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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기도는 시편 77,17-21 같이 보시면서 시작하겠습니다. 강의 중반부 쯤에 시편 77,17-21절, 말씀도 해주시겠습니다.
요즘에 신부님은 새로운 걸 시도하기 시작하셨는데 백주간 가족들도 해보시면 좋으실 것 같습니다. 하루가 훨씬 더 기뻐지신다는 말씀과 함께
전에는 일어나셔서 짧게 기도하시고 오늘 하루는 나한테 무슨 좋은일이 생길까? 라고 생각하면서 행복해 하셨는데, 얼마전부터 하느님의 은총인지.....
아침에 일어나면 눈을 뜨고 기도를 하고 나서,
"오늘은 누구를 어떻개 행복하게 해줄까?" 생각하시며 하루를 시작한다면..
그런 변화 사이에서 신부님의 삶이 더 활력이 있어졌습니다.
자취하실 때 경험과 어머니들은 알고 계실텐데, 세상에 재미 없는게 나를 위해 요리할때 인것 같습니다.
그런데 누군가를 위해서 음식을 맛있게 해줘야지 할테는 재미 있는것 같고, 삶도 마차가지 인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나 자신을 살 때는, 조금 무미 건조한 것 같고 삶이 의미를 자주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자신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사는 순간 삶이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우선은 배우자들, 자녀들로 시자하겠지만 그것을 넓혀보면 행복하게 해 줄 사람의 숫자가 많이 생깁니다.
나의 작은 도움, 관심을 가짐으로써 세상이 행복해 질수 있다는 것은 우리들 삶에 큰 힘이 되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해보신다는 말씀을............
이것을 사제 생활을 하고 20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탈출 14,15-25 의 내용과 의미를 설명하셨고,
오늘은 그 의미를 되돌아보고 몇 가지 생각해 볼것에 대해 되짚어 봅니다.
첫번째는 이 이야기 안에는 본래 이야기가 있고, 이후에는 신학적인 편집되었을 것 같다. 라는 가정하에...
물론 나중에 하늘나라에 가서 어떻게 쓰였는지 다 알게 될 것입니다. 알고보니까 그냥 누가 혼자서 쭉 쓴거더라, 이럴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결과를 보니까,
본래 어떤 이야기가 있었고 그 이야기가 이스라엘 역사와 함께 새로운 신관들을 알아가고 그 새로운 신학적인 발전을 해가면서 앞에 이야기가 조금은 신학적으로 계속해서 편집되고 새로 쓰여진게 아닐까? 라고 오늘날 주석학을 공부하고 있는 사람들은 생각을 하는데 그러다 보니
탈출 14,15-25 절까지 이야기 안에서도 본래의 전승은 아마도,
전승과 편집
º 본래의 전승
1) 야훼가 바람을 일으켜 바닷물을 밀어내고 마른 땅을 만들다
2) 야훼의 승리- 그 이야기의 목적
º 제관계의 편집
1) 야훼에 의해 물이 갈라지고 땅이 드러나다 - 창조신학
2) 야훼의 영광
제관계는 사제들입니다. 군인이 아닙니다. 따라서 그 앞부분의 이야기를 바꾸고 싶었을 테고 그래서 전체적인 이야기가 야훼에 의해서 물이 갈라지고 땅이 드러났다. 창세기의 모습이 생각 나야 합니다, 창세기 1장에서 엘로힘이 궁창을 세워서 하늘위의 물과 하늘 아래 물로 갈라 놓는..장면
그리고 셋째날 하늘 아래의 물들이 서로 모이면서 땅이 드러나는, 따라서 야훼가 바람을 일으켜서 땅이 드러나는 것은 굉장히 신화적인 그림입니다.
그 하느님의 신화적이고 원시적인 것을 제관계는 창조신학쪽으로, 창조신학쪽 관점에서 이야기를 바꾸고 그리고 또 제관계의 관점에서도 야훼가 그렇게 해서 파라오를 이겼다! 라는 야훼의 승리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드러나는 야훼의 영광을 의미합니다.
비슷한 것 같은데 포커스, 포인트를 어디나 맞추냐는 것입니다.
야훼의 승리에 맞출 것이냐? 야훼의 영광에 맞출 것인지..?
