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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이재창목사/주일을 지킴으로 받는 복 (사 58:13-14)
창세기 2장 2~3절에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를 다 마치시고 마지막 날 쉬시며 그날을 거룩하게 하시고 복 주신 날로 택하셨습니다. 또 본문 14절에 보면 안식일을 거룩히 잘 지키면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국가나, 가정이나, 개인이나, 예수 믿고 주일을 잘 지키면 하나님이 참된 복을 주시지만, 주일을 무시하고 안 지키면 언제 패망을 당하고 재난을 당할지 모르는 것입니다. 주일 한 번 안 지킨다고 지옥 간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보호와 보장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구원 받기 위해서 주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구원 받았기 때문에 주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마가복음 2:27에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주기적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창조주와 창조 질서에 순응하는 것입니다. 이 계명을 지킬 때 성도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구약의 모세시대에는 안식일을 범하는 사람은 돌로 쳐 죽이기도 했습니다. 은혜 시대에는 그렇게 하지는 않지만 마귀가 칩니다. 주일을 지키지 않는 삶은 죽은 삶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주일을 범하는 것은 하나님의 보호에서 떠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일을 지킴으로 받는 복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즐거움을 얻습니다.
본문 14절에 보면 ‘네가 야훼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즐거움을 얻는다는 것은 행복해진다는 것입니다. 형통케 된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원래 안식일이라는 말은 원어로 샤바트 인데 그 뜻은 멈추다, 중단하다입니다. 그래서 주일성수는 나의 모든 것을 다 멈추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거룩한 행위입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멈추고 먼저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참된 즐거움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자꾸만 즐거움을 소비하라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볼 거리가 많다고 유혹합니다. 먹을거리가 풍요롭다고 유혹합니다. 더 멋있고, 더 재미나고, 더 유익이 된다고 유혹하지만 그 모든 것에 대해서 성경은 무어라 말하니까? 전도서 1:2에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참된 즐거움이 어디있느냐? 바로 주님을 만나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참된 즐거움인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샤바트, 멈추어야 비로소 즐거움을 얻게 되는 진리를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유명한 복음주의 작가 필립얀시(Philip Yancey)가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책을 썼는데 거기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더 이상 시나이 반도의 성막이나 예루살렘 성전에만 거하지 않습니다. 불기둥이나 구름 기둥 안에만 거하시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갈릴리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물리적인 몸을 통해서만 자신을 계시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바로 내가 다니는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은 지금도 세상에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역사하시고, 교회를 통해서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즐거움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편 65편 4절에,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주일 성수를 통해서 참된 만족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시험에 들면 제일 먼저 교회를 안 나옵니다. 참 희한합니다. 시험은 사람한테 들었는데 왜 교회 나오기가 싫을까요? ‘아무개가 보기 싫어서 안 나온다고.’ 그러면 예배 바꿔 나오면 되잖아요. 그 분이 2부나오면 3부 나오고, 3부 나오면 2부 나오면 되는데 희한하게 시험 들면 주일 성수를 아예 지키질 않습니다. 사람 때문에 교회 안 나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합니다.
비행기를 발명한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보여주기 위해 유럽에 갔을 때, 스페인에서는 왕이 주일날 비행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라이트 형제는 이를 정중히 거절 했습니다. 주일을 성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때 스페인 왕은 화를 내지 않고 도리어 그 형제를 존경하고 확신에 찬 믿음을 존귀하게 여기면서 그 형제가 원하는 날짜에 비행하게 했다고 합니다. 미국의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독립 전쟁 때에도 주일은 꼭 쉬게 했고,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도 남북 전쟁 때에 주일은 쉬게 했습니다.
참된 즐거움은 세상이 줄 수 없습니다. 참된 즐거움은 돈이나 명예로도 살 수가 없습니다. 진정한 즐거움은 오직 하나님을 만날 때 있습니다. 사업의 성공이나 자녀의 잘 됨도 하나님을 통해서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주일 성수는 모든 것을 멈추고 오직 하나님께 먼저 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땅의 높은 곳에 올라가게 됩니다.
본문 14절에 계속 말합니다.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주일 성수를 통해서 우리는 존귀하게 되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91:14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주일에 교회에 나와서 예수님께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고백하고 찬송하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선 높이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6에 보면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능하신 손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바로 이 교회에서 주님의 날, 주일 성수를 하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 능한신 손이 있다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미국의 유명한 여성신학자 마르바 던이 쓴 ‘고귀한 시간낭비-예배’라는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미국 서부 개척 시대에 마차 한 무리가 개척할 땅을 향해서 달렸습니다. 일행은 모두 독실한 크리스천이어서 주일날만큼은 이동을 멈추고 쉬었습니다. 그러나 겨울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어서 일부 사람들은 폭설이 내리기 전에 목적지에 독착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주일날도 계속 달리자고 제안했습니다.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한 그들은 두 팀으로 나눠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주일성수를 지키는 그룹과 주일날도 마차를 끌고 이동한 팀으로 나뉘게 된 것입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말할 것도 주일 성수를 지킨 팀이 훨씬 더 목적지에 빨리 도착했습니다. 마르바 던은 이야기의 결론을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주일 성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높여 주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우리를 높여주시기 위해 주일 성수의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날을 존중히 여기고 하나님 앞에서 주일 성수의 계명을 지키면 여러분들이 경영하는 사업과 가게가 주일날 문을 닫아도 하나님께서 그 사업장과 가게의 매출을 높여 주실 줄 믿습니다.
