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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ny Boy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애잔한 아일랜드의 음악일 것이다. 'DannyBoy'로 잘 알려진 이들의 음악은 레오나드 드카프리오가 주연한 영화 타이타닉의 배경음악으로도 잔잔히 깔려나와 우리 귀에 제법 친숙하게 들린다. 사실 미국의 컨츄리나 불루그래스 음악의 뿌리라고도 볼 수가 있다. 원래 아일랜드에서 살던 켈트족은 구전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모든 종교적 전설이나 역사적 사실들이 노래나 이야기로 후세에 전해지곤 했다. 비록 영국의 통치하에서는 그들 고유의 언어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 금지 되기도 했지만 그들 고유의 음악은 그 명맥을 이어와 이제는 많은 파퓰러 뮤직의 뿌리가 되고 있다. 피들(fiddle)이라고 불리는 바이올린, 율린 파이프(uilleann pipe:스코틀랜드의 백파이프와 비슷하다), 작은 풀륫인 틴 휘슬(Tin Whistle) 그리고 손에 들고 치는 작은북인 보드랜(bodhran) 등으로 구성된 이들의 음악은 발라드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에게도 친숙하게 알려져 있다.
아일랜드에서 생겨난 말들을 보면 술에 관한 얘기들이 많다. 우리나라 사람만큼이나 술을 좋아 하는 그들이고 보면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 중 몇 개는 우리의 정서에 딱 들어 맞는 것도 있고 많이 듣던 것도 있어 몇 개를 추려 보았다.
이자리에 없는 친구들을 위하여 한잔 그리고 이 자리에 없는 적들을 위하여 다시 한잔!
Here's to absent friends and here's twice to absent enemies.
갈증은 뻔뻔스러운 질병이다. 자 부끄러운 치료를 위하여
Thirst is shameless disease so here's to shameful cure.
술 취한 밤과 술 깬 아침을 위하여
Here's to a wet night and a dry morning.
항상 깨끗한 옷을 입게 해주시고 마음 편하게 하여주시고 주머니엔 항상 돈(5 펜스)이 있게 해주소서.
May always have a clean shirt, a clean conscience, and bob in the pocket.
친구들이 당신의 죽음을 알기 전에 천국의 문턱을 넘기를 바라며.
May you be cross Heaven's threshold before the old boy knows you are dead.
사람이 술을 마시고 술이 술을 마시고 술이 사람을 마신다.
A man takes drink: the drink takes drink: the drink takes the man.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
You can lead the horse to the well, but you can't make him drink.
가는 목은 단 한모금에 술병이 비는 것을 막는다.
A narrow neck keeps the bottle from being emptied in one swig.
분노는 지는 해와 같이 묻어버리고 다시는 떠오르지 않게 하라.
Let your anger set the sun and not rise again with it.
자기 아내를 잘 조종할 줄 아는 아이리쉬 사람을 뭐라고 부르나?-- 독신자
What do you call an Irishman who knows how to control his wife?-- A Bachelor.
아이리쉬 남편의 정의: 그는 지난 20년간 단 한번도 아내에게 키스하지 않았지만 그 누구라도 아내와 키스하는 사람은 죽여버릴 것이다.
Definition of Irish husband: He hasn't kissed his wife for twenty years, but he will kill any man who does.
The Luck of the Irish
네잎 클로버를 찾고 초록색 옷을 입고 블레니어 스톤에 키스하는 것 그리고 레프러콘을 찾는것.
Finding a four-leaf clover The wearing of the green Kissing the Blarney stone Finding a Leprechaun (if you can)
아일랜드 國花 및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St. Patrick's Day)
태양을 숭배하던 고대 영국의 드루이드(Druid)교도들은 네 잎 클로버를 신성하게 여겼다. 기원전 3세기경의 기록에 따르면, 이들은 영혼불멸을 교리로 삼았으며, 사람이 죽으면 다른 사람에게로 영혼이 옮아간다고 믿었다. 이들은 숲 속에서 의식을 치렀는데, 경배 장소인 참나무 숲에서 네 잎 클로버를 발견하면 주문을 외워 마귀의 사악함을 물리치곤 했다.
