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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고양시에 거주 하시는 탁월한 등반가인 정호진(넬슨스포츠 대표)선배가 쓰신
글로 선등에 대해 기술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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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등 **
“적당한 위기감을 가지고 침착하게” ----------글: 정호진
처음 암벽등반을 하게 되는 초보자는 우선 자신의 문제에 정신이 팔려 선등자가 어떻게 올라갔는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몇 번 더 등반을 경험하면 초보자는 그제서야 확보를 받지 않고 올라가는 선등자를 위대하게 우러러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선등자에게는 자기와는 다른 특별한 무엇이 있으니까 저렇게 올라가지’하는 의심도 품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저 사람은 전문가이니까’ 또는 ‘저 사람은 장비가 좋으니까’하고 마치 선등자가 트릭을 써서 올라가는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조금 더 등반을 익히게 되면 클라이머들은 이제 나도 앞서서 올라 보았으면 하는 희망을 품는다.
선등(흔히 ‘톱을 선다’ 또는 ‘리드한다’고 표현)을 하고 싶어하는 것은 마치 암벽을 오르고 싶어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소망이다. 자일의 끝을 묶고 넓은 암장을 선두에 서서 나타나는 모든 문제와 난관을 자신의 능력과 창조력으로 해결해 오른다는 것은 무척 흥미진진한 일이다.
물론 좋은 선등자를 만나 자신의 능력에 맞는 코스를 튼튼한 확보를 받으며 안전하게 오르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그러나 바위를 오르려면 누군가는 반드시 선등을 해야 하며, 따라서 가장 선등하기를 원하는 사람, 그리고 그럴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선등하는 편이 따라가는 것보다는 훨씬더 좋다.
이론적으로는 등반의 기본기술을 충분히 익힌 사람이면 자신이 후등자로 떨어지지 않고 오른 코스나 그와 비슷한 난이도의 코스를 선등할 수 있다. 더구나 놀라운 것은 대개의 클라이머들은 후등자로 오를 때보다는 선등할 때 휠씬 더 나은 동작과 자세를 보여준다. 방심한 상태에서 뒤따라갈 때보다는 정신과 육체가 깨어 있어 최대한으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클라이밍에서는, 특히 선등자에게는 기술적 요소와 동일하게 정신적인 면이 중요하다. 선등자에게는 강렬한 선등에의 욕구는 물론 결단성, 냉정함, 창조력과 끈기 등이 요구된다.
선등할 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먼저 자신이 진정 선등하기를 원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스스로 원하는 일이라면 이미 문제의 반은 해결된 셈이다.
그러나 침착함을 잃어서는 안 된다. 조바심과 막연한 공포는 바로 등반에 악영향을 끼쳐 평소의 실력조차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이 길은 어디로 이어질까? 내가 지금 옳은 코스로 올라가는 걸까? 이 코스 끝까지 오를 힘이 남아 있을까? 등등 선등자의 머리 속엔 온갖 걱정이 줄달음친다. 결국 이 모든 물음에 대한 해답과 결정을 내릴 사람은 자기 자신뿐이다. 어떠한 결정을 내리더라도 절대로 냉정함을 앓지 말아야 한다.
결단력과 흥분하기 쉬운 상태에서 냉정함을 유지하기 위하여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기술과 경험이 결여된 근거없는 자신감은 곧 무너지며 오히려 선등자를 큰 위험에 빠지게 할 수 있다.
까다로운 슬랩 등반에서는 동작 하나하나에 신경을 집중시켜 불필요하거나 부적절한 동작으로 말미암아 추락하지 않도록 하는 고도의 집중력도 요구된다.
선등자가 갖추어야 할 이러한 정신적인 자세- 결단력, 냉정함, 창조력, 자심감, 집중력 등 -는 그저 얻어지지는 않는다. 다양한 등반을 경험하여 이러한 정신력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한편 자신의 부족한 면을 발견하고 극복하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루트 선택
최초의 선등(흔히 ‘첫바위’라 표현)을 어떻게 경험하느냐는 그 사람의 앞으로의 클라이밍을 결정짓는다. 자칫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능력에 넘치는 코스를 ‘공포의 도가니’속에서 선등하게 되는 클라이머는 그것이 첫 선등이자 마지막 선등이 될 수도 있다.
첫 선등에서 좋은 경험을 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코스의 선택이 중요하다. 선등초보자는 선등할 코스를 선택할 때 아래의 조건을 고려한다.
1. 따라 오를 수 있는 코스보다 다소 쉬운 코스
후등으로 무난히 올랐던 코스도 처음 선등하게 되면 전혀 새로운 코스에 온 듯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자신이 따라 오를 수 있는 수준이 5.9급이라면 5.8급의 정도의 코스를 고르는 것이 안전하다. 물론 경험이 늘게 되면 자신의 능력을 꽉 채우는 코스에 도전하는 것도 괜찮다.
