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한흠 목사
만일 여러분들이 다시 교회를 선택한다면, 어떤 교회를 선택하고 싶습니까? 여러분을 행복하게 해주는 교회를 선택하고 싶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을 강하게 만들어주는 교회를 선택하고 싶습니까? 각자 한번 자신에게 던져볼 수 있는 가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과 평안을 주는 교회가 있다면 그런 교회를 택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습니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봅니다. 병을 안고 씨름 하는 사람에게 병이 나을 수 있는 교회를 소개해준다면 얼마나 반가워 하겠습니까? 가난을 이기지 못해서 하루하루 피곤하게 사는 사람에게 예수 믿으면 복 받습니다. 예수님에게 오세요. 하고 말하면 그 말 때문에 교회를 찾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인간의 정상적인 성향입니다. 실패하여 주저앉아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당신을 다시 일으켜 세울 것입니다. 낙망하지 마세요. 하면서 소망과 희망을 주는 교회로 인도한다면 무척 기뻐할 것입니다.
이런 인간적인 심리를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이사야 61장을 통해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가난한 자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병든 자와 마음이 상한 자를 고쳐주기 위해서, 갇힌 자와 눌린 자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서, 마음이 슬픈 자에게 위로와 기쁨을 주기 위해서" 라고 말입니다. 모든 인간은 마음의 평안을 요구합니다.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의 심리를 나무라지는 않으십니다.
그래서 그런지 미국 TV에서 선교하시는 목사님들의 메시지를 들으면, 지금도 이런 메시지가 자주 나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완전한 평화와 희열과 행복과 번영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어떤 고통도 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구하면 무엇이든지 풍성하게 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으십시오. 그런 분들은 365일 이렇게 전합니다. 그리고 그런 메시지에 마음이 끌려 예수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동안 미국 덴버 시에 유명한 교회가 있었습니다. 순복음교회인데 성령운동이 활발하고 매우 복음적인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가 수년 전 교회 이름을 행복한교회라고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왜 교회 이름을 갑자기 바꾸었는지 담임 목사님께 묻자, 그래야 교회를 찾아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진 몰라도 그 후 많이 부흥하여 그 도시에 몰(mall)을 살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행복을 주는 교회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교회를 나오는 목적이 단순히 우리 자신의 행복과 마음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한 것으로 머문다면 그것은 기독교의 본질에서 벗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C.S. 루이스가 한 다음의 말에 매우 공감합니다. 나는 행복해지려고 종교를 찾지 않는다. 그런
행복이면 와인 한 병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느낄 수 있는 행복이다. 만일 당신이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 종교를 찾는 사람이라면, 나는 굳이 당신에게 기독교를 믿으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수준에서 머물지 않고, 그 이상의 수준을 가진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데도 중요한 목적이 있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거룩한 강자들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펴는 것이 교회의 본질입니다.
며칠 전 공적인 석상에서 조용기 목사님의 이야기를 짤막하게 들었습니다. 그분은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친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그런데 정작 남은 고치면서 자신의 병은 못 고친다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 저도요. 하고 기도하지만 도무지 하나님께서 안 고쳐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몇 가지 병으로 씨름 하는데, 그분의 표현대로 한다면 서바이벌 게임(survival game)을 한다고 합니다. 곧 살아 남기 위해서 몸부림을 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금년에 3가지 기도제목을 정해 놓고 기도한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이것입니다. 하나님, 금년에는 내 몸의 모든 병이 다 물러가고, 정말 가볍고 깨끗한 몸으로 살 수 있게 해주세요.
만일 기독교가 병을 고쳐주고, 가난한 자를 부자로 만들고, 마음에 소원하는 행복을 부어 주는 것으로 끝나는 종교라면, 조 목사님이야말로 자기 모순에 빠진 사람일 것입니다. 남에게는 그런 복음을 전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그것을 얻지 못한다면 이상한 것 아닙니까?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나님께서 오늘날 한국 교회를 위해 조 목사님을 하나의 메신저로 사용하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병 고치는 것만이 기독교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조 목사님을 통해서 모든 교회, 모든 세상 앞에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배후에 더 큰 목적, 더 높은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상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교회를 세우시기 600여 년 전, 이사야의 입을 통해서 하나님이 선포하신 예언의 말씀입니다. 장차 이 땅에 그 모습을 드러낼 하나님의 백성들, 하나님의 교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이에 대해 이사야는 아름답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힌 표현을 가지고 우리에게 그림을 그려주는지 모릅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예수 믿고 이 세상에 등장할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교회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바로 의롭게 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 앞에 영원히 의인된 사람들이 바로 교회라고 말씀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은 영영히 땅을 차지할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땅을 소유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가지고 전 세계를 정복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바꾸는 거룩한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심은 가지요, 하나님의 손으로 만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서 다시 빚어진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의 걸작품들입니다.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존재들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데 있습니다. 주기도문에서처럼 주의 나라가 임하며, 주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 이루어져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하나님 아버지에게 영원토록 돌아가도록 하는 것, 이것만이 우리의 영원한 목적이요, 꿈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교회의 이미지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도 이런 존재임을 다시 한번 말씀을 통해서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22절을 보십시오. "작은 자라도 천을 이루고 약한 자라도 강국을 이룰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원문에 좀더 가깝게 번역한다면, 가장 작은 자라도 천을 이루고 가장 약한 자라도 강국을 이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너무나 작아 보일지라도 그들을 통해서 천을 이루는 기적이 나타납니다. 세상 사람이 보기에는 몹시 약해 보일지라도 그들을 통해서 강한 나라가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서 이런 기적을 이루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교회가 가져야 될 진정한 이미지는 어떠해야 합니까?
