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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사무엘상 9:1–10:27 (참조: 창세기 45:5–8, 사도행전 13:21–22, 로마서 8:28)
핵심 명제: 역사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왕정의 개막)은 인간의 화려한 기획이 아니라 일상의 사소한 결핍(잃어버린 암나귀)을 추적하는 발걸음 위에 하나님의 절대 섭리가 교차함으로써 열리며, 기름 부음(마샤흐)을 받은 지도자는 권력의 독재자가 아니라 여호와의 언약적 기업을 맡은 청지기(나기드)로서 말씀 앞에 복종해야 한다.
1. 서론: 암나귀를 잃어버린 청년과 왕을 준비하시는 하나님
사무엘상 8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를 거절하고 "열방과 같이 우리에게 왕을 주소서(케-콜 하-고임)" 외쳤습니다(6강). 하나님은 그들의 배은망덕한 요구를 받으셨고, 그들에게 왕을 세워주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을 세우기 위해 어떤 방식을 취하셨을까요?
하늘에서 천둥 번개가 치며 천사가 나타났습니까? 전국적인 무술 대회나 왕실 사관학교를 열어 최고의 엘리트를 선발하셨습니까?
사무엘상 9장 1–3절은 인간의 거대한 역사와 하나님의 세밀한 일상의 섭리가 교차하는 매우 뜻밖의 소박한 시골 풍경으로 문을 엽니다:
"베냐민 지파에 기스라 이름하는 유력한 사람이 있으니... 기스에게 아들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사울(שָׁאוּל)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 사울의 아버지 기스가 암나귀들을 잃고(와토바드나 하-아토노트) 그의 아들 사울에게 이르되 너는 사환 한 사람을 데리고 일어나 가서 암나귀들을 찾으라 하매" (삼상 9:1–3)
사울은 왕관을 쓰기 위해 길을 나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가출한 아버지의 '암나귀 몇 마리'를 찾기 위해 사환과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산천을 헤매고 있었을 뿐입니다.
에브라임 산지를 뒤지고, 살리사 땅을 뒤지고, 사알림 땅을 샅샅이 뒤졌으나 나귀들의 꼬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삼상 9:4).
사울의 눈에는 지독하게 풀리지 않는 재수 없는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이 나귀를 찾지 못해 지쳐 쓰러지기 직전,
사환의 제안을 받아 발걸음을 옮긴 곳은 하필이면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이 머물고 있던 ‘숩 땅(Zuph)’이었습니다.
사울은 암나귀를 찾으러 다녔지만,
하나님은 그 나귀의 발자국을 따라 사울을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으로 기름 붓기 위한 거룩한 약속의 장소로 정확하게 몰아가고 계셨던 것입니다.
제7강은 사울이라는 인물이 지닌 외적 조건과 영적 한계, 눈앞의 미래를 꿰뚫어 보는 선견자(로에)의 권위, 왕을 세우는 거룩한 기름 부음(마샤흐), 깨지기 쉬운 질그릇 기름병(파크)의 복선, 그리고 사울을 향해 주신 '새 마음'과 세 가지 징조 속에 담긴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을 심층 해부합니다.
2. 본문 주해: 사울의 스펙과 잃어버린 암나귀(1) 사울(שָׁאוּל)의 외모: 백성들의 요구가 낳은 완벽한 거울 (삼상 9:1–2)
성경 기자는 사울을 소개하며 그의 혈통과 외모를 매우 인상 깊게 묘사합니다.
사울 (שָׁאוּל, Saul):
'샤알(שָׁאַל, 구하다/요청하다)'의 수동분사형으로, 문자 그대로 "구하여진 자(Asked for)", "백성들이 구하여 얻은 왕"이라는 뜻입니다.
바후르 와-토브 (בָּחוּר וָטוֹב, 준수한 소년):
'바후르'는 가장 혈기 왕성한 청년 전사를 뜻하며, '토브'는 '탁월하고 매력적임'을 뜻합니다.