마치 이런 야훼의 이적이 입으로 물을 후후 불어서, 바람으로 물을 밀어내는 것 같은 것인지? 아니면 창조신학으로 야훼가 물을 가르고 해서 그들을 구해내는 장면으로, 물과 마른 땅, 물과 생명에 창조신학적 그런 개념을 가지고 이 이야기를 읽을 것이냐? 에 따라서 이 이야기는 굉장히 다르게 읽힐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본래의 전승과 제관계의 편집에는 어디에다 초점을 맞출 것인가? 라는 초점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나서 보면 이야기의 주체가
주체
º 14,16 모세
º 7,17 : 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이것으로 너는 내가 야훼임을 알게 될 것이다.- 야훼
보아라, 내 손에 있는 이 지팡이로 나일강 물을 치겠다.
그러면 물이 피로 변할 것이다.- 모세가
(이 부분에 '내손에' 는 모세의 손? 야훼의 손? 인지 애매합니다, 텍스트를 정확히 읽는 다면 그 장면에서 신부님은 모세라고 생각하시 겠다는,)
º 이사 63,12 :
당신의 영화로운 팔을 모세의 오른편에 서서 걸어가게 하신 분(하느님의 권능이 모세의 오른편에 섰다. 따라서 모세가 자신의 오른팔을 들었을 때 그 팔은 야훼의 팔이었다. 신학화된 텍스트이지만 노골적으로 이야기)
그들이 보는 앞에서 물을 가르시어 영원한 명성을 떨치신 분.
이야기의 주체도 어떻게 읽으면 주인공이 모세? 인것 같고 어떻게 또 읽으면 주인공이 야훼, 하느님? 인것 같은 따라서 그 두가지에 주체에 관해서도...
탈출 14,19
이스라엘 군대 앞에 서서 나아가던 하느님의 천사가 자리를 옮겨
그들 뒤로 갔다. 구름 기둥도 그들 앞에서 자리를 옮겨 그들 뒤로 갔다.
이 부분과 유사한 표현이 이사 52장에서도 나옵니다.
19절
º 이사 52,12
너희는 황급히 나오지 않아도, 도망쳐 달아나지 않아도 되리니
야훼는 너희 앞에 서서 가고
이스라엘의 엘로힘은 너희 뒤를 지켜 주기 때문이다.
이사야가 이사 52장에서 얘기할 때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 이스라엘이 바빌론에서 나올때는 너희들이 이집트에서 나오듯이 그렇게 황급히 나오지 않아도 된다.
도망쳐 달아나지 않아도 된다. 그러면서 마치 이집트에서 나왔을 때는 천사와 구름기둥, 불기둥이 있었듯이, 야훼는 너희 앞에 서서 가고 이스라엘의 엘로힘은 너희를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바빌론에서 돌아갈 때는 하느님께서 직접 너희를 앞장 서서 가고 너희 뒤를 지켜주실 것이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따라서 출애굽에서 이집트를 떠나 돌아오는 것과 바빌론에 귀향갔던 사람들이 귀향갔다 돌아오는 것 중에 어떤 것이 안전하고 쉽고 편안합니까?
바빌론 유배후가 그렇습니다.
이집트를 떠날 때나 바빌론을 떠날 때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말씀, 예언자의 말씀, 또는 모세의 이야기를 듣고 잘 따랐을까요?
아니면 투덜대고 불평하고 잘 안왔을까요? 잘 안왔습니다.
바빌론에서도 돌아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빌론에서 돌아올 때도 사람들이 오지 않아서 예루살렘이라는 도시가 제대로 형성이 안되는 것 입니다.
그래서 에즈라나 느헤미야서를 읽어보면 계속해서 바빌론에서 남아 있는 이들에게 "이제는 돌아오라고" 라고 얘기합니다. 이게 하느님의 뜻이다..이와 같은 메시지가 자주 이야기 됩니다. 그런데도 안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시절에도 바빌론에는 유다인들에 큰 공동체가 있었고, 오늘날 유다인들이 생각하는 아주 중요한 법전이 있습니다.
탈무드 라는?...
탈무든 두꺼운, 몇십권으로 이루어진 법전인데 그 탈무드라는 법전이 두 군데서 편집이 되는데,
탈무드의 편집
서기 450년 경 : 예루살렘에서 편집이 되고
서기 550년 경 : 바빌론에서 편집
되서 예루살렘에서 편집이 된것은 ( 예루샬리미) 라고 부르고 바빌론에서 편집되는 것은 '바블리' 라고 부릅니다.
