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백규의 연시조 '농가(農歌)'
●핵심정리
▶갈래 : 평시조, 연시조
▶연대 : 조선 후기
▶제재 : 농부의 삶
▶주제 : 농부의 고된 노동과 여유로운 휴식, 소박한 생활의 풍취
▶특징
① 농가의 성격을 띠는 평시조. ② 묘사적, 사실적인 표현 기교가 두드러짐. ③시간의 흐름에 따른 구성. ④여름부터 가을까지의 계절의 변화를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하루 농사일의 상황으로 병치시키고 있다.
○ 제1수
셔산에 도들벗셔고 구움은 느제로내다
비딋 무근풀이 뉘밧시 짓터든고
두어라 차레지운 닐이니 매난다로 매오리라
<현대어 풀이>
서산에 아침 햇볕이 비치고 구름은 낮게 떠 있구나.
비가 온 뒤의 묵은 풀이 누구의 밭에 더 짙어졌는가?
아아! 차례가 정해진 일이니 묵은 풀을 매는 대로 매리라.
○ 제2수
도롱이예 홈의 걸고 뿔곱은 검은쇼 몰고
고동풀 뜻머기며 깃믈갓 나려갈제
어대셔 픔진볏심 함끠가쟈 하난고
<현대어 풀이>
도롱이에 흠의를 걸치고 뿔이 굽은 검은 소를 몰고
고동풀을 뜯어먹게 하며 깃물가로 내려갈 때
어디서 픔진 볏심은 함께 가자 하는가
○ 제3수
둘러내쟈 둘러내쟈 길찬 골 둘러내쟈
바라기 역괴를 골골마다 둘어내쟈
쉬짓튼 긴 사래난 마조 잡아 둘너내쟈
<현대어 풀이>
쳐 내자 쳐 내자 꽉 찬 고랑 쳐 내자.
잡초를 고랑고랑마다 쳐 내자.
잡초 짙은(무성한) 긴 사래는 마주 잡아 쳐 내자.
논매기 하는 모습을 담은 세 번째 작품이다. ‘둘러내쟈’는 논의 김을 한 골씩 매어나가자고 서로 독려하는 내용으로 김을 맬 때 부르는 노동민요의 한 관용구이다.
여럿이 줄줄이 서서 한 골 한 골씩 논을 매고 잡초인 바라기를 골라내는 모습에서 협동성과 공동 노동의 흥겨움이 베어 있다. 계절적으로 농번기의 중심에 있음을 알 수 있다.
○ 제4수
땀은 듣난대로 듯고 볏슨 쬘대로 쬔다.
청풍에 옷깃 열고 긴 파람 흘로 불 제
어듸셔 길 가는 손님 아난드시 머무는고
<현대어 풀이>
땀은 떨어질 대로 떨어지고 햇볕은 쬘 대로 쬔다.
맑은 바람에 옷깃을 열고 긴 휘파람 되는대로 불 때
어디서 길가는 손님은 마치 나를 아는 듯이 주저 없이 머무는가
오뉴월 대낮의 뜨거운 햇빛이 쏟아지는 들녘에서 허리 굽히고 김을 매다보면 땀은 비 오듯이 쏟아져 온 몸을 적신다.
땀을 닦아낼 짬도 없이 김매기에 열중하다 때마침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향해 젖은 옷깃을 열고 허리를 세워 바람을 즐기며 휘파람을 불고 있다.
이 달콤한 잠깐의 휴식을 취하는 동안 길 가다 머물던 손님이 간섭하는 장면이 눈에 그려진다.
○ 제5수
항긔에(한그릇의) 보리뫼오 사발의 콩닙이라
내 밥만 할셰요 네 반챤 적을셰라
먹은 뒷 한잠경이야 네오 내오 달을소냐
<현대어 풀이>
밥그릇에는 보리밥이오 사발에는 콩잎채라
내 밥이 많을까 걱정이오, 네 반찬이 적을까 걱정이라
먹은 뒤에 한숨 잠을 자는 즐거움이 너와 내가 다르랴?
