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과 우물은 어떻게 다를까. 샘은 자연 그대로 솟아나는 물이다.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물길을 타고 흐르다 숨구멍에서 퐁퐁 솟는 게 샘이다.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는” 옹달샘이 바로 샘이다. 샘을 한자로 泉(천)이라고 쓰는데, 물이 퐁퐁퐁 솟아 내리면서 하얗게 보이는 모습(白ㅆ水)을 형상화한 것이다.
반면 우물은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어 정착하기 위해 힘들여 파서 나오는 물이다. 우물을 파면 통상 아홉 집 안팎이 모여 산다. 우물은 井(정)인데 원래 한자는 丼(정)이었다. 井은 땅을 판 뒤 물이 솟아도 우물 안벽이 무너지지 않도록 쌓은 석벽 또는 목벽 모양을 본뜬 것이며, 가운데에 있는 ㆍ이 바로 물구멍이다. 우물은 보통 사람 키의 10배 정도까지 판다. 그래서 “열길 물 속은 아라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생겼다.
◆우물의 3대 가르침
우물 井은 정전법(井田法)의 기본이 됐다. 정전법은 900묘(畝)의 땅을 100묘씩 9개로 나누어, 8가구에게 100묘씩 사전(私田)으로 분배한다. 중앙에 있는 100무는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경작해서 공동경비에 충당하는 공전(公田)이다. 농사철이 되면 8가구가 공동으로 공전에서 먼저 일을 한 뒤 제비뽑기 등으로 순서를 정해 돌아가면서 공동으로 작업한다. 각자의 사전에서 일할 때 술과 음식 등 필요한 경비는 그 사전 주인이 담당한다. 결국 공전의 9분의 1과 사전의 경작경비를 합해 10분의 1이 공동경비, 즉 세금으로 내게 된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기반을 두고 기독교 등에서 행해지고 있는 십일조(十一條)의 기원과 정전법이 일맥상통한다.
정전법의 바탕이 된 우물은 사람들에게 3가지 가르침을 준다. 첫째 고르게 아낌없이 준다는 점이다. 누구나 우물에 가서 물을 마시고, 빨래를 하고, 등목을 한다. 우물이 나누는 덕은 어진 임금이 백성들에게 베푸는 은택(恩澤)으로 비유된다. 부자라고 지위가 높다고 특별히 대우하거나 가난하고 낮은 지위라고 차별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물에는 뚜껑을 만들어 덮지 않는다.
둘째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過猶不及(과유불급)의 절제다. 우물은 넘치지 않는다. 사람들이 물이 필요할 때 와서 물을 퍼내면 그만큼 다시 솟는다. 우물 아래 논이 있어 밤낮으로 물을 대야 하는 농사철에는 우물과 벽이 만나는 곳에 물구멍을 내 물이 계속 솟게 한다. 벼를 거둬 논물이 필요 없는 가을과 겨울에는 물구멍을 막는다.
셋째 함께 사는 공동체에서 지켜야 할 윤리다. 우물은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해 공동으로 판다. 나만 편하자고 공동작업에서 빠지면 우물물을 마실 수도 없다. 또 해마다 가을걷이가 끝난 늦가을에 물을 모두 퍼낸 뒤 벽과 바닥을 깨끗하게 청소한다. 1년 동안 가라앉은 나뭇잎이나 이끼 등을 없애야 물구멍이 막히지 않고, 다음 한 해 동안 안심하고 마시고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물을 함께 관리하지 않으면 물구멍이 막혀 더 이상 물이 솟지 않고, 사람도 살 수 없어 떠날 수밖에 없다. 사람이 살지 않으니 항아리는 깨져 된장물이 흐르고, 우물물이 없이 새들이 날아와도 목을 축일 수 없어 쓸쓸하기만 하다. 그래서 공자는 “혁명을 일으켜 나라를 바꿀 수는 있어도 우물을 바꿀 수는 없으니 굳건한 중도로 정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향약과 쌀계의 바탕=우물
지금은 역사책 또는 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것으로 향약과 쌀계라는 게 있었다. 농촌에서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우물의 가르침에 바탕을 둔 향약과 쌀계가 관습법으로 행해지고 있었다. 향약은 조선시대 향촌사회의 자치규약이다. 조선시대 최고의 유학자로 평가받아 1000원짜리와 오천원짜리 지폐에 등장하는 이황과 이이 등이 중국의 여씨향약(呂氏鄕約)을 받아들여 보급하는데 노력했다.