2. 한번 해보았던 코스
무엇이건 새로운 기술을 습득할 때는 자기가 잘 아는 환경에서 하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아도 선등의 부담이 무거운데다가 코스마저 생소하면 불안감에 빠져 제대로 선등하는 요령을 배우기 어렵다.
3. 기존 확보물이 충분히 있거나 확보물 설치가 용이한 코스
무엇보다도 안전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확보지점의 유무는 코스선택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슬랩 또는 완경사의 벽처럼 오르기는 쉬어도 확보물 설치가 곤란한 코스보다는 다소 어렵지만 확보물 설치가 가능한, 크랙 등으로 이루어진, 코스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물론 확보물을 설치하기가 너무 힘들어도 곤라하므로 스탠스, 테라스, 나무 암각 등이 풍부한 코스를 선택한다.
4.코스정찰이 쉽고 만약의 경우 하강하기에 가능한 코스
바위 밑에서 보아 코스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오는 코스가 좋다. 미리 등반 라인을 설계하고 피치를 나누고 확보지점을 알아두는 것이 처음 선등하는 클라이머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한편 등반 중 곤란에 빠지게 될 경우를 대비, 대피루트가 있다거나 하강이 가능한 코스를 택한다.
5, 가이드북, 동료들을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코스
처음 가는 코스라도 가이드북이나 등반했던 사람들을 통해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해 볼 만하다. 가능하다면 등반 경험이 있고 자신보다 더 능력이 있는 클라이머를 동반하면 한결 든든해질 것이다. 단,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정보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또는 조사자의 주관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날 수 있으므로 어느 정도 가감해서 참고해야 한다.
루트 파인딩
루트파인딩(route finding)이란 좁은 의미로는 암벽을 보고 올라갈 길을 찾는 일인데, 넓은 의미로는 루트 플래닝(route planning)으로서 등반하고자 하는 라인을 눈으로 따라 올라가며 머리 속으로 자신이 취할 동작, 자세, 확보지점, 휴식할 장소까지도 설계하는 것을 포함한다.
충분히 루트파인딩이 되었다면 등반의 반은 성공한거나 다름없으며, 루트파인딩을 제대로 할 줄 몰라서야 온전한 선등자가 될 수 없다. 루트파인딩의 요령은 아래와 같다.
1. 바위의 약점을 관찰한다.
크랙, 코너, 침니, 데드르, 날개(플레이크) 등 바위면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부분은 대개 길을 내어준다. 잘 모르는 코스일수록 확보물 설치가 곤란한 슬랩이나 벽은 피하는 것이 좋다. 슬랩의 경우 풋홀드와 핸드홀드를 눈여겨보고 마음속으로 동작을 연결시킨다.
2. 확보지점, 휴식지점, 피치를 끊을 지점을 관찰
나무나 암각, 기존 하켄, 슬링 등을 잘 찾아본다. 크랙의 좁아지는 부분, 크랙의 넓이를 눈여겨보아 두고 소요될 확보물을 순서대로 챙겨두는 것도 지혜로운 방법이다.
피치를 끊어 확보보기 좋은 지점이나 테라스도 정해두는데, 나무가 있거나 작은 숲을 이룬 곳은 대개 좋은 휴식처를 제공한다.
3. 다닌 흔적을 잘 살핀다
코스를 잘 모르는 경우 자세히 바위를 들여다 보면 많이 다닌 길은 홀드에 손때가 묻어 있거나 바위의 입자가 반질반질하게 닳았거나 이끼가 벗겨져 다른 부분과 차이가 나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코스가 갑자기 어려워진다거나 거칠고 먼지가 많아지면 길을 잘못 든 것으로 의심해 본다.
4. 예상하던 지점이 적당치 않을 경우 이를 대신할 다른 등반라인도 보아둔다.
아래에서 보이던 상황은 실제와는 매우 다를 수 있다. 밑에서 볼 때 평평한 턱이나 좋은 홀드로 보이던 것이 올라가 보면 매우 기울어 쓸모 없을 때가 종종 있다. 이를 대비하여 달리 쓸수 있는 등반라인을 준비해 둔다.
5.탈출 또는 하강할 수 있는 코스도 보아둔다.
등반 준비
이제 코스도 정했고, 충분한 루트파인딩도 끝냈다. 그러나 아직 출발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먼저 확보자의 자세와 확보지점이 튼튼한지를 확인한 다음, 자신의 하네스와 자일의 연결상태, 가지고 가는 너트와 카라비나는 충분한지, 사용하기 쉽게 정리되었는지, 자일의 매듭은 튼튼한지를 점검한다.
땅에서 출발 후 첫 번째 확보물에 도달하기까지가 가장 위험하다. 몸도 아직 안 풀렸고 떨어지면 충격이 크기 때문이다.