보리밥 한 사발과 콩잎 나물 한 그릇으로 점심을 먹는 모습을 담은 다섯 번째 작품이다. 네 밥 내 반찬 서로 뽐내지 않고 그저 한 그릇 점심으로 서로 배부르면 그만인 넉넉함과 여유로움이 담겨진 작품이다. 한 그릇의 보리밥과 한 사발의 콩잎 나물이라도 왕후장상의 호화로운 밥상에 비길 것이 없다. 그 소박한 점심을 달게 먹은 뒤에 잠깐 오수를 청하는 광경이 눈에 선하다.
○ 제6수
돌아가쟈 돌아가쟈 해지거다 돌아가쟈
계변의 발을 싯고 홈의 몌고 돌아올제
어듸셔 우배쵸젹(牛背草笛)이 함께 가쟈 뵈아난고
<현대어 풀이>
돌아가자 돌아가자 해가 지겠구나 돌아가자
시냇가에서 손발을 씻고 호미 매고 돌아올 때
어딘가에서 들리는 초동의 풀피리 소리가 함께 가자 재촉하는고.
해질 무렵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풍경을 읊은 여섯 번째 작품이다. 하루의 노곤함을 시냇가에서 발을 씻으며 풀고 농기구를 챙겨 돌아오는 길에 어디선가 소치는 아이가 부는 듯한 풀피리소리가 일품이다.
○ 제7수
면홰난 세다래 네다래요 일읜벼난 피난 모가 곱난가
오뉴월이 언제가고 칠월이 반이로다
아마도 하나님 너희 삼길제 날 위하야 삼기샷다
<현대어 풀이>
면화는 세 다래 네 다래로 듬뿍 피고 이른벼는 피는 이삭이 곱더라
오뉴월이 언제 갔는지 모르게 가고 벌써 칠월 중순이로다
아마도 하느님이 너희(면화, 벼)를 만드실 때 바로 나를 위해 만드셨구나.
○ 제8수
아헤난 낫기질 가고 집사람은 저리 처친다
새밥 닉을 때예 새 술을 걸릴셰라
아마도 밥 들이고 잔 자불 때예 豪興계워 하노라
<현대어 풀이>
아이는 낚시질 가고 집사람은 절이 채(겉절이 나물) 친다.
새 밥 익을 때에 새 술을 거르리라.
아마도 밥 들이고(들여오고) 잔 잡을 때 호탕한 흥에 겨워 하노라.
상신(嘗新)은 본격적인 수확에 앞서 그 해의 햇곡식을 미리 맛보는 것을 말하는데 이런 기쁨을 노래한 여덟 번째 작품이다.
아이들은 낚시질 가고 아내는 분주하기만 한데 햇곡식으로 지은 밥과 거른 술로 질펀한 술자리 한 판 벌여보려는 듯 흥겹고 기꺼운 가을걷이 모습이다.
○ 제9수
취(醉)하난이 늘그니요 웃난이 아희로다
흐튼 순배 흐린 술을 고개 수겨 권할 때예
뉘라셔 흙쟝고 긴노래로 차례춤을 미루는고
<현대어 풀이>
취한는 이는 늙은이요, 웃는 사람은 아이로다.
어지럽게 술잔을 돌려 탁주를 고개 숙여 권할 때에
흐르는 장고, 긴 노래에 누가 자기 차례의 춤을 사양하여 미루는가
농가 구장의 마지막 작품이다. 가을걷이 끝난 후 햇곡식으로 빚은 술을 마시고 서로 권작하며 노동의 보람을 만끽하는 모습을 그렸다.
■ 이해와 감상 1
존재 선생은 농촌에서 일생을 보내면서 농민과 같은 심정으로 농민의 생활을 우리말로 된 시조에 담았다. 이는 그가 추구한 실학적 학문에 대한 실천의 일부로 볼 수 있다.
농가는 전 9장으로 이뤄진 연시조로써 전형적인 농촌 생활을 일과의 진행시간 순서에 따라 노래한 작품으로, 현실 비판적이고 부패한 시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밝고 생동감 있는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다. 조출(朝出), 운초(耘草), 석귀(夕歸), 초추(初秋) 등 각 장의 내용을 포괄한 제목이 붙어있으며 제1수 조출(朝出)에서 제6수 석귀(夕歸)까지는 여름 농번기의 하루 일과를 읊은 것이고, 이어지는 나머지 3수 초추(初秋), 상신(嘗신), 음사(飮社)는 곡식이 익어 가는 초가을에서 추수가 끝난 후의 늦가을까지 절서감(節序感)을 읊고 있다.
