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성소에서 주님을 뵙고
주님의 권능과 주님의 영광을 봅니다.
[시편 63:2]
시편63편은 다윗이 '유다광야'에 있을 때 지은 시다.
9절에 '나를 죽이려고 노리는 자'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쫓겨서 광야로 피신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윗은 그곳에서 하나님을 뵙고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광야는 '거룩한 장소(성소)'다.
시인이 광야를 성소로 만들어갈 수 있게 한 것은 '기억'이다.
이전에 베풀었던 주님의 은총을 헤아리며 되새겨보니, 주님은 '한결같은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분이시다.
이 한결같은 사랑은 '생명(살아가라는 명령)'의 근거가 된다.
이런 하나님의 은총을 되새김해보니 자신을 사로잡고 있던 두려움과 염려가 사라지는 것이다.
에머슨은 '군중 속에 살되 고독할 때의 독립성을 갖고 살라'고 권고한다.
우리의 일상이 펼쳐지는 이 세상이 곧 광야이며, 광야에는 시험이 있기 마련이다.
세상은,
우리처럼 생각하고, 믿고, 먹고, 마시고, 입으라고 유혹한다.
유혹자가 광야의 예수님을 유혹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 유혹은 집요하고 강력하다.
이러한 유혹으로부터 벗어나는 단초는 '침묵(홀로, 고독, 기도)'이다.
자기만의 골방을 갖는 일은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골방은 물리적인 장소가 아니어도 된다.
광야가 성소가 되듯, 우리의 일상은 저마다의 골방을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다.
골방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하나님 앞에 홀로서서 침묵하고 기도하라.
그리고 고난의 때를 기억하고, 그때 어떻게 도우셨는지를 기억(6)하라.
그때 주님의 날개 그늘(7)이 머리 위로 펼쳐질 것이다.
이것을 오롯이 느낄 때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다.
마음을 모아 하나님을 찬양하는 순간,
주님께서 비틀거리는 나의 손을 붙잡아 주시므로(8),
넘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안에 있는 두려움과 공포는 사라지는 것이다.
이 순간,
우리를 두려움과 공포로 몰아가고자 했던 세력은 땅 아래 깊은 곳으로 떨어질 것(9)이다.
우리는 광야같은 세상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그곳이 바로 주님께서 임재하시는 성소다.
광야같은 세상이 곧 우리의 성소인 것이다.
내가 머무는 곳, 그곳을 성소로 만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