km, 너비 1~5Km의 란우호는 '시체 사이에 있는 호수'를 뜻하며, 전설에 따르면 호수에 물소가 살았는데 어느 날 땅에 사는 황소와 서로 힘을 겨루다 둘 다 지쳐서 죽게 되고, 그 시체가 산으로 변하고 그 사이에 호수가 생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립니다. 란우진(然烏鎭)에서 10Km 떨어진 '와촌(瓦村)'의 가옥들은 전형적인 티베트 남동쪽 임야구역의 건축양식을 나타내는 민가의 모습이 잘 남아 있습니다.

>미퇴빙천(米堆氷川)으로 이동 (40Km, 1시간 소요)

▶800m의 얼음폭포가 장관을 이루는 [미퇴빙천(米堆氷川) 미니 트레킹]

>티베트어로 '선조(先祖)'를 뜻하는 '티베트의 스위스'라고 불리는 보미(波密, 해발 2,737m)로 이동 (105Km, 2시간 소요)

- 란우호에서 보미로 가는 130Km는 천장공로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파룽장부강(迫龍藏布江)이 흐르는데, 해발 2,000m에 원시삼림, 빙천, 하천의 아름다움으로 '티베트의 스위스'라고 불립니다.
▣ 룽다(Lungda)와 타르초(Tharchog)

마을 입구 등에 긴 장대에 라마경전을 오색의 긴 깃발로 매단 것을 '룽다'라고 합니다. 마치 초원을 질주하는 말 갈기와 같은 모습으로 바람이란 뜻의 룽(風)과 말이란 뜻인 다(馬)가 합쳐진 티베트어로, 진리가 바람을 타고 세상 곳곳으로 퍼져 모든 중생들이 해탈에 이르라는 티베트인들의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긴 줄에 정사각형의 경문을 줄줄이 이어 달은 만국기 같은 형태를 '타르초'라고 합니다. 타르초의 색깔은 우주 5원소를 의미하며, 파란색은 하늘, 노란색은 땅, 빨간색은 불, 흰색은 구름. 초록색은 바다로 우주의 모든 것을 상징하며, 모든 생명의 근원과 신성을 상징합니다. 라마불교 고유의 하얀 불탑을 '쵸르텐'이라고 합니다.

티베트인들은 타르초와 룽다에 적힌 불경을 바람이 읽으면 그 바람을 맞은 사람은 불경을 읽은 것과 같다고 여긴다고 합니다. 룽다나 타르초에는 옴 마니 반(파드)메 훔 같은 경문이 가득 씌어있습니다. 사람들은 타르초가 휘날리는 고갯마루에 오르면 향을 피우거나, 라체(신성한 언덕, 험난한 고갯길 등에 쌓은 돌 무더기로 우리의 성황탑과 비슷함)에 하닥(무사안녕, 축복, 환생 등 인간이 신(神)과 자연에 의지하고 바라는 모든 소원을 담은 백색의 긴 천)을 걸며 소망과 무사태평과 환생을 빌곤 합니다.

▣ 라마불교의 경전을 넣은 법구(法具) 전경통(轉經筒, 마니차-Mani Wheel)

티베트 라마교 사원에는 어김없이 황금색 대형 마니차가 설치되어 있고, 장족들은 집이나 길을 걸어가면서도 우측 손에 작은 휴대용 마니차를 들고 계속 돌리고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불심(佛心)이 깊었던 티베트인들은 글을 배우지 못해 라마불교 경전을 읽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바로 마니차인데, 중앙에 막대기를 꽂은 원통 속에 부처님의 가르침인 경전을 둘둘 말아 넣고 돌리면 원통(圓桶)에 달린 무게추의 원심력에 의해 자연스럽게 회전운동을 합니다. 티베트인들은 마니차가 돌아가면서 일으키는 바람(氣)이 경전을 읽어준다고 생각합니다.

티베트인들은 왼손으로는 백팔염주를 세고, 오른손으로는 마니차를 돌리면서 불교 천수경(千手經)에 나오는 관세음보살의 육자진언(六字眞言) '옴 마니 반(파드)메 훔(산스크리트어 Om Mani Padme Hum)' 진언염불(眞言念佛)을 합니다. 육자진언은 관세음보살의 자비를 나타내는 주문으로, 문자적인 뜻은 '옴, 연꽃속에 있는 보석이여, 훔'으로서 이 주문을 외우면 관세음보살의 자비에 의해 번뇌와 죄악이 소멸되고, 온갖 지혜와 공덕을 갖추게 된다고 합니다. 이런 뜻과 상관없이 티베트인들은 그냥 많이 외우기만 하면 그 자체로 영험을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옴(Om) : 천지가 개벽한 태초 이전부터 울려온 우주의 소리(氣)를 의미함
마니(Mani) : 여의주(如意珠)를 뜻하며, 깨끗한 지혜를 상징함
반메(Padme) : 연꽃을 뜻하며, 무량(無量)한 자비(慈悲)를 상징함
훔(Hum) : 우주의 수많은 존재들 중 하나하나의 개별적인 존재가 담고 있는 소리를 의미함

▣ 오체투지(五體投地)

오체투지는 고대 인도에서 행하여지던 예법 가운데 상대방의 발을 받드는 접족례(接足禮)에서 유래한 것으로 불보(佛寶)ㆍ법보(法寶)ㆍ승보(僧寶) 삼보(三寶)에 올리는 큰 절을 의미합니다. 자신을 낮추면서 양 무릎과 팔꿈치, 이마 등 신체의 다섯 부분이 땅에 닿도록 하는 오체투지는 중생이 빠지기 쉬운 교만을 떨쳐버리고 어리석음을 참회하는 예법으로 밀교에서는 스스로 고통을 겪으면서 수행하는 방법으로 행하여져 엎드려 온몸을 완전히 땅에 붙이는 형태를 취합니다.