오늘날 유다인 학자들이 탈무드를 연구할 때는 '바블리' 를 중심으로 연구합니다.
여기서 '앞에 서서 간다' 는 것은 길을 인도한다 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이 앞에 가니까 길을 잃을 염려가 없고
'뒤를 지켜준다' 는 것은 뒤따라 오는 것으로부터 보호하겠다. 라는 의미입니다.
야곱이 집으로 돌아올 때, 라반이 뒤따라 옵니다.
이집트에서 탈출할 때, 사람들이 뒤따라 와요.. 뒤를 추격하는 세력으로 부터 '너희를 지켜준다'
따라서 두 가지 테마가 겹쳐 있는 겁니다.
인도한다와 보호한다..를
탈출 14,20
그러자 그 구름은 한쪽은 어둡게 하고, 다른 쪽은 밤을 밝혀 주었다. 열가지 재앙 중에서 어둠이 이 처럽
이집트 땅은 어둠이 덮히지만, 이스라엘 자손들아 사는 곳에는 빛이 있었다. 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나중에 창세기에서도 첫번째 창조가 " 빛이 있어라"입니다.
요한 복음도 맨 처음의 시작이 "한 처음에 말씀이 있었다. 그리고 쭈욱 내려가면서 빛과 어두움에 관한 창조 신학적인 관점에서 예수가 누구인지를 설명하는 대목들...어둠과 빛에대한 그와 같은 내용들,
그 다음에 내용은 약간 기술적인 거라서 신부님께서 강의를 할까 말까 하시다가 백주간 가족들은 이해하실 수 있을것 같아서^^
마른 땅을 얘기하는 히브리어가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라바와 야바샤인데
하라바는 물이 없어서 황량함, 메마른 땅
따라서 물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어감이 담겨 있습니다.
하라바(חרבה)와 야바샤(יבשה)
º 물이 없어 황량함
노아 이야기 : 창세 7,22
엘리야 이야기 : 2열왕 28
ㅎㄹ ㅂ 인 호렙이 떠 오릅니다. 호렙은 시나이 산의 다른 이름입니다. 그 어감은 물이 없어서 황량하다. 광야 같은 개념이 그 밑에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 하라바는 성경에 자주 등장하지 않습니다. 노아의 이야기 에서 등장합니다(창세 7,22) 조금은 부정적인 의미로 등장을 하는데
창세 7,22
마른 땅 위에 살명서 코에 생명의 숨이 붙어 있는 것들은 모두 죽었다.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아주 건조한 황량한 땅에서 살아가면서 그나마 숨이 붙어 있는 것들도 홍수가 나서 다 죽어 버렸다.( 다소 역설적이다) 라는 그와 같은 뜻입니다.
엘리야 이야기
2열왕 2,8
엘리야가 겉옷을 들어 말아 가지고 물을 치니, 물이 이쪽 저쪽으로 갈라졌다. 그리하여 그 두 사람은 마른땅을 밟고 강을 건넜다.
여기서는 사실 주석학자들이 기대할 때는 야바샤라는 단어를 기대하는데, 특이하게 하라바가 쓰였다는 내용입니다.
구약성경에서는 하라바, 라는 단어는 거의 사용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야바샤, 라는 단어는 자주 쓰이는데,
야바샤라는 것은 물에 젖은 것을 말린다.라는 개념이 그안에 들어있습니다.
야바샤 - 물에 잠겨 있었던 상태에서, 물이 빠지면서 드러나 물이 마른 땅 |
º 젖은 것이 말림
창조 이야기 : 창세 1,9.10
그 밖의 많은 부분 : 여호 3,17: 4,22; 느헤 9,11; 이사 44,3; 요나1,9.13; 2,11 ; 시편 66,6; 욥 41,25
그래서 창조 이야기에서도 창세(1,9-10) 어떤 이야기입니까?
땅 아래 있던 물들이 서로 모이면서 마른 땅이 드러났다. 라는 이야기를 할때 이 야바샤 라는 단어가 쓰이고, 이스라엘이 갈대 바다를 건너 갈 때도 이 야바샤가 쓰입니다.