선등자에게 중요한 것은 등반을 마칠때까지 힘을 아껴서야 한다는 것이다. 최소한의 힘을 소비하고, 기회있을 때마다 쉬고 필요할 때 외에는 팔의 힘을 가급적 쓰지 말며 좋은 자세와 경제적인 동작을 유지한다.
선등자는 자신의 힘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항상 파악해야 한다. 만약 손가락이나 팔의 힘이 빠져감을 느끼면 더 늦기 전에 내려오든지 다른 조치를 취해 다음 마디 출발전에는 반드시 이모 저모를 생각한 후 떠난다. 내가 어디로 향해 갈 것인지, 그곳에 닿으면 무엇을 할 것인지 또는 그곳에 못미치면 어떻게 할 것인지, 그곳에 닿았는데 내가 기대하던 바와 다르면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생각한다.
확보자 또는 마지막 확보물을 떠난 선등자는 올라가다가 또 다른 확보물의 설치 없이는 전진이 곤란한 지점에 이를 때 확보물을 설치하게 된다.
확보물 설치
선등시에 확보물을 설치할 때는 우선 설치하기에 편하고 안전한 지점과 자세를 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설치하는 사이에 떨어지는 수도 있고, 불편한 자리에 머무느라 힘을 모조리 써버릴 우려도 있다. 불행히도 확보물을 설치할 자리가 마땅치 않을 경우 다음의 즐겁지 못한 세 가지 상황 중 한 가지를 택해야 한다.
첫째, 조금 내려가서 아래에 확보물을 설치하거나 아예 확보자에게 내려가서 선등을 교대하자고 한다.
둘째, 기를 쓰고 매달려 팔과 다리의 힘이 없어지기 전까지 확보물을 설치해 본다.
셋째, 확보물 설치가 가능한 지점으로 더 올라간다.
급해지기 전에 미리 충분한 확보물을 설치한다면 이러한 상황을 피할 수 있지만, 등반을 하다 보면 이 정도는 각오해야 한다.
아무튼 절대 공포에 빠지지 말고 빨리 결단을 내려 문제해결을 해야 한다. 놀라운 것은 이럴 때 대부분의 경우는 확보물 설치없이 그냥 올라가 다른 확보물 설치 기회를 모색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점이다.
선등 연습
여러 피치가 되는 코스 전체를 바로 선등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크다. 아래와 같은 선등연습을 통해 선등자로서의 능력과 자신감을 키워 보는 것이 좋다.
1. 우선 후등으로 선등자의 지도를 받아 확보물을 회수해 보거나 안전한 테라스, 확보지점 등에 확보물
을 설치해 본다.
2. 자신의 능력에 알맞고 화보물 설치가 쉬운 코스를 (한 피치 짜리도 좋다.) 후등으로 등반하여 확보물
을 설치한다. 이때 불필요 하더라도 확보물을 설치가 가능한 곳을 모조리 설치해 본다(회수하지 않는
다.)
3. 다음 선등을 하며 미리 설치해 둔 확보물을 사용해 본다(카라비나 걸기, 슬링 걸기, 자일 통과시키기
등)
4. 지상에서 확부물 설치, 회수를 반복 연습한다. 가급적이면 한 손만을 써서 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
다. 후등으로 오른 후 먼저 하강하면서 확보물을 설치해 보는 것도 좋은 훈련이 된다.
5. 아는 코스를 선택, 본격적으로 선등한다. 처음에는 그 피치에 꼭 필요한 장비만을 휴대하여 가볍게
오른다.
선등자의 책임
선등자는 우선 자신의 안전 위해 자신의 능력과 준비된 장비에 맞는 등반 행위를 해야함은 물론, 자신이 이끌고 있는 자일 파티의 여러 동료의 안전까지 책임져야 한다. 예를 들어 선등자가 자기 생각만 하고 후등자에게는 지나치게 어려운 코스를 선택하여 등반한다면 후등자에게 등반은 오직 괴로울 뿐, 전혀 즐거움을 나눌 수가 없게 된다. 이 책임은 전적으로 선등자가 져야 한다
또한 선등자는 자신은 물론 확보자의 안전을 위해 절대적으로 긴(심한) 추락을 하지 말아야 한다. 떨어지고 싶어 떨어지는 사람은 없겠지만, 올바른 선등자라면 이러한 심한 추락을 초래할 환경을 사전에 배제할 수 있어야 한다. 선등자는 후등자의 능력을 고려하여 그들이 추락하지 않도록 후등자가 편안한 마음으로 코스를 따라 오를 수 있게 확보물을 자주 설치해 주어야 하고, 특히 트래버스 때나 어려운 부분에는 후등자의 입장에서 확보물 설치를 고려해야 한다.
선등자는 후등자를 올리기 전 확보지점과 확보물이 안전한가를 확인해야 한다. 뒤따라 올라와 보니 형편없는 확보물을 의지하고 태연히 확보를 보고 있는 선등자를 보면 때려 주고 싶다.
출처 :인천계양클라이밍 원문보기▶ 글쓴이 : 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