♣호텔(3성급) : 보미(波密)

 

식사
  • 조식호텔식
  • 중식현지식
  • 석식현지식

1 Day

 

>루랑목장(魯朗牧場, 해발 3,385m)으로 이동 (130Km, 3시간 30분 소요)

▶깊은 삼림 속에 묻혀 있는 전형적인 고원 방목지 [루랑목장(魯朗牧場)]

>루랑림해(魯朗林海)로 이동 (45Km, 1시간 소요)

▶좁고 긴 형태의 전형적인 고산 초습지로 삼나무, 소나무 등이 무성한 숲을 형성하고 주변에 야생화가 피어나는 [루랑림해(魯朗林海)]

▶해발 7,700m 이상의 산 중에서 유일하게 정상을 허락하지 않은 세계에서 15번째로 높은 해발 7,782m의 처녀봉 [난자바와봉(南迦巴瓦峰) 조망]
- 티베트어로 '하늘에서 떨어진 돌'을 뜻하며, 2005년 '중국국가지리' 책에 중국 10대 명산중 가장 아름다운 산으로 꼽혔습니다. 산의 낙차가 커서 주변에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산 아래에는 온천과 식물이 많아 이상적인 등산지이자 요양지로 유명합니다.

>바이(八一, 해발 2,950m)로 이동 (50Km, 1시간 15분 소요)

▶해발 3,040m의 산 비탈에 수령 2,500년의 높이 50m, 지름 5.8m의 사이프러스를 비롯해 1,000여 그루가 있는 [세계백수왕원림(世界柏樹王園林)]
 
▣ 장족(藏族)의 삶과 밀접한 라마불교(藏傳佛敎)

한국에서 티베트를 바라보는 시각은 극히 피상적입니다. 지난 몇년간 국내를 시끄럽게 했던 14대 달라이 라마의 방한문제에 있어서도 많은 사람들은 같은 이해의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 첫번째는 티베트의 영역범위에 대한 인식이 너무 협소하다는 점이다. 지금 중국 영토의 일부분인 서장자치구(西藏自治區, 티베트)는 과거 티베트 전체 영토의 1/2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국 국토의 1/5을 차지하는 티베트에 대한 명확한 이해없이 티베트를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거대하면서 거친 고산지대에 사는 티베트인들의 생활방식은 티베트의 수도 라싸나 동부, 중부, 서부가 각기 판이하고 서부의 사천성과 북부의 청해성(靑海省), 북서부의 감숙성(甘肅省)내에서도 각 지역마다 독특한 개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티베트인 스스로를 부르는 표현 또한 가지각색이어서, 중부지방 사람들은 '보바(博巴)'라고 자칭하고 서부지역은 '캉바(康巴)'라고 합니다. 지금의 청해성과 감숙성, 사천성 서부에 사는 티베트인들은 스스로를 '안뚜어와'라 부르고, 사천성 일부 지역에서는 '지아룽와'라고도 자칭합니다. 언어학적 방면에서 또한 티베트어는 티베트-미얀마어계이지만, 크게는 3가지에서 많게는 수십가지까지 다양한 방언이 존재합니다. 웨이장(衛藏), 캉(康), 안(安)으로 대표되는 3대 방언은 거의 외국어나 다름없어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큽니다. 문자의 경우 7세기초 분열된 티베트를 최초로 통일한 영웅 송첸칸포가 창건한 자모 문자가 지금까지도 티베트 전역에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티베트를 이해하기 위한 두 번째 고리는 라마불교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입니다. '라마'는 티베트어를 중국어로 음역한 것으로 '스승' 혹은 '윗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불교가 갓 전래됐을 당시 티베트인들은 사찰의 고승들을 '라마'라고 높여 부르고 일반 승려들은 '짜바'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던 것이 후세에 이르러 '라마' 한 단어로 통일하게 된 것입니다. 티베트에서 불교가 처음 전래된 것은 대략 7세기경으로 인도에서 직수입되기도 하고 중국에서 전래되기도 했습니다. 초기 티베트 본래의 다신숭배적인 원시신앙과 큰 마찰을 빚던 불교는 고원지대의 특수한 역사적 환경 속에 융합하면서, 10세기경에는 독특한 지역적 특색을 지닌 라마불교가 형성되었습니다.
거대한 티베트 영토만큼 전래 경로도 다양했던 불교는 중국과 인도에서 들어온 승려들의 교파가 서로 달랐습니다. 티베트 승려들이 불법을 배우고 불경을 번역하며 제자들은 양성하는 것도 역시 그 갈래를 달리했습니다. 이런 연유로 각 교파들은 서로 자기의 깃발을 내걸고 자신들이 남보다 낫다는 것을 표방하고 나섰습니다. 여기에 각지에 할거했던 다양한 지방토호세력들과 결탁하면서 정교합일(政敎合一)이라는 사회체제를 갖추었습니다. 오늘날까지 생명력을 유지하면서 티베트인의 정신세계와 생활문화를 지배하는 라마불교 종파는 거루파, 닝마파, 거쥐파, 사가파 등입니다.
현존하는 라마불교의 가장 오래된 종파로 11~12세기 티베트의 고승 슈오츄웅바와 주어푸바에 의해 창립된 닝마파는 8세기 인도 고승 파드마삼바바(蓮花生)를 창시자로 받들고 있습니다. 이들은 옛 티베트에서 성행되었던 주문을 숭상하고 그 전통을 계승하는 것을 주된 과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또한 성립 당시 새로운 불법을 숭상하는 기타 교파와 대립해 '닝마파(낡은 교파)'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승려들이 모두 붉은 모자를 썼기때문에 '홍교(紅敎)'라고도 불립니다.
거쥐파(喝擧派)는 마얼바(瑪爾巴), 미라르바(米拉日巴)가 창시한 종파로 '거쥐'는 '입으로 전한다'는 뜻입니다. 이 교파는 불법을 구두로 전하는 것을 중요시하여 귀로 듣고 마음으로 이해하기에 힘쓰고 경전을 중시하지 않습니다. 거쥐파의 승려들은 불법을 닦을 때 흰 옷을 입었기 때문에 '백교(白敎)'라고도 불립니다. 라마불교에서 활불환생 제도를 가장 먼저 실행한 거쥐파는 일반 승려들이 모두 남자인 반면 사찰의 주지가 여승인 '샤딩사(沙丁寺)'라는 절이 있습니다. 오늘날 티베트 카즈에 있는 이 사원의 주지를 '두어지파무'라 부르며 라마불교의 유일한 여활불로 받들어지고 있습니다.
티베트 사가(薩迦) 지방을 중심으로 교파가 발흥한 사가파는 사찰의 벽에 홍ㆍ백ㆍ남 세 가지로 칠을 하기 때문에 '화교(花敎)'라고도 불립니다. 사가파의 창시자는 티베트 콴(款)씨 가문의 후예인 궁췌지에부로, 11세기 사가에 사원을 짓고 스스로 교주가 되었습니다. 이 교파의 승려들은 혼인하여 자식을 둘 수 있는데 자식을 낳은 뒤에는 여자를 가까이하지 못하도록 했고, 사찰의 주지를 가족에 따라 전승하는 제도도 확립했습니다. 이에 따라 정치와 종교 두 가지 권력을 한 가족에 집중시켰습니다. 원대에 가장 강력했던 사가파는 5대 교주인 바스바(八思巴)가 원나라의 제사(帝師)에 봉해지고 티베트의 실권을 장악하는 정교합일의 지방정권까지 성립시켰습니다. 그러나 14세기 등장한 거루파에 의해 대체되고 사가와 사천성 더거(德格)로 그 세력이 축소되었습니다. 더거의 겅칭사(更慶寺)는 인경원(印經院)을 포괄하는 중요한 사찰입니다.
'계율을 잘 지킨다'는 뜻의 거루파는 라마승들이 누런 모자와 옷을 쓰고 입기에 세칭 '황교(黃敎)'라고도 합니다. 거루파는 라마불교에서 가장 늦게 형성된 교파인데, 승려들이 계율을 엄격히 지키게 하고 불경을 공부하는 것을 착실하게 순서에 따라하게 하며 종교조직체를 강화하는데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달라이 라마나 판첸 라마가 모두 거루파의 정치ㆍ종교 지도자입니다. 16세기 중엽부터 티베트 전지역에서 가장 큰 교세와 영향력을 행사했던 거루파는 오늘날에 이르러 다른 세 종파를 훨씬 압도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라마불교를 상징하는 달라이 라마는 거루파 지도자를 호칭하는 것입니다.

