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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것에 기대어 지금을 보다
부산 불교 의사회
2015.12.25
똑바로 보고
올곧게 살겠다는 생각도 다 有爲다
세상은 먼지 투성이,
진흙탕처럼 답답한 이 마음도 다 有爲다
유위의 파도가 나비처럼 날아들어
마음의 문을 두드릴 때
문득 정문을 찌르는 일침같은 해방감
그 위무의 길을 좇아 여행을 떠난다
부석사 무량수전에서의 일몰
길을 걸었다 신갈나무 사이로 끊어질듯 이어진 길이 보였고 사람들은 물잠자리처럼 꾹꾹 발자국을 남기며 지나갔다.
이제 완연히 겨울로 무장한 풍경은 오래 전에 본 '파리 텍사스'의 기억을 되살려 주었고 숙명처럼 박제화된 절집 위에는 잉여의 겨울 햇살이 주저리 세상사를 참견하였다
나뭇가지 끝에는 봄을 갈망하는 울부짖음이 걸려있었고 메마른 대지 위에는 들짐승처럼 그림자가 서성였다.
참 많은 시간이 흘렀다. 시간이 아직 어깨 저너머에 머물 무렵 나는 이번에 우리가 지나가는 코스와 거의 같은 길을 따라 여행한 적이 있다. 의성과 안동을 지나 소수 서원을 거쳐 부석사까지 가는 코스였다. 의성과 안동을 찾은 것은 그 곳에 산재한 전탑을 비교해 보기 위함이었고 이왕 나선 김에 우리나라 最古를 자랑하는 봉정사 극락전 구경도 함께했다.
기억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지식과 새로움을 주었던 여행이었다. 하지만 지식이 켜처럼 쌓인 마음 구석에는 새로운 세계를 설명할 아무런 감성의 뒷받침이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옛것을 보되 단지 확인하는데 지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역사의 고증학적 해설은 비역사학도인 나에게는 지식 이상의 의미가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탑파의 역사 중에서도 유독 독특한 전탑의 존재에 대해서는 유달리 관심이 갔다. 마치 인류사에 있어서 네안데르탈인처럼 불현듯 나타나 유행을 이루다 홀연히 이 땅에서 사라져버린 이 "니껴" 문화의 사생아. 전탑!
봉정사 대웅전
대웅전 툇마루에는 따스한 겨울 햇살이 넘쳤다.
그 햇살 속에는 너무 일찍 피어난 봄꽃과 같은 외면할 수 없는 고독이 서려있었다.
무수히 반복되어 빠져나올 수 조차없는 시간이란 함정. 그 탯줄과 같은 필연성에서 마르께스의 소설 '백년간의 고독'이 떠올랐다.
가늠 할 수 업는 시간의 깊이, 납덩이처럼 슬퍼보이는 처마, 하늘이 부여한 쇠락의 속성을 외면하기라도 하듯 의연하게 살아남은 이 격조의 건축 앞에는 어떤 레토릭이 어울렸을까.
발사된 탄환처럼 인생의 결말은 어짜피 정해져 있다. 그래서 시간은 늘 고독하다. 죽음은 오직 남겨진 자를 위한 기념일 하지만 그 조차도 휘발한다.
시간을 가두어버린 저 무미의 건축처럼 나도 멈춰버린 시간의 꿈을 꾸고싶다.
사람들은 생사에대해 다양한 방법으로 골몰하지만 대개의 경우 생사의 문제란 결국 인간이 따질 일이 아니라는 결론에 봉착하게 된다.
살아있는 자의 과제는 생과 사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의 간격을 어떻게 채워가느냐이다. 하지만 이 조차 한 순간에 통찰될 대상도 아니요 一期로 끝내버릴 문제도 아니다.
그래서인지 오래 시간이 지났어도 나는 여전히 이 곳이 그리워지고 이미 묵은 채 남겨진 온갖 세월의 잡동사니들 앞에서 옛것에대한 당연한 경외감으로 마음을 더 가다듬거나 의탁하게된다
봉정사 극락전
주심포의 단정한 건물이다 아미타불을 모신 법당이라기 보다는 수장고의 이미지가 더 든다 모름지기 건축물은 그 시대상을 반영한다 고려시대 석탑이 그러하듯 고려 중기 건물로 추정되는 봉정사 극락전에서도 한 시대를 대표하는 역동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拙할 지언정 巧가 아쉬운 이 나라 최고의 목조건물이다.
