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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아 들으라! 어떤 믿음을 말하는지? Listen, all the world! What faith is being spoken of?
샬롬! 어제 괴산에 와서 하룻밤을 지내고 새벽에 일어나 영어를 배우고자 하면서 하박국서를 영어로 보다가 하나님의 감동하심으로 온 세상에 전합니다. 모든 목사의 설교는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에 사실 한국말로 하나 영어로 하나 그 대상은 온 세상입니다. 모든 세상을 통치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인 성경을 자신의 교인만 대상으로 하고 혹은 자신의 지역만 대상으로 하고 혹은 자신의 국가만 대상으로 하고 전하게 되면 온 우주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그만큼 제약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나라 지역의 목사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온 세상에 대해서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직분은 세상의 누구보다도 귀하고 중하고 거룩하다고 할 것입니다. 시골은 알아주는 이 없는 교회의 목사가 작은 성도들에게 설교를 하지만 그 말씀이 바로 온 세상의 주인이시오 통치자가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귀하고 귀한 직분을 받아 우리 스스로 본토, 아비 집을 떠난 아브라함과 같이 작은 지역과 민족과 국가와 그리고 개인적인 한계를 초월하고 극복해서 온 세상의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말씀을 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런 존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하박국서를 읽다고 믿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의롭게도 되고 천국에도 가고 그 의롭게 됨이 다시 취소됨도 없이 보장이 든든히 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막상 그 믿음이 어떤 믿음인 지에 대해선 별로 말이 없습니다. 오직 큰 교회 즉 천주교와 개신교의 다툼도 믿음이나 믿음과 행위가 결합이냐를 다투면서 500년을 논쟁을 하지만 막상 그 믿음의 종류나 강도나 혹은 믿음의 연륜에 대해선 조금도 말이 없이 그냥 믿기만 하면 모든 것이 다 가능하다고 하고 믿고 행하기만 하면 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성경의 이해는 틀림없이 그렇게 성경에 그렇게 기록이 되었기에 별로 흠을 잡을 것이 없이 정확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믿음이 되어야 그렇게 되는지 얼마나 믿어야 그렇게 되는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견디면 믿어야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는가에 대한 논쟁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분명하게 성경에 설명을 해 놓았기에 우리는 그 설명을 반드시 이해를 해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교리를 분명하게 이해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천주교와 개신교는 이제 함께 연구를 해야 될 것입니다.
먼저 바울 사도가 로마서를 쓸 때 구약의 하박국서에 인용하고 이렇게 로마서에 인용이 된 로마서 1장 17절의 구절을 보고서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한 본문을 보시겠습니다. 믿는 이는 모두가 암송하는 잘 알려진 구절입니다. 하박국서 2장 4절도 먼저 보시겠습니다. 이를 인용했기 때문입니다.
합 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4. 멋대로 설치지 마라. 나는 그런 사람을 옳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은 그의 신실함으로써 살리라."
4. "See, he is puffed up; his desires are not upright -- but the righteous will live by his faith --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17. 복음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는 길을 보여주십니다. 인간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성서에도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된 사람은 살 것이다." 하지 않았습니까?
17.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위의 내용은 개역개정, 공동 번역, 그리고 영어의 NIV 순서로 적은 것입니다. 로마서엔 이렇게 하박국서의 인용과 함께 그리고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한 설명이 로마서 4장 전체에 있습니다. 로마서 4장 전체를 할애해서 아브라함이 어떻게 해서 의롭게 되는지를 설명합니다. 이 설명을 통해서 우리는 어느 정도 강도의 믿음으로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서 어떤 상태로 믿어야 의롭게 되는지를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이제 그 구절을 직접 보겠습니다.
롬 4: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22. 하느님께서는 이런 믿음을 보시고 아브라함을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하셨습니다."
