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대보름의 오곡밥, 삼월 삼짇날의 화전, 단오의 절편, 추석의 송편, 동지의 팥죽 등 우리 조상들은 1년 내내 명절과 절기마다 '계절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그러나 '말(馬)날 장을 담그면 맛있다'는 이야기는 생소할 것이다. 이제 대부분의 가정이 프라스틱 용기에 담겨진 된장과 고추장 등 완제품을 구입하는 터라 장을 담그는 풍속조차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사실 '말날'이라는 것도 낯설다. 태양력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음력은 개미만큼 작게, 거의 15일마다 간간이 표시되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음력날짜에 보이지 않지만 쥐(子), 소(丑), 호랑이(寅), 토끼(卯), 용(辰), 뱀(巳), 말(午), 양(未), 원숭이(申), 닭(酉), 개(戌), 돼지(亥)의 십이지가 차례로 돌아가며 붙어있다. 또 해마다 을유년·병술년 등 육십갑자를 붙여서 올해가 개의 해가 되듯이 24시간인 하루에도 심간과 십이지가 만나 이루는 육십갑자가 매겨져 있다. 이렇듯 열두 동물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생활을 공유하고 있다.
말과 장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정확한 기원과 원인을 밝히기 어려운 것이 풍속이지만, 설득력 있게 제시되는 이유들은 흥미롭다.
먼저 비슷한 발음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말있다'를 빠르게 반복하다 보면 '마있다' 또는 '맛있다'처럼 들린다는 것.
[ 말있다 → 맛있다 ]
조선시대 각종 공예품에는 박쥐 문양이 새겨진 것이 많은데, 이는 박쥐의 한자인 복(蝠)자와 복을 의미하는 복(福)이 같은 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치로 장이 맛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 있는' 날에 장을 담갔다는 주장이다.
마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옛날 휴대용으로 가지고 다니며 샘물을 떠마셨을 듯한 소형 표주박의 말머리 장식도 이러한 의미가 담겨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또 다른 설은 빛깔에서 기인한다. 말의 핏빛이 붉고 진하기 때문에 장도 그와 같이 곱고 진한 색을내라고 말날에 장을 담근다는 것이다.
한편 '사마주(四馬酒)'라는 술이 있다. 마치 '4마리 말'로 담근 것 같은 어감을 주는 이 술은 '정월부터 돌아오는 말날마다 담근 술을 4번 합해 만든 것'으로 1년 내낸 그 맛이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술은 오래될 수록 좋다는데, 여러번에 걸쳐 장시간 묵혔으니 그 정성과 맛이 얼마나 일품이겠는가. 와인을 공부해 가며 마시는 것이 유행이라는데, 우리의 술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馬'자가 새겨진 약절구도 있다. 약초 등을 갈 때 썼던 이 도구에 적힌 '말(馬)' 글자는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고대 중국 주나라의 목왕이 영원불멸의 세계로 갈 때 타고 갔다는 팔준마에서 비롯돼 말은 장수와 건강 등을 축원하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기원이 새겨진 약절구로 갈아 만든 약재에는 정성이라는 약효 성분이 첨가되었을 것이다.
이런 얘기들을 종합해보면 음식이나 그룻과 관련된 말은 맛있고, 색이 곱고, 건강하라는 좋은 의미를 모두 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최근 말 문양이- 글자가 새겨진 그룻을 본 적이 있는가? 우리의 멋스러운 전통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식탁에는 외국에서 건너왔다는 그릇들이 즐비하다. 알록달록한 서양의 꽃과 풀들이 그려져 있고, 어떤 것은 유럽 어느 왕실에서 사용한다는 금테까지 둘렀다. 현대사회는 다양성의 사회이니 개성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나쁘다고만 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질그릇 같이 멋스러운 우리 예 그릇들이 식탁의 주류로 자리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듯하다.
☞ 이 글은 마사회 굽소리 사보에 실린 김정희 마사박물관 학예사님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