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녀함양박씨전 (박지원) 민근홍 언어마을
■ 핵심정리 1. 갈래 : 고전 소설, 한문 소설, 단편 소설 2. 연대 : 18세기 말 3. 주제 : 개가 금지의 반대
■ 이해와 감상1
조선 후기 1793년경에 박지원이 지은 한문 단편 소설. 작자가 안의현감에 재직하던 때 쓴 것으로 풍자성을 지닌 열전체(列傳體)의 변체(變體)이다. 통인 박상효의 조카딸인 박씨는 대대로 현리(縣吏)를 지낸 하찮은 집안의 딸로 태어나 일찍 부모를 여의고 어릴 때부터 조부모의 슬하에서 자랐는데, 효도가 극진하였다. 19세에 함양의 아전 임술증에게 시집가나, 술증이 본디 병이 있어 성례한 지 반년이 못 되어 죽었다. 박씨는 예를 다하여 초상을 치른 뒤 며느리의 도를 다하여 시부모를 섬기다가 남편의 대상(大祥)날에 약을 먹고 죽었다. 박씨는 정혼한 뒤 술증의 병이 깊음을 알았으나 성혼을 하였으며, 초례를 치렀을 뿐 끝내 빈 옷만 지킨 셈이었다. 작가는 박씨가 젊은 과부로서 오래 이 세상에 머문다면 친척들의 연민을 받고 또 이웃사람들의 망령된 생각도 면하지 못할 것이라 하여 상기(喪期)가 끝날 때를 기다려 지아비가 죽은 그날 그 시각에 죽음으로써 그 처음의 뜻을 이룬 점을 기리고 있다.
그러나 작자가 이 글을 쓴 동기는 박씨의 열(烈)을 이 세상에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미 함양군수 윤광석 등 3명이 <박씨전>을 썼기 때문이다. 작가는 박씨와 같은 행위를 두고 열을 지키기에 얼마나 피눈물나는 극기(克己)가 필요한가를 그 반대의 경우를 들어 그 지나침을 풍자한 것이다. 개가한 이의 자손을 정직(正職)에 서용하지 말라고 한 국전(國典)은 서민을 위하여 마련한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귀천을 막론하고 과부로 절개를 지킴은 물론, 나아가 농가. 위항(委巷)의 여인들까지 더러더러 물불에 몸을 던지고 독약을 먹고 목을 매는 일이 얼어나고 있는 현실을 비판한 것이다. 그리하여 일찍 과부가 된 한 여인이 깊은 고독과 슬픔을 달래기 위하여 동전(銅錢)을 굴리면서 아들 형제를 입신시킨 이야기를 삽화로 넣어 수절의 어려움을 밝히고, 이와 같은 어려움을 넘긴 이야말로 진정한 열녀라 이를 수 있다고 한 것이다. 박씨의 순절을 완곡히 비판하면서 그러한 만연하는 사회풍조, 나아가 과부의 개가를 금지시킨 사회제도에까지 비판이 확대되고 있는 이 작품은 삽화를 넣으면서 설명과 문답으로 간결하고 실감 있게 표현한 작가 만년의 글이다.
■ 이해와 감상2
‘열녀 함양 박씨전(烈女咸陽朴氏傳)’은 연암의 작품 중 가장 말기작이다. 연암이 이 작품을 쓴 시기는 본문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의 나이 57세 때인 1793년이다.
연암은 국전(國典)에 의하여 너무 많은 수절과부가 있음을 논평하며 한 노모(老母)와 두 아들의 문답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처리한 후 본 내용으로 들어갔다. 그 내용은 매우 단순하다. 주인공인 함양 박씨는 연암이 안의 현감(安義縣監)으로 부임할 당시 아전의 조카딸로 이미 죽을 병에 걸린 사람에게 출가한 후, 남편의 삼년상이 끝나는 날 독약을 마시고 자살하였고, 몇몇 명사들이 그 일에 관한 기록을 하였다는 것이 이 소설의 전부이다.
이 작품을 통해 나타나는 연암의 사상 또한 매우 명확하다. 정절을 지킨 함양 박씨의 행실은 칭송받아 마땅하고, 연암 또한 그 수절을 칭송함에 아낌이 없었다. 하지만 다시 서두에 제시한 논평을 음미한다면, 그런 터무니없는 정절을 강요하는 봉건적 제도․관습에 대한 탄식이 강하게 배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작품 중 여인의 감정이나 정욕에 관한 대목은 ‘광문자전’과 서로 통하는 면이 많다. 두 작품을 병행하여 읽어 본다면 더욱 흥미로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