♣ 호텔(4성급) : 린즈(林芝) 
식사
  • 조식호텔식
  • 중식현지식
  • 석식현지식

1 Day

 
>야루장푸강의 5대 지류 중 하나인 니양하(尼洋河)를 따라 바허진(巴河鎭, 해발 3,150m)으로 이동 (80Km, 2시간 소요)

- 고대 미라산(米拉山) 인근의 빙하작용으로 생성된 길이 307.5Km의 니양하는 궁부(工布)지역의 젖줄로 냥취(娘曲)라고 불립니다. 공푸인(工布人, 린즈사람을 일컫는 말)들은 니양하를 신산(神山)이 흘린 눈물로 형성된 어머니의 강이라고 합니다.

▶1,000여 년 전 당나가 말기 통신과 방어를 위해 서로 다른 높이의 보루 5개를 조성한 [슈바구바오(秀巴古堡)]

>티베트어로 '계곡의 커다란 출구'를 뜻하는 궁부장다(工布江達, 해발 3,390m)로 이동 (50Km, 1시간 소요)

>다쯔(達孜)로 이동 (240Km, 4시간 소요)

▶1409년 거루파의 개조(開祖) 총카파가 현교(顯敎)의 학습을 목적으로 동당(東堂)ㆍ북당(北堂) 2개 학당을 건립한 근본 도량 [간댄사원(甘丹寺)]
- 학당의 장은 최고의 학승 중에서 2명을 선출하고, 그 중에서 다시 간댄사원의 주지(住持, 티바)를 선출해 황모파의 통수(統帥)로 추대했는데, 주지직은 달라이ㆍ판첸 다음의 높은 자리로서 법왕이 없는 동안에는 섭정직을 겸했습니다. 융성했던 때는 학승 3,300명이 있었으나, 중국의 문화혁명 때 많이 파괴되었습니다.

거루파는 법회 때 승려들이 황색 모자를 써서 황모파(黃帽派) 또는 황교(黃敎)라고도 불립니다. 842년 다르마 왕 때의 폐불(廢佛)정책 이후 70여 년에 걸친 암흑기를 지나, 10세기 말에 이르러 티베트 불교가 재건될 때 동북(東北) 지방으로부터 계율을 전한 사람들이 율법을 지닌 자임을 나타내기 위해 황모(黃帽)를 착용했습니다. 그뒤 총카파가 카담파(派)를 개혁, 거루파를 일으키고 계율의 엄수를 부르짖으면서 황모를 사용했습니다. 이들은 밀교를 배우기에 앞서 현교의 완전한 학습을 의무적으로 행하게 했고, 탄트라 불교의 전통을 가지면서도 온건 청결한 종풍(宗風)을 계속 유지했습니다. 1409년 총카파가 건립한 간댄사원의 주지승이 이 종파를 주재했으며, 1642년 달라이 라마 정권이 수립되자, 정통파 불교의 지위를 얻고 달라이 라마 직할 종교가 되었습니다. 17세기 청(淸) 태조 누르하치가 거루파 지도자에게 달라이 라마 호칭을 부여한 후 1959년 티베트가 중국에 예속되기 전까지는 티베트의 종교는 물론 정치도 지배했습니다.