아일랜드의 드루이드 교도들은 크리스크교가 들어온 뒤에는 사제 역할을 빼앗기고 시인이나 역사가로 활동이 국한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클로버에 대한 남다른 믿음은 조금 변형된 채 크리스트교에 그대로 전해졌고, 클로버가 아일랜드의 國花가 되기에 이르렀다. 또한 클로버는 5월 29일, 6월 17일, 8월 31일 탄생화이기도 합니다.워낙 친숙한 식물이라서 그런지 세 날의 탄생화 자리를 독차지 하고 있으며, 꽃말은 순서대로 쾌활, 감화, 약속입니다.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는 성 패트릭(기원 후 289-461)이 사망한 3월 17일을 기리는 날로 아일랜드 최대의 축제일이다. 세인트 패트릭은 아일랜드에 복음을 전파한 성인으로 세계의 카톨릭인에게 추앙받는 인물이며 또한 초록색과 네 잎 클로버는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의 상징이다.
이 날 미국에서는 초록색을 입고 파티를 연다. 처음에는 1737년에 Massachusetts주의 Boston에서 시작하였다.초록색은 봄, 아일랜드, 클로버와 연계되며 이 날 네 잎 클로버를 찾고, 초록색을 입으며, The Blarney Stone에 키스를 하면 행운이 온다고 믿는다. The Blarney Stone은 아일랜드의 Blarney마을에 있는 Blarney성의 벽에 박혀 있는 돌이며, 이 돌에 키스를 하는 사람은 설득력 있는 화술을 갖게 된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아일랜드계 주민이 많은 동부에서 성대한 행사가 있다. 뉴욕시에서는 초록의상을 입은 참가자의 퍼레이드가 성 패트릭 사원을 지나 5번가를 행진한다. 복음을 전파한 성 패트릭을 기념하면서 고마웠던 분들에게는 지난 여름에 채취하여 정성껏 말린 네 잎 클로버 잎을 책과 함께 선물한다. 연인에게도 '행운'을 뜻하는 네 잎 클로버를 책과 함께 선물하며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에서는 클로버와 유사한 샴록을 단다고 한다.
Danny Boy / Londonderry Air의 기원(起源)
- 마이클 로빈슨(Michael Robinson)- 번역 / 곽근수 - [출처] Danny Boy모음(악보포함)|작성자 오뚜기
해마다 3월 17일, 아일랜드의 수호성인 성 페트릭을 기념하는 성 페트릭의 날(St. Patrick's Day)이 가까워지면 미국 곳곳에서는 Oh Danny Boy가 수없이 불려진다. 미국에 살고있는 아일랜드계의 나이 많은 사람들은 이 노래가 아일랜드 민요라는 사실에 누구도 반론이 없다. 그러나 새롭게 미국에 이민 오는 아일랜드 사람들은 자기 나라에서 이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 노래는 어디서 온 노래인가? 정말로 아일랜드 민요인 게 틀림없는가?
바로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 민요의 권위자인 존 물던(John Moulden)과 필립 발렛(Philippe Varlet)이 인터넷에 토론을 위한 홈페이지를 열고 의견을 모으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얻은 자료들 가운데는 이 노래가 200여년 전에 에드워드 번팅(Edward Bunting)이 작곡한 아일랜드의 전승 하프 음악에서 발견됐다는 주장도 들어있다.
Danny Boy는 같은 멜로디로 만들어진 100여곡의 노래들 가운데 하나이다. 작곡가는 엔터테이너이자 작곡가이고 변호사인 아일랜드의 웨덜리(Frederic Edward Weatherly, 1848-1929)이다. 1910년, Danny Boy의 가사와 곡을 썼던 것이다. 그런데 1912년에 미국에 사는 그의 며느리가 Londonderry Air라는 표제가 붙어있는 악보를 보냈다. Londonderry Air라는 노래를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던 웨덜리는 그 노래가 기가 막히게도 자기가 쓴 Danny Boy와 꼭 같은 노래라는 사실을 발견했고, 1913년에 개정된 악보를 출판했다. 물론 웨덜리는 단 한번도 아일랜드를 벗어나 본 일이 없었다.