그 밖에 많은 부분에서 이 야바샤 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여호수아기, 느헤미야, 이사야, 요나, 시편, 욥, 등에서 야바샤는 자주 등장합니다.
하지만 그 둘의 개념은 조금 다르다.. 하나는 물이 없어서 황량하다. 다른 하나는 물이 너무 많아서 문제인데 그것들을 말려서 마른땅이 드러나는 그와 같은 마른땅에 차이가 나는 개념을 가지고 이 두 단어를 바라봐야 한다. 라는 정도로 이해합니다.
아까는 빛과 어둠에 관해서 말씀해 주셨는데요.
시편에서 새벽 이라는 단어가 사용이 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새벽이라는 단어?
"내가 새벽을 흔들어 깨우리라." 아니면은 책 제목에 '밝아오는 새벽을 누가 막으랴?' 그와 같은 내용들 기억하실 겁니다.
이 새벽은 성경 안에서의 신학적인 개념은 ?
새벽- 성경 안에서의 신학적인 새벽은 신적 구원의 시간 |
어둠이 끝나고 이제 빛이 우리에게 돌아오는, 이 개념은 그리스도교 안에서도 자리잡고 있는 개념입니다. 성탄이 12월 25일입니다. 왜 12월 25일 일까요?
본래 12월 25일은 로마에서 태양신을 섬기는 시기였는데, 하지만 그 신학적인 개념은? 12월 25일 그 즈음이 동지입니다. 어둠이 가장 많고 그때부터는 점점 빛이 늘어나는 시깁니다.
따라서 성탄절이 12월 25일로 자리 잡은 겁니다. 그때 부터는 이제 빛이 어둠을 이기는 시간입니다.
부활은 왜 그때일까요? 부활은 춘분과 비슷합니다.
그때 부터는 해가 있는 시간이 해가 없는 시간보다 더 많아지는 시간입니다. 성탄과 부활 그 시기가 자리잡은 데는 빛이 어둠을 이기는 그와 같은 개념이 중심에 있다는 것입니다.
새벽
º 신적 구원의 시간
º 시편 46,6: 하느님께서 그 안에 계시니 흔들리지 않네.
하느님께서 동틀 녘에 구해 주시네.
º 스바 3,5: 그 한가운데에 계신 주님은 의로우신 분
불의를 행하지 않으신다.
아침마다 당신의 공정을 펴신다.
동틀 녘마다 어김없이 하신다.
그러나 불의한 자는 수치를 모르는구나
밤중에라고 구해주시면 안되나? 라고 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동틀 녘 - 동이 튼다는 것 자체가 구원임을 의미 |
빛이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구원이다. 스바 3,5절에서 불의한 자는 언제 움직입니까? 밤중에 움직입니다. 그러면서 불의한 자는 동이 트는 것을 바랄까요? 불의한 자는 동이 트는 걸 바라지 않습니다.
동이 트면은 자신이 한 일이 세상에 드러나니까, 하지만 하느님은 우리에게 이런 빛을 보내 주시는 의로운 분이시다.
아침이 오면 모든것이 밝혀져서 옳고 그름이 드러날 테니까, 하느님의 공정함이 세상에 펼쳐지게 된다. 라는 내용입니다.
새벽이라는 시간,
창세기부터 요한 복음서에 이르기까지 빛과 어둠, 새벽, 이런것들에 대한 개념들이 성경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주제라는 것에 대해서 우리들이 생각하면서 여기서도 우리들이 보게되는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갖고 있는,
이스라엘이 갈대바다를 건널때 한쪽은 어둡고 한쪽은 밝아지는 그와 같은 내용들을 성서 전체에 큰 틀 안에서 우리들이 알아 들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탈출 14,25b 가 중요합니다
그러자 이집트인들이 '이스라엘을 피해 달아나자. 주님이 그들을 위해서 이집트와 싸우신다.' 하고 말하였다.
이집트 사람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부를 때 이스라엘 이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히브리,라고 부르던지 그런 하대하는 표현을 썼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스라엘을 피해 달아나자,하면서 이스라엘이 민족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첫번째 태도,
이스라엘 - 이집트인들이 이스라엘 민족을 인정하는 표현 |
두번째는 야훼가 그들을 위해 이집트와 싸우고 있다. 여기서도 야훼라는 이름을 알게 됐습니다. 앞선 탈출기의 내용에서 야훼의 큰 관심은 이집트 사람들이 '내가 야훼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라고 하셨는데, 알게 된겁니다.
