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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기상 시각을 알려주는 스마트폰의 알람으로 하루를 시작해 잠자리에 들기 직전 밀린 메신저 앱과 페이스북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스마트폰을 다시 충전기에 연결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세상이다. 24시간 내내 스마트폰에 의지해 네트워크와 접속된 삶을 사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일상이다.
현대인의 삶은 기본적으로 기술 문명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그중에도 스마트폰만큼 우리가 직접적으로 개입해서 오랜 시간을 사용하는 기술은 없다.
매사추세츠공대(MIT)의 <테크놀로지 리뷰>가 실시한 2012년 조사에 따르면 스마트폰은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보급된 기기로 확산 속도가 일반 전화의 열 배에 이른다. 전체 소비자 가운데 10퍼센트 이상이 사용하기까지 전화기는 발명 후 25년, 전기는 30년이 걸린 반면 인터넷과 컴퓨터는 9년, 스마트폰은 8년이 걸렸다. 보급률 40퍼센트에 이르는 데도 일반 전화가 39년, 전기가 15년 걸린 반면 TV와 스마트폰은 고작 2.5년이 소요됐다.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이슈 메이커인 아이폰 시리즈는 2007년에 처음 발표된 후 2011년 2월 1억대 판매를 돌파했으며 2014년 3월에는 누적 판매량이 5억대를 돌파했다. <출처: Blake Patterson>
그중에서도 한국은 유난히 보급 속도가 빠르다. 1984년 3월 한국이동통신이 국내에서 첫 휴대전화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일찌감치 휴대전화 가입률 100퍼센트를 돌파하더니, 이제는 전체 인구수보다 많은 휴대전화가 개통돼 있다. 2014년 3월 국내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세계 1위(67.5퍼센트)를 기록했고, 최첨단 스마트폰인 엘티이(LTE) 가입자도 3000만 명을 넘어 LTE 보급률도 세계 1위다.
한국은 글로벌 IT제품의 시험장(테스트베드)으로 불리는 얼리 어답터 국가다. 정보기술 분야에서 강력한 성능과 다양한 기능을 보유한 최신 제품을 그 어느 나라보다 선호하는 것이 우리나라다. 그렇게 기술과 제품을 빠른 속도로 받아들이면서도 그 기술과 제품이 사용자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충분히 고민하지 않는 것이 우리 문화다. 사실 기술이 삶과 사회관계에 끼칠 영향에 대해 거의 고민하지 않기 때문에 그 기술을 빨리 받아들이는 성향이 생겨난 것인지도 모른다.
기술이 개발되고 나면 실제 사용자들에 의해 어떻게 사용될지를 예측하기는 매우 어렵다. 월드와이드웹을 만든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 경이 2013년 2월 방한했을 때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웹을 개발할 1989년 당시 오늘날과 같은 인터넷 세상을 예상했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그는 “사실 연구자들끼리 정보 교환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웹을 고안할 당시에 나는 어떤 연구 목적이나 상업적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보편성을 추구하며 설계했지만 이토록 성공적일지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고 답변했다. 그의 말대로 당시에는 아무도 인터넷 세상을 꿈도 꾸지 못했다. 미국의 거대 통신기업인 AT&T조차도 1971년 미국 정부가 인터넷의 초기 형태인 아르파넷(ARPA Net)을 인수하라고 제의하자 사업성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거부했을 정도다. 애초 정부의 군사적 목적을 위해 대학의 연구 기관들과 과학자들을 연결한 전문가들의 연결망이 지금처럼 상업적, 사교적 기능을 수행하리라고 기대한 사람은 드물었다.
기술은 초기 단계에서 향후 개인과 사회에 끼칠 영향력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특히 새로 등장한 기술이 지닌 탁월한 기능을 소개할 때는 주로 긍정적인 면이 강조된다. 문명을 바꿀 만큼 파급력이 큰 혁신적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낙관적 기대는 부풀려졌다.