22. This is why "it was credited to him as righteousness."
우리가 성경을 100독을 해도 그냥 넘어가는 구절입니다. 이런 구절이 성경에 있는 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갑니다. 이는 우리가 어떤 교리에 너무나 깊이 박혀 있으면 다른 모든 성경 구절이 잘 이해도 아니 되고 그냥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온 세상의 성도는 이제는 이에 대해서 스스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천주교와 개신교가 500년을 그렇게 다투며 서로 양보가 없는 것은 그만큼 이 주제에 있어서 서로가 자신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구절을 통해서 온 세상의 모든 성도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이런 믿음을 보시고 비로소 아브라함을 의롭게 하셨음을 말입니다. 그러면 어떤 믿음인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가 없으니 이제 4장을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염두에 두고서 정신을 집중하고 읽게 되면 우리는 성경 로마서 1장 1-16절의 내용을 통해서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요약을 해 드리겠으니 제 말이 사실인지 그냥 로마서 4장을 펴놓으시고 1절부터 16절까지 읽어 보시면 바로 누구나 이해가 될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믿으니 의롭다 하셨다고 하십니다. 이는 창세기에 아브라함의 이야기와 함께 로마서 4장과 똑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이렇게 설명을 하시다가 로마서 4장 17-22절부터는 조금 다른 내용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어서도 그의 하나님의 약속과 그분께서 자신에게 아들을 주실 능력이 있음에 대해서 믿음이 약해지지 않고 더욱 모든 여건이 불가능하게 되었어도 오히려 굳게 하나님을 믿었다고 하십니다. 이를 보시고 하신 말씀이 바로 로마서 4장 22절의 결론입니다. 먼저 로마서 4장의 서두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의롭다 하셨다고 하시고 그리고 또 4장 17-22절은 분명하게 제가 소개한 설명과 같이 말씀을 하십니다. 이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합니까? 먼저 4장 1-16절의 내용대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처음에 찾아오셔서 하시는 말씀을 믿으니 의롭다 하셨다고 이해를 해서 오직 믿으면 의롭게 된다라고 주장도 가능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주장은 4장 17-22절의 주장에 따르면 조금 문제가 생깁니다. 먼저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을 때가 그의 75세 때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아브라함의 이런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 하실 때를 보면 분명하게 그가 100세가 되었을 때입니다. 즉 25년 이란 세월을 변치 않고 또 흔들리지 않고 굳게 믿었는데 이 믿음을 보시고 비로소 의롭다 하셨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를 우리는 종합하면 첫 믿음과 나중 믿음이 서로 일치가 되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변치 않고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되리라 굳게 믿고 그리고 그렇게 불가능한 일을 능히 하실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는 로마서 4장을 이렇게 반드시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영어의 faith from first to last를 주목해서 보면 믿음인데 처음부터 끝까지란 말이 있습니다. 영어를 잘 하시는 분들은 이 의미를 정확하게 아실 것입니다. 믿음이기는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란 내용의 단서가 붙은 믿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믿어야 됩니까? 즉 의롭게 되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으면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로마서 4장을 보면서 어떤 믿음인지 혹은 어떤 강도의 믿음인지 혹은 얼마나 오랜 세월을 변치 않고 믿어야 되는 믿음인지를 또 분명하게 알 수가 있고 처음 믿음과 끝 믿음의 의미도 알아야 함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이해를 하면 만약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아브라함과 같이 로마서 4장 1-16절과 같이 의롭다 인정을 받는다고 이해를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25년이 지났을 때 즉 첫 믿음을 지나서 어떤 시점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나를 보실 때 여전히 의롭다 해야 되는데 과연 우리는 어떤 상태의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 자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과연 하나님을 우리는 그렇게 예수님을 그렇게 굳게 변치 않고 잘 믿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하박국의 믿음이 또 어떤 믿음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박국의 믿음은 우리가 지금 시대를 사는 것과 너무나 다른 상태에서의 믿음임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어떤 상태인지 반드시 하박국서를 조금은 이해를 해야 합니다. 저도 영어로 보면서 영어로 읽으면서 새롭게 이해가 되어서 부랴부랴 바로 글을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냥 우리가 하박국서를 한글로 읽으면 그 소리와 하박국의 감정을 절대로 느끼기 어렵습니다. 제가 가진 다번역 성경의 NIV 버전으로 들으면 성우가 하나님께 다소곳하게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격한 어조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어조는 우리가 깊이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먼저 B.C 608년 경에 하박국서가 기록이 되었다고 보는데 이 시기에 하박국은 직접 남유다에서 살았습니다. 바벨론이 B.C 605년부터 침략을 시작해서 B.C 586년에 남 유다를 망하게 하니 바로 나라가 망하는 전쟁의 시기가 임박해서 쓴 글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박국은 하나님께서 그 어렵던 시기에 선택하신 위대한 신앙인인 동시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율법을 사랑하고 그리고 동족 남 유다를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더 이상 당시의 남 유다 형편에서 절대로 살 수가 없을 정도로 율법이 해이해지고 강포가 행해지고 불의가 만연하였습니다. 참다가 참다가 하박국이 하나님께 약간은 이런 참을 수가 없는 상황을 감정을 실어서 묻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대답을 하시는데 하나님께서도 이제는 더 이상 보시지만 않으시고 바벨론을 사용해서 심판을 하시겠다고 대답하십니다. 그러자 하박국이 또 분연히 하나님께 정의로우시면 순결하신 하나님께서 어찌 그렇게 악한 나라를 들어서 심판의 도구로 삼으십니까 하니 이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다시 대답을 하십니다. 절대로 그런 악한 나라를 그냥 두지 않으시고 그 나라가 악을 행한 데로 보응을 받을 것이라 하십니다. 이에 대해서 비로소 하박국은 안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우리가 잘 아는 비록 없을지라도 하나님을 찬양하리라 고백합니다.