날마다 자기 소원을 성취하기 원하는 어린애 같은 모습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서 뛰는 강자의 이미지입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는 거룩한 강자들의 모임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시면서 이사야의 예언에 근거하여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제자란 거룩한 강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적당히 교회 다니는 사람을 만들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사람을 만들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은 거룩한 강자들입니다. 이들은 천을 이루고, 강국을 이루는 존재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이런 자격을 갖추어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자기를 부인해야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합니다. 이것이 제자의 조건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강자는 바로 자기 부인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할 수만 있다면 이 사람은 강한 사람입니다.
자기의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거룩한 목적을 향해서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이라면, 이 사람만큼 강한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썩는 밀알로 던지면서 예수님의 뒤를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만큼 강한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이 그런 사람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사람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천을 이루고 강국을 이루는 주님의 제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는 바로 이런 자들의 모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22절)
하나님께서 이 꿈을 이루기 위해 쉬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지난 2000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있는 약한 자들을 통해 이 일을 이루셔서 세계 곳곳에 교회가 생기고, 세계 곳곳마다 하나님의 거룩한 종들이 복음을 위해서 뛰는 모습을 봅니다. 그 결과 사랑의교회가 이 자리에 생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25년 전 사랑의교회를 시작하면서 이런 꿈을 가졌습니다. 곧 작은 자가 천을 이루고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벌떼와 같이 일어나는 강한 교회를 만들어보겠다는 꿈과 소원입니다. 제가 보기에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손에서 아름답게 다듬어진 거룩한 백성들이 너무나 나약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을 가지고는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수 없고, 오히려 있으나마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룩한 강자들이 활개치는 교회, 예수의 제자들이 하나님나라의 꿈을 안고 힘차게 뛰는 교회, 바로 이런 교회를 하나님께서 원하신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이런 확신을 가지고 교회를 시작하다 보니 자연히 강성을 뛸 수 밖에 없었습니다. 메시지도 톤이 높았습니다. 그리고 교인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면서 부담과 스트레스를 주었습니다. 당신은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구원의 확신도 없으면서 무슨 예수 믿는다고 합니까? 선데이 크리스천이어선 천국도 못 들어갑니다. 당신이 예수의 제자로 훈련 받지 않으면 아무 일도 못합니다. 훈련 받으세요. 떡이나 얻어 먹고, 병이나 고치려고 따라다니는 무리들처럼 예수 믿지 마세요. 예수님은 무리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를 좋아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몰아 부치기도 하고 소리를 높여 부담을 주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다음과 같이 호되게 이야기했습니다
여러분, 이런 강남 지역에 살면서 날마다 세상 복을 바라보며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이정도 살면 됐지, 더 이상 무얼 달라고 야단입니까?
사도행전을 보면 거기에 나오는 제자들은 이것 달라, 저것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가진 것을 주님을 위해서 내놓는 사람이 되었고, 나중에는 자기 생명도 바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강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세상을 향해 나갔기 때문에 세상이 그들을 이기지 못한 것 아닙니까? 결국 예루살렘이 정복당하고, 로마 제국이 그들 앞에 정복 당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이런 강한 자들을 요구하십니다. 여러분도 강한 사람이 되세요.
그러자 사랑의교회를 은근히 비판하는 주변 사람들이 "저 교회에 가면 뼈도 못 추린다. 는 소문을 퍼뜨리기도 했습니다. 목회자로서 이런 강성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일종의 모험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피곤하고 골치 아픈 문제로 행여나 위로 받을까 싶어서 교회에 왔는데, 오히려 숨도 못 쉬게 만들 정도로 부담과 긴장을 주는 강성어린 메시지를 준다면 사람들이 좋아할 리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이것은 일종의 모험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들이 연달아 일어났습니다.
한번 교회 안에 들어오면 나가지 않고, 오히려 그 메시지를 다 소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순종하고 열심히 배우고 믿어 예수님의 제자답게 살아보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그들의 믿음이 몰라보게 자랐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인생을 사는 것만이 가장 가치 있고, 보람된 일이고, 영원한 삶의 모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얼굴에 행복과 기쁨, 힘이 생겨났습니다. 옛날 같으면 조그만 문제를 가지고도 쩔쩔 매면서 어찌할 바를 몰랐을 텐데, 이제는 웬만한 문제들은 담대하게 척척 발로 밟고 지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교인들이 자꾸 늘어났습니다. 정말로 천을 이루고 강국을 이루는 놀라운 이적들이 개인과 교회 안에도 일어나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점점 교회는 부흥되어 갔습니다. 이런 놀라운 일을 제가 지난 25년 동안 경험하고 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