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客閑談] 화란춘성(花瀾春盛)의 선거전
아침나절 숲길 어귀의 느티나무 가지 위에서 박새 두 마리가 찍 찍 짹짹거리며 뒤엉켜서 마른 덤불 바닥으로 곧장 추락하고 있습니다. 이것들이 이른 아침부터 싸움질인가? 연애질인가? 도통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산객의 시선은 호기심으로 가득합니다. 봄이 되면 새롭게 집을 짓고 짝을 만나 한 가정을 꾸밀 바쁜 시기에 싸움질이라니. 싸움질이 아니라면 연애질이겠지요. 겨우내 숨죽이고 조용하던 숲은 이들 박새뿐이 아니고 멧부리 근처를 터전으로 삼고 있는 곤줄박이도 엇비슷합니다.
참나무 숲길에서 이따금씩 들려오던 딱따구리의 나무 쪼아대는 소리는 한두 해 전부터는 들을 수가 없구요.괙괙거리며 숲 사이를 힘차게 날던 까치만 한 덩치의 어치도 이젠 눈에 띄지 않습니다. 어딘가로 이사를 한 모양입니다. 두 해 전이었던가? 어느 곳에서부터 쫓기고 있었는지 몰라도 너덧 마리의 들개들에게 쫓기고 있던 고라니 한 마리가 필자 앞의 십여 미터 전방의 넝쿨과 잡목의 덤불 속으로 허겁지겁 뛰어드는 겁니다. 머지않아 그 덤불 속에서는 들개의 공격을 피하지 못한 고라니의 비명 소리가 애처롭게 들려왔지요. 산객의 귓가에 화석처럼 남아있는 그 고라니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던 숲길에는 까마귀 두어 마리만이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며 꺽꺽거립니다.
숲은 이제 봄의 생기가 완연합니다.봄의 전령 샛노란 생강나무꽃이 처음 문을 열면 연분홍 진달래꽃이 뒤를 잇고 있지요. 곧바로 팝콘 같은 벚꽃이 흐드러질 테지요. 오늘은 22대 국회의원 총선거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는 날입니다. 투표일은 오는 4월 10일이니 선거 운동 기간은 고작 13일에 불과하지요. 초선 이상의 구관(舊官)들은 유권자들에게 익히 알려진 구관일 테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선거에 나선 신참들에게는 13일은 너무 짧은 기간은 아닌지. 얼굴 알리기조차 빠듯한 신참들보다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구관들 위주로 만들어진 선거 운동 기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진흙탕의 이전투구(泥田鬪狗)는 이전의 선거 때보다 훨씬 더 치열할 겁니다.이전투구의 행태가 강할수록 지저분하고 천박한 선거가 되겠지요. 이런 분위기에서는 선과 악의 구분조차 어려운 법입니다. 목소리 큰 쪽이, 떼를 짓는 능력이 때론 힘을 발휘하곤 합니다. 이런 경우 양화(良貨)는 악화(惡貨)의 악다구니를 견딜 재간이 부족한 법이지요. 작금의 산과 들에는 아름다운 꽃이 피고, 숲에는 산새들이 지저귀고 있습니다. 한 해의 출발을 알리는 자연의 고고한 숨결이지요. 이번 선거는 22대 입법부의 살림을 책임질 국회의원을 뽑는 중차대한 국가 행사입니다. 꽃이 난분분하고 새들의 날갯짓이 분주한 아름다운 강산에 이루어지는 선거전의 진군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여야를 대표하는 두 정당의 출사표 표정은 자못 비장하기까지 합니다.
이민족(異民族) 간의 싸움보다는 동족(同族) 간의 싸움이 더 치열하다고 했지요.그리고 이교도(異敎徒)와의 투쟁보다 종파(宗派) 간의 분쟁도 이와 같다고 했습니다. 한 국가의 선거 전쟁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22대 국회의원 총선전, 봄꽃들의 미모자랑처럼 우아한 행태의 경쟁이나 산새들의 연애질 같은 사랑 전쟁 같은 선거 운동은 현실에서는 전혀 기대할 수 없는 환상이겠지요. 꽃이 피고 새가 우짖는 따뜻한 봄이 되어 온갖 생물이 태어나고 자라나는 만화방창(萬化方暢)의 호시절에 치러지는 국가 행사인 총선전(總選戰), 양대 정당(국민의힘, 민주당) 대표인 한동훈과 이재명의 대결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전투의 승패가 자못 궁금한 화란춘성(花爛春盛)의 선거전입니다. (2024,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