데니 보이의 다른 이름인 Londonderry Air는 아마도 정치적 의미를 고려한 것으로 보아진다. Londonderry Air라는 단어는 17세기초에 잉글랜드(England)에 의해서 점령당한 아픈 역사가 있는 북부 아일랜드와 브리튼(Britain) 지역의 단합을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던 용어이기 때문이다. 특히 아일랜드 애국주의자들은 Derry라는 용어 쓰기를 좋아했다. 그 말은 아일랜드 북부 도시와 그 일대 지역을 뜻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Air, 즉 '하늘'이라는 말도 그 지역에서 즐겨 사용되는 용어였다.
Londonderry Air가 처음으로 출판된 것은 1855년으로 아일랜드 고(古)민요 수집가 조지 페트리(George Petrie, 1789-1866)가 그 일을 했다. 페트리는 런던데리 지역인 리마바디(Limavady)에 살면서 많은 상당히 많은 북아일랜드의 옛민요를 수집해서 지니고 있었던 제인 로스 양(Miss Jane Ross, 1810 - 1879)에게서 곡명이 없는 이 노래의 악보를 전달받고 그 곡에 Londonderry Air라는 표제를 붙여서 출판했던 것이다. 이것이 이 노래 제목의 효시인 것이다. 제인 로스는 별다른 설명 없이 단지 "아주 오래된" 노래라고만 이야기했다고 한다.
민요 수집가인 샘 헨리(Sam Henry)의 주장에 다르면, 제인 로스가 수집한 이 노래는 실제로 리마바디에서 활약하던 현악기 연주가 지미 맥커리(Blind Jimmy McCurry)에게서 취득한 것이라고 한다. 지미는 이 노래가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것이었다고 제인에게 말했다는 것이다.
이 노래가 점점 사람들 사이에 번져 나가서 널리 불려지게되자 제인 로스의 주장에 대해서 의문을 갖고 보다 구체적인 리서치를 하려는 시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우선, 이 노래는 다른 아일랜드의 민요들과는 구조적으로 상이한 부분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또한 노래와 가사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주장도 등장했다. 예를 들면, 가사에 등장하는 피리 부는 사람(the piper)의 이름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이 노래를 제인이 작곡한 작품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만일 그랬다면 제인은 엄청난 저작료를 포기한 셈인데--).
제롬 콜번(Jerome Colburn)의 주장에 따르면 19세기말에 시카고에서 아일랜드-아메리카 커뮤니티를 조직했던 프란시스 오닐(Francis O'Neill)의 컬렉션에서 이 노래와 꼭 같은 Londonderry Love Song이라는 노래가 발견됐다고 한다. 그렇다면 제인 로스가 제공한 Londonderry Air, 웨덜리의 Danny Boy, 오닐이 지녔던 Londonderry Love Song 사이의 관계를 짚어보는 일이 남았다. 2박자 계통의 리듬, 첫 부분의 중간 종지부 형식, 둘째 부분의 높은 음정 등등 모두가 같거나 유사하니 이 일이 예사로운 게 아니다.
1934년, 앤 지드즈 질크리스트(Anne Geddes Gilchrist)는 'Londonderry Air를 새롭게 조명한다'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어떤 사람이 연주회장에서 그 노래를 채보했는데 그 과정에서 일부 잘못 채보된 부분이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아일랜드의 민요를 가져와서 아주 비슷하게 재구성한 노래라고 주장했다.
1979년, "1766-1803년의 옛노래를 위한 새로운 자료들'이라는 논문이 더블린 트리니티 칼레지 출판부가 발표한 저널에 실렸다. 저자인 휴 실즈(Hugh Shields)는 이 논문에서 에드워드 번팅(Edward Bunting)이 1796년에 출판한 "젊은이의 꿈"이라는 표지의 아일랜드 옛음악 총람에 이 노래가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 노래는 질크리스트의 악보와 가장 가깝다고 밝혔다.