키의 우월함: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
사울은 군중 속에서 머리 하나가 쑥 올라와 있을 정도로 압도적인 체격과 카리스마를 지닌 미남형 거인이었습니다.
백성들의 시각적 우상:
6강에서 백성들은 "우리 앞에 나가 우리의 싸움을 싸워줄 왕(삼상 8:20)"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육신적 안목에 100% 부합하는 인물을 첫 왕으로 허락하셨습니다.
외모와 피지컬, 가문의 재력(기보르 하일)까지 인간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사울은 왕으로서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장차 드러날 '외모(사울)와 중심(다윗)'의 거대한 영적 대비를 향한 복선이었습니다.
(2) 잃어버린 암나귀와 지그재그의 방황 (삼상 9:3–5)
기스는 암나귀들을 잃어버렸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나귀는 부와 신분의 상징이자 귀한 운송 수단이었습니다.
사울은 나귀를 찾아 에브라임 산지 $\longrightarrow$ 살리사 땅 $\longrightarrow$ 사알림 땅 $\longrightarrow$ 베냐민 사람의 땅 $\longrightarrow$ 숩 땅으로 며칠 동안 헤맸습니다.
헛걸음의 섭리:
만약 사울이 첫날 에브라임 산지에서 나귀들을 쉽게 찾았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는 즉시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며, 결코 사무엘을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귀를 찾지 못하고 허탕을 쳤던 그 모든 피곤한 길, 좌절과 헛수고의 지그재그 코스는 사울의 발걸음을 사무엘이 서 있는 거룩한 산당으로 정확히 일치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정밀한 섭리의 내비게이션이었습니다.
3. 핵심 원어 강해: 로에(רֹאֶה) — 눈이 열린 선견자
나귀를 찾지 못해 집으로 발길을 돌리려던 사울에게, 사환이 결정적인 제안을 던집니다:
"보소서 이 성읍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하나니 그리로 가사이다" (삼상 9:6).
성경 기자는 여기서 고대 이스라엘의 직분 변천사를 밝히는 매우 귀중한 언어학적 주석을 덧붙입니다:
"(옛적 이스라엘에 사람이 하나님께 가서 물으려 하면 말하기를 선견자(로에)에게로 가자 하였으니 지금 선지자라(나비) 하는 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라(로에) 일컬었더라)" (삼상 9:9)
(1) 로에 (רֹאֶה): 영적 투시경을 가진 자
라아 (רָאָה, 보다):
'로에'는 동사 '라아'의 능동분사형으로, 문자 그대로 "보는 자(The Seer)"입니다.
영적 맹인이었던 엘리 제사장과 달리, 선견자 사무엘은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하나님의 뜻과 감추어진 미래의 실재를 꿰뚫어 보는 '열린 영안'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은 은 한 세겔의 사분의 일(은 4분의 1세겔)을 복채처럼 들고 나귀의 행방을 묻기 위해 선견자에게 나아갔습니다.
그는 시골의 점쟁이를 찾아가듯 나아갔으나, 하나님은 온 이스라엘의 운명을 꿰뚫어 보고 계신 위대한 선견자 사무엘과의 대면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2) 하루 전에 사무엘의 귀를 여신 하나님 (삼상 9:15–16)
사울이 성읍 문턱에 도착하기 전날, 하나님은 이미 사무엘에게 비밀 작전을 하달하셨습니다:
"사울이 오기 전날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알게 하여 이르시되 내일 이맘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로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라(마샤흐타 로 레-나기드)" (삼상 9:15–16a)
갈라 에트-오젠 (גָּלָה אֶת־אֹזֶן):
"사무엘의 귀를 열어젖히셨다(Uncovered the ear)."
귀를 덮고 있던 머리카락을 젖히고 은밀하게 귓속말을 속삭이듯 하나님이 계시를 부어주셨습니다.