쉴새없이 변모하는것이 세태지만 쉽게 바꿀 수 없는 대상이 있다는것은 다행한 일이다.
소박한것이 곧 아름다운것은 아니지만 봉정사와 같은 우리 목조 건축의 시원을 보는것은 아름다움에 대한 통찰이 어떻게 변모해 왔는지를 알아보는 척도가 된다.
列柱에 드리운 조용한 빛자락 한산한 새소리 젖은 땅을 밟고 지나는 점성의 발자국 절집의 공간을 메우는 늙은 나무들 이 들뜬듯 차분한 분위기를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참 어렵다. 하지만 느낌은 늘 새롭다. 이런 일기일회의 느낌과 감성은 설명으로 전해지는것이 아니라 그 시간, 그 장소라야만 온전히 전해질 수 있다 내가 이 기분을 비록 기억한다고 하여도 이미 지난 날의 것일 뿐. 이미 떠나간 연인일 따름이다.
井心
우물의 깊이를 헤아리기 힘든것처럼 사람의 마음 또한 마찬가지다.
땅에 파묻어 둔 김장독을 바라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몇년을 함께 살아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모호한것은 정작 당사자도 마찬가지일것이다. 내가 나를 모를진데 하물며 타인이야...
그래서 사람을 판단하기위해서는 섣불리 할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여러면모를 잘 관찰한 후에 신중히 판단하라고 한다.
나는 늘 옳고 착하고 규범적이라 생각하지만 왜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생기는걸까?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끊임없이 궁금해하는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섣불리 타인을 규정하는 바람에 오히려 그 피해가 자신에게 돌아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라즈니쉬는 말한다 누구나 다 자기만의 내면 세계가 있다고. 그러므로 타인을 여러 각도에서 보아야한다고.
타인을 여러 측면에서 바라보는것은 늘 바람직한 일이다. 어떤 사람을 특정한 타입으로 규정하고 계속 그런 각도에서 바라보게된다면 그것은 상대에대한 일종의 재앙이다 그 사람에대한 확고한 신념이 생길수록 내 관점이 잘못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함께 가져야한다.
사람은 어짜피 무상의 존재이다 주어진 여건에 따라 상대는 늘 달라질 수도 있고 나의 관점 또한 그럴것이다.
우리가 상대에게 지녀야할 생각은 그 사람이 선한지 ,사귈만 한 존재인지가 아니라 사람의 다양한 측면, 즉 무상에대한 인식이다.
眞心妙用 隨感隨現
진심의 묘한 작용은 수감수현 즉 느끼는 대로 나타난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이란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그 영화의 가치를 인정받았다면 다 진심묘용의 공덕이다.
차를 마시거나 밥 한술 뜨는 일이나 봉정사 뒤란을 하릴없이 소요하는 일도 다 진심이 遍一切處인 까닭이다.
송암당 누마루 기둥에 앉아있는 두분, 우화루 현판에서 금방이라도 꽃비가 내릴것 같습니다. 우화루는 알다시피 석가모니께서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실 때 꽃비가 내렸다는데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신심 가득하신 두분의 모습이 법화경의 꽃비를 맞으신듯 훤합니다.
눈부신 금빛 햇살이 산사에 비스듬히 내려 앉는다. 상록의 잎들이 빛을 받아 반짝인다. 사진을 찍거나 주위를 둘러보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마치 입시를 마친 수험생의 해방감을 느낀다.
사람들은 풀어 놓은 물고기처럼 재빨리 그림자를 거두며 사라졌다. 원래 제자리였던 나무 그림자들은 띠무늬를 만들며 존재를 알린다. 구름은 물수제비처럼 하늘에서 멀어지고 검은 기와는 양지에서 졸고있는 촌로의 머리만큼 무거웠다.
불현듯 풍경이 흔들리며 소리를 만들자 하늘은 놀라 깨어난 아기처럼 몇번 눈을 끔뻑이다 이내 고요를 되돌려 놓는다.