>티베트의 수도 라싸(拉薩, 해발 3,650m)로 이동 (50Km, 1시간 30분 소요)

▣ 거루파(格魯派)의 활불(活佛) 달라이 라마(Dalai-Lama)

달라이 라마 칭호는 제3세 달라이 라마 소남 갸초(1543∼1588)가 몽골 토메토의 알탄 칸의 초청을 받고 1578년 청해(靑海) 지방에 갔을 때 받은 것입니다. 그 이름의 뒷부분 '갸초'에 해당하는 몽골어가 '달라이'로서 '바다'를, '라마'는 티베트어로 '스승'을 뜻합니다. 제3세는 원래 드레풍사원의 주지였는데, 선대인 겐둔 갸초(1475?∼1542)가 거루파의 정치적 지도자로서 대립하는 카르마파(특히 紅帽派)와 다투었기 때문에 같은 행동이 기대되어, 스스로 몽골 부족을 유세하며 신자를 얻어야 했습니다. 그가 죽은 뒤 새로운 활불로 알탄 칸의 증손 윤텐 갸초(1589∼1616)가 선출되자, 외국의 군사력을 배경으로 하는 노골적인 위협정책이라 하여 카르마파의 증오심이 확대, 군사적인 대결만을 남겼습니다.

제5세 달라이 라마 롭상 갸초(1617∼1682) 때에는 몽골정권에 큰 변동이 생겨서 거루파는 흔들리고, 소남 랍된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세력은 새로 카르무크와 동맹하여, 결국 구시 칸의 군대를 티베트에 끌어들여 신샤크파 정권을 전복, 사실상 티베트의 정치ㆍ종교의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1642년 달라이 라마 정권이 수립된 후, 드레풍사원의 주지는 티베트 국왕의 신분과 거루파 법왕의 지위를 얻었습니다. 제5세의 제자이자 섭정이던 상게 갸초(1653∼1705)는 달라이 라마의 국가원수로서의 정당성을 <문수리근본의궤경(文殊利根本儀軌經)>의 예언을 인용 증언하며, 티베트는 원래 관음보살의 교화의 땅으로 정해져 있고, 달라이 라마는 관음보살의 화신이라면서, 제1세를 총카파의 제자 겐뒨 둡(1391∼1472)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주장을 추가했습니다.

제6세 달라이 라마 찬잉 갸초(1683∼1706)가 청(淸)나라의 간섭으로 폐위되어 북경(北京)으로 연행되려 할 때, 일반 승려와 민중은 이에 저항하여 달라이 라마에 대한 강렬한 신앙을 보였습니다. 1750년 이후 청의 지배 하에서 달라이 라마의 선출방법이 흐트러져, 제9세부터 12세까지 어린 달라이 라마는 권력투쟁의 희생이 되었습니다. 제10세 달라이 라마는 난을 피해 정권을 잡고 독립과 근대화를 꾀했으나 실패했습니다. 제14세 달라이 라마는 중국군이 티베트로 공격해와 중국에 병합되었으며 한때는 새 체제에 복종했으나, 1959년 측근들과 함께 인도로 탈출, 다람살라(Dharamsala)에 망명정권을 수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제1대 달라이 라마 : 젠둔 드럽(Gendun Drub 1391~1475)
제2대 달라이 라마 : 지알와 젠둔 갸초(Gyalwa Gendun Gyatso 1475~1543)
제3대 달라이 라마 : 지알와 소남 갸초(Gyalwa Sonam Gyatso 1543~1588)
제4대 달라이 라마 : 왼텐 갸초(Yonten Gyatso 1589~1617)
제5대 달라이 라마 : 응가왕 롭상 갸초(Ngawang Lobsang Gyatso 1617~1682)
제6대 달라이 라마 : 리그진 창기앙 갸초(Rigdzin Tsangyang Gyatso 1683~1706)
제7대 달라이 라마 : 켈상 갸초(Kelsang Gyatso 1708~1804)
제8대 달라이 라마 : 잠펠 갸초(Jampel Gyatso 1758~1804)
제9대 달라이 라마 : 룽토크 갸초(Lungtok Gyatso 1806~1815)
제10대 달라이 라마 : 출트림 갸초(Tsultrim Gyatso 1816~1837)
제11대 달라이 라마 : 케드럽 갸초(Khedrup Gyatso 1838~1856)
제12대 달라이 라마 : 트리네 갸초(Trinle Gyatso 1856~1875)
제13대 달라이 라마 : 툽텐 갸초(Thubten Gyatso 1875~1933)
제14대 달라이 라마 : 텐진 갸초(Tenzin Gyatso 1935~ 현재)
♣ 호텔(준5성급) : 마나사로바(神湖酒店)/야루장부대주점(雅魯藏布大酒店)
식사
  • 조식호텔식
  • 중식현지식
  • 석식현지식

1 Day

 
▣ 티베트의 수도, '신(神)의 땅' 라싸(拉薩)

티베트 남부, 브라마푸트라강(江)의 상류인 야루장부강의 지류인 라싸강이 이루는 넓은 곡저평야(谷底平野)에 자리하는 서장자치구 최대의 도시입니다. 1994년 포탈라궁, 2000년 뤄부린카에 이어 2001년 조캉사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연평균기온 8.3℃, 최한월(1월) 평균기온 -1.7℃, 최난월(6월) 평균기온 16.7℃를 보여 혹한과 혹서가 없습니다.