사울에게는 우연한 발걸음이었으나, 사무엘에게는 24시간 전부터 분초 단위로 예비된 신적 스케줄이었습니다.
사무엘이 눈을 들어 사울을 마주하는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의 음성이 다시 울렸습니다:"보라 이는 내가 네게 말한 사람이니 이가 내 백성을 다스리리라(제 야초르 베-암미)" (삼상 9:17).
4. 깊은 내면 해부: 잔치의 상석과 넓적다리의 성별
사무엘은 사울을 만나자마자 놀라운 말을 건넵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선견자이니라... 사흘 전에 잃은 네 암나귀들을 염려하지 말라 찾았느니라 온 이스라엘이 사모하는 자가 누구냐 너와 네 아버지의 온 집이 아니냐 하는지라" (삼상 9:19–20)
사울은 머리통을 얻어맞은 듯 멍해졌습니다.
자신이 입 밖으로 내지도 않은 나귀 이야기를 선견자가 먼저 꺼내며 "이미 찾았다"고 선언했고,
나귀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민족의 미래("온 이스라엘이 사모하는 자가 바로 너다!")를 눈앞에 들이밀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자신의 초라함을 고백했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니이까 또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삼상 9:21).
이때의 사울은 겸손했습니다. 자신을 작게 여길 줄 알았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을 데리고 산당의 객실로 올라가, 모인 30명의 귀빈들 중에서 사울과 그의 사환을 '최상석'에 앉혔습니다(9:22).
넓적다리(하-쇼크)의 비밀 (삼상 9:23–24)
사무엘은 요리사에게 명하여 미리 따로 떼어 보관해 두었던 '넓적다리와 그것에 붙은 것(하-쇼크 웨하-알레이하)'을 가져다가 사울의 식탁 앞에 차려놓게 했습니다.
레위기 7장 32–34절에 따르면, 제물의 오른쪽 뒷다리(넓적다리)는 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 가문의 거룩한 몫'이었습니다.
사무엘은 제사장에게만 허락된 가장 존귀하고 성별된 제물의 부위를 사울에게 먹였습니다.
"사울이여, 너는 단순히 배를 채우러 온 나그네가 아니다. 너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제단에서 특별히 성별하여 세우신 언약의 지도자다!"
그리고 그날 밤, 사무엘은 지붕 위에서 사울과 함께 깊은 영적 대화를 나누며 새벽을 맞이했습니다(9:25–26).
5. 핵심 원어 강해: 파크(פַּךְ)와 나기드(נָגִיד) — 기름 부음의 신비
이튿날 동틀 무렵, 성읍 끝자락에서 사무엘은 사환을 먼저 앞서 보내고 사울과 단둘이 마주 섰습니다.
그리고 구약 역사상 최초의 왕을 세우는 장엄한 성별 의식을 거행합니다.
"이에 사무엘이 기름병을 가져다가(와이카흐 쉐무엘 에트-파크 하-셰멘)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맞추며 이르되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의 기업의 지도자로 삼지 아니하셨느냐(할로 키-메샤하카 야훼 알-나할라토 레-나기드)" (삼상 10:1)
$$\text{"와이카흐 쉐무엘 에트-파크 하-셰멘, 와이초크 알-로쇼, 와이샤케후"}$$
(1) 파크 (פַּךְ): 깨지기 쉬운 흙으로 빚은 병
원어적 의미:
기름을 담는 작은 '플라스크, 도자기 병(Vial/Flask)'입니다.
흙을 구워 만든 진흙 병으로, 떨어뜨리면 산산조각이 나는 깨지기 쉬운 그릇입니다.
다윗의 뿔(케렌)과의 결정적 대조:
성경의 치밀한 복선을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기름을 부으실 때는 깨지기 쉬운 '진흙 기름병(파크, 삼상 10:1)'을 쓰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훗날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실 때는 짐승의 뼈로 만든 견고하고 영원한 '기름 뿔(케렌, 삼상 16:1, 13)'을 쓰게 하십니다.
