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고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글을 실어봅니다. 이승만 박정희 하면 무슨 역적이나 되는 양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런 생각은 옳지 않죠. 이 나라가 오늘이 있게 된 역사에 대해 잘한 건 잘 한 거고 못한 건 못한 겁니다.
우리 개인도 공과가 있듯이 자기 색깔을 갖고 바라보는 건 선 그라스를 끼고 물체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이분이 쓴 글을 보면 우리나라에 추락하는 경제성장을 일으킨 동기를 박정희 대통령의 “사채동결조치” 때문이랍니다.
너무 비싼 이자 때문에 기업들이 도산 위기에서 벗어나 경제성장을 이루게 되었답니다. 물론 거기엔 억울한 사채업자들의 희생이 있었죠, 이런 독재가 있었기에 오늘이 있었음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마음이 있기를 바래봅니다. 그 아래 일본 대학생들의 평가도 읽어보면서...
‘비가 오면 생각나는 사람’ - 석산 -
1973년 대한민국 재벌의 탄생… 1973년은 1차 오일 쇼크로 전 세계의 경제성장이 멈췄던 해이다. 승승장구하던 미국, 일본, 북유럽 국가들은 1973년을 기점으로 성장률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재벌기업들은 1973년을 기점으로 계열사가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1972년 8월 3일 박정희 대통령이 발표한 “사채동결조치” 때문이다. 믿기진 않겠지만 지금 대한민국을 이끄는 대기업 현대와 삼성과 LG 같은 기업도 그 당시엔 모두 사채 빚에 허덕이며 밤마다 부도를 걱정하면서 회사를 운영해야 했다.
은행이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엔 국민들은 저축을 할 여유가 없으니 은행엔 돈이 없었고, 대부분의 돈은 일제 시절부터 어둠의 방법으로 돈을 끌어 모은 사채업자들이 대한민국의 돈을 소유하고 있었고, 그 당시 대한민국에서 기업을 하려면 이들에게 돈을 빌리지 않고는 사업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엔 사채에 대한 규제도 없었으니 이자는 매우 비쌌고, 기업이 열심히 일해서 사채업자들에게 돈을 가져다주는 꼴이었다. 하지만 사채업자들은 조직폭력배는 물론 유력 정치인들과 연계되어 대한민국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손을 댈 수 없었는데..
박정희 대통령은 전 세계적인 불황 속에서 기업활성화를 위해 사채 빚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판단, 1972년 8월 3일 전격적인 사채동결조치를 발표하는데 이는 지금까지 기업들이사채업자에게 빚졌던 계약관계를 모두 무효”로 만든 것이다. 이는 분명 반민주적이고 폭력적인 조치였다. 사채업자들의 권리를 빼앗은 것이다.
하지만 사채 빚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던 기업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야당과 일부 언론은 독재라며 박정희 대통령을 비난했고, 사채업자들의 저항도 극심했다. 그들과 연결된 정치인, 조직폭력배도 같이 합세하여 대한민국은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혼돈에 빠지고 만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1972년 10월 유신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10월 17일 국회해산 및 헌법을 정지시키고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 1972년 12월 27일 국민투표를 통해 91.5%의 지지로 제3공화국 헌법을 파괴하고 유신시대가 시작된다.
그 결과, 지하에 숨어 있던 돈은 은행으로 들어갔고, 기업들의 자본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은 1971년 39억원에서 1973년 545억원으로 급증했으며, 1973년 1분기 GNP 성장률은 전년 대비 19% 상승했다. 단 1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사채업자들에게 은행에 돈을 넣고 기업에 투자하면 돈의 출처를 묻지 않을 것이며 세금도 감면해 줄 것이라고 했고, 기업들에게는 최대한 더 많은 자회사를 만들고 일자리를 창출하면 세금 혜택을 주는 방법으로 경제 활성화를 이끌었다.
그때 구성된 것이 대한민국의 성장을 이끈 30대 그룹이다. 대한민국 재벌은 이렇게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탄생하게 되었고, 비정상적인 성장을 이루게 된다. 대한민국의 경제의 꽃은 이렇게 피었다.
사람들은 박정희 대통령을 이야기할 때 경제는 발전 시켰지만, 독재는 잘못했다”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는 모순이다. 독재가 아니었다면, 사채업자들을 막을 수도, 비정상적인 경제조치도 취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을 바꾸기 위해 사회를 뒤집고, 그로 인해 피를 흘렸고, 발전했다.
단순하게 잘한 것, 못한 것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말했다.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 그는 사채동결, 유신독재와 같은 비정상적인 조치를 통해서라도 기업을 활성화 시켜야 한다고 생각했고, 나라의 백년대계를 위해 모든 비판을 감수하고 독단적으로 나라의 정책을 추진했다. 그는 그것이 옳다고 믿었다.
그리고 현재 부국강병을 이룬 대한민국이 있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것은 없다. 결과만 있을 뿐이다. 혼란의 시대를 겪었고, 찬란하게 성장했다. 인류를 발전시키는 것은 다수의 군중들이 아니라 소수의 천재들이다. 연료가 없는 자동차는 움직이지 않는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연료를 넣고 시동을 걸어야 움직이는 것이다.