적요의 풍경 한켠에 모노크롬의 소박한 창호가 보였고 단색의 문종이 위에는 특징없는 정자살이 걸렸다. 황량하고 무미했지만 모든 옛것이 그러하듯 아주 사멸된 표현은 아니었다. 늙은 나무에 핀 꽃이나 열매처럼 반전이 감추어진 아름다움이었다. 봉정사 절집이 다 그러했다 아니 그렇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
이런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만약 내가 다시 그 곳으로 돌아 갈 수 없게된다면 그곳이 그리워 꿈에서도 그리워하게되고 더 나아가 그 꿈을 꿀 수조차 없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게되는 곳.
그곳이 어디던간에 가슴 한켠에 정말 그런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봉정사가 그렇다는것은 아니지만 그 곳이 절집이어도 상관없다. 점봉산 꼭대기에서 대청봉을 바라 볼 때도 그런 생각이 든적이 있다.
봄은 화병과 같다. 매화 一支가 꽂힌. 아니면 사랑에 미안할 일이다.
여름은 석등이다 푸른 이끼를 쓴 채 법당을 지키는. 미련한 사내.
가을은 청동이다 청록의 여울음이 이별처럼 멀어진다.
그리고 겨울은 돌탑이다. 붙이지 못한 편지다.
몇번을 망설이다 붙이지 못한 편지처럼 쓸쓸한 탑
막스 에른스트의 갇혀버린 출구를 떠올리는 탑
시간이 빠져나간 비상구
탑 자체만으로도 홀연히 사라져버린 네안데르탈인 처럼 모호하지만 왜 이런 탑들이 안동 지방에만 산재해 있는 지는 더욱 모호하다 의상의 화엄종과의 관계를 주장하지만. 부석사나 봉정사의 탑은 오히려 석탑이다.
철길과 가림막에 막혀 답답함을 금할 수 없지만 설사 차단벽이 없다하더라도 이 곳이 절터였을까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주위가 협소하다.
유학의 본고장인 안동에서 불탑이 살아남았다는것도 신기하려니와 아침에 눈을 뜬 이 곳 양반들은 이 생뚱맞은 탑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좌우간 전탑은 사라졌고 석탑은 살아남았다 우리나라 장인 들에게는 석물을 다루기가 벽돌 만들기보다는 더 쉬웠던 모양이다 벽돌을 만들기 위해서는 가마도 있어야하고 또 좋은 흙도 있어야한다. 하지만 돌은 어디에나 있다 전탑은 적자 생존에서 실패한거다.
청량산 연화봉
또 새로운 길
인류가 달에 가거나 혹은 화성에 진출하는 일이나 내가 하루를 살아내는것은 결국 같은 일이다. 둘다 끝없이 진화하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 실현이란 점에서 의의가 같다.
새로은 세상을 향한 비상. 새로운 내가 되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태어나 첫 돌잡이를 할 무렵부터 소위 희망의 대상,성공의 대상이 정해진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성공한 것이되고, 어떤 희망이 쓸모있는 희망인가를 정해준다. 이런 사회적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그냥 낙오자가 되는것이다.
인생의 쇠락에대해 두려워하거나 괴로워 할 필요는 없다. 삶에는 고목의 뿌리나 가지처럼 무수한 길이있다. 너무 많은 길이 있어 오히려 혼란스러울 뿐, 인간은 언제나 주어진 기회에 최선을 다 할 뿐이다. 실패의 선택도,성공의 선택도 다 최선의 결과이다. 그러기에 우리 앞에 놓여진 길은 늘 새 길이다.
다 그사람의 업보요 복이다
기도를 하다말고 나를 향해 되묻는다. 잘 살고 있냐고 고개를 끄덕인다. 잘 살고 있다고.
하지만 솔직히 잘 살고 있음에대한 검증을 스스로 해 본 적은 없다. 총체적인 안정감,쫓기지 않는 느슨한 기분, 이 정도라면 잘 살고 있다 여겨도 무방하지 않을까.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 자신의 삶이 지니는 意義를 찾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의의라는것이 실제 있기는 한것일까?