향약의 4대 덕목은 법과 형벌이 아니라 도덕과 자발적 참여가 바탕이다. 좋은 일은 서로 권하고(德業相勸, 덕업상권), 잘못은 서로 바로 잡아주며(過失相規, 과실상규), 예의를 지켜 서로 사귀고(禮俗相交, 예속상교), 어려운 일에 닥치면 서로 도와준다(患難相恤)는 것이 그것이다. 마을마다 어르신이 중심을 잡고, 젊은이들은 어르신들을 어려워하면서 예의에 벗어나지 않은 행동으로 힘을 합쳐야 지을 수 있는 농사일을 함께 했다.
향약이 향촌의 전반적인 자치규약이라면 쌀계는 여섯 집이 모여 경제적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고 자산을 관리하는 자발적 (저축)은행이었다. 자녀결혼이나 부모상 등으로 목돈이 필요한 집과 지금은 여유가 있으나 몇 년 뒤에 논이나 밭을 사려고 계획하는 집이 모여 쌀계를 만든다. 쌀계 규모는 쌀 30가마가 보통이고 가끔 50가마 계도 있다. 100가마 이상은 잘 만들어지지 않았다.
가장 일반적이었던 30가마 쌀계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처음 계를 만들 때 계 타는 순서를 정하고 해마다 내야 할 쌀을 규정한 계문서를 작성한다. 적용이율은 연20%(2부)다. 첫해엔 다섯 집이 쌀 6가마씩 내고 첫 번째 첫 번째 사람은 30가마를 갖는다(계 탄다). 이듬해엔 첫해에 계 탄 사람은 10가마8말을, 나머지 4사람은 4가마8말을 내 둘째 순번 사람이 30가마를 탄다. 쌀 30가마를 마련하는데 부담하는 쌀은 맨 먼저 계탄 사람은 42가마, 두 번째는 47.2가마다. 맨 마지막에 계타는 사람은 12가마만 부담하고 30가마를 마련할 수 있다.
◆말로만 하는 協治는 가라
향약과 쌀계는 인구이동이 거의 없고 벼농사가 주된 산업이었던 공업화이전의 사회에서 작동되던 사회원리였다. 몇 대에 걸쳐 난 곳에서 살아야 하니, 동네 사람들끼리 한 집안처럼 지낼 수밖에 없었다. 동네 규칙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면 한 동네에서 살 수 없어 쫓겨난다. 쫓겨난 사람은 다른 마을에 쉽게 들어갈 수 없다. 그러니 동네에서 한 약속을 어기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 그러니 아무런 형벌규정이 없더라도 가난한 살림에 30가마, 50가마의 쌀계가 아무런 탈 없이 수백 년간 이어져 내려왔다. 농업사회에서 적용되던 윤리이기는 하나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체하는 21세기에도 충분히 배워 적용할 수 있는 확장성이 무한하다.
요즘 정치계에서는 때만 되면 협치(協治)라는 말이 유행한다. 집권당이 야당과 함께 정치를 하겠다는 것이다. 협치를 하려면 상대방을 나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인정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서 상대방을 이용하려고 하면 협치는 이뤄지지 않는다. 말로만 협치를 앵무새처럼 되풀이 하지 말고, 우물의 3대 가르침을 진정으로 실천해야 협치를 이룰 수 있다. 그게 정치와 경제가 함께 살아 75년 동안 이어진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한국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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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경자년 건강하시고 복 듬뿍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