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모란
―운수재 풍경·26
/ 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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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재에 백모란이 온 지 반 세기 가깝다
아내를 좋아하던 노 권사님 한 분이
아파트로 이사를 하면서 당신이 기르던
이 모란을 우리 집 뜰에 옮겨 놓고 가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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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이 필 무렵이면 당신의 모란을 보려
우리 집엘 찾아오시곤 했는데
그 옛 주인 떠난 지 이미 오래 되었건만
그 소식도 모르고 모란은 매년 잘도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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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연전에 이 백모란을 이렇게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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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빛깔이 너무 요염해
지상에 유배된 백모란//
황홀한 빛깔을 다 앗기고
시인의 뜰에 선 맑은 소복이여,//
흰빛이 이리 고움을
천상이 미처 몰랐구나//
오늘은 나를 이리 홀렸거니
어느 나라로 또 쫓겨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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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래와 같은 설화를 만들어 긴 주(註)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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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백모란은 원래 흰빛이 아니라 찬란한 빛깔의 요염한 꽃이었는데
요염한 그 빛깔로 천상을 어지럽힌다고 해서 상제가 그 화려한 빛깔을 다 빼앗고
지상으로 귀양을 보냈다.
그런데 지상의 한 시인이 그 흰빛에 그만 넋을 잃고 허덕이고 있으니
이 어인 일인가? 그 흰빛의 황홀을 상제는 미처 몰랐던가?
아마도 천상의 상제는 이 백모란을 또 어느 세상으로 다시 유배하게 될지 걱정스럽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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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올해는 모란과의 한잔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길 가다 남의 집 담을 넘어온 모란이를 훔쳐보고 끝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