합 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박국은 먼저 조국이 망하는 불행한 현실을 견뎌야 합니다. 분명하게 너무나 슬픈 일이고 의롭게 살면서 자신을 불의로 대하던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망하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자신이 하나님께 왜 그냥 계시고 있으십니까? 왜 그냥 참고만 계십니까? 하고 고할 때의 그의 심정은 불의 한 자들에게 너무나 시달려서 그의 삶에 대한 소망이 없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절망만이 앞에 놓여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조국이 망하는 것도 감당하기 어렵고 슬픈 일인데 또 더욱더 악한 이들이 쳐들어와서 동족을 죽이고 망하게 하고 그리고 앞으로 자신을 다스릴 것이 분명하니 이도 또 보통 사람이면 견디기가 어려운 상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불의한 민족 나라를 절대로 그냥 두시지 않고 멸망을 시킬 것이라 합니다. 그리고 2장 4절의 첫 부분은 이런 바벨론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으로 절대로 바벨론을 정의롭다 인정치 않으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후반부는 그렇지만 이런 와중 즉 나라가 망하고 사람이 죽고 포로로 잡혀가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은 믿음을 갖고 즉 이렇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의연하게 꿋꿋하게 불의에 굴복하지 않고 하루하루 삶을 살 것이다 한 표현입니다. 믿음이 있기에 모두가 망하고 죽는 상황에서 믿음이 있기에 죽지 않고 산다란 의미가 우리의 번역 성경에 있지만 실제의 내용은 이와 함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은 정말로 이런 참담하고 소망을 갖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정의롭게 산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우리는 로마서 1장 17절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는 내용이 한 사람 즉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신 것에 대한 설명이며 또 한 사람 하박국 시대를 사는 사람의 믿음에 대한 내용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 즉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 너무나 강력한 믿음을 25년 동안 변치 않고 가진 소유자이고 또 한 사람은 일반 사람은 견디기도 힘든 전쟁과 죽음과 그리고 파괴와 멸망과 포로로 잡혀가는 정말로 아무런 소망도 가지기 힘든 시기를 이렇게 꿋꿋하게 의연하게 당당하게 조금도 하나님께 기죽은 모습이 아닌 상태로 분연히 묻는 사람의 믿음과 그리고 그 시대를 하나님 보시기에 오직 하나님만 믿고 도리어 하나님의 정의롭게 하시는 일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강력하심과 그 크신 능력을 신뢰하며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사는 사람들의 믿음임을 우리는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박국의 찬양은 이런 상태에서 나오는 찬양입니다. 정말로 전쟁으로 모든 것이 폐허가 됩니다. 나를 지켜주고 내가 의지하던 나라가 없어집니다. 그리고 우리가 일제의 침략을 당해서 속국으로 자유 없이 살던 때와 같이 어렵고 힘든 바벨론의 통치하게 숨도 못 쉬고 살고 그리고 자유도 박탈이 되고 포로로 잡혀가야 하는 상태가 되었음에 정말로 아무것도 없게 된 자신과 동족과 남 유다의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감사하고 기뻐하는 찬양입니다. 왜 이렇게 모두가 절망하고 나약하게 될 때 하박국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정의로운 사람들은 도리어 기뻐하고 찬양합니까? 이들에겐 가장 중요하고 시급하고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포기할 수가 없는 정의에 대한 너무나 강력한 열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다 없어지고 망하지만 하나님의 정의는 절대로 약해지지도 않고 이 어렵고 힘든 시기에 정오의 해와 같이 흐르는 강물과 같이 빛나고 넘치기 때문입니다. 이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우리의 현실이 아무렇든지 이렇게 믿고 살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귀한 성경 말씀을 새롭게 이해하게 하시니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우리 모두가 이렇게 믿고 행할 수 있게 은총을 베풀어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