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2월27일 조찬 기도회 설교
본문 : 요한 계시록 1:9-16
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11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12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4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15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16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계시록의 핵심 말씀은 주님이 틀림없이 재림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악의 세력이 강해보이고 무너질 것 같지 않아 보이지만 예수님이 다시 재림하실 때 이들은 심판 받아 불못에 던져지고 성도들이 승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이 박해 가운데 있지만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누구입니까?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믿는 성도들의 모임이라고 전에 제가 설명 드렸습니다. 그래서 요한 계시록의 핵심을 다시 말씀드리면 교회가 박해가운데 있지만 승리할 것이니 끝까지 참고 잘 견뎌라 는 것이지요.
오늘 9절부터 나가기 전에 계시록 전체의 이해를 위해서 큰 outline을 이야기해 드리는 것이 좋을 것아 잠간 말씀 드리겠습니다. 1장은 서두로서 요한이 본 계시가 무엇인가를 말해주고 있고 2-3장은 그 당시의 교회의 대표인 7교회에 대해서 말하고 4-5장은 계시의 주체가 되는 하나님에 대한 것인데 4장은 성부 하나님 5장은 성자 예수님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6장부터 16장까지 내용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향해 재앙으로 심판함과 동시에 세상은 교회를 핍박하지만 하나님이 보호하시므로 교회가 승리한다는 것으로 하나님이 모든 일에 주관자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일곱 인(봉)(6-7장), 일곱 나팔(8-11), 막간-일곱우뢰와 두 증인 붉은 용과 여자(12장)- 두짐승(13장,바다와 땅) 하나님의 인맞은 자와 짐승의 인맞은자(14장)-, 일곱 대접(15-16)이 나오지요. (다 하나님이 내리시는 세상을 향한 재앙들입니다. ) 그리고 17-20장까지 내용은 이렇게 성도들 즉 교회를 괴롭히던 악한 사단과 그의 추종자들의 완전 망한다는 내용입니다. 여기서는 사단의 추종자들 용, 짐승, 바벨론, 음녀가 망하지요. 여기서 가장 크라이막스는 20장인데 사단 그 자신뿐 만 아니라 사망과 음부까지 불못에 던져져 영원한 멸망을 당하는 내용입니다. 이제 악한 것이 다 망했으니 뭐가 남습니까? 악은 더 나올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21장부터 22장5절까지 새하늘과 새땅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여기가지가 사실 미래에 대한 예언의 끝인데 요한은 22장 6절부터 21절을 더 남겨 놓았습니다. 지금은 교회가 이렇게 핍박받아 어렵지만 이 계시록의 내용처럼 악은 결국 완전히 망할 존재이니 핍박가운데도 마음 변치 말고 잘 견디며 주님의 재림을 간절히 기다리라는 내용과 이 계시록의 내용을 왜곡시키지 말라는 경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1장은 서두 요한이 본 계시, 2-3장은 7교회, 4-5장은 하나님 4장은 성부 하나님, 5장은 예수님, 6-16장까지는 하나님이 세상을 재앙으로 심판, 세상은 교회를 핍박, 그러나 하나님이 교회를 보호사신다는 내용으로 일곱,인, 나팔, 대접의 내용, 17-20장까지 사단과 추종자들 사망과 음부까지 불못으로 던져져 영원한 멸망, 21-22:5절 새하늘과 새땅, 그리고 22:6-21 그러니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라. 이런 것은 이런 기회에 외워두는 것이 좋습니다.