티베트어로 '신의 땅'을 뜻하는 라싸의 기원은 7세기 초 토번의 왕이 이곳에 거주하면서 국가통일을 이룩한 데서 비롯됩니다. 그 뒤 정교일치(政敎一致)의 라마교의 종교 및 정치 중심지가 되었고, 특히 명(明)나라 말 이후에는 라마교 황모파 최고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의 본거지가 되었습니다. 정교일치의 체제는 1959년 3월 제14대 달라이 라마가 중국군에 쫓겨 인도로 망명할 때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최초로 티베트의 여러부족을 통일한 송첸캄포(松贊干布, 617~650년)가 당(唐)에서 시집온 문성공주(文成公主, 625~680년)가 가져온 불상을 모시기 위해 지은 라싸 최대의 불교사원 [조캉사원(大昭寺)]
- 내부에는 823년 당(唐)과 토번(吐蕃)이 맺은 평화조약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당번회맹비(唐蕃會盟碑), 1794년 천연두가 만연했을 때 세워진 비석과 당 태종이 수양딸인 문성공주를 송첸캄포에게 시집보낼 때 가져온 황금불상, 신화와 전설 및 불교 고사를 묘사한 벽화 등이 있습니다. 옥상에 올라가면 티베트 라마교 사원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동물의 상과 포탈라궁을 비롯한 라싸 시내의 멋진 전경을 볼 수 있습니다. 사원 앞은 라싸 최대의 번화가로 각종 노점이 번화한 바코르(八角街)가 있습니다.

▶본래 송첸캄포가 문성공주를 위하여 만든 궁이었으나, 최초로 종교와 세속권력을 차지한 달라이 라마 5세가 1645~1693년 개축한 이후 1959년 14대 달라이 라마 텐진 갸초가 인도로 망명할 때까지 티베트의 제정일치를 보여주는 티베트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포탈라궁(布達拉宮)]
- 살아있는 관음보살로 숭배되는 달라이 라마가 사는 곳이라 하여 普陀落을 음역하여 布達拉宮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총 면적 10만㎡, 주건물은 외관 13층, 실제 9층으로 높이가 117m, 폭 360m이며, 건물 꼭대기에는 황금빛 궁전 3채가 있고 그 아래로 5기의 황금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궁전의 중심에 있는 1690년 13층 고층누각으로 건설된 홍궁(紅宮)은 종교적 공간으로, 궁의 중심인 영탑전(靈塔殿)에는 높이 14.85m에 3층으로 석가모니의 지골사리(指骨舍利)와 총카파의 발우(鉢盂)를 모시고 황금 5500㎏과 보석ㆍ옥돌 1만 8,680개로 화려하게 조성한 5대 달라이 라마의 영탑(靈塔)을 비롯해 7~13대 달라이 라마의 영탑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7세기 토번시기의 건축물로 송첸캄포ㆍ문성공주ㆍ척존공주(尺尊公主) 및 토번왕조 대신들의 소상이 있는 법왕동(法王洞), 수승삼계전(殊勝三界殿), 총카파와 6대~12대 달라이 라마의 상이 있는 상사전(上師殿), 동(銅)으로 주조된 3,000여 존의 불상이 있는 향동전(響銅殿), 금으로 제작된 석가모니와 은으로 제작된 5대 달라이 라마상이 모셔져 있는 세습전(世襲殿) 등의 불당이 있습니다.

홍궁 동쪽에 있는 백궁(白宮) 4층의 적원만대전(寂圓滿大殿)은 백궁에서 가장 큰 불당으로 달라이 라마가 중대한 종교 활동 및 정치 활동을 하는 장소입니다. 5, 6층은 달라이 라마가 집무를 보고 생활을 하는 곳이고, 맨 위쪽 7층에는 겨울에 기거하는 방이 2개 있는데 하루 종일 햇볕이 들어 동일광전(東日光殿)과 서일광전(西日光殿)이라고 부릅니다.

▶티베트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다양한 물품들을 전시하는 [서장박물관(西藏博物館)]
- 구석기시대부터 신석기시대에 이르는 각종 유물과 인근 지역에서 출토된 오래된 생활 물품, 티베트의 수학ㆍ과학ㆍ의학의 역사에 관한 자료, 문성공주가 마귀의 심장을 억압하기 위해 라싸의 지형을 여체에 비유하여 그 자궁에 해당하는 부분에 조캉사원을 지었다는 내용의 자료, 인민정부 서장지역 합병문서 등이 있습니다.

▶간댄사원, 드레풍사원(哲蚌寺)과 함께 라싸 3대 사원의 하나로 1419년 거루파의 창시자인 총카파의 지시로 그의 제자 사캬예셰에 의해 창건된 [세라사원(色拉寺)]
- 이곳은 역대 달라이 라마가 오늘날 박사학위에 해당하는 '게쉐'를 받았던 최고 권위의 불교대학으로 현교 전문의 2학당과 밀교 전문의 1학당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달라이 라마 3세 이래 달라이 라마가 주지를 맡는 직관사(直管寺)가 되었고, 한때는 5,500여명의 승려가 수행했습니다. 현재에도 약 300여 명의 승려들이 매일 오후 3시면 사찰의 정원에 나와 변경(辨經)이라 불리는 1:1로 서로에게 문답을 주고 받으며 수도하는 진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사원의 뒷편에는 티벳 전통의 천장(天葬)을 하는 곳이 있다.

♣ 호텔(준5성급) : 마나사로바(神湖酒店)/야루장부대주점(雅魯藏布大酒店)
식사
  • 조식호텔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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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ay

 
>라싸(拉薩) 출발
 
▣ 1,142Km의 하늘길(天路) 청장열차(靑藏列車)

1984년 청해성 서녕(西寧)에서 거얼무(格爾木)까지 814Km가 개통된 후 2006년 7월 1일 거얼무에서 티베트 라싸까지 평균해발 4,500m의 1,142Km가 개통되었습니다. 청장철로 구간 중 최고지점인 해발 5,072m의 탕구라(唐古拉)를 비롯해 해발 4,000m 이상의 구간이 960Km에 이르며 티베트인들이 신(神)의 영역으로 여기던 지역을 통과하기에 일명 '하늘길(天路)'이라고 불립니다. 북경(北京, 40시간 30분), 상해(上海, 47시간 30분), 광주(廣州, 53시간 45분), 중경(重慶, 42시간 15분), 성도(成都, 43시간), 난주(蘭州, 24시간 45분), 서녕(西寧, 22시간)에서 라싸를 오가는 열차가 매일 또는 격일로 운행되고 있습니다.

