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시대 등장
* 혁명을 통해,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정치체제(정부형태)를 바꾼 프랑스에, 왕보다 강력한 권력을 가진 황제가 등장했다. 그가 나폴레옹이다. 혁명의 역설.
배경
* 장기화된 대외 전쟁(대 프랑스 동맹)과 정치적 혼란 : 불안정 → 부유한 상공업자와 부농은 안정 기대
* 총재정부의 부패와 무능 : 불안정, 불안
* 제1· 2차 대(對) 프랑스 동맹 결성(프랑스 혁명으로, 프랑스의 시민세력 확장에 위협을 느낀 유럽 각국의 왕들이, 프랑스에 대항하기 위해 결성한 동맹이다)
* 1차 동맹은 프로이센(프러시아), 오스트리아, 영국, 네덜란드 등
* 2차 동맹은 오스트리아, 영국, 네덜란드, 이탈리아, 러시아 등
⇒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전쟁을 끝내고(불안과 불안정 해소), 국정을 안정시킬 지도자를 찾음 ⇒ 이 때 등장한 인물이, 나폴레옹이다. ⇒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공로를 세워, 대중적인 지지를 얻었음.
집권
대중들의 지지에 자신감을 가진, 나폴레옹이 쿠데타를 일으켜, 총재정부를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함(1799) → 통령정부 수립(프랑스 혁명 시기에 나폴레옹의 쿠데타로 성립돼 5년간 존속한 정부. 통령은 프랑스 통령정부의 우두머리를 말한다) → 사실상 나폴레옹의 권력 독점(나폴레옹은 제1통령이 됨) → 나폴레옹의 정치(대외 혼란 수습 - 대 프랑스동맹 격파, 내정개혁 - 중앙집권적 행정제도 마련, 새로운 시민사회의 규범 마련 : 나폴레옹 법전 편찬)
→ 나폴레옹 법전(법 앞에서 평등, 개인의 자유와 사유재산 보장, 신앙의 자유 보장, 프랑스 혁명 정신 반영, 다른 나라에 영향을 줌) : 나폴레옹 자신은 프랑스 혁명 정신의 계승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음 ⇒ 이러한 나폴레옹의 노력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서,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됨(1804) ⇒ 시민들이 힘을 모아 없앤 왕정을 시민들이 힘을 모아 왕보다 센, 황제를 다시 세운 것이다. 나폴레옹의 교활함에 시민들이 속은 것이라고 할까? 아니면 시대적 요청이라고 할까?
* 통령정부 : 프랑스 혁명기에 나폴레옹의 쿠데타로 이루어져 1799년부터 1804년까지 존립한 정부. 임기 10년의 집정관(통령) 세 명을 두었는데, 제1 집정(통령)이었던 나폴레옹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서 폐지되었다.
* 왕정(王政) ⇒ 공화정(共和政) : 국민의회, 입헌의회, 국민공회, 총재정부, 통령정부 ⇒ 제정(帝政. 황제가 다스리는 군주 제도의 정치)
제정(帝政)
국민투표로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함 → 오스트리아, 프로이센을 물리치고 유럽을 장악함(영국을 제외하고) → 나폴레옹이 황제에 오르자 영국은 유럽 여러 나라들과 또다시 프랑스에 반대하는 동맹을 맺게 돼. 나폴레옹은 군대를 이끌고 프랑스에 대항하는 나라들을 차례로 물리쳤어 → 대륙 봉쇄령 선포(1806. 영국에 경제적 타격을 주기 위하여 유럽 대륙과 영국의 무역을 금지하도록 한 명령. 대륙 봉쇄령은 영국에 경제적 타격을 주고 유럽 대륙의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다) → 그러나 정작 큰 타격을 입은 것은 영국에서 공업 제품을 수입하던 대륙의 모든 국가, 특히 러시아였어. 러시아는 대륙 봉쇄령을 어기고 영국과 무역을 계속했지. 러시아의 불복(不服. 따르지 않음) 화가 난 나폴레옹은 60만 대군을 이끌고 1812년 러시아 원정을 떠났지만 크게 패하고 말았어. 이 소식이 전해지자 유럽의 동맹군은 1814년 나폴레옹 군대를 격파시키고, 그를 엘바 섬으로 귀양 보냈다. → 러시아 원정의 참패와 유럽 연합군에 패배로 나폴레옹은 몰락함 → 러시아 원정 실패, 국민 해방군의 파리 점령 → 엘바섬 귀양 → 부르봉 왕조 부활 → 100일 천하(워털루 전투 패배)→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유배
* 파랑· 빨강· 흰색의 세 가지 색은 프랑스 혁명의 정신인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해. 이 삼색기는 이후 프랑스의 국기가 되었다.
의의
나폴레옹의 정복전쟁 과정에서, 프랑스 혁명 정신(자유, 평등, 박애) 이 유럽 전 지역에 전파됨 → 유럽의 자유주의, 민족주의 운동을 촉진함 → 빈 회의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서 영국, 러시아, 오스트리아 등이 만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