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역사다큐멘터리의 자존심, <역사스페셜>이 돌아왔다 우리 역사에 대한 치밀한 고증과 설득력 있는 해석의 정수, 역사스페셜. 다시 시작하는 그 첫 화두는 신화 속에 숨겨진 역사의 코드다.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
먼 옛날, 동해 바닷가에 살던 연오랑 세오녀 부부가 바위를 타고 바다 건너 일본으로 갔다. 그 뒤 해와 달이 사라졌고, 세오녀가 짠 비단을 가져와 제사를 지냈더니 해와 달이 돌아왔다는 이 이야기는 누구나 어릴 적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연오랑과 세오녀는 단지 신화 속의 인물일까? 일본으로 건너가 왕과 왕비가 되었다면, 과연 그들은 누구였을까? 연오랑 세오녀 신화에 담긴 역사적 사실을 추적해본다.
오키섬에서 발견되는 한반도인의 흔적
연오랑과 세오녀는 일본 어디로 갔을까? 포항에서 출발할 경우 해류와 바람을 이용하면 자연스럽게 일본 시마네현 쪽에 닿게 된다. 시마네현은 독도 문제로 우리에게 익숙한 지명이다. 시마네 현 본토에서 배로 두 시간 거리에 위치한 오키섬은 다케시마, 즉 독도를 자신들의 관할이라 주장하는 섬이다. 그런데, 오키섬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책으로 전해지는 <이마지 유래기>에 보면, 최초로 섬에 도착한 사람은 가라의 사로국에서 온 목엽인 남녀라고 되어 있다. 사로국은 신라의 옛 이름. 그렇다면, 오키 섬 주민들의 조상은 연오랑과 세오녀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한반도에서 떠나간 일본의 신神, 스사노오
시마네 현 이즈모 시는 ‘신들의 고향’이라 불린다. 이즈모에 고대왕국을 건설했다는 신, 스사노오미코토. 일본서기에 따르면, 스사노오는 일본 천황가의 시조인 아마테라스의 동생으로 행실이 나빠 고천원에서 신라국 소시모리로 쫓겨났다. 그리고 곧 바다를 건너 현재 이즈모 지역에 왕국을 세운다. 일본의 신이 바다 건너 한반도에서 왔다는 것이다. 신라에서 건너온 신, 스사노오. 연오랑 세오녀가 일본의 신 스사노오가 된 것은 아닐까?
일본신들의 고향, 고천원(高天原)은 한반도?
스사노오가 신라국 소시모리로 쫓겨나기 전, 누나인 아마테라스와 살던 곳이 바로 고천원(高天原)이다. 고천원을 어디로 볼 것인가는 일본 학계에서도 수백 년 간 논란의 대상이었다. 일본 신들의 고향 고천원은 어디일까? 경남 거창 가조면에는 일본 왕가의 고향이 거창 가조라는 안내 표지판이 있다. 가조면에 우두산(牛頭山)이 있는데, 스사노오가 쫓겨난 소시모리가 곧 소머리 산, 우두산이라는 것이다. 선뜻 믿기 어려운 추정이지만, 실제로 일본 학계에서도 고천원을 한반도 남부로 추정하는 학자들이 있어왔다. 고대에 앞선 문명을 가진 한반도인이 바다를 건너와 문물과 기술을 전해준 과정을 신화로 표현했을 것이란 해석이다.
문명과 함께 바다를 건넌 사람들
1984년, 시마네현의 고진타니에서는 358개의 청동검이 발굴되었다. 지금까지 전 일본에서 발견된 청동검이 300개에 불과한데 한꺼번에 358개가 발굴되었으니 일본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야요이 시대, 이즈모 지역에 거대한 문명집단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증거였으며, 스사노오의 이즈모 왕국 신화가 역사로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이즈모에 고대 왕국을 건설한 문명집단은 누구였을까? 이즈모 시에는 ‘아라기’라는 성을 가진 주민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들의 조상이 한반도의 ‘아라가야’에서 건너왔고, 이 지방에 철기 문명을 들여왔기 때문에 ‘아라기’라는 성 씨를 쓰게 됐다고 한다. 일본의 고대 제철기술인 타다라 공법은 한반도 가야의 제철 기법과 매우 유사하다. 일본에 청동기와 철기 문명시대를 연 사람들, 그들은 곧 한반도인이었던 것이다. 한반도를 떠나 일본의 왕과 왕비가 되었다는 연오랑과 세오녀 신화, 그것은 바다를 건너 일본의 첫 문명을 일군 한반도인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 이즈모(出雲) 시가 속해 있는 시마네 현은 독도문제로 잘 알려진 일본 서부 지역입니다.
한국(한반도)과 일본의 고대 관계사가 반영되었다는 것입니다.
독도 문제로 갈등하고 있는 한일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