이스라엘을 피해 달아나자, 그들의 신이 이집트와 싸우고 있다. 라고 표현하지 않고 야훼라는 이름을 아는 것, 이스라엘 이라는 이름으로 그 민족을 부르는 것.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신부님이 본당에서 처음에 생활하실 때는 애들을 잘 모르시다가 나중에 어떻게 어떻게 길을 가시다가, '누구,누구야~~' 하고 부르시면 그날 주일 미사때 '신부님, 이제 제 이름을 아시네요?' 그러면서 정말 기뻐한다고 합니다.
내가 누군지 상대방이 안다~ 하는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 구절을 통해서 작게 본다면은 14절에서
"주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워주실 터이니, 너희는 잠자코 있기만 하여라.' 라는 모세의 약속이 이제는 완전히 실현되었다는 것을 이집트인들의 입을 통해서 화자는 청자들에게 그 고백을 들려 주는 겁니다.
모세의 예언적 언사가 신학적으로 완성되었음을.....얘기해 주는 겁니다.
처음에 읽었던 시편 77,17-21 역시 이스라엘이 바다를 건너는 장면을 조금 다른 언어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읽은 탈출기에 텍스트는 단지 샛바람을 언급하고 있지만,
시편에서는 더욱 생생하게 먹구름, 비구름, 회오리 바람, 천둥, 번개에 관해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편에 나오는 단어들을 앞선 열가지 재앙중 우박 재앙에서 다 나왔던 단어들입니다.
따라서 갈대 바다를 건너는 그 사건안에서 앞에 있는 열가지 재앙에서 사용되었던 그런 용어들이 또는 그런 재앙과 관련된 어둠에 관한 것들, 그리고 앞으로 보겠지만 등에떼, 메뚜기떼 관한 것들, 우박에 관한 것들 아니면 강물이 피로 변하는 그와 같은 것들...
그 열가지 재앙에 이런저런 요소들이 이 갈대 바다를 건너는 사건에 이렇게 저렇게 연관되어 있음을 알아 볼수 있습니다.
탈출 14,26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바다 위로 손을 뻗어, 이집트인들과 그들의 병거와 기병들 위로 물이 되돌아오게 하여라."
그리고 야훼가 모세에게 말했다. 14장에서 야훼가 모세에게 몇번째 말할까요?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탈출 14,1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탈출 14,15.26
그러므로 세번째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앞선 내용과는 약간 차이가 납니다.
1절과 15절에서 얘기할 때는, 마지막 부분에 '나의 영광을 드러내고 이집트인들은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4절과 18절에도 그와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26절 다음에서는 그런 모든 내용이 생략되고 단순하게 모세에게 하는 명령만 나옵니다.
"바다 위로 손을 뻗어라. 물이 되돌아오도록 이집트인들 위로...
16절에서 모세가 손을 뻗어서 바다가 갈라지게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모세가 다시 손을 뻗어서 이집트인들 위로 그 물이 되돌아 오도록 합니다.
따라서 이 26절만 읽는다면,
그렇게 갈라졌던 바다가 다시 원위치로 합쳐지는 장면을 연상할 수 있는데,
그런데 탈출기에서는 두 그림이 겹쳐져 있는 겁니다.
앞으로 읽게 될
모세의 노래, 탈출 15장,10절에서는 야훼가 바람을 일으켜 바다가 이집트인들을 덮쳤다고 노래합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하나는 굉장히 신학적인 텍스트이고, 모세의 노래에 나오는 야훼가 바람을 일으켜 그리고 다시 그 바다가 이집트인들을 덮쳤다고 얘기하는 것은 조금은 신화적인 텍스트라고 그 둘을 구별해 볼수 가 있습니다.
탈출 14,26 - 신학적인 묘사, 탈출 15,10 - 신화적인 묘사
탈출 14,27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뻗었다. 날이 새자 물이 제자리고 되돌아왔다. 그래서 도망치던 이집트인들이 물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주님께서는 이집트인들을 바다 한가운데로 쳐넣으셨다.
그리고 모세가 그의 손을 바다 위로 뻗었다.