셋째로, 야곱의 기업을 얻게 됩니다.
본문 14절에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야훼의 입의 말씀이니라”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의 기업이 무엇입니까? 여기 기록된 기업이란 말은 원어로 나할라 인데, 그 뜻은 상속, 재산, 유산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야곱에게 주신 상속, 야곱에게 주신 재산을 동일하게 물려받는다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누구에게 물려준다는 것입니까?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자, 즉 주일 성수를 지키는 자에게 야곱에게 주신 축복을 상속으로 물려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이신 김명혁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분은 강변교회에서 목회를 하시다 지금은 은퇴하신 한국교회 어르신인데 이분이 11살 때 혼자 남한으로 피난을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혼자 피난을 오게된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을 바로 믿고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 그 나이에 혼자 피난을 간 것입니다. 당시 아버지도 독실한 크리스천인데 공산당에 의해 감옥에 갇혔을 때 이 얘기를 하니깐 너라도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혼자라도 떠나라고 말했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와 동생들을 뒤로 한 채 남한으로 피난을 오면서 가슴 속에 한 가지 품은 뜻은 주일 성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서울에 계신 이모님 댁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미국 유학까지 가게 됩니다. 그리고 유학을 마치고 난 뒤 한국에 다시 들어와서 사역을 하는데 1975년도에 주민등록 갱신을 주일에 하라는 통보를 받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정부 방침에 반대하면서 크리스천신문 11월 29일 호에 다음과 같은 글을 실었습니다.
“나는 주민등록 갱신을 일요일에 하도록 배정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겠지만 나에게는 그렇지가 않았다. 교회의 교육 목사요 신학대학의 강사이기 때문에 보다는 주일 성수에 대한 나 개인의 신앙 때문이라고 생각되어진다…… 벌금 낼 각오를 하고 주민등록 갱신을 일요일에 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결국 김목사님은 정부의 미움을 사게 되었고 1977년 11월 20일 아침 남산 중앙정보부의 지하실로 붙잡혀 가서 밤 늦게까지 심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늦은 밤까지 심문을 받았지만 단 한 번도 불안하거나 두려워한 일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심문하는 두 사람을 책망하기도 했고 충고하기도 하고 권면하기도 했습니다. 주일 성수를 침해하는 것은 너무너무 어리석은 일이라고 충고했습니다. 반공을 제대로 하려면 하나님을 바로 믿어야 한다고 충고하기도 했습니다. 잠시 쉬는 동안 내가 글을 쓰고 있으니까 무슨 글을 쓰냐고 물었습니다. 다음 주일 설교를 준비한다고 했더니 한 사람이 기가 막힌 듯이 “당신, 도대체 정신이 있는 거요?” 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여기 한 번 들어오면 언제 나갈지 모르는데 다음 주일 설교 준비를 한다니 말이 되는 것이냐는 것이었습니다.
김목사님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내가 나가고 안 나가는 것은 당신들의 소관이 아니니 걱정할 필요가 없고 당신들은 다음 주일 후암교회에 와서 내 설교를 들어야 합니다.”그리고 그날 밤 단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아침이 되었을 때 집으로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주일 성수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그리고 김목사님은 당당하게 데려올 때 좋은 차를 태워주었으면 갈 때도 차를 태워줘야 하지 않느냐고 말을 했습니다. 결국 한 사람이 나가서 지나가는 좋은 차 하나를 세우고 저에게 그 차를 타고 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분은 강변교회에서 주일 성수를 지키지 않는 직분자들은 두 달 동안 교회에서 성가대나 모든 활동을 금지시켰습니다. 한 번은 어떤 장로님은 자기 아들 면회하러 주일을 지키지 못했는데 그 장로도 마찬가지로 두 달 동안 아무 활동을 못하게 했습니다.
이분이 목회 은퇴를 하면서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허물과 잘못을 모두 아시면서도 저를 많이 축복하신 이유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 고향과 가족을 떠난 저의 주일 성수 신앙과 또 하나는 신앙의 절개를 지키다가 죽임을 당한 저의 아버지의 순교 신앙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일 성수를 지키는 자를 하나님은 반드시 지켜주고 보호해주십니다. 주일 성수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온전히 돌리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즐거움을 얻고, 하나님께서 귀하게 높이시고, 마침내 야곱의 기업을 상속 받는 축복된 성도가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