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서관 그림동화 289
<소시지 전쟁>
일란 브렌만·길례르미 카르스텐 지음, 김정희 옮김
205x275mm / 40쪽 / 4~7세 / 2025년 2월 3일 발행 / 값 14,000원
ISBN 978-89-11-11313-2 77870 / 원제 Cabo de guerra
#전쟁 #평화 #갈등 #대립 #전쟁의 원인 #집단현상 #사회현상 #소시지 #강아지 #고양이
브라질 최고 문학상 ‘자부치상’
어린이 부문, 일러스트레이션 부문 동시 수상!
‘볼로냐 일러스트레이터상’ 수상작
전쟁의 서막
양쪽에 강아지 두 마리가 있습니다. 바닥에는 소시지 한 개가 놓여 있습니다. 강아지들은 바닥에 놓인 물체를 궁금해하며 다가갔다가 소시지임을 확인하고 동시에 달려듭니다. 강아지의 목줄을 잡고 있던 남자와 여자도 소시지를 향해 끌려갑니다. 남자와 여자는 강아지들을 떼어 놓기 위해 목줄을 잡아당깁니다. 그 모습을 본 소녀와 농구선수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다가왔다가 각각 남자와 여자 뒤에 서서 함께 목줄을 잡아당깁니다. 둘씩 짝을 지어 줄을 당기는 모습이 신기해 보였을까요? 갈수록 많은 사람이 이 줄다리기에 참여합니다. 피에로와 마술사, 우주인과 잠수사, 늑대와 아기 돼지, 매머드와 공룡 등 사람이고 동물이고 할 거 없이 모두 있는 힘껏 줄을 당깁니다. 반대쪽에 있는 상대를 한껏 노려보면서요. 많은 사람의 참여에도 강아지들은 절대 소시지를 놓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뺏기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상대를 향해 전쟁을 선포합니다. 강아지들은 소시지가 정말 먹고 싶었나 봅니다. 그런데 강아지 뒤에서 줄을 잡아당기고 있는 이들도 과연 같은 마음이었을까요?
이 전쟁은 대체 왜 시작된 거야?
보통 결과에는 원인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이 전쟁의 원인은 강아지들을 싸우게 만든 근본적인 물체인 ‘소시지’라고 할 수 있겠죠. 그렇다면 등장인물들을 자세히 들여다봅시다. 처음 등장할 때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그들의 시선이 바닥에 놓여 있는 소시지가 아닌, 그저 자신의 앞 혹은 반대편에 있는 사람에 닿아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호기심 가득했던 눈이 페이지를 넘길수록 반대편에 있는 사람을 향한 적대감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뀌는 것도 확인할 수 있죠. 그리고 자기도 모르는 새 그저 가까운 곳에 있다는 이유로 힘을 합치고, 반대편에 있다는 이유로 싸우게 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아무도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인 소시지를 바라보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마 소시지가 거기 있는지도 몰랐을 겁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서로를 향해 노려보고 주먹을 쥐고 힘겨루기를 하며 전쟁을 하고 있는데, 정작 그 원인은 알지도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일촉즉발 상태의 소시지 전쟁은 고양이의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고양이에 시선을 뺏긴 강아지들은 전쟁 중이라는 사실을 점점 잊어버리다가 소시지를 놓고 고양이를 향해 달려가게 되죠. 덕분에 팽팽하게 줄을 잡고 있던 사람들은 버티고 있던 힘의 균형이 갑작스럽게 무너지며 멀리 튕겨 나갑니다. 사실 강아지들에게 이번 일은 평소에도 자주 있던 사소한 갈등이었을 수 있습니다.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싸우다가도 같이 놀고 싶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화해하고 함께 놀았던 것이죠. 전쟁의 시작이 됐던 강아지들은 사이가 다시 좋아지자 정작 전쟁에 참여한 명확한 이유도 없던 사람들만 머쓱해집니다. 그리고 묻죠. 이 전쟁이 대체 왜 시작됐는지요.
좋은 전쟁도, 나쁜 평화도 없다.
현재 우리는 크고 작은 전쟁과 갈등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밖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교전과 사상 소식이 연달아 들려오고, 안으로는 상반된 목소리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죠. 되짚어 보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전쟁과 갈등도 소시지 전쟁처럼 정말 사소한 이유로 시작되었을 수 있습니다. 같은 곳에서 나고 자라거나, 같은 문화를 향유한 주변 사람들에게 이끌리며 영문도 모른 채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이유로 시작이 되었든 전쟁의 결과는 너무나 참혹합니다. 납득할 만한 원인이 있었다고 해도 전쟁을 합리화하기는 어렵습니다. 전쟁은 수많은 사람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갈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잊지 못할 정신적 상처를 남기니까요.