1917년 오빌 라이트(Orville Wright)는 “비행기는 전쟁을 불가능하게 하는 경향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해 [해저 2만 리]의 작가 쥘 베른(Jules Verne)은 “잠수함은 함대를 무용지물로 만들어 전쟁을 전면 중단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훗날 대량 살상물을 제공했다며 참회한 알프레드 노벨(Alfred Nobel)은 일찍이 “나의 다이너마이트는 곧 1000가지의 세계 조약보다 더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했다. 기관총을 발명한 하이럼 맥심(Hiram Maxim)은 1893년 기관총이 전쟁을 더 끔찍하게 만들 것이란 비판에 대해 “전쟁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도구”가 될 것이라고 응답했다.
기술사학자 데이비드 나이(David Nye)에 따르면 이처럼 전쟁을 영구히 없앨 평화의 도구로 기대를 모은 발명에는 어뢰, 독가스, 열기구, 지뢰, 미사일, 레이저 총 등이 포함된다. 핵 폭탄과 미사일 방어 시스템의 경우 아직까지도 ‘전쟁 억지 수단’으로 그 효용성을 주장하는 국가들이 있다.
무선전신이 발명됐을 때, 또 전화가 개발됐을 때, 그리고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도 새로운 소통과 통신의 도구가 전쟁을 추방하고 지구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전쟁이 소통의 단절로 인한 오해와 상호 이해의 부족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아 원활한 소통 수단의 보급과 활용이 결국 평화를 가져올 것이란 기대였다. [디지털이다]의 저자이자 매사추세츠공대에 미디어랩을 설립해 초대 소장을 지낸 니콜라스 네그로폰테(Nickolas Negroponte)는 1997년 “인터넷은 국경을 없애고 세계 평화의 안내자가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국내에서도 인터넷은 자발적인 정치인 후원 조직을 형성하는 등 정치적 토론과 소통을 활성화시키며 직접민주주의의 도구라는 기대를 받았으나 이후 국가기관들이 조직적으로 여론 형성에 개입하면서 여론 조작의 온상으로 전락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는 기술의 정치성에 관한 해묵은 논쟁으로 연결된다. 기술 자체에 특정한 속성이 들어 있느냐, 아니면 특정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의 의도 때문이냐의 문제다. 미국에서 계속되는 총기 소유 합법화를 둘러싼 논쟁이 대표적이다. 미국에서는 날마다 90여 명, 1년이면 약 3만 명이 총기 관련 사건 사고로 숨진다. 무차별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총기 소유 규제론이 고개를 들지만 이내 총기 소유를 합법화한 미국 수정헌법 제2조와 “총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는 주장에 밀려난다.
기술이 사용자의 의도에 따라 작동하는 도구냐, 아니면 그 이상이냐를 이야기할 때 고려할 점은 우리가 얼마나 기술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느냐다. 인터넷의 개발 목적처럼 기술의 애초 의도가 이후의 실제 쓰임새와 크게 달라지는 경우가 많지만 그와 별개로 해당 기술에 수반되는 다양한 부수적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다.
1950년대 독일에서 개발돼 1957년 8월부터 약 5년간 판매된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란 약이 있었다. 임신 중의 입덧을 치료하는 수면제로 개발돼 독일과 영국을 비롯해 50여 개국에서 판매됐다. 이 약은 판매 전 동물실험 결과 부작용이 거의 드러나지 않아 의사의 처방 없이도 살 수 있는 ‘부작용 없는 약’으로 선전되었다. 하지만 유럽에서 기형아 출생이 잇따르면서 임신 42일 안에 이 약을 복용하면 팔다리가 매우 짧고 손발가락이 모두 없거나 아예 팔다리가 없는 기형아를 출산할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이 뒤늦게 밝혀졌다. 동물실험에 동원된 개, 고양이, 쥐, 햄스터, 닭 등에게서는 어떠한 독성도 나타나지 않았다. 토끼 중에도 특별한 품종에서만 사람과 비슷한 부작용이 생긴다는 사실은 1만 명 이상의 기형아가 태어난 이후 정밀 조사에서 비로소 드러났다.