한국이 이루어낸 경제발전은 ‘한강의 기적’이 아니며, 한국인들이 뛰어나서도 아니다. 소수의 천재들이 있었고, 그들을 지휘한 지도자가 있었을 뿐이다. 한국에 기적은 경제발전이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존재이다. 그러한 천재 같은 지도자가 있었기에 기적 같은 부국강병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돌아보라! 지난 세월의 배고픔과 아픔과 슬픔들을... 보릿고개를 지나 온 6~70대여! 마음을 가다듬고 차분히 생각을 해 봅시다. 정말 누가 옳았고 옳은가?
‘일본대학생들의 박정희 관’ - 장진성 교수 -
도쿄 신주쿠에 있는 한국 음식점에서 일본 대학생들과 장시간 대화할 기회를 가졌다. 한국말을 잘하는 그들 때문에 우리는 서로 교감할 수 있었다. 국제외교정치를 전공하는 그들은 연세대와 고려대 유학경험도 가지고 있었다.
북한이 해안포를 발사하면 그 소리가 한국에서 보다 더 크게 들리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그만큼 안정된 질서와 기나긴 평화에 체질화 된 일본인들 이어선지 분단 상황이면서도 드라마틱한 이웃의 한국 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컸다.
나는 한국역사에서 가장 존경할 만한 인물이 누구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놀랍게도 일제히 박정희! 라고 합창했다. 한국 대학생들에게서도 잘 듣지 못한 말을 일본 대학생들에게 듣는 순간, 전율 같은 감동이 솟구쳤다.
그들은 우선 박정희 대통령의 가장 큰 장점을 "청렴함"이라 했다. 미리 준비하고 서거한 것도 아닌, 총에 맞아 급사했는데도 자기와 가족을 위한 비자금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과거에 일본이 3억 달러를 원조했을 때도 필리핀이나 다른 나라 대통령들 같은 경우 그 돈을 횡령하여 혼자만 부자가 된 반면, 박대통령은 고스란히 국민을 위한 경제개발에 돌렸다는 것이다.
나는 어설픈 상식으로 김일성은 세습권력을 위한 독재를 했다면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개발을 위한 독재를 했다며 분단시대의 두長期(장기) 체제를 비교했다. 그러자 우리나라에선 개발독재라는 표현도 일본 대학생들은 개발독선(獨善)이라고 했다.
박대통령이 비록 밀어붙였지만 결국은 옳지 않았느냐며 오히려 그때 고속도로를 반대했던 이른바 민주투사들이란 사람들이 과연 역사 앞에 진실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전기를 아끼느라 청와대 에어컨을 끄고 파리채를 들었던 사실이며 서거 당시 착용했던 낡은 벨트와 구두, 화장실 변기에 사용했던 벽돌까지 그들은 박대통령 일화를 참으로 많이 알고 있었다.
누구에게 들었는가 물었더니 박대통령을 연구하기 위해 자료를 찾던 중 '조갑제 닷컴'에서 출판한 박정희 전기를 모두 읽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때 우리 한국 대학생들 중13권에 이르는 그 방대한 전기를 끝까지 읽은 학생이 도대체 몇이나 될까 하고 속으로 생각해 보았다.
그들은 박정희 대통령 덕에 살면서도 그 위업을 경시하는 한국의 현대사를 편향된 일방적 민주주의라고 규정했다. 잘한 것은 잘했다고 평가하는 것이 솔직한 역사 인식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한국은 민주화의 역사만을 정당화한다고 했다.
한강의 기적이라 자처하면서도 정작 한강에는 그 상징물이 없는 나라이다. 박정희 대통령 동상을 그 자리에 세우는 것이 바로 역사정립이고 후대의 예의가 아니겠냐며 한국은 일본의 과거를 자꾸 문제 삼는데 우선 저들의 현재부터 바로 세우라고 비판했다.
만약 박정희 대통령 같은 인물이 먼 옛날이 아니라 우리 부모 세대에 일본을 구원했다면 자기들은 우리의 가까운 역사로 자부심을 가지겠지만 한국 젊은이들은 그렇지 않다며 매우 이상해했다.
그러면서 한국에 있을 당시 한국 대학생들과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논쟁했던 이야기를 했다. 한국 대학생들이 생각하는 박정희는 독재자일 뿐이고 왜 독재를 하게 됐는지, 그 결과가 과연 옳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도, 분석하려고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들의 주장은 논리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사고의 형식과 틀에 의존한 교과서 같았다. 박정희를 부정하면 마치 민주화 세대인 것처럼 자부하는 한국의 대학생들을 보니 아직도 민주주의를 모르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광우병 촛불시위에 대해서도 웃음으로 비판했다. 이념이나 국민건강 문제에 대한 우려를 떠나 시위자들의 사회적응 심리부터가 잘 못됐다는 것이다. 일본은 어디 가나 스미마셍으로 통한다.
남에게 불편을 줄 때는 물론, 부를 때도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있다. 그래서 미안하지 않기 위해 거리에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리지 못하고 공동장소에서 큰 소리로 말하지 못하며 자기 집 앞은 깨끗이 청소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잦은 시위들을 보면 남들에게 불편을 끼쳐서라도 자기들의 뜻을 반드시 관철하겠다는 잘못된 국민정서의 결정판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용인되는 사회, 아니 법치에 도전해도 된다는 시민의식이 바로 한국의 대표적인 후진성이라고 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일본의 한류열풍에 대한 이야기로 즐겁게 술잔을 나누었다. 나는 한국에 대한 애정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할 줄 아는 일본 대학생들을 위해 오늘 밥값은 내가 내겠다고 했지만 그들은 더치페이가 민주주의라며 각자 지갑을 열었다.
(받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