이제 9절을 보면 요한은 자신을 성도들과 한 형제요, 예수의 환란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이여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로 인하여 밧모라는 섬에 있다고 했습니다. 요한은 로마의 도미티안 황제때에 예수그리스도를 전하는 지도자라는 이유로 밧모섬에 유배와 있었습니다. 상황으로는 외롭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요한은 이것으로 인해 인생을 한탄하거나 낙심하지않고 오히려 이 핍박 당하는 것이 자신이 온전히 주님을 따르고 있다는 증거로서의 확신으로 당당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환란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한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여기서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을 의미합니다. 이 나라 앞뒤로 환란과 참음이 나와 있다는 것을 잘 생각해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주인과 임금삼아 그 말씀과 다스림에 순종하고 살아가는 주님의 백성들이 살아가는 그 나라 앞에 환란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환란에 참음으로 반응해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의 황제를 신으로 섬기라는 강압을 가운데 예수님의 나라(다스림)에 동참한다는 것은 디모데 후서 3:12절 ‘무릇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하는 자들은 핍박을 받는다’는 말씀처럼 예수님의 몸으써 주님의 환란과 참음에 동참하는 것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재림 이후에는 이 환난과 참음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재림 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환란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것은 성도라면 당연히 감당해야할 사명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다보면 참 기쁘고 감사하고 주님이 주시는 평강으로 삶이 새로워지고 삶의 가치와 귀중함을 느끼며 삶의 만족감을 누리며 살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으로 이토록 기쁘고 평강이 있지만 말씀을 따라 살다보면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따돌림을 당할 수도 있고 오해를 받기도하고 어려움에 빠질 수도 또는 불이익과 희생을 요구 받는 일도 또 믿지않는 가정에서는 핍박도 받을 수 있습니다. 전도하다가 욕을 먹을 수도 있지요. 그리고 우리들이 주를 위해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고 봉사를 하다가 보면 때때로 자신에게 필요한 시간과 물질이 부족하고 경제력이나 삶의 질이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을 느끼며 낙심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게으름의 결과나 낭비로 인한 결과가 아니라 주님을 위해 드린 결과로 찾아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 예수님의 환란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다가 자신이 밧모섬에 갖힌 것을 자랑스럽게 당당하게 말하는 요한을 생각해야합니다. 열심히 주의 일을 했는데 그 결과가 겨우 죽음을 모면하고 밧모섬에 갖혀있게 된것입니다. 낙심할만한 상황이지만 그는 오히려 당당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예수님의 나라 즉 그분의 다스림에 순종하였기 때문에 받는 고난과 환난을 자신이 주의 일에 동참한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믿음의 삶 때문에 당하는 모든 어려움은 예수의 환란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시는 주님의 왕 중 왕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밧모섬과 같은 세상 가운데 살아가며 고난을 당할 때 성령 안에서 세상을 다스리시는 왕의 왕이신 주님을 볼수 있어야합니다. 이분이 계시기에 우리가 이런 어려움과 환란 중에 있으시다면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참 왕이신 주님을 위해 당하는 어려움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오실 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지금의 눈물과 고통에 보상을 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닙니까 다른 사람이 어떤 평가를 내린다 해도 진정한 이 땅의 주인이신 통치자이신 주님에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인정받는 것이 말입니다.
어쩌면 이 말씀은 핍박을 받지 않는 이 현대의 캐나다 땅에서 피부에 와 닿지 않는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너무도 자신과는 관계가 없는 먼 말씀 같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의 지하교회에서 목숨을 주님께 의탁하고 주님을 섬기는 성도들은, 이슬람 정권에서 순교를 당하는 성도들은 이 왕의 왕으로 오실 주님이 참으로 힘이 되고 참 소망이 되고 위로가 될 것입니다. 왜 같은 말씀을 보는데 왜 주님을 향한 간절함에 차이가 나는 것입니까?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말씀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딤후 1:8,‘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바울은 주님을 위해 그분을 증거하고 옥에 갇힌 자 된 자신을 부끄러워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해야 할 일을 말해 주었는데 그것은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복음과 고난을 분리 시킬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제외하고는 그 어느 곳에서든지 복음은 고난을 부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동일하게 하나님의 능력을 좆기는 하지만 자신의 영광을 구하는 곳에, 오직 자기를 위한 부과 권세와 명예와 자신의 감정의 만족과 쾌락을 얻고자 하는 곳에는 고난이 잘 찾아오지 않습니다. 세상이 추구하고 세상이 원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살기 때문에 별로 그들의 생각과 부딪힐 것이 없기에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받는 고난은 잘 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을 것을 각오하는 삶입니다. 