1960년대까지 미국과 유럽의 구두 가게에는 페도스코프(pedoscope)라는 기기가 있었다. 발을 들여다본다는 의미를 지닌 페도스코프는 미국에만 1만 개 넘게 설치됐다. 아이에게 신발을 신겨본 다음 엑스선을 쏘아서 신발이 발에 맞는지 신발 속을 확인하는 장비였다. 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원자폭탄이 터졌을 때도 당장은 방사능 피폭의 진실을 몰랐다. 그래서 페도스코프는 원폭 이후로도 20년 넘게 쓰이다가 원자탄의 방사능 피폭 후유증이 오랜 세월이 지나고도 계속되는 현실이 목격되면서 엑스선 노출의 위험에 대한 자각이 생겨나 비로소 구두 가게에서 퇴출됐다.
마리 퀴리(Marie Curie)가 발견한 방사능 물질 라듐은 미용은 물론 정신 장애에까지 효능이 있는 기적의 물질로 통했다. 사람에게 에너지를 주는 신비의 물질로 여겨졌으나 퀴리는 방사능 노출로 인한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초창기에 엑스선 촬영 장치는 유럽 상류층 파티에서 인기를 끈 소도구로 활용됐다. 파트너의 뼈를 촬영해주는 용도였다.
디디티(DDT)는 생태계와 인간에게 무해한 ‘기적의 살충제’로 여겨지며 널리 쓰였고, 그 공로로 개발자인 스위스 화학자 파울 헤르만 뮐러(Paul Hermann Muller)는 194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그러다 1962년 레이철 카슨(Rachel Carson)이 [침묵의 봄]을 펴내 DDT의 문제점을 고발한 이후 비로소 환경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본격적 연구와 재검토가 시작되고 사용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1972년 미국 정부는 DDT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윌리엄 블레이크, <뉴턴>(1795) 블레이크는 “신이여, 제발 우리를 깨어 있게 해주옵소서. 외눈박이 시각과 뉴턴의 잠으로부터…”라고 과학만능주의를 비판했다.
어떤 기술은 장기적 영향이 드러나거나 사용자에게 제대로 이해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파급돼 광범하게 쓰이고 있는 스마트폰과 인터넷 기술은 잠재적 영향력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 특히 정보기술은 기본적으로 소프트웨어로 작동하는 속성상 사용자가 알지 못한 채 지속적으로 기능 개선이 이뤄진다. 또한 기술 혁신 경쟁이 글로벌 차원에서 쉴 새 없이 진행되어 어느 부문보다 혁신의 속도도 빠르고 전면적이다.
또한 기술은 점점 복잡해져가고 있고 우리 생활은 더욱 복잡한 기술에 의존하게 된다. 기술은 발전할수록 사용자들에게 그 작동 방법을 숨기면서 더 단순한 사용법을 제공한다. 스마트 시대의 기술은 더욱 숨어버린다. 제록스의 팔로알토 리서치센터(PARC) 마크 와이저(Mark Weiser) 박사는 1988년에 이미 세 편의 논문을 통해 ‘유비쿼터스컴퓨팅(ubiquitous computing)’, ‘보이지 않는 컴퓨팅(invisible computing)’, ‘사라지는 컴퓨팅(disappear computing)’이라는 미래 유비쿼터스 컴퓨팅의 기본 개념을 제안했다. 와이저는 “가장 심오한 기술은 사라져버리는 기술이다. 뛰어난 기술은 일상생활 속으로 녹아들어가 식별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20세기 초 영국의 분석철학자 앨프리드 화이트헤드(Alfred Whitehead)가 쓴 [수학이란 무엇인가? An Introduction to Mathematics]에도 “문명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고도 수행할 수 있는 중요한 일들의 가짓수를 늘리면서 진보한다”라는 통찰이 적혀 있다.