청장열차는 승객들의 고산병을 막기 위한 산소공급장치, 자외선 방지기능이 있는 유리창, 벼락방지장치 등을 갖추고 디지털 관제장치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하늘길'이라는 이름과 같이 열차표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만큼 어려워 여행객의 의사와 상관없이 6인실 또는 4인실중 확보되는 열차칸을 이용해야 합니다.


※ 라싸~나취(那曲)까지 가이드가 동행하여 청장열차의 이용에 대한 안내를 해드립니다.
※ 청장열차 내 식사는 개별적으로 부담해야 하며(조식 25위안부터, 중식과 석식 35위안부터), 열차 내에서 읽을 책과 먹을 음식을 사전에 준비해 가시는 것이 좋습니다.

서장자치구 북부의 행정과 교통의 중심지 나취(那曲)는 서장자치구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현으로 티베트어로 '검은 물'을 뜻합니다. 동쪽으로 창두(昌都), 서쪽으로 아리(阿里), 남쪽으로 라싸(拉薩)ㆍ린즈(林芝), 북쪽으로 신강위구르자치구(新疆維吾爾自治區)ㆍ청해성과 접하고 있는 입니다. 탕구라산맥ㆍ니엔첸탕글라산맥(念靑唐古拉山脈)ㆍ강디쓰산맥(岡底斯山脈)에 둘러싸여 있으며, 누강(怒江)이 흐릅니다. 평균 해발 4,500m 이상의 고산지대로 공기가 희박하고, 연평균기온 -0.9℃∼-3.3℃로 춥고, 연평균 강수량 380mm로 건조합니다. 티베트에서 가장 면적이 큰 호수 남초호(納木錯) 있으며, 북쪽의 창탕고원(羌塘高原)에는 이곳에서만 서식하는 야생 야크ㆍ티베트 당나귀ㆍ양ㆍ가젤ㆍ영양 등의 포유류와 조류 60여 종, 식물 400여 종이 있습니다.

나취(那曲)지구 안둬현(安多縣)에 있는 춰나호(錯那湖)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해발 4,594m에 위치하는 면적 300㎢의 담수호로 누강(怒江)의 발원지입니다. 탕구라산맥 남부의 강과 계곡들이 모여 누강으로 유입되는 이 곳은 티베트인들에게 성스러운 호수로 알려져 있어 많은 신도들이 모여듭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해발 5,068m에 위치하는 열차역 탕구라역(唐古拉站) 부근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해발 5,072m의 철로 지점이 있습니다.
♣ 숙박 : 청장열차
식사
  • 조식호텔식
  • 중식청장열차 내 식사(불포함-개별매식)
  • 석식청장열차 내 식사(불포함-개별매식)

1 Day

 
>해서몽고족장족자치주(海西蒙古族藏族自治州) 거얼무(格爾木) 경유

동서 105Km, 둘레 360Km, 최대수심 27m에 달하는 중국 최대의 염호(鹽湖) 청해호(靑海湖)는 몽고어로 '푸른 바다'를 뜻하는 쿠쿠눠얼(庫庫諾爾)로 불리는 해발 3,260m의 고산호수입니다. 본래는 바다였으나 지각충돌로 인해 솟아 오른 후 바닷물이 갇혀 호수가 되었습니다. 호수 안에는 많은 섬이 있는데, 특히 티베트 라마교 사원이 있는 해심산도(海心山島)와 매년 4월 말~5월 초 여러 종류의 새들이 날아와 장관을 이루는 자연보호구 조도(鳥島)가 유명합니다.
인구 580만 명의 청해성(靑海省)은 중국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낙후된 지역이지만, 티베트 장족(藏族)을 비롯한 사라족(撒拉族), 토족(土族), 회족(回族) 등 황하(黃河)를 배경으로 소박하게 살아가는 다양한 소수민족들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청해성 성도(省都) 서녕(西寧)은 7~8월에도 아침 기온이 10℃ 전후의 선선한 날씨를 보여 '여름의 도시, 하도(夏都)'로 불리며, 청장공로(靑藏公路)와 청장철로(靑藏鐵路)를 이용해 티베트로 가는 티베트 여행의 관문도시입니다.
황하 유역에 위치하는 감숙성 성도(省都) 난주(蘭州)는 해발 1,500m로, 황토(黃土)고원과 몽신(蒙新)고원의 과도지대이며, 예로부터 실크로드의 교역지로 번성했습니다. 한(漢)나라 때 금성현(金城縣)이 설치되었고, 수(隋)나라 때 지금의 지명으로 개명했습니다. 안사(安史)의 난(亂) 이후 토번의 땅이었고, 청(淸)나라 때에는 난주부(府)로 개칭했습니다.

>섬서성(陝西省)의 성도(省都) 서안(西安) 도착

▣ 실크로드의 역사

실크로드는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Richthofen, 1833~1905년)이 중국을 다녀온 후 1877년 <중국>이라는 책에서 독일어로 '자이덴슈트라젠(Seidenstrassen)'이라고 명명하면서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으며 중국에서는 '사주지로(絲綢之路)'라고 불립니다. BC 4세기 전국시대부터 한(漢)나라 초까지 실크로드는 타림분지 주변의 '서역(西域) 36국'이라고 불리는 작은 오아시스 국가들에 의해 유지되었는데, 실크로드를 통한 경제적 이익이 커지면서 2세기부터 중국의 왕조들과 흉노ㆍ돌궐ㆍ토번(吐蕃, 현재 티베트) 등의 유목민족들이 실크로드를 차지하여 교역으로 인한 이익을 독점하기 위해 서역 36국을 정치적으로 지배하려는 군사적 움직임이 발생했습니다.