사울의 왕조는 인간의 불순종으로 인해 사기그릇처럼 산산이 깨어질 운명이었으나, 다윗의 왕조는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영원토록 부러지지 않는 뿔처럼 견고할 것임을 용기(Vessel)의 재질에서부터 예고하신 것입니다.
(2) 나기드 (נָגִיד): 왕이 아닌 청지기
백성들은 '멜렉(왕, מֶלֶךְ)'을 요구했습니다(8:5).
그러나 사무엘은 사울의 머리에 기름을 붓고 그를 '멜렉'이라 부르지 않고, '나기드(נָגִיד)'로 세우셨다고 선언합니다.
나기드 (נָגִיד):
'앞서 이끄는 자', '위탁받은 총독, 사령관, 청지기(Leader, Prince, Captain)'.
절대 권력의 한계선:
"사울이여, 착각하지 말라! 이스라엘 백성은 네 사유재산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기업(나할라, נַחֲלָה)'이다! 이스라엘의 유일하고 참된 왕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이시며, 너는 그분의 명령을 대리 집행할 청지기(나기드)에 불과하다!"
지도자가 자신의 분수를 잊어버리고 스스로 절대군주(멜렉) 행세를 하려 할 때, 사울의 비극은 싹트기 시작합니다.
6. 확증의 세 가지 징조와 변하여 새사람이 됨 (삼상 10:2–9)
사무엘은 사울의 의심과 두려움을 불식시키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주칠 '초자연적인 세 가지 징조'를 예언합니다.
| 징조 | 장소 및 인물 | 만남의 내용 | 영적 의미 |
| 제1징조 (삼상 10:2) | 베냐민 경계 라헬의 묘실 | 두 사람을 만남: "암나귀들을 찾았느니라" | 과거의 짐(가정의 염려)의 완전한 해결 |
| 제2징조 (삼상 10:3–4) | 다볼 상수리나무 | 벧엘로 예배하러 가는 세 사람: 떡 두 덩이를 건넴 | 현재의 공급: 하나님께 바쳐질 제물의 몫을 나눔 받음 |
| 제3징조 (삼상 10:5–6) | 블레셋 수비대가 있는 하나님의 산(기브아) | 비파와 북을 치며 예언하는 선지자 무리를 만남 | 성령의 충만과 새사람으로의 변화 |
성경 기자는 세 번째 징조의 클라이맥스를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네게는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리니(찰레하 알레이카 루아흐 야훼)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웨-네흐파크타 레-이쉬 아헤르)" (삼상 10:6)
$$\text{"웨-네흐파크타 레-이쉬 아헤르"}$$
$$\text{"그리고 너는 또 다른 낯선 사람(새사람)으로 뒤집어질(변화될)지니라!"}$$
하파크 (הָפַךְ): '완전히 뒤집어엎다', '소돔과 고모라를 뒤엎으실 때 쓰인 철저한 변혁'.
사울이 사무엘을 떠나려고 등을 돌릴 때,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고(와야하포크-로 엘로힘 레브 아헤르)" 사무엘이 말한 모든 징조가 그날로 다 응했습니다(10:9).
하나님은 연약한 청년 사울에게 사명을 감당할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새로운 마음(레브 아헤르)까지 아낌없이 부어주셨습니다. 시작은 은혜로 충만했습니다.
7. 미스바의 제비뽑기와 짐짝 뒤에 숨은 자 (삼상 10:17–27)
사무엘은 온 백성을 다시 미스바로 소집하여 공개적인 왕 선출식을 거행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도구인 '제비뽑기'가 가동되었습니다.
열두 지파 중에서 베냐민 지파가 뽑혔습니다.
베냐민 지파 중에서 마드리의 가족이 뽑혔습니다.
마드리의 가족 중에서 기스의 아들 사울이 마침내 지목되었습니다.