그리고 바다가 돌아왔다.
밤에서 낮으로 변하는 때에 그의 자리로(?)
이집트인들은 도망쳤다.
그를 향해
그리고 야훼는 이집트인들을 떨어버렸다.
바다 가운데로 -
밤에서 낮으로 변하는 때에
그리고 그 본래의 위치로
계속해서 방향이 중요합니다.
바다가 돌아왔다. 그의 자리로
이집트인들은 도망쳤다.그를 향해
야훼는 떨어 버렸다. 바다 가운데로
계속해서 그 방향이 중요한 것입니다.
모세가 바다 위로 뻗자,
여기있는 물음표는 ....
모든 구약의 이야기 텍스트는 다음과 같이 구성이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하면서
예를 들면ㅡ 그리고 내가 밥을 먹었다. 그리고 나는 문을 열고 나갔다. 그리고 나는공원으로 산책을 갔다. 그리고 나는 어떤 강아지를 만났다..
라는 시간적으로 앞뒤로 배열이 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건들은 동시에 일어납니다.
히브리 말로는 그리고, 그리고 , 그리고 가 동시에 일어날 때 접속사 다음에 동사가 안나오고 다른 것들이 등장하는 그런 문장의 구조를 통해서 히브리 말로는 어떤 얘기를 하냐면?
이 두 사건은 시간적으로 A 사건이 일어나고 B 사건이 일어난게 아니라 동시에 일어났다. 라는 표시를 히브리 말은 할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말로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물음표를 하셨는데요,
따라서 이 이야기는 뭐냐?
바다가 자기 자리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이집트인들이 도망치는게 그 두 사건이 함께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굉장히 무서운 얘기입니다. 바다가 돌아오는 걸 보면서 이집트인들은 도망을 치고 그러면서 바다는 다시 막 파도가 치고 ..그런 어떤 동시성을 강조하는 이야기인데,여기다 어떤 접속사를 써야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야훼는 이집트인들을 떨어 버렸다.
그런식으로 내러티브가 계속 됩니다. 이야기가 바다 가운데로,
그와 같은 내용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여기서 먼저 시간적인 표현이 재밌습니다.
밤에서 낮으로 변한는 때에,
우리 식으로 번역하신다면...동틀 무렵에 가 맞습니다.
동틀 무렵, 해가 뜨기 직전부터 날이 밝아옵니다. 그와 시간을 의미.
그리고 그 본래의 위치로 물이 되돌아 왔다. 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여기서,
특징적인 동사가 하나가 등장합니다.
'야훼는 이집트인들을 떨어 버렸다.'
27절에서 주교회의 성경은 '바다 가운데로 쳐넣으셨다.' 라고 이야기 하셨는데,
이것은
누군가를 책상위에 올려다 놓고 밑을 막 흔들어요. 그러면 그 사람이 넘어지겠죠? 그리고 어딘가에 떨어지겠죠? 높은데서 흔들어 가지고 중심을 잃고 넘어지게 만드는 그와 같은 내용입니다.
'흔들다' 그렇게 흔들어서 떨어뜨리다.
아니면 나뭇가지 같은 것을 흔들어서 그 과일들이 그 밤같은 게 떨어지게 하는 그와 같은 내용입니다.
그들이 흔들어서 떨어지게 했다..
따라서 이집트인들은 개념적인 표현으로 추락한겁니다.
높은데서 낮은 곳으로 추락하는 그와같은 그림입니다.
탈출14,28
물이 되돌아와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따라 바다로 들어선 파라오의 모든 군대와 병거와 기병들을 덮쳐 버렸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하였다.
그리고 물이 돌아왔다. 그리고 물은 덮었다.병거와 기병들을
그들 뒤로 바다에 온 파라오의 모든 군대 그들 중 하나도 남지 않았다 -직역-
밑줄 그은 부분은 이중적인 기능을 합니다.
첫번째는,
앞서서 그리고 물은 덮었다. 병거와 기병들을
그 병거와 기병들이란 곧 누구냐? 그것을 부연 설명하는 겁니다.
그들 뒤로 바다에 온, 여기서 그들은 당연히 이스라엘 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 뒤로 바다에 온 파라오의 모든 군대, 따라서 병거와 기병들 일부가 온게 아니라 파라오의 모든 군대가 뒤따라 왔다는 것을 병거와 기병들을 설명하는 걸로 표현합니다.