BC 139년경 한무제(漢武帝)는 대월지(大月氏, 아프가니스탄)와 동맹을 맺어 당시 타림분지를 점령하고 있던 흉노를 치기 위해 장건(張騫, ?~BC 114년)을 대월지에 파견했으나 결국 동맹은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장건은 BC 126년 귀국할 때까지 중앙아시아의 대원(大宛, 페르가나)ㆍ강거(康居, 키르기스탄)ㆍ대월지ㆍ소월지(小月氏, 카자흐스탄)ㆍ대하(大夏, 박트리아)ㆍ안식국(安式國, 이란)ㆍ조지(趙地, 시리아)ㆍ신독국(新獨國, 인도) 등을 거쳐 귀국한 후 서역의 지리, 민족, 산물 등을 한무제에게 보고하여 서역과의 교역이 이루어지도록 실크로드를 개척했습니다.

한나라는 서역으로의 통상로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BC 68년 정길(鄭吉, ?~ BC 48년)을 통해 차사국(車師國)을 정복하고, BC 59년 흉노의 일축왕(日逐王)을 정벌하여 룬타이(輪臺)에 오루성(烏壘城)을 짓고 서역도호부(西域都護府)를 세워 서역 36국을 속국으로 다스렸습니다. 반초(班超, 32~102년)는 91년 쿠차(庫車)로 서역도호부를 옮기고, 97년 천산산맥과 파미르고원을 넘어 흉노와 훈족을 정벌하고 서로는 카스피해와 바그다드 인근까지 기지를 확장했습니다. 100년 반초가 낙양으로 돌아와 사망한 후 서역도호부는 흉노와의 패권에 따라 설치와 폐지를 반복하였고, 107년 흉노족의 세력이 강성해져 한나라는 서역도호부를 잃고 영향력을 상실했습니다. 166년 대진국(大秦國, 로마제국) 안돈(安敦,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은 한나라와의 직접적인 교역을 원하며 바다를 통해 사신을 파견했습니다.

동진(東晋)의 고승 법현(法顯, 337?~422년 추정)은 불교 유적지를 순례하고 경전을 구하기 위해 399년 장안(長安)을 출발하여 난주(蘭州)ㆍ돈황(敦煌)ㆍ누란(樓蘭)ㆍ카라샤르(焉耆)ㆍ호탄(和田)ㆍ카슈가르(喀什)를 거쳐 천축(天竺)에 도착했습니다. 414년에 해로(海路)를 통해 장안에 돌아올 때까지 15년간 30개국을 순례하였고, 그의 여행기 <불국기(佛國記)>는 인도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되었습니다.

<서유기(西遊記)>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당(唐)나라의 고승 현장(玄?, 602?~664년)은 629년 장안을 출발하여 돈황ㆍ투루판ㆍ카라샤르ㆍ쿠차ㆍ바이ㆍ타쉬켄트ㆍ사마르칸트ㆍ대하의 도읍 헤라트ㆍ아프가니스탄을 거쳐 인도에 도착했고, 인도에서 몇 년을 머문 후 다시 육로를 통해 645년 장안으로 돌아왔습니다. 현장이 쓴 여행기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는 중앙아시아와 인도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데 큰 가치가 있습니다. 640년 당나라는 투루판의 고창국(高昌國)을 멸망시키고 설치한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 아래에 안서사진(安西四鎭)을 두고 90여 개의 속주(屬州)를 다스림으로서 안정된 교역로를 바탕으로 실크로드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이 시기 서방과의 교역과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특히 조로아스터교ㆍ마니교ㆍ로마 교회에서 이단시되던 네스토리우스파도 중국으로 전래되었습니다. 723년 혜초(慧超, 704~787년)는 장안에서 수행하던 중 인도의 불교 유적지를 순례하기로 하고 광주에서 배를 타고 말레이 반도를 거쳐 인도에 도착하여 몇 년을 머무른 후 인도의 서북부에서 대하(大夏)의 북부를 통해 타슈쿠르칸을 넘어 카슈가르를 통과하고 쿠차ㆍ언기ㆍ고창을 거쳐 장안으로 돌아왔는데 혜초의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은 각국의 종교ㆍ정치ㆍ경제ㆍ풍속을 기록한 매우 가치 있는 자료로 평가평가됩니다. 그러나 755년 안사의 난(安史之亂)과 790년 토번의 타림분지 진출로 당나라는 안서도호부를 잃고 영향력을 상실했습니다. 이후 서역의 동부는 위구르인들이, 서부는 이슬람 세력이 점거하여 실크로드는 파미르 고원에서 끊겨 서역과의 직접적인 교역은 단절되었습니다.

명(明)나라 영락제(永樂帝) 때 운남성의 중앙아시아 이슬람 출신의 환관 정화(鄭和, 1371~1433?년)는 1405년부터 1433년까지 7차례에 걸쳐 남해 원정대를 이끌고 남중국~인도양~아프리카를 연결하는 바닷길을 개척했습니다. 1405년 소주를 출발한 1차 원정 때 장병 27,800여 명이 분승한 총 317척의 대선단은 말라카 해협에서 해적들을 물리치고, 인도 캘커타까지 도달해 진국(鎭國) 비를 건립했습니다. 1431년 마지막 7차 원정 때는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 들렀고, 케냐 스와힐리 해안까지 항해했습니다. 정화의 원정은 중국인들에게 남해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으며, 동남아시아에 화교(華僑)의 증가에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1492년 콜럼버스, 1497년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양 도달보다 80∼90년이나 앞선 정화의 원정은 문신들의 환관에 대한 견제로 원양선이 제거되고 무역이 금지되면서 더이상의 해양개척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후 명나라는 급속히 밀려오는 이슬람 세력과 가욕관ㆍ돈황ㆍ하미ㆍ투루판에서 피비린내 나는 영토 쟁탈전을 거듭했습니다.

