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목암(示牧庵)
목암에게 보이다.
無生歌一曲무생가일곡 平平平仄仄
遠峀夕陽紅원수석양홍 仄仄仄平平
家山牛背臥가산우배와 平平平仄仄
吹面落花風취면낙화풍 仄仄仄平平
<벽송지엄(碧松智儼>
무생의 노래 한 곡조
먼 산 석양 붉고
고향 산에 소 등에 눕자
꽃 잎 떨구는 바람 얼굴 스친다.
*시의선소사(示義禪小師)
의선소사에게 보이다.
一衣又一鉢일의우일발 仄仄仄仄仄
出入趙州門출입조주문 仄仄仄平平
踏盡千山雪답진천산설 仄仄平平仄
歸來臥白雲귀래와백운 平平仄仄平
<벽송지엄(碧松智儼>
옷 한 벌, 발우 하나로
조주 문을 드나 들었네,
천 산의 눈 다 밟고 난 뒤에
이제 돌아와 흰 구름 위에 누웠다네!
*시진일선자(示眞一禪子)?<雨日)?
진일선자에게 보이다. 비오는날.
花笑階前雨화소폐전우 平仄平平仄
松鳴檻外風송명함외풍 平平仄仄平
何須窮妙旨하수궁묘지 平平平仄仄
這箇是圓通저개시원통 仄仄仄平平
<벽송지엄(碧松智嚴>?
꽃은 뜨락에
내린 빗물에 미소짓고
소나무는 난간 밖
바람에 운다.
어찌
기리도 오묘한 뜻
찾아 헤매는가?
목전에
이 속에 바로
낱낱이 원통의 소식인 것을!
이 세 게송(偈頌)은 벽송지엄(碧松智嚴) 선사님의 오언절구(五言絶句)의 게송이다. 세 게송 모두가 제자들에게 보여주는 게송(偈頌) 인듯싶다. 시진일선자(示眞一禪子) 게송은 소요태능(逍遙太能) 선사의 게송으로도 나온다. 자료는 더 찾아보아야 진위(眞僞)는 가려질 것으로 본다. 그래서 사성운목(四聲韻目)을 맞추어 보았다. 첫 번째 시의선소사(示義禪小師) 게송은 오언절구(五言絶句) 게송으로 평기식(平起式) 게송이고 압운(押韻)은 홍(紅), 풍(風)은 상평성(上平聲) 동통(東統) 운족(韻族)이다. 오언절구(五言絶句) 측기식(仄起式) 게송인데 근체시(近體詩) 작법(作法)에 평측(平仄) 운목(韻目)도 동통(東統) 운족(韻族) 평성(平聲) 한 운족(韻族)으로 정확(正確)하게 작게(作偈)한 게송이다. 소요태능 선사 게송 이후 두 번째 근체시(近體詩) 게송을 확인(確認) 했다, 나머지 두 게송도 평측(平仄) 운(韻)을 맞추어 보자, 두 번째 게송은 시의선소사(示義禪小師)에 보이는 오언절구(五言絶句) 측기식(仄起式) 게송이다. 압운(押韻)은 문(門)은 상평성(上平聲) 산통(刪統) 운족(韻族)이고, 운(雲)은 상평성(上平聲) 문통(文統) 운족(韻族)이다. 두 번째 게송은 오언절구(五言絶句) 측기식(仄起式) 게송인데 압운(押韻)은 상평성(上平聲) 두 운목(韻目) 운족(韻族)으로 작게(作偈) 하였으나 기승전결(起承轉結) 평측(平仄)은 근체시(近體詩)로 보면 맞지 않다. 기구(起句)가 전부가 다 측성(仄聲)이다. 세 번째 게송은 오언절구(五言絶句) 측기식(仄起式) 게송이다. 압운(押韻)은 풍(風), 통(通)은 상평성(上平聲) 동통(東統) 운족(韻族)이다. 오언절구(五言絶句) 측기식(仄起式) 평측(平仄)을 맞추어 보니, 기승전결(起承轉結) 평측(平仄)은 근체시(近體詩)에 맞게 작시(作詩)하였다. 세 번째 게송은 소요태능(逍遙太能)의 게송으로도 나오고 벽송지엄(碧松智儼) 선사님의 게송으로도 나온다. 게송 글자도 한자도 틀리지 않고 두 선사님의 게송으로 나오기 때문에 진위(眞僞)는 자료를 더 찾아봐야 알 것 같다. 똑같은 시제(詩題)를 100명에게 주고 시를 짓게 해도 100사람이 지은 시는 다 다른데 말이다. 정서 사고의 보는 관점 가치의 틀이 다르기 때문이다. 소요태능(逍遙太能) 선사의 시제(詩題