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주책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기사의 제목을 고심 끝에 달아놓고 보니 그렇다는 것이다. 나는 항상 기사를 쓸 때면 제목부터 우선 달아놓고 시작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써놓고 나중에 적당히 붙이기도 한다지만 그렇게 하려고 하면 눈앞이 암흑천지가 되어 한걸음도 나갈 수가 없다. 그래서 먼저 써놓은 글 제목은 나의 글쓰기에 있어서 등대와도 같은 것이며 제목을 찾는데만 하여도 사실 몇 시간씩 걸릴 때도 많다.
글이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내놓는 어찌 보면 백화점 상품과도 같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내용물도 물론 좋아야 하겠지만 독자들이 한눈에 찜, 할 수 있도록 신경 써서 멋지게 달아야 한다는 것도 시민기자 교육시간을 통해 터득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번에도 짧은 제목이지만 고민을 많이 했다는 것을 고백하며 혹시라도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이가 많아지고 늙어갈 수록 그 사람의 생활환경폭도 좁아지고, 마음도 위축된 가운데 별 볼일 없이 쓸쓸해지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이 아닐까싶다. 마치, 아침 해가 동쪽에서 찬란히 떠올라 하루를 비추다가 황혼을 물들이며 서쪽으로 사라져가듯 사람도 그와 같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말이지만 그 뒷모습을 떠올려보면 쓸쓸함보다는 화려함이 더 좋을 것 같고, 감동의 그 향기를 불러올 수 있는 황홀지경에 이른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돌아보면 나는 태생부터가 인품이나 학문, 교양 모두를 털어보아도 어느 것 하나 든 데가 없다. 그런 뒷모습이 어떻게 비칠지는 보나마나 뻔하다는 것은 자신이 더 잘 아는 일이다. 또 고백하자면 e수원뉴스기사를 쓰면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느끼게 된다. 그중에는 나이 드신 훌륭한 분들도 많지만 더 젊은 실력파 시민기자 분들의 활동하는 모습에 부러움을 감출 수가 없다. 따라서 송무백열(松茂柏悅)인 것처럼 기사들을 읽고 힘을 얻게 되며, 기자의 속성이 뭔가도 짐작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동안 그런 속성이 전이되었는지도 모른다. 250여개의 부끄러운 글이지만 써 올리고 보니 이제는 집에서나 밖에 나가서나 항상 오감이 총 동원된 가운데 세포조직들의 움직임도 FBI를 능가할 정도라고 하면 웃지 않을까싶다. 남에게 말도 잘 걸어야 하고, 냄새도 잘 맡고, 소리도 잘 들어야 하고, 눈도 밝아야 한다. 그리고 감을 잡았으면 무엇보다 행동이 적절하게 따라주어야 한다.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순발력을 발휘하여 사진을 찍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회를 놓치고 나서 뒤늦게 아쉬워 할 때가 사실 많다.
13번 버스를 타려면 이곳 매산시장앞에서 환승을 한다.
이번 일도 기사를 쓰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그래서 사진은 준비하지 못했다. 광교산을 갈 때면 수원역을 돌아서 매산시장앞 정류장에 내려 환승할 경우가 많다. 이날도 수원여객 13번 버스를 타고 보니 마침 빈자리가 하나 있어 앉았다. 도청사거리를 지날 무렵이다. 내 자리는 앞에서 세 번째였고 맨 앞자리에 앉은 긴 머리를 한 처녀가 한동안 뭔가를 찾느라 부산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의자 앞과 밑,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찾다말고는 버스바닥까지 온데를 손으로 더듬고 있었다.
뭔가는 자세히 알 수가 없었지만 더듬는다는 것은 시력을 말해주었고 그 예감이 맞았다.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안타까운 마음에 뭐를 찾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는 "렌즈요!" 하며 내 예감을 증명하듯 말했다. 이쯤 되고 보면 시민기자 1년 여 만에 눈치9단의 도사가 다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차는 어느덧 이춘택 병원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렌즈라고 하면 눈에 넣는 투명체가 아닌가. 있는 듯 없는 듯하여 쉽게 눈에 띌 리가 없었다.
안경도 투명하여 구분하기가 어렵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차 앞쪽에 서있는 승객이 하나도 없는 가운데 살펴볼 수가 있었다. 하지만 버스바닥이 회색인데다 흰점박이 화강암처럼 얼룩져 있어 어릿거리며 잘 보이지 않았다. 또 승객들은 이런 사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무표정한 모습으로 아무도 도우려 나서지 않고 있었다. 숨을 죽이며 저지난해에 백내장수술을 한 보람으로 나는 자신 있게 허리를 구부리고 미루어 보았다. 그렇게 얼마나 되었을까, 검정회색 바탕에 흰점들과는 다르게 약간 더 커 보이는 하나가 샛별같이 반짝했다. 순간 나도 모르게 그쪽을 가리키며 제게 뭐냐고 소리 내며 일러주었다.
그러자 그 처녀도 깜짝 반기며 집어 들고는 좋아하는 것이었다. 누구에게라도 이렇듯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것은 함께 기쁘고 즐거운 일이다. 살다보면 웃을 일도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나와 관련 없는 것들이다 보니 무관심으로 일관하기가 쉽다. 모처럼만에 나도 남을 위해 뭔가를 하나 해냈다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긴 머리의 예쁜 처녀에게서 고맙다는 말을 들으니 순간! 나도 모르게 '꽃'이라는 시 한 대목이 떠올랐다.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처녀의 얼굴에도 꽃이 피어나고, 내게도 그 꽃 한 송이 가슴에 피워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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