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시대 유리왕의 <황조가>는 ‘새’가 등장하는 유명한 시가 중 하나입니다. 쌍쌍이 나는 꾀꼬리 부부의 정을 애틋하게 노래한 이 시가에는 웃지 못할 사연이 담겨 있기도 합니다.
“펄펄 나는 저 꾀꼬리는
암수가 서로 노니는데
외로울 사 이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꼬”
-유리명왕(瑠璃明王), 삼국사기,
이병기·백철, 《국문학전사》에서 인용-
유리왕은 왕후 송씨와 사별 후 화희와 치희라는 두 여인을 후처로 맞이하게 됩니다, 왕이 부재한 어느 날 두 여인 사이에서 큰 다툼이 일어나 치희가 돌연 고향으로 떠나버리는데요. 유리왕은 그를 찾아가 자신에게 돌아올 것을 청하나, 끝내 이를 거절당합니다. 결국 홀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왕이 정다운 꾀꼬리 한 쌍을 보고 부른 노래로 알려져 있습니다.
새를 소재로 한 문학과 그림 유물은 고구려, 신라, 백제시대의 것뿐만 아니라 이후 고려, 조선시대의 것 또한 다수 발견된 바 있습니다. 이는 그만큼 새라는 동물이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친숙하고 의미 있는 동물이었음을 의미하는데요. 중국, 일본 등에서도 ‘새’를 주제로 한 이 시기 유물들이 출토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새에 소망을 빗대어 표현하는 오랜 전통은 동아시아 공통의 문화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새들의 모습을 사계절에 은유한 ‘사계화조(四季花鳥)’ 유형의 그림이 유행했습니다. 봄의 제비, 여름의 물총새, 가을의 백로, 겨울의 기러기는 계절을 대표하는 철새로서 널리 그려졌다고 합니다.
새를 그려 벽에 걸음으로써 집안 대소사에 복이 들기를 기원하는 것 또한 오랜 전통입니다. 가장 친숙한 텃새인 까치 그림은 기쁜 소식을 전해준다는 의미에서 ‘희작(喜鵲)’이라 불렸다고 합니다. 백로와 연밥을 뜻하는 ‘일로연과(一鷺蓮果)’는 ‘일로연과(一路連科)’와 발음이 같아 조선시대 과거 시험인 소과(小科)와 대과(大科)에 연이어 급제하라는 기원의 의미를 담아 그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