이렇듯 전쟁이라고 하면 너무나도 심각하고 무서운 일처럼 느껴져 반복되는 우리의 일상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껴집니다. 하지만 일상에서의 크고 작은 갈등도 사소한 이유로 시작되는 전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작은 말투나 행동이 오해를 일으켜 친했던 사람과 관계가 멀어지거나, 나의 마음을 솔직하게 말할 타이밍을 놓쳐 상황이 더욱 심각해진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겁니다. 때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다투며 실수를 되돌리기 어려워할 때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어떤가요? 말 한마디에 화가 나거나, 물건을 빌려주지 않아 속이 상할 때 ‘너랑 안 놀아!’라며 절교를 선언하는 모습을 종종 본 적이 있죠?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화해하는 강아지들처럼 오늘은 이게 마음에 안 들어서 멀리하다가도 내일은 저게 좋아서 다시 가까워지기도 하는 아이들입니다. 어떻게 보면 단순하지만 순수하고 용기 있는 강아지와 아이들의 모습은 사소한 갈등이 전쟁으로 커지는 것을 막고, 평화를 찾는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알면 알수록 재밌다!
작가는 『소시지 전쟁』을 통해 기원조차 이해되지 않는 불필요한 전쟁의 무의미함을 유쾌하게 꼬집습니다. 그리고 전쟁과 갈등이 어떻게 발생하게 되는지 매우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설명합니다. 등장인물들의 행동은 집단심리학의 핵심 주제인 ‘동조 현상’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동조 현상’이란 개인이 집단의 압력에 의해 자신의 행동이나 생각을 집단의 규범에 맞추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이 책에서는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사람들이 ‘우리 편이 맞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전쟁에 합류하는 정보적 동조행위와 자신의 그룹에 소속감을 느끼며 전쟁에 가담하는 규범적 동조행위가 동시에 나타납니다. 갈등의 본질이 소소함에도 사람들이 집단 심리에 휘말리며 사안이 커지는 사회적 현상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는 것이죠.
『소시지 전쟁』은 가운데 제본선을 중심으로 페이지를 넘기는 책의 물성을 십분 활용한 그림책입니다. 이야기는 가운데에 있는 소시지를 중심으로 양쪽 끝에서 사람들이 하나씩 등장하며 전개됩니다.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사람들은 큰 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듯이 절대 중앙에 있는 제본선(소시지)을 넘어가지 않는데요. 이렇듯 자신과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대립하고 있는 구도는 서로를 적대시하고 충돌하는 전쟁 상태를 시각적으로 강조합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양쪽에 서 있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통해 작은 갈등에서 큰 전쟁이 되어가는 과정을 단순하고 명료하게 보여주기도 하죠. 마지막이 되어서야 한쪽(왼쪽 혹은 오른쪽)에만 있던 사람들이 구분되지 않은 채 서로 이리저리 섞여 자리하게 되는 것은 두 집단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이 비로소 허물어지며 전쟁이 종결됨을 시사합니다. 책을 더욱 재밌게 읽고 싶다면 등장하는 캐릭터에 주목해보시기 바랍니다. 양쪽에서 함께 등장하는 인물들이 어딘가 익숙하지 않으신가요? 빨간 리본을 한 백설 공주와 사과를 든 마녀, 늑대와 아기 돼지 삼 형제, 후크선장과 피터 팬 등 어린이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동화 속의 캐릭터가 『소시지 전쟁』에 등장합니다. 이외에도 각각 쌍을 이뤄 대립하고 있는 다양한 존재들을 발견하는 순간, 어느새 책에 푹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작가 소개]
지은이 일란 브렌만
브라질 상파울루 출신의 어린이책 작가입니다. 2024년에 《소시지 전쟁》으로 브라질 대표 문학상인 ‘자부치상’에서 어린이 부문상을 받았습니다. 자연과 가족에서 영감을 얻으며 세상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것을 좋아합니다. 작품으로는 《뒤집어 봐, 생각을!》, 《넘어져도 괜찮아!》 등이 있습니다.
지은이 길례르미 카르스텐
브라질 블루메나우 출신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그래픽 디자이너입니다. 창의적이고 재치 있는 그림으로 2019년에는 세계 3대 그림책상 중 하나인 BIB 황금패상을, 2024년에는 《소시지 전쟁》으로 ‘자부치상’에서 어린이 부문상과 일러스트레이션 부문상을 받았습니다. 작품으로는 《으아아아》, 《너도 몬스터니?》, 《아빠, 나 똥!》 등이 있습니다.
옮긴이 김정희
아동학과 심리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번역과 어린이책 편집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옮긴 책으로는 《이건 상자가 아니야》, 《메리와 생쥐》, 《줄리어스, 어디 있니?》, 《악셀은 자동차를 좋아해》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