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lysis!
프란시스 백동흠
“이리될 줄 알았나, 어디?” 나만은 아니라고 했는데. 직접 당사자가 되면서 세상이 달리 보이거든. 사람들은 남의 얘기처럼 여길 뿐이지. 한번 시작하면 네댓 시간은
꼼짝없이 기계에 몸을 맡기는 신세라니. “쿵 탁! 쿵 탁!” 철벅대는 펌프 소리에 몸과 마음이 오뉴월 개 혓바닥처럼 축 처지잖아. 이쯤
되면 궁금할 거야. 누구 이야길 하는 건지? 뉴질랜드 사람들은
지나가는 말로 부르더구먼. Dialysis! 투석(透析)이라고. 내 이름은 신장 혈액투석!
사람들에게 나처럼 원망의 대상도 없을 거야. 살만한가 할 때 불쑥 불청객으로
오니까. 내 이름만 들어도 인상을 찌 뿌리는 이가 부지기수야. 때론
억울하기도 하대. 나를 달고 다니는 사람들. 그 하소연을
외면할 수도 없어. 성선설을 믿고 살아온 이들이 성악설로 돌아서는 건 시간문제야. 나를 만나면 그리 변하나 봐. 환자들에게 필수인데도 멀리하려는 아이러니하고는. 어쩌겠어. 부여안고 살아야지.
오늘만 해도 환자가 난동을 부리는데 말릴 재간이 없더구먼. 내가 붙어 다니는
사람들의 감정 진폭은 롤러코스터보다 더해. 발단은 70대
노인 투석환자의 조급증이었어. 택시를 타고 오클랜드 북쪽 투석 병원에서 서쪽 요양원으로 가는 중이었지. 몸은 쇠꼬챙이처럼 깡말랐는데 성질은 화염병 같더라고. 주삿바늘 뺀
팔에 흰 반창고 뭉치가 몽땅 피로 물들어 있는 게 안타까웠어. 투석 후 지혈이 잘 안 된 거야. 택시를 타면서부터 빨리 안 간다고 줄곧 다그치는 조급증. 정체되는
모터웨이를 지나려니 답답하기야 하겠지. 비어있는 갓길로 왜 안 가냐는 거야. 운전사가 그렇게 바꾸겠어? 차선 안 바꾼다고 냅다 소리를 치더라고. 급기야, 천천히 달리는 차 문을 벌컥 열질 않겠어. 갓길로 걸어간다고. 혼비백산한 택시 운전사가 왼손으로 노인 팔을
잡아당기고, 오른손으로 운전대를 부여잡은 진풍경이라니. 이게
무슨 생쇼냐고. “팔 빠지겠네!” 투석환자의 볼멘소리가 청천벽력같은
운전사의 호통에 꼬리를 내리더구먼. “위험하다니깐요!!!” 운전사에게서
결연한 카리스마가 훅 스치더라고. 여차했다간 그 호통의 날에 베일 것 같았나 봐.
어제는 애처롭고 찡한 연민이 가슴을 적셨지. 50대 중반의 시각장애인 마오리
남자가 투석을 마치고 주춤주춤 발걸음을 옮기더라고. 장딴지에 거칠게 문신한 뉴질랜드 지도, 남섬과 북섬이 울툭불툭 꿈틀거렸지. 까만 선글라스에 시각장애인용
스틱을 집고 나오는 거구가 마치 성경 속의 삼손 같았어. 한때 천하를 들었다 놓았다 하던 장사가 힘의
원천인 머리를 깎이고 속절없이 무너진 것처럼, 아예 힘이 없어 보이는 거야. 운전사의 부축으로 택시에 타는 것까지는 괜찮았지. 목적지에 내리고
나서가 문제였어. 경사진 곳에 있는 연립가옥 유닛을 찾아 택시가 섰지.
투석환자가 열쇠를 주며 문을 열어달라고 하자 운전자가 방문을 열어놓고 나서는 순간이었어. 시각장애인
환자가 더듬더듬 한 발짝씩 움직이다 “쿵!”하고 집 난간
모서리를 들이받은 거야. 이마가 그대로 쪼개지듯. 거구라서
여섯 시간이나 투석한 건데, 아까운 선홍 피가 뭉턱뭉턱 나오는 게 아니겠어. 아차, 사달이 나고 만 거야. 투석하면서
천하장사도 그냥 땅에 내리꽂히고 말더구먼. 어쩌나, 인생
후반에는 제발 투석만은 비껴가기를… .
말기 신부전증 환자에게 혈액 거르는 일이 신장 투석이잖아. 이런 환자는
신장 이식을 받는 게 제일 좋은데, 어디 그게 가능하냐고. 하늘에
별 따기지. 그 대체 방안이 바로 투석(透析), Dialysis 인걸. 달리 말해 ‘인공신장기’를 이용하는 것이지. 환자의
몸에서 혈액을 빼내 인공신장기에서 노폐물과 수분을 제거하여 그 혈액을 체내로 투입하는 치료 방법으로 한 번에 네댓 시간 하는 신장투석이 만만한
게 아니라고. 들여다보면 대단해. 매일 180리터의 혈액이 신장을 거쳐 걸러진대.
나, 투석(透析)은 언제쯤이나 한가한 시간을 가져볼는지. 투석하기까지 된 어려운 환자가 안 생기는 날이 올까. 별생각을 다하고 있구먼. 힘들어하는 환자와 함께 있다 보면 본인보다
가족들이 더 힘들어 하더라고. 일주일에 세 차례씩 투석을 받아야 살 수가 있다고. 한번 투석에 네댓 시간은 기본이고 몸이 문제가 있으면 여섯시간도 불사하더구먼.
끝나면 거의 녹초가 되고 말지. 온종일 기다리고 치료받고 기진맥진한 시간. 뉴질랜드같이 자연 선진국에 투석 환자가 원 그리도 많은지. 오클랜드
병원만 해도 세 병동에서 인공투석기가 누워있는 환자 옆에서 펌프질하느라 여념이 없는걸. 노스쇼 지역도
두 곳에서 계속 돌아가고. 세상의 이치가 바로 돌아가고, 피도
맑게 흘러가면 제대로 된 세상이 아니겠어.
뉴질랜드 삼림 속에 자라는 ‘카와카와’잎이
사랑의 하트 모양으로 예사롭지 않아. 등산 중에 원주민 마오리가 칡잎 같은 걸 따더구먼. 하트모양으로 잎에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잎을 왜 따나요? 물어봤어. 그 잎을 따 달여서 차로 마시면 혈액을 맑게 해주고 콩팥 기능을 살려주는 약효성분이 있다는 거야. 그 이름 ‘카와카와 차!” 이
차를 자주 마시면 피를 정화해준대. 뉴질랜드에 사는 이들에게 자연이 준 작은 팁이래.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네그려. 내 소망은 환자들 몸에 맑은 피가 돌게
하는 것이지. 고혈압, 당뇨, 동맥경화가 투석의 전초 증상이래. 그럼 해답이 거의 나온 거잖아. 나, 힘들어하는 사람들하고 이제 이별 인사드리고 싶어서 오늘 긴
넋두리를 늘어놓았나 봐. 부디, 평소에 좋은 생각갖고, 운동하며 건강 잘 챙기시기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