의의 없음. 이 無意義에대한 장구한 자각의 여행이야말로 삶의 본질이 아닐까? 결국 의의라 말해지는것도 어찌보면 욕망이요 집착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것은 대상으로서의 욕망이 아니라 오히려 욕망의 소진일 것이다 스스로가 고갈될 수 있음을 두려워하는것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생사를 초월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욕망을 소멸시키는 일 즉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욕망이 배재된 삶,열망이 사라진 삶은 너무 심심하지 않을까? 삶의 무대에서 열정의 배우로 살아가자면 결국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에 갇혀버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욕망이 사라진 배우라면 어떤가. 마치 고요한 잔디밭에 버려진 담배 꽁초처럼 늘 외롭고 시들할것이다. 내가 지향하는 삶은 어떤 것일까? 아니 어느 편을 선택해야만 할까?
꼭두각시로 태어난 인생은 꼭두각시로 살다가 꼭두각시로 죽을 수 밖에 없다는 피노키오에 나오는 귀뚜라미의 말이 마음에 걸린다 다 그 사람의 업보요 복이다.
유리보전
유리보전은 약사여래를 모신 전각이다 편액은 공민왕의 작품으로 전해진다 홍건적의 난을 피해 노곡 공주와 함께 안동으로 피난 왔을 때 씌여졌을것으로 여겨진다.
一期一會
바로 이 자리에 서서 나는 몇번이나 저 금탑봉을 바라봤던가 하지만 늘 새롭다. 모든 만남은 첫 만남같고 매 순간은 최초의 순간같다.
나와 대상 사이에서 일어나는 꽃향기와 같은 케미를 감지하며 혼자라면 없었을 이 기묘한 화학작용을 말없이 즐긴다.
소슬한 바람 어깨 너머 나를 감싸는 햇살. 나는 참나무에 공생하는 겨우살이처럼 마음이 든든해 진다. 오늘의 햇살은 어제와 다르고 오늘 내 몸을 파고드는 바람도 어제와는 다르다.
인적이 더문한 산사. 겨울을 만나 더 푸른 소나무 아래에서 나는 한가로이 벗들을 바라 보았다. 우리는 서로에 의지하여 무수한 산을 넘고 또 넘었지만 일생에 한번뿐인 오늘의 만남처럼 그들 또한 매 순간 같은 사람은 아니다. 우리의 만남은 늘 처음의 역을 지나며 그 기회는 딱 한번 뿐이다.
금탑봉과 오층석탑
우리에게 두가지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후회로 남을 가능성도 두가지란 어느 사진작가의 말처럼 사진은 늘 후회로 가득하다. 하지만 내게 더 좋은 카메라,더 많은 시간이 주어졌더라도 내가 선택한 패턴은 대체로 유사할것이다. 그런것을 경향이라고 한다. 그래서 나의 선택은 대체로 실망스러울 수 밖에 없다.
주어진 기회만큼 후회의 가능성 또한 커진다면 선택의 폭이 넓을 수록 후회의 가능성 또한 커질 수 밖에 없다 뒤집어 말하면 선택의 폭이 적을 수록 후회의 가능성은 더 적어진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과거로 돌아가 같은 상황,같은 조건에 놓이더라도 결국은 또 똑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내가 청춘의 시절로 되돌아 간다해도 결국 내가 도달할 곳은 이자리일것이다.
아닐까? 나는 끝없이 아닐거라 고개를 저었지만 결국 쓴 웃음만 짓고 만다. 장농에 걸린 내 옷 색깔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 의지와 능력에따라 결정하고, 운명을 선택한다는것은 매우 낙천적인 생각이다. 대부분의 경우 제한된 조건이나 환경의 테두리 내에서 제한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아무리 어리석은 선택일지라도 그 때는 그럴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을 반면교사로 삼아 다음에 더 옿은 선택을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잘못된 결정이란 없다 그 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不得貪勝
욕심을 부리면 이길 수 없다는 뜻이다 당나라 현종 시절 바둑고수 왕적신의 위기십결에 나오는 말이다.