번팅(1773-1843)은 벨파스트 하프 페스티발에서 사보를 담당한 경력이 있는 하프 음악 수집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아일랜드식 하프를 연주하는 유명한 연주자 데니스 햄슨(Denis Hempson, 1697-1807)으로부터 아일랜드 전승 하프음악의 악보를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햄슨이 활동했던 지역이 제인이 살았던 리마바디 지역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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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ny Boy에 얽힌19세기 중반 아일랜드 역사의 상징과 恨
이 민요는 음악의 장르와 관계없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불린 노래중의 하나이다.
아! 목동아란 제목으로 우리나라 중등 음악교과서에 세계의 민요중의 하나로 실린 이 노래는 서정적인 노래로 선율자체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가사의 의미 또한 공감대를 지니는 측면이 많기 때문에 세계적인 가수나 연주가가 부르거나 연주한, 그래서 가장 많은 변주를 지닌 노래 중 의 하나가 되었다.
이 노래만 골라 묶은 음반도 여러 종류가 나왔다.
1996년 영국의 그라나다 방송사인 ITV에서 제작한 "in sunshine or in shadow"란 부제의 다큐멘터리 영화에서는 이에 얽힌 이야기를 가수, 감상자, 학자, 정치가 등의 입장에서 다양하게 보여 주었다
1950년대 이후 노래된 수 많은 대중가수들의 음반을 통해 들을 수 있는데,해리 벨라폰테, 엔디 월리엄즈, 나나 무스꾸리, 톰 죤스, 짐 리브스 등의 이지리스닝 스타일부터 재즈 음악인들의 즉흥 연주(특히 쟈키 월슨의 소울적인 즉흥성은 현대의 기타 거장인 에릭 클랩튼과 반 모리슨이 가장 백미로 뽑는 판이다)이다.
이들 아일랜드 가수와 음악인들의 노래는 듣는 이들에게 가슴 조이는 필링을 가지고 감동을 준다.
1960년대 롤링 스톤과 함께 십대의 우상이 되었던 귀족 출신의 청순미를 지닌 마리안느 훼이스 풀은 허스키하고 달콤한 목소리로 담배연기의 나이트 클럽을 연상시키는 분위기를 창출하면서 '사랑'을 해석으로 이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러나 이 노래가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장례식 때 그가 부른 이 노래가 방송되었을 때였다. 최근에는 다이아나 공주의 장례식 때 웨스트민스트 사원에서 성가대에 의해 불리어지기도 했다.
"다니보이'란 ITV 프로에서 주요 나레이터가 된 에릭 클랩튼에 의하면 이 노래는 어떤 곳에서 누구를 막론하고 불릴 수 있는 노래라고 언급했다. 그는 이 노래를 불러 달라는 몇 차례 요청받았을 때 부르기를 거절했는데 이 노래를 신성한 것으로 남기고 싶어서였다고 밝혔다. 그 대신 이 노래를 자연스럽고 가장 순수한 형태로 표현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기타로 연주하는 것으로 이 곡에 대한 그의 변주와 즉흥의 솜씨를 감동있게 보여준다. 이 곡목은 후에 그의 음반에 실려 출판되었다.
아일랜드에서 이 노래는 독주나 펍 세션에서는 연주되거나 불리지 않는다.
그 이유는 너무나 잘 알려진 노래이고 그래서 변주되기도 어려워 전문 음악인에게는 테스트가 될 수 있는 곡목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노래의 가사가 지닌 특정한 역사성으로 지금은 과거의 노스텔지어와 슬픔을 떠올리는 이야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3년 유명한 밴드인 데 다난의 후랑키 가빈이 셴노스 창법을 배운 젊은 가수인 토미 플린을 내세워 이 노래를 다시 리바이벌했다. 피들 거장인 자신은 틴휘슬로 즉흥반주를 하면서 이 노래를 하나의 정식 연주 레퍼토리로 만들어 히트를 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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