농가구장은 사강회 문서첩(社講會 文書帖) 속에 들어있다. 이것은 1767년부터 1778년 사이에 이뤄진 작은 문서들 22개의 집성인데 13번째 문서인 농규(農規) 다음에 실려있으며 농가구장은 농규를 보완하는 성격을 지닌 노래라 할 수 있다.
존재 선생은 한시가 아닌 시조로 민요시를 이룩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특히 지방 사투리를 그대로 살려냈다는 것이 이 글의 특징이다. 농가구장은 기존의 시조 제작관습과 전통, 즉 표준어를 쓰는 것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진 전통과 관습에서 벗어나 지방민의 정서에 맞는 문예미학을 이뤄내고 있다. 존재의 문학은 시조와 가사와 한시에 두루 걸쳐 있으면서 이런 생활현실의 인식을 가장 뚜렷하게 형상화하고 있는 독특한 경우의 하나며 특히 농가구장은 18세기 문학 조류의 흐름 속에서 중요한 변모 중 하나인 민요의 변모에도 공헌한 바가 크다. 농업노동요는 민요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모내기노래 즉 모 노래는 시조의 처음 두 줄과 같은 형식으로 한 편식 완결되면서 일하는 동안 느끼는 심정을 대구나 문답을 이루게끔 다듬어 표출하는 밀도 짙은 서정시다. 이런 모내기 노래는 시조나 가사에 수용되는 일이 많았는데 농가구장이 그 대표적 위상을 지니고 있다.
이 글들은 민요의 실상과 변모를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자료로서 의의를 지니고 있으며 연시조의 소멸 원인과 그 과정을 보여주는 국문학사에 있어 의의가 있다.
■ 이해와 감상 2
농촌을 자연에 묻혀 풍류를 즐기는 공간으로 보거나 농민의 삶을 관념적으로 예찬한 사대부 계급의 일반적인 시조 작품들과 달리, 농촌을 농민들의 구체적인 삶의 현장으로 보고 농민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 낸 작품이다. 즉, 이 작품의 화자는 농민인데, 이런 설정은 사대부의 관점에서 농민을 대상으로 바라보고 쓴 다른 작품과 달리, 농민의 입장에서 글들의 삶을 그리려 한 작가의 의도를 반영한 것이다. 제 4장에는 따가운 햇볕 아래에서 땀 흘려 일하는 농민의 고된 노동과,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며 잠시 여유를 즐기는 휴식이 잘 표현되어 있다.
아울러 종장에서는, 농민의 삶과 유리(遊離)되어 있으면서도 마치 그들을 일해하는 듯 행동하는 사대부들의 태도에 대한 은근한 비판도 엿보인다. 제6장에는 하루의 고된 노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농민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시냇가에서 손발을 씻고 돌아가는 모습에서, 자연을 완상(玩賞)과 예찬의 대상으로만 바라봤던 사대부들의 강호가도(江湖歌道)와 다른 점을 느낄 수 있으며, 소 잔등을 타고 가는 사람의 풀피리 소리는 농민의 삶에 깃든 소박한 풍취를 느끼게 한다.
◆사대부들의 태도에 대한비판_ *어디서 길 가는 손님네 아는 드시 머무는고.
길을 지나가던 사람이 화자의 기분을 알기라도 하는 듯 잠시 서서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다. 땀 흘려 일하는 농부의 기분을 이해할 리 없는 양반이 마치 화자 자신의 기분을 알기라도 하는 듯이 바라보는 데 대한 은근한 빈정거림이 나타나 있다.어디서 牛背草笛(우배 초적)이 함께 가자 재촉하는고 화자인 농부가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딘가에서 소의 등에 올라타고 돌아가는 이의 풀피리 소리가 들린다는 이 구절은, 농부의 삶에 깃든 소박한 풍취를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