주말이면 나는 산을 찾아 나서지만 사실 나는 산을 좋아하기 보다는 산길을 걷는것을 더 좋아한다. 산꼭대기에 오르는 일이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이 유독 노벨상 복이 없는 이유 중 하나도 학자들이 오직 주어진 목표만을 파고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른 나라의 경우는 어떤 학문을 파고들다 우연히 발견되는 새로운 사실에 더 집중하기 때문에 연구 결과가 더 신선해 질 수 밖에 없다. 결국 노벨상을 못받는것은 목표지상주의 탓이다.
나는 산길을 걸으며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생각, 즐거운 사색의 시간을 좋아한다. 그 자체가 즐거움이다. 세상의 통속적 목표에 나조차 편승해 극성을 부릴 필요가 무엇인가? 삶이 삶 자체에 의미가 있듯 나에겐 걸음 자체가 행복이다. 산행이 주는 행복은 산꼭대기나 날머리에 있는것이 아니라 오로지 길 위에 놓여있다. 산길 위에는 이기고 짐이 없다. 내가 걷는 모든 길의 중심에 내가 서 있을 뿐이다.
나이를 먹는다는것은 내 몸에 詩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더 고요하고 더 관조적이라는것, 욕망의 점성이 흘러내리는 침처럼 묽어졌다는 뜻이요, 더 이상 뜨거운 포옹이 필요없어졌다는 뜻이다.
특별한 이유없이 다투기도 하고 또 사랑이 찾아들기도 한다. 사랑을 시작하고부터 그들은 특별한 세상을 만난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의 특별한 사람임을 깨닫게된다.
사랑을 하기전에 그렇게도 특징없던 사람이 사랑을 하고부터는 머리 모양 하나, 몸매, 사소한 습관조차도 다 특별해진다. 그래서 사랑을 묘약이라 부른다
길을 사랑하다보면 길 위에 놓여진 모든 것이 새롭고 이채롭다.
제법무아
유혹이 없는 산중에서 행복과 마음의 평화를 누리는것은 좀 쉬워보인다. 욕망의 대상이 적으면 욕망에 대한 갈등 또한 적어지기 마련.
인류의 조상이 숲을 벗어나 넓은 벌판으로 나왔을 때처럼 숲을 찾아간 스님들에게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으리라.
사자가 스텝을 자신의 세상으로 생각하듯 고래가 바다를 세계로 인식하듯 스님은 스님의 세계를 세상으로 인식한다. 거리에 주워입은 옷으로 마음이 편해지고 하루 한번 빌어먹은 음식으로 格의 고매함을 느낀다면 그렇게 살면 그만이다.
우리와 다른 생활 방식을 선택하였다고 하여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세상은 극단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극심한 절제를 통해 삶을 영위하는 방식이나 조폭이 규율에 의해 조직을 이끄는 방식은 현실면에서 하등 차이가 없다 제법은 무아다.
사람의 지옥은 시의 낙원이라는 말이 있다 시를 쓰는 사람은 필히 더럽고 불편한 삶의 자리에 머물러야한다는 뜻이다.
띠끌 먼지 없는 산언덕에서 연꽃을 찾을 수는 없듯 詩라는 연꽃은 온갖 부패된 퇴적물 속에서 자라난다.
인생의 끝없는 절벽을 따라 걷다보면 오늘 아침 눈뜬 억지잠조차 다 詩가 된다.
苦와 樂
苦는 樂의 반대말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고를 여의고 락을 얻으려한다. 고를 벗어나 락의 길로 가는것이 불교라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樂 또한 苦에 지나지 않는데도 말이다.
락은 집착이요,즐거움이 지나가면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고는 락의 밭이며 락은 고의 씨앗이다. 고가 즉 락이다. 고의 반대는 적정열반이라고 한다. 고도 락도 그 대척점에는 열반이 있다.
태백산 부석사
최순우의 그 유명한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의 첫구절은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으로 시작한다.
나도 그 처연한 무량수전의 해설에 빠져 그 먼길을 마다하고 영주로 달려갔었지만 무량수전의 고졸하고 단아한 아름다움이라던지 대지를 포란하는듯한 아늑함, 소백산을 바라보는 으늑한 눈높이, 언제 보아도 과하지 않은 스케일은 부처의 숭엄함을 드러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왜 소백산 기슭이라고 서두를 시작해 산꾼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을까?