사무엘과 사울 사이의 비밀스러운 기름 부음(10:1)이, 온 민족의 목전에서 하나님의 공적인 지명으로 완벽하게 확증된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을 찾으려 했을 때, 그는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들이 여호와께 또 묻되 그 사람이 여기 왔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그가 짐보따리들 사이에 숨었느니라(힌네-후 네흐바 엘-하-켈림) 하셨더라" (삼상 10:22)
키가 어깨 위만큼 더 컸던 그 장대한 청년이, 두려움에 사시나무 떨듯 떨며 행구(짐짝, 켈림, כֵּלִים) 더미 속에 웅크리고 숨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끌어내어 백성들 앞에 세웠습니다. 그의 훤칠한 키와 준수한 외모를 본 온 백성은 환호성을 지르며 외쳤습니다:
"왕의 만세를 외치라(예히 하-멜렉, יְחִי הַמֶּלֶךְ)!" (삼상 10:24).
겸손인가, 유약함과 두려움인가?
사울이 짐짝 뒤에 숨은 것은 일견 '겸손'해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 신학의 눈으로 깊이 들여다보면, 이것은 거룩한 겸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과 능력을 신뢰하지 못하는 인간적 두려움과 유약함'의 노출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성령을 부어주시고 새 마음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사람들의 시선과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짐짝 뒤로 숨어버렸습니다.
이 '사람을 두려워하는 마음(Fear of Man)'은 훗날 사울을 끊임없이 옭아매어 결국 하나님을 버리고 불순종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치명적인 올무가 됩니다.
8. 구속사적 절정: 암나귀를 타고 오신 참된 메시아
알렉산더 화이트와 매튜 헨리, 그리고 존 칼빈은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으러 나섰다가 왕으로 기름 부음 받은 사울의 사건 속에서, 온 인류의 잃어버린 양들을 찾아오신 참된 기름 부음 받은 자(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대조적으로 조명합니다.
| 첫 번째 왕 사울 (삼상 9~10장) |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 (복음서) |
| 목적: 아버지의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아 나섬 | 목적: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오심" (눅 19:10) |
| 신분: 키가 크고 준수한 육신의 장수 |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외모가 없는 종의 형체 (사 53:2) |
| 기름: 깨지기 쉬운 **진흙병(파크)**의 기름 부음 | 성령이 한량없이 부어지신 영원한 메시아 (마 3:16) |
| 반응: 왕의 자리가 두려워 짐짝 뒤에 숨어버림 | 십자가의 쓴 잔을 피하지 않고 자신의 몸을 내어주심 |
| 입성: 인간의 화려한 군마를 타고 군림함 | 스가랴의 예언대로 초라한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심 (슥 9:9, 마 21:5) |
사울은 잃어버린 암나귀를 쫓아다니다가 우연히 왕관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 영광 보좌를 버리시고,
사탄의 권세 아래 길을 잃고 낭떠러지로 치닫던 '잃어버린 하나님의 백성들'을 직접 찾아내시기 위해 이 낮고 천한 땅으로 걸어 내려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사울처럼 짐짝 뒤에 숨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라는 가장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전장 한복판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번쩍이는 철병거가 아니라,
가장 낮고 겸손한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습니다.
사울의 왕권은 깨지기 쉬운 질그릇(파크)처럼 산산이 부서졌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은 십자가의 자기부인과 부활의 권능으로 세워진
결코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보좌가 되었습니다.
9. 목회적 적용과 묵상(1) 일상의 사소한 헛수고(잃어버린 암나귀) 속에 감추어진 섭리를 보라
계획했던 일들이 틀어지고, 사소한 문제로 발목이 잡혀 온종일 헛수고를 한 적이 있습니까?
"왜 오늘따라 차가 막히는가? 왜 하필 오늘 서류를 잃어버렸는가? 왜 내 인생은 이토록 사소한 일로 꼬이는가?"