18세기 청(淸)나라 건륭제(乾隆帝)가 투루판을 정복하면서 실크로드의 정세가 안정되는 듯 했으나, 지속적인 전쟁과 부패로 인해 국력이 쇠퇴하면서 서양의 아편이 들어오는 등 급격하게 몰락했습니다. 19세기 들어 오늘날까지 신강위구르자치구 위구르인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이 수시로 분출되고 있습니다.

♣ 호텔(5성급)
: 길랑려대주점(吉朗麗大酒店, Branley Hot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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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 조식청장열차 내 식사
  • 중식청장열차 내 식사
  • 석식청장열차 내 식사

1 Day


서안 - 인 천
▣ 실크로드의 시발점ㆍ3,000년 역사의 고도(古都) 서안(西安)

3,000년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서안은 섬서성(陝西省)의 성도(省都)이자, 중국 6대 고도의 하나입니다. 서안은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세운 호경(鎬京)에서 비롯되며, 중국 대륙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과 그의 사후 세계를 지키는 지하군단 병마용갱 등 시대를 풍미했던 수많은 영웅호걸들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가장 번창했던 당(唐, 618~907년)나라 때에는 장안(長安)으로 불리며 동서 9.5Km, 남북 8.5Km의 규모에 인구 100만이 넘는 국제적인 대도시로서 그 명성을 전세계에 떨쳤습니다.

▶명나라 초기 당나라 장안성의 기초 위에 건립한 후 수차례 중수 공사를 거쳐, 방어체계를 구축한 중국에 현존하는 최대 규모의 고성벽으로 1961년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에 의해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된 [서안성벽(西安城牆) 안정문(安定門)]
- 당나라 말기 낙양으로 천도하면서 원래의 도성인 장안성은 대부분 파괴되었습니다. 명나라 초기 주원장에 의해 둘째 아들 주협이 진왕으로 봉해졌고, 1374년 서안성벽의 재건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서ㆍ남쪽은 당나라 장안성 터 위에 성을 연장해 만들었고, 동ㆍ북쪽은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이 공사는 1378년까지 진행하여 기초를 완공한 후 1568년 장벽 위쪽 공사와 외벽쪽의 공사가 마무리되었습니다. 1636년 명나라 말기 섬서순무(陝西巡撫) 손전정(孫傳庭, 1593~1643년)이 이자성(李自成, 1606~1645년)의 반란을 막기 위해 네 문의 옹성을 추가로 만들었습니다.

청대에 이르러 열 두차례에 걸친 중수 작업이 이루어졌는데, 그 중 규모가 가장 큰 것은 건륭제(乾隆帝, 1711~1799년, 재위 1735~1795년) 때인 1781년 포와 해자를 추가해 대대적으로 방어능력을 향상시켰습니다. 성벽은 동서로 길쭉한 장방형으로, 동벽은 2,590m, 서벽은 2,631m, 남쪽 장벽은 3,441m, 북쪽 장벽은 3,241m로 전체 둘레 13.75Km입니다. 성내의 면적은 총 12평방 킬로미터로, 당나라 장안성의 1/7의 크기입니다. 성벽의 높이는 12m, 아래에서 15~18m에 이르며, 동서남북으로 장악문(長樂門), 안정문(安定門), 영녕문(永寧門)과 안원문(安遠門) 등 4개의 성문이 있고, 문 밖에는 옹성이 쌓여있습니다.

▶서안이 실크로드의 시발점임을 상징하는
[실크로드 조각군(絲綢群雕)]

>공항으로 이동 (30Km, 45분 소요)

>[OZ348-13:25] 서안 출발

>[OZ348-17:10] 인천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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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정보 및 준비사항 ▣
1. 환율 : 화폐는 위안(RMB)이며, 한국에서 위안으로 환전해 가시면 됩니다.

2. 시차 : 한국 시간에서 -1시간 (한국보다 1시간 느림)

3. 전압 : 220볼트

4. 준비물
1) 여권, 지갑, 신용카드
2) 여행용 가방(HARD CASE), 핸드백
3) 핸드폰(충전기), 카메라(충전기), MP3(충전기), 노트북(충전기), 헤어 드라이
4) 치솔, 치약, 샴푸, 린스, 화장품, 마스크 팩, 바디 클렌져, 클렌징 폼, 썬크림, 핸드크림, 썬글라스, 면도기, 손톱깎이, 손수건, 여성용품, 접는우산, 휴지
5) 가이드 북, 여행노트, 필기도구, 책
6) 일회용 밴드, 소화제, 지사제 및 개인적으로 평상시 복용하시는 약
7) 입이 짧은 분들은 마른반찬, 고추장, 사발면 등을 준비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5. 매너팁 : 아침 호텔 침대에 $1씩, 객실 내에 짐을 운반해 주는 포터에게 $1씩 주는 것이 관례입니다.

6. 한국과 경제적인 통화요령 : 가급적 짧은 단문의 문자를 이용하고, 음성 통화가 필요한 경우 한국에서 중국으로 전화를 걸어 통화하는 것이 44% 저렴합니다.
1) 음성(SK 기준) : 한국→중국 ₩1,120/분, 중국→한국 ₩2,000/분, 중국→중국 ₩700/분
2) 문자(SK 기준) : 수신 무료, 발신 ₩150/건(MMS ₩300~₩400/건)
3) T 로밍 데이터 무제한 사용 정액제1일 ₩9,000(VAT 별도)

7. 주의사항 :
본 프로그램은 도로사정이 열악하고 숙박, 식사가 불편한 고산지대 오지여행으로 심장병 등 지병이 있으신 분은 참가하실 수 없습니다. 해발이 높은 고산지대에서는 물을 많이 마시고, 흡연ㆍ음주ㆍ목욕은 삼가하고, 간단한 세면만 하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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