두번째 기능은,
그들 중 하나도 남지 않았다. 에서 그들이 누구인가?
파라오의 모든 군대.
따라서 여기서 그들을 따라 바다에 온 파라오의 모든 군대는 앞선,
병거와 기병들을 설명하는 기능도 하고 뒤따라온 그들이 누구인가?를 설명하기도 하는 이중적인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기억해야 할 것은?
그들 중,
"그들 가운데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하였다." ▶ 신적 권능을 표현 으로서 열가지 재앙이야기도 쓰였습니다 : 등에 떼와 메뚜기 떼를 물리칠 때 ( 등에가 하나도 남지 않았다, 메뚜기도 한 마리도 남지 않았다- 탈출 8장.10장) |
탈출 14,29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바다 가운데로 마른 땅을 걸어갔다. 물은 그들 좌우에서 벽이 되어 주었다.
반면에 이스라엘이 아들들은 걸었다. 야바샤에 그런데 바다 가운데에 있는 야바샤에 이스라엘 아들들은 걸었다.(?) 물은 그들에게 벽이 되었다. 그들의 오른편으로 부터 그리고 그들의 왼편으로 부터 -직역-
(?) 도 동시적인 표현입니다. 어떤 접속사를 써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오른편으로 부터 그리고 그들의 왼편으로 부터⇒ 의역하자면 , 그들의 좌우로 부터 벽이 되어주었다. 이스라엘이 들어가는 장면인데 22절에서는 동사가 들어갔다 라는 동사가 아니라 '왔다' 라는 표현이 쓰였습니다.
22절은 29절과 상응합니다.
º 22절
이스라엘 자손들은 왔다 / 바다 가운데 / 야바샤에
º 29절
이스라엘 자손들은 걸었다 / 야바샤에/ 바다 가운데
22절은 바다 입장에서 보면 이스라엘이 오는 거고 29절은 바다 입장에서 보면은 이스라엘이 가는 겁니다, 그리고 첫번째 나오는 단어는 야바샤에서 근데 그 야바샤가 바다 가운데에 있는 따라서 순서로 보면은,
22절: 바다에서 야바샤로
29절: 야바샤에서 바다로 이것이 의도적인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특징적인 겁니다.
왔다. 바다 가운데, 야바샤에
걸어갔다. 야바샤에 그리고 바다 가운데.
우연히 이런 것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순서가 서로 뒤바뀌어 있고 그리고 왔다 갔다. 라는 표현들은 조금은 22절과 29절이 의도적으로 저렇게 쓰여진 것이 아닐까? 그런 순서에 관해서 굉장히 글을 쓰는 사람이 정확하게 쓰려고 한 의도가 보여지지 않는가, 라는 겁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들이 알고 있는 , 이미 본 탈출기에 영화 장면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무지한 상태에서 이 텍스트만 읽는다면, 사실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
파라오의 군대만 물에 덮히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마른 땅을 걸을 수 있었는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이 텍스트만 보면...
억지로라도 그것을 이해한다면,
문장의 순서는 28장에 보면 파라오의 군대는 이미 하나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반면 29절에서 보면 그들이 걸어나왔는데, 하지만 여기서 시간적인 순서는 뒤바뀌어 있는 것으로 우리가 보아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 29절에 동사들은 완료형 동사가 사용된 것이다. 라고 주석학자들은 설명을 합니다.
분명히 여기 이야기를 보면,
파라오의 군대들은 물에 빠져 죽었고, 그리고 나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다를 건너서 나온 것으로 설명을 하고 있지만,
하지만 시간적인 순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먼저 건넜고 파라오의 군대가 뒤따라 오면서 결국 자기 자리로 돌아온 바다에 휩쓸린 것으로 보아야 한다.라고 주석학자들은 설명을 합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보면,
요 대목만 읽어가지고서는 아! 바로 그렇구나! 라고 이야기 하기에 조금은 어려운 순서가 뒤바뀌어 있는 대목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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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살님^^
주석학자들의 견해를 설명해 주신 부분에서 그렇게 느껴지실 것 같습니다.
신부님 강의를 반복해서 들으시면 더 잘 이해되실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네. 저도 감사합니다^^
아멘~!! 고맙습니다~^^
아멘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