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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그 에코토피아의 길 스크랩 해상왕 장보고 중국유적 답사기 (5) - 다섯째날
남궁효 추천 0 조회 1,217 12.09.01 17:29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다섯째날(2012.8.5)

 

 

새벽에 눈이 떠서 혼자 일어나 바닷가를 거닐었다. 중국인들이 몇몇씩 모여서 뭔가를 잡고 있다. 여기저기 알지 못할 해초류를 부지런히 끌어올린다. 작은 낚시망으로 아주 작은 물고기를 건져 올리는 사람도 있다. 바닷가 끝에는 이층 전망대(이름을 잊었다)가 놓여있어 올라가보니 바다 건너 적산 쪽을 볼 수 있었다. 폭풍우와 비안개가 퍼지면 과연 적산대명신이 나타나 줄까? ^;^

 

아침 식사 때, 바닷가에서 건져 올린 해초류가 있었다. ㅋㅋ 아하, 그래서 주민들이 열심히 끌어올렸나 보다. 호텔 조식을 맛있게 먹고 석도진(石島鎭) 적산 법화원으로 갔다. 석도진은 산둥반도 연안을 따라 묘도군도를 거쳐 북방항로를 통해 한반도로 갈 수 있고, 바로 황해를 건너 한반도 서남 해안에 이른 뒤 일본으로 건너가는 횡단항로를 이용할 수도 있다. 장보고의 대당매물사선박은 이곳을 오갔고, 일본행 교관선(交關船)도 이곳에서 출발했다. 구법을 위해 당나라에 들어왔던 엔닌도 849년 적산포에서 귀국했고, 신무왕의 즉위를 축하하는 사신으로 파견된 청주병마사 오자진도 법화원을 방문하고 신라로 출발했다.

 

 

이무렵 적산포는 장보고의 통제를 받아 신라, , 일본을 연결하는 국제무역항이었다. 중국 정부는 이곳을 ‘AAAA'급 관광명승지로 개발하여 적산풍경명승구로 지정해 놓았다. 명승구 안에 적산 법화원, 장보고기념관, 장보고기념탑, 적산명신상, 법화탑, 영성민속관, 천문담공원 등이 있다.

 

 

 

 

 

 

우리는 장보고기념관 쪽으로 올라갔다. 장보고기념탑 계단에 앉아 교수님들의 강연을 들었다. 날씨는 아침부터 푹푹 찌는 날인데 그나마 회화나무 꽃잎이 후두둑 떨어지는 그늘밑이라서 견딜만 했다. 마지막에 이부식 해양재단 이사장이 등장하더니 이야기 끝에 내 이름을 호명하면서 어떻게 그런 패배주의적인 말을 하냐고 공개적으로 성토를 한다. 정말 어안이 벙해지는 순간이었다. 날도 더운데 수많은 선생님들을 앞에 놓고 언쟁을 벌일 수도 없어서 그냥 웃고 말았다. 악수를 하면서 지나가는 말이지만 들으라는듯이, “어떻게 입에서 나오는대로 말을 할 수가 있지하는데, “이거는 아니라는생각이 밀려왔다. 주변에선 왜 참고 있느냐면서 나무라는 분도 계셨다.

 

둘째날 차안에서 SBS 힐링캠프에 나온 안철수 원장이 말한 자살률과 출산률을 통한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의 불안을 내가 이야기했고, 나도 안원장도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는 뜻이었는데, 이부식 이사장은 학생들에게 패배주의를 가르칠까 우려하면서 성질을 냈다. 순간적으로 내가 그토록 잘못을 했던가 기억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해양재단 이사장의 위치에서 거론할 말도 성질낼 일도 아니었다. 가이드가 심심풀이로 자기 소개를 길게 하라고 해서 하다보니 나온 말일뿐인데 이사장은 너무 예민하게 발끈한다.

 

강신주 박사의 철학고전강의 4강은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진보와 보수를 언어철학자답게 구분하였다. ‘문맥을 아는 사람은 진보적이고, 문맥을 모르는 사람은 보수적이라고 했다. 세계적 언어철학자인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에는 절대적 의미가 없으며 그때 그때의 문맥에 따라 달라지는데, 보수주의자들은 언어의 절대적 의미를 두고서 심의, 검열을 한다고 한다. 그 자리 다른 선생님들은 내 말의 의미를 다들 이해하신 것으로 안다만 아마도 이사장은 안철수라는 단어만 튀어나와도 불온한 것으로 보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

 

KBS와 소설가 최인호는 2년간 30km를 누비면서 최종적으로 장보고는 휴머니스트요, 선종불교의 후원자이며, 해양상업제국 무역왕이고, 우리 역사상 단 1인의 세계인임을 천명하였는데, 그것을 후원한다는 한국해양재단 이사장이 고작 단어 하나에 발끈하는 소심한 보수주의라면 정말로 장보고와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장보고가 누구인지, 장보고기념사업의 의미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나 있는가 묻고 싶다.