스마트폰은 IBM이 1994년 시판한 ‘사이먼(Simon)’이 효시로 여겨진다. 이후 마이크로소프트사가 포켓PC와 PDA로 발전시켜 대중적 상품으로 판매해왔지만 실제로는 애플이 2007년 터치식의 직관적 사용자 환경을 채택한 아이폰을 발매하면서 오늘날의 스마트폰 시대가 사실상 개막됐다. 사용법이 손쉬워지면서 비로소 대중화된 것이다. 승용차의 대중화도 비슷하다. 자동차도 주요 부품들이 전자화되고 다기능을 수행하면서 운전자가 과거처럼 보닛을 열어 일상적 점검을 하는 것이 쓸모없게 됐다. 그렇게 차량용 컴퓨터에 의존하게 되면서 운전자의 문턱은 낮아졌다.
우리는 복잡한 기술에 더 의존하게 되었지만 특정 부문에 대한 개입은 어려워졌다. 우리가 기능을 잘 모르고 각 부분이 전체 시스템과 연동되어 작동하기 때문에 부분적 변경도 힘들다. 사용자가 개입할 여지를 별로 남겨두지 않으면서 기술은 더 복잡하게 발달하는 이러한 측면에 대해 자크 엘륄(Jacques Ellul) 같은 사회학자는 “기술이 자율적이 됐다”고 말한다. 자율성을 띤 기술은 인간의 필요와 의도보다는 기술 자체의 욕망에 따라 진전한다. 더욱더 큰 규모의 파괴력을 지닌 대량 살상 무기를 개발하려는 경쟁이 한 사례다. 정보기술 전문지 <와이어드(Wired)>를 창간한 케빈 켈리는 [기술의 충격]에서 이처럼 자율적으로 진화해가는 기술 시스템을 ‘테크늄(technium)’이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1976년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문화의 진화를 이끄는 문화 유전자를 설명하기 위해 선보인 ‘밈(meme)’을 본떠 만든 조어다. 도킨스는 유전자(gene)처럼 문화도 확산을 지향하는 자기 복제 성향을 지녔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밈이라는 개념을 만들었고, 케빈 켈리 역시 기술도 유전자나 밈처럼 자율 확산의 성향을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테크늄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기술이 자율적이 됐다는 말은 사용자인 인간의 통제를 벗어났다는 의미다. 개발자의 통제를 벗어난 기술의 위험성은 1818년 메리 셸리(Mary Shelly)의 공상 과학 소설 [프랑켄슈타인]에 이미 그려져 있다. 의사 프랑켄슈타인이 만들어낸 괴물은 괴력을 갖게 되자 그 창조자의 뜻을 배반하며 이렇게 말한다. “넌 나를 만들었지만 네 주인은 나야. 어서 복종해!”라고.
기술의 중립성을 고민하는 기술철학에서는 기술의 편향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살인자는 총이 아니라 총을 쏜 사람이지만 사실 총 자체가 생명을 죽이는 쪽으로 편향된 기술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사용자들은 스마트폰과 인터넷 사용에 대해 그 기술적 특성, 즉 편향성을 이해해야 한다. 인터넷이 우리를 더 똑똑하게 만드는가, 아니면 어리석게 만드는가를 따지기에 앞서 인터넷은 그 기능과 구조상 어떠한 편향성을 갖고 있느냐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거리감을 없앤 연결의 도구, 늘 접속되어 있어야 더 많은 정보와 소통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된 것이 인터넷이다. 인터넷은 스마트폰으로 장소와 시간의 제한 없이 개인별 휴대와 이용이 가능한 쌍방향 상호작용의 기술이다. 삭제도 어렵다.
인터넷의 이러한 기술적 편향성에 대해 미국의 저명한 미디어 이론가 더글러스 러시코프는 이렇게 말한다. “디지털 기술은 객체가 아니라 목적을 띤 시스템이다. 그것은 목적을 품고 행동한다. 디지털 기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른다면 그것이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알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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