부석사의 진산인 봉황산은 소백산과 태백산을 잇는 백두대간 산줄기에서 분지한다. 안양루의 편액에도 봉황산 부석사라고 되어있다. 하지만 주산이 어느 산인지에대해서는 다소 논란이 일듯한데 일주문에 씌여진 바로는 태백산 부석사로 태백산이 주산임을 명시했다. 즉 주소지가 태백산이라는 거다.
백두산에 더 가까운 쪽을 주산으로 정하는 원칙에 따라 부석사의 진산인 봉황산은 소백산이 아니라 태백산을 주산으로 삼아야 마땅하다. 비록 부석사의 아름다움은 소백산의 그윽한 조망에 있지만 소백산 기슭이라는 표현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未完
부석사의 공간 배치는 다소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약간 벗어난 것으로부터 우리는 더 많이 배우고 성숙한다. 부석사가 주는 모호성을 좇아가다 떠오른 말이다. 부석사는 더 연구되어야 하지만 형식에 얽메이지 않는 이 파격이야말로 더 불교적이지 않을까.
무량수전에 놓인 소조 불상이 그렇고 그 위치가 그렇다. 또한 탑의 위치도 이상하다. 무량수전이 법당인지 강당인지는 학자들이 밝혀 줄 일이다
부석사는 누가 뭐래도 부석사다 어린차 이파리도 우러나면 원숙해 지는 법인데 하물며 이 나라 최고의 사찰임에 어떠하랴. 부석사의 아름다움에대한 이견은 없지만 내가 경계하는 것은 절집의 아름다움을 정하는 순위다.
사계가 뚜렷하고 자연합일, 풍수사상에 근거해 건조된 우리의 고사찰들은 순위를 따질 수 없이 다 저마다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순위는 의미가 없다.
신이 불러주는 받아쓰기를 하듯 나는 겨울 찻빛 산사에 갇히어 시간에 허물어진 글을 받으며 등위가 망쳐버린 이 나라의 감상법을 지워내기에 바빴다.
주심포 사이의 무량수전 현판은 공민왕의 친필을 판각한것이다.
배흘림 기둥
배흘림 기둥 양식이 비단 부석사 기둥에만 적용된 유니크한 양식은 아니다 하지만 부석사 하면 무량수전, 무량수전 하면 배흘림 기둥이 먼저 뜨오른다 배흘림 기둥은 기둥의 중앙부가 왜소해 보이는 착시를 막기 위해 고안된 건축 양식이다.
기둥 위에 하나의 공포가 올려진 주심포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선묘낭자의 전설이 깃던 부석
연인들 머리 위에 보이는 저 우유병 젖꼭지 모양의 구멍이 부처님을 닮았다하여 해설사들이 그리 유난을 떤다. 이런 해석은 문화재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품격을 떨어뜨리는 해설이다.
저녁 햇살에 비낀 산그림자는 그대로 그리움이다. 산은 말이 없고 고요를 깨우는 바람은 서늘했다.
한 때 그리움의 대상이 었던 저 능선은 이제 자부심의 대상이 되었다.
나는 백두대간의 말미를 저 소백산 구간에서 장식하였다. 고치령에서 죽령에 이르는 눈길이었다 국망봉 무렵에서 고장난 무릎은 비로봉에 이르러 더 이상 걷지 못할 지경으로 악화 되었다. 한 쪽 다리를 끌며 죽령 고개로 넘어오는 내 자신이 참 대견했다. 몸으로 한계를 극복한 생애 첫경험이었다.
해묵은 기억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산이 산의 파도를 넘어와 그날을 전했다. 고통은 너무 자주 되새길 일이 아니었다.
이 탑은 왜 여기에 서 있을까.
