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의 담장
사람들로 하여금 기독교나 민주주의, 자본주의 같은 상상의 질서를 믿게 만드는 방법은 무어일까?
첫째, 그 질서가 상상의 산물이라는 것을 결코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
사회를 지탱하는 질서는 위대한 신이나 자연법에 의해 창조된 객관적 실재라고 늘 주장해야 한다.
사람이 평등하지 않은 것은 함무라비가 그렇다고 해서가 아니라 엔릴가 마르두크가 그렇게 명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평등한 것은 토마스 제퍼슨이 그렇게 말해서가 아니라 신이 그렇게 창조했기 때문이다.
자유시장이 최선의 경제체제인 것은 애덤 스미스가 그렇다고 말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불변의 자연법칙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들을 철저히 교육시켜야 한다.
그들이 태어나자마자 세상 만물에 스며들어 있는 상상의 질서 원리들을 끊임없이 주지시켜야 한다.
그 원리는 요정 이야기, 드마마, 회화, 노래, 예절, 정치 선전, 건축, 요리법, 패션에도 스며드어 잇다.
예를 들어, 요즘 사람들은 평등을 믿기 때문에
한때 노동계의 복장이었던 청바지를 부잣집 아이들도 유행 삼아 있는다.
중세 유럽 사람들은 계급 차이를 신봉했기 때문에 젊은 귀족이 농부의 작업복을 입는 경우는 없었다.
당시'경'을 뜻하는 'Sir' 이나 '마님'을 뜻하는 'Madam'이란 명칭은 귀족에게만 국한된 특권이었다.
종종 피를 대가로 흘리고야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공손한 편지는 상대의 신분과 관계없이 '친애하는 귀하게'의 뜻으로
'Dear Sir or Madam'으로 시작한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상상의 질서가 정확히 어떻게 삶이라는 직물 속에 짜 넣어졌는지를 설명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그러나 지면의 제약 때문에 우리는 겉핥기만으로 만족해야 하겠다.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조직화하는 질서가
자신들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만드는 주된 요인은 세가지이다.
1. 상사의 질서는 물질세계에 단단힌 뿌리내리고 있다.
상상의 질서는 우리 마음속에만 존재하지만, 우리 주변의 물질적인 실재세계 속에 짜 넣어질 수 있다.
심지어 돌로 구현될 수도 잇다
오늘날 대부분의 서구인은 개인주의를 신봉한다.
모든 인간은 개인이며, 그 가치는 다른 사람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다.
개개인의 내부에 존재하는 눈부신 빛이 우리 삶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한다고 믿는다.
오늘날 선생과 부모는 아이들에게 같은 반 학생들이 놀리면 무시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자신의 진정한 가치는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만이 아는 것이나까.
이런 신화는 상상 속에서 뛰쳐나와 현대 건축에서 돌과 회반죽으로 구현된다.
현대의 이상적인 집은 여러 개의 작은 방들로 나뉘어 있다.
어린이들도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사적인 공간을 가져 초대한의 자율권을 지니도록 한다.
이런 사적인 방에는 거의 대부분 문이 달려 있다.
또한 어린이가 문을 닫고 잠그는 것을 관행으로 받아들이는 집이 많다.
심지어 부모도 노크를 하고 허락을 얻기 전에는 방에 들어갈 수 없다.
방은 아이의 취향대로 꾸며진다.
벽에는 록스타의 포스터가 붙어 있고 바닥에는 더러운 양말이 놓여 있다.
이런 공간에서 자라는 사람은 스스로를 '하나의 개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진정한 가치는 밖에서가 아니라 내면에서 퍼져 나온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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