우리들이 두려워하는 고난이나 환란은 그렇게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롬 5:3-4절‘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인내를 배우게 만들고 연단하여 더 단단하게 우리를 만들어 주는 유익만이 있는 것 뿐 만이 아니라 소망을 이루게해 주는 것입니다. 주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참 소망되게 해주는 것이 고난이나 환란입니다. 북한의 성도들이 그 외 지역에서 핍박받는 성도들이 왕의 왕으로 오실 주님을 참 소망으로 삼을 수 있는 이유가 그들의 환란 때문입니다. 특히 계시록을 지적인 만족이 아닌 참 영적인 양식을 삼기위해서는 예수님의 환란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없이 계시록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할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계시록의 말씀은 복음과 함께 고난 받는 자들을 위로하고 힘과 소망을 주기위해 주어진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복음과 함께 환란 받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우리들이 되길 바랍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고자 애쓰기 바랍니다. 그리고 어떤 환란이나 고난이 오면 아 이제 나도 예수님의 환란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이네 하는 기쁨이 있게 되길 바라고 왕 중 왕이신 주님의 칭찬을 기대하며 사도요한처럼 기쁨으로 참으시는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10절을 보면 요한은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주의 날은 재림 때가 아니라 주님이 부활 하신 주일을 의미한 것입니다. 이날 요한은 그의 뒤에서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었습니다.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아,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교회에 보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요한에게 책을 쓰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줄 모르겠습니다. 요한은 직접 듣고 보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책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수 있게 된 것입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에게 요한처럼 환상을 보여 주셔서 미래에 반드시 일어날 일을 알게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왜 주님이 요한에게만 이것을 보여주시고 본 것을 기록하라고 했을 까요?
가짜가 보지도 않은 것을 봤다고 말하여 진짜 하나님의 계시를 혼돈시킬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요한처럼 계시를 보여 주시지 않고 주님은 책을 기록하여 이것을 읽고 깨닫는 방법을 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주님은 계 22:18-19, 18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19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강력한 경고를 하시고 그 경고의 말씀대로 실행하심으로 이 말씀을 지키신 것입니다. 더 해서도 안되고 제해서도 안된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이 요한 계시록은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을 기록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서 완전하다는 것입니다. 그 누구라고 절대 가감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 1:8절에서 하늘에서 온 천사라고해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 보다 더 강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오늘 날에도 환상을 보았다 꿈을 꾸었다하며 계시를 혼동시키는 자들이 꽤있습니다. 주님이 선택하지 않으신 방법을 너무도 좋아하시는 분도 많은 것 같습니다. 기도의 결과나 사역에 관해서 가끔 그렇게 보여 줄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계시에 대한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환상 중에 천국을 보고 왔다 꿈으로 미래에 일어날 일을 봤다하는 분들이 하는 말 중에 혹시라도 계시록에서 말하는 것 외에 자신이 더 많은 것을 본 것처럼 더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분들은 이 책에 기록한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에 더하여 재앙을 받으려고 교만 부리는 자들임을 아셔야합니다. 또 혹시라도 주님이 말씀 하신 것을 제하고 자신이 본 것을 말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함 당하게 될 자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완전하여 더할 것도 제외해야 할 것도 없는 완전한 주님의 말씀보다 자신이 더 많은 것을 보았다거나 성경말씀보다 자신이 본 것을 더 강조하며 신비한 예언을 하려는 자들을 하나님의 진노를 스스로 부르며 다니는 자들입니다. 가까이 하지마시기 바랍니다.
성경보다 더 확실한 하나님의 음성이 어디 있겠습니까? 주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요한에게 이 계시록을 기록하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밝혀주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뜻이나 하나님의의 음성을 다른 곳에서 찾으려 하지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명백하게 그분의 뜻이 기록되어있고 하나님의 음성이 거기서 울려나오고 있습니다. 성경에 귀를 기울기고 그 말씀을 이해하고자 기도하고 연구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복된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환란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로 복음과 함께 고난 받는 삶을 살아가는 기쁨을 누리기 바랍니다. 또 하나님이 뜻이나 하나님의의 음성을 다른 곳에서 찾으려 하지말고 성경에 명백하게 그분의 뜻이 모두 기록되어있음을 믿고 성경에 귀를 기울기고 그 말씀을 이해하고자 기도하고 연구하여 하나님의 뜻안에서 살아가는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God bless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