 

강연 후에 우리는 몇몇씩 함께 다니면서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법화원을 누볐다. 일요일이라선지 중국 관광객들도 참 많았다. 장보고기념탑은 ()세계한민족연합 최민자 회장 주도로 1994년 건립한 것으로 탑신의 높이는 15m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친필 휘호로 탑명을 새겨 놓았다. 탑에서 아래로 걸어 내려가니 장보고기념관이 있다. 2007년 개관한 장보고기념관은 중국 영성시와 산둥척산수산그룹이 건립했다. ()한국해양재단에서는 전시물 등을 지원했다고 한다.

 

 

 

 

 

기념관 앞에는 장보고 장군 동상이 서있다. 높이 8m, 무게 6ton의 거대한 청동 조형물이다. 월전 장우성 화백의 장보고 대사 영정을 모델로 제작했다. 그 앞에는 법화우의보정이라는 중국에서 절대적 권위의 상징인 정()을 설치해 놓았다.

 

기념관 안에는 다섯 개의 전시실이 있어서 장보고의 일대기를 따라가면서 살펴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장보고가 꿈을 좇아 당나라로 와서, 무령군에 입대해서 활약하고, 적산에 법화원을 세우고, 다시 신라로 가서 청해진 대사가 되고 신라 귀족들의 모함을 받아 암살되기까지 벽화와 조형물로 전시해 놓았다.

 

다음은 적산명신인데, 작은 산 위에 거대한 인물 좌상으로 건립해 놓아서 아주 멀리서도 보일 정도이다. 많은 중국인들이 찾아오는 것으로 보아 이 지역신이 된 것 같다. 엔닌과 엔친이 만난 적산명신은 당나라에서 일본으로 귀국하는 길에서 조난 끝에 위기를 탈출하게 해준 고마운 해신이었다. 최인호는 그것을 장보고로 해석하였고, 중국인들은 국적을 너머 위대한 영웅 숭배로 정착한 듯하다.

 

 

 

 

 

 

 

 

 

 

 

 

 

 

 

 

 

 

 

 

날이 너무나 푹푹 쪄서 우리는 그늘에 쉬어 가면서 법화원으로 이동하였다. 적산명신궁에서 법화원까지는 15분까량 떨어져 있고 그 사이에 영성시민속박물관도 있다. 법화원은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한 828(흥덕왕 3) 이후에 설비된 것으로 추정한다. 연간 5백 섬을 수확하는 장전(莊田)을 가지고 있었고, 200여명이 수용되는 큰 강당, 승려 27, 많은 객방, 장경각, 종루 등의 부속 건물이 있었다. 신라말로 진행된 법화경강경에는 200~250명의 신자가 모였다고 한다. 그러나 엔닌이 845년 적산법화원에 왔을 때는 844년 가을부터 시작된 당 무종의 사찰철폐령으로 훼손된 상태였다고 전한다.

 

우리는 대웅보전과 그 곁에 서있는 청해진대사 장보고공적비도 살펴보았다. 그 앞뜰 두 그루의 나무에는 재복을 기원하는 붉은 천들이 수없이 매여져 있다. 대웅전 뒤로 삼불전과 분수대 위로 좌정하고 계시는 정말 거대한 청동관음보살상까지 찬찬히 보고 내려 왔다. 뜨거운 태양 아래 관광객은 우리들 뿐이었다.

 

 

 

 

 

 

 

 

 

 

 

 

 

 

 

 

 

 

 

 

 

 

어찌나 덥던지 모든 것이 증발하여 멈춰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불볕 더위 속 한낮 주차장에는 우리 일행뿐이었다.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버스 안으로 들어가니 좀 살 것 같다. 엊저녁에 찾았던 그 식당으로 달려가서 중국에서의 마지막 점심 식사를 했다. 다들 2000km의 장거리 일정을 무사히 마치게 되어서 안도하고 즐거워하는 표정이었다. 식사 후에 기념 촬영을 마친 뒤에 석도항으로 이동하여 화동페리호에 승선하였다. 다시 시계를 돌려서 1시간 앞으로 보냈다. 중국과의 시차는 1시간이었다. 여전히 배 안은 시끄럽고 지저분했다. 시계가 닷새 전으로 되돌아가 있는 듯하다.

 

저녁 식사 후에 우리 방에서 칭다오맥주 한 잔 하려는데, 옆방의 백 선생님이 노래방으로 초대해주었다. 나와 제주의 고 선생님은 같이 올라가 흥겨운 노래와 춤으로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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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09.03 01:47

    첫댓글 이부식 해양재단 이사장이라는 사람 좀 웃기는 사람이군요. 그래서 이명박 정권에서 재단 이사장이 되었나? 어찌 저렇게 쪼잔한 사람이 이사장이 되어서 샘들의 말 한 마디에 그렇코롬 많은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줄 수가 있나요? 남궁샘 그걸 그냥 어찌 참고 넘기셨나요? 한 마디 들이 받으셔야죠.

  • 작성자 12.09.03 13:24

    ㅎㅎ 너무나 덥고, 정신도 늘어지는데다 사람들도 많은데... 되도록 그 분을 이해하려고 하고 싸우지 않으려고 했지요. 그냥 꾹꾹 참았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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