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을 만나다! 함양 하미앙 와인밸리
머리 위론 서늘한 바람이, 코끝에선 한껏 차가워진 공기가 가을을 알린다.
여름 습기를 다 덜어낸 가을빛이 마른 잔디밭 위로 쏟아지고
나뭇잎들이 서서히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는 요즘.
낭만과 체험이 가득한 경남도 민간정원으로 가을 여행을 떠나보자!
글 백지혜 사진·동영상 김정민·하미앙 와인밸리
가을이 특히 아름다운 경남도 민간정원 제9호
함양 IC를 지나서도 한참이나 꼬불꼬불한 임도를 따라 올라갔다. 20여 분 정도 지났을까. 지리산자락 해발 500m 고지에 자리 잡은 경남도 민간정원 제9호 하미앙 와인밸리(대표 이상인)에 도착했다. 우리 향토 자원인 머루를 테마로 한 유럽풍 전원농원이자 정원이다. 도착하자마자 입구에 바로 보이는 팜마켓으로 들어갔다. 직원이 이곳에서 생산되고 있는 와인이라며 시음용으로 한잔을 건넨다. 부드럽고 진한 것이 평소 마시던 와인과는 확연히 다른 맛이다.
하미앙 와인밸리에서는 직접 머루 열매를 파쇄, 발효, 착즙하는 과정을 거쳐 머루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18개 숙성고와 수십 개가 넘는 오크통에서 3년 이상 숙성돼 만들어진 와인은 제대로 깊은 맛을 낸다. 한국인의 입맛에 딱 맞는 와인이라더니 정말 입에 착 달라붙었다. 특히 2008년 오크통에서 숙성돼 만들어진 와인은 ‘하미앙의 상징’이라고까지 불린단다.
그렇다고 와인만 생산하는 곳은 아니다. 경남도가 지정한 민간정원답게 사계절 모두 각기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면적 2만 3100여㎡(약 7000평)에 자작나무·단풍나무·배롱나무·고로쇠나무·목련 등 20종의 수목과 벌개미취·쑥부쟁이·삼색 조팝나무·구절초 등 야생화 30여 종, 모닝 라이트·사초 등 그라스류 20여 종이 심겨있다. 이상인(66) 대표는 “사계절 중 단연 가을이 최고예요. 개인적으로 잔디광장에서 하미앙 건물 뒷산을 바라보는 전경을 가장 좋아합니다”라고 말했다. 그 밖에도 연못, 천국의 계단 등 발길 닿는 모든 곳이 인기 포토존이다.
이상인 대표의 특별한 선택, “머루는 내 인생의 파트너”
이 대표는 어릴 적 머루 따 먹던 추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머루가 자신의 인생을 바꿔준 특별한 인연이라 소개했다. 그리곤 9월 말 수확해 저장해뒀던 머루를 꺼내와 그대로 먹어보라며 건넸다. 포도만큼 알이 크지 않아 한입에 쓱 훑어 입 안에 넣었더니 새콤달콤하고 탱글탱글한 게 알알이 신선함이 달려있는 듯했다. 입안을 가득 채운 머루의 풍미는 시음했던 와인과는 또 다른 맛이었다.
귀농 차 함양에 내려온 이 대표는 일본과 유럽 등 선진 국가 농촌을 견학 후 건강 활성화 사업을 구체화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지리산 야생 머루로 생과즙을 만들어 파는 것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고, 고민을 거듭한 끝에 가장 한국적인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미앙’이란 명칭도 프랑스 와인처럼 지역명이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는데, 외국인이 편하게 발음할 수 있도록 ‘함양’을 ‘하미앙’으로 표기했다고. 그렇게 탄생한 머루 테마 농장이 하미앙 와인밸리로 거듭났고, 가공공장을 시작으로 지금은 와인공장 견학, 와인 족욕 등 체험의 장까지 마련해두고 있다. 최근엔 브루어리에서 만드는 수제 맥주도 인기다. 지난해 3월에는 지역의 우수한 양조장을 선정하는 ‘찾아가는 양조장’, 올해는 한국관광공사 주최의 ‘유니크베뉴’에도 선정됐다. 17년 동안 전개된 하미앙 와인밸리의 역사다.
와인으로 시음, 체험, 만들기 가능해
머루를 원물 그대로 먹은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본격적인 체험에 앞서 먼저 와인공장으로 들어섰다. 3만 5000여 개에 달하는 와인병이 가지런히 줄을 맞춰 누워있다. 오크통에서 풍겨 나오는 술 향기는 애주가의 애간장을 녹일 것만 같았다. 친구와 와인은 오래될수록 좋다고, 시간을 더하고 세월을 더해 만들어진 와인은 그 자체로 평범한 술이 아니다. 와인 숙성하기에 가장 적합한 온도가 12~15도 사이. 일정하게 온도를 유지하는 비결은 대표와 직원들의 애정에서 비롯된다. 알맞은 온도로 오랜 시간이 지나야만 품격 높은 와인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숙성 단계에서 당도를 채우지 못한 와인은 체험 공간에서 활용된다. 40도의 뜨끈뜨끈하게 채워진 물에 서서히 와인을 푼 뒤 뒤꿈치부터 천천히 발을 담근다. 시음한 와인 한잔으로 체온이 조금 오른 상태에서 와인 족욕까지 더하니 온몸이 기분 좋게 이완된다. 전주에서 여행 차 온 윤서기(65) 씨는 “와인이 내 발에 스며든다고 생각하니까 꼭 발이 춤을 출 것만 같다”고 말했다. 그 밖에도 산머루 비누 만들기, 와인 생산 체험, 쿠키와 공예품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행사가 마련돼 있다. 이 대표는 “젊은 층의 새로운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대형 카페와 힐링 시설을 확충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다”며 앞으로 더 많은 관광객들에게 머루와의 특별한 인연을 선물할 거라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