우선 부석사에 탑이 없었다는 것은 설이라기 보다는 기록에 근거한 것입니다. 고려 문종 8년(1054년)에 세워진 부석사 원융국사비문에 의하면
부석사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本堂인 無量壽殿에는 오직 아미타불의 불상만을 봉안하고 左右補處도 없으며 또한 殿前에 影塔도 없다. 제자가 그 이유를 물으니 義相스님이 대답하기를 "法師이신 지엄스님이 말씀하시기를, '一乘 阿彌陀佛은 열반에 들지 아니하고 十方淨土로서 體를 삼아 生滅相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셨다. 화엄경 入法界品에 이르기를, '아미타부처님과 관세음보살로부터 灌頂과 授記를 받은 이가 법계에 충만하여 그들이 모두 補處와 補闕이 되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들지 않으신 까닭에 闕時가 없으므로 좌우보처상을 모시지 않았으며 影塔을 세우지 않은 것은 華嚴一乘의 깊은 宗趣를 나타낸 것이다.'라고
하였다.』(교감 역주 역대고승비문<고려편2>/이지관역/292쪽)
선비화
골담초라는 콩나무과의 식물이다 콩나무과의 식물은 뿌리혹을 지녀 열악한 환경에서도 잘 살아남는다 아카시 나무가 그렇다. 사람들의 손길을 차단시킨 유리막 속에서 물 없이도 잘 살아가는것도 그 때문이다. 의상대사 지팡이에서 자라난 나무라고 한다.
진심의 변연
일생을 거쳐 딱 한번의 만남 언제 다시 소백산 일몰을 보게되랴. 설사 볼 기회가 주어진다 한들 다시 못 올 오늘이기에 매사 일기일회의 마음으로 대할 일이다.
서투런 솜씨로 일출을 담느라 쩔쩔 맬 동안 해는 이미 서산으로 기울고 나는 몇시간을 기다렸지만 타지 못한 버스를 아쉬워하는 마음으로 망연히 해질녘을 바라보았다.
세상이 붉은 피복을 두른듯 따뜻했다. 現今의 가치를 무엇으로 따질것인가. 지금 이 순간 아니 생의 매 순간은 그 자체로 경의다.
미래의 복락을 위해 헌신할것이 아니라 현재에 충실하자는 말이 꼭 말초적이어야한다는 뜻은 아니다. 현재에 깨어있거나 늘 깬듯 감각의 날을 세워보자는 뜻이다.
눈 앞의 인연을 감지하고 그 의미를 되새길 때 眞心의 맑은 거울을 보게된다. 그것은 세상을 정화시키는 힘이요, 본성으로 다가가는 길이다. 진심의 변연에서 끊없이 생멸하는 인연의 소재를 깨닫는 일이다. 해가 마음으로부터 지고 있었다.
深入緣起 斷諸邪見 有無二邊 無復餘習
지는 해 사이로 유마경의 일구가 오롯이 뜨올랐다.
마르첼로 오보에 협주곡 D단조 Alessandro Marcello 1684 - 1750
Heinz Holliger, Oboe & I Musici
I. Andante e spicc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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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렇습니다.생과 사의 문제는 인간이 많이 따지는 문제지만 궁극적으로 따질수도 없고 따져봤자 소용없는 문제입니다.
원장님 감사합니다. 이러한 하루도 원장님의 심신을 통하면 훌륭한 인생이 된다는 것을요.^^
poll 선생님. 감사합니다
말없이 보여주시고 들려 주신 법문
항상 마음 속에 여운을 남기며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가는 곳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보다 poll 선생님이 어떤 사진을 올리고 어떤 글을 올릴까 하는
기대와 설레임이 더 많은 나쁜(?) 버릇이 생겨버린 것 같기도 하구요 ㅎㅎ
바쁘신 가운데서도 선생님의 생각과 느낌을 나누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꼭 같은 곳을 보았지만 사진의 구도가 아주 달라 크게 배웁니다.
한편의 장대한 서사시 같은 느낌이 듭니다.
글이 너무 길어 서너 편 정도로 나누어주는 게 좋겠습니다. 조현두.
소중한 글 사진 감사 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매번 선생님의 작품을 볼 때마다 순례를 다시 한 번 다녀 오는 느낌입니다.
물론 어디서도 접할 수 없는 선생님의 해설과 함께......
다음 번 여행도 기대가 됩니다.^^
너무 멋진 작품 공짜로 즐겨서 죄송합니다....태양처럼 한량없는 시상에 감탄합니다^^^
사진 글 음악 너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