짜증과 한탄을 멈추십시오.
사울의 암나귀가 사라지지 않았다면, 사울은 결코 선견자 사무엘을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당신의 눈에는 지독한 불운과 헛걸음처럼 보이는 그 우회로가, 하나님의 시선에서는 당신을 가장 거룩한 섭리의 자리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은밀한 몰아가심(Divine Setup)'일 수 있습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상의 작은 꼬임 속에서도 신실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찬양하십시오.
(2) 지도자여, 당신은 '주인(멜렉)'이 아니라 '청지기(나기드)'이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리더의 자리에 계십니까?
사무엘이 사울의 머리에 기름을 부으며 선포했던 그 단어를 심장에 새기십시오: "여호와께서 너를 그의 기업의 '지도자(청지기, 나기드)'로 삼으셨느니라!"
당신이 맡은 구역 식구들, 직원의 부하들, 자녀들은 당신의 마음대로 휘두르고 착취할 수 있는 사유재산(멜렉의 소유)이 아닙니다.
그들은 피 값으로 사신 하나님의 거룩한 기업(나할라)입니다.
주인 행세를 하려 들지 마십시오.
권력을 남용하지 마십시오.
두려움과 떨림으로 양 떼를 섬기는 겸손한 청지기가 될 때, 하나님은 당신의 리더십 위에 하늘의 권위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3) 사람을 두려워하여 '짐짝 뒤에 숨는 신앙'을 찢으라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직분을 주시고, 사명을 맡기시며, 십자가를 지라고 부르실 때 사울처럼 환경과 핑계의 짐보따리 뒤로 숨어버리고 있지 않습니까?
"나는 말을 못 합니다, 나는 돈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두렵습니다."
사람의 눈치를 보고 평가를 두려워하는 자는 결코 하나님의 역사를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능력을 보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부르신 하나님이 성령(루아흐 야훼)을 부어주시고, 새로운 마음(레브 아헤르)을 주셔서 능히 감당하게 하실 것입니다.
짐짝 뒤에서 걸어 나오십시오.
두려움을 털고 믿음으로 당신의 자리를 지키십시오.
10. 결론: 영광스러운 출발과 늙은 선지자의 퇴장로
사무엘상 10장의 마지막은 암몬 사람 나하스의 위협 속에서, 사울이 왕으로 추대되고 모든 백성이 기뻐하는 환희로 막을 내립니다.
사울은 기름 부음을 받았고,
성령의 감동을 입었으며,
마침내 이스라엘의 역사상 첫 번째 군주로 등극했습니다.
사무엘은 백성들의 불신앙적 요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기꺼이 자신의 권력을 내려놓고
새로운 왕 사울을 세우는 거룩한 산파의 사명을 완수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암몬과의 길갈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후,
선지자 사무엘은 온 이스라엘 백성을 요단강 가 ‘길갈(Gilgal)’로 다시 불러 모읍니다.
그곳에서 사무엘은 자신의 평생의 공직 생활을 결산하며,
온 백성의 눈시울을 적시는 장엄하고도 서슬 퍼런 '고별 설교'를 쏟아놓습니다:
"내가 누구의 소를 빼앗았느냐? 누구의 나귀를 빼앗았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의 손에서 눈을 어둡게 하는 뇌물을 받았느냐? 증언하라!"
온 백성이 "단 한 번도 우리를 속이거나 빼앗은 적이 없나이다" 통곡하며 증언할 때,
맑은 밀 베는 계절의 하늘에서
대낮에 벼락과 비를 쏟아부으시는 하나님의 초자연적 서명!
그리고 늙은 선지자의 입술에서 터져 나온
오고 오는 모든 세대의 사명자들의 가슴을 찢는 영원한 맹세: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리라!"
권력을 내려놓고 무릎으로 민족을 지탱한 참된 중보자의 절정,
제8강: “쉬지 아니하는 기도의 줄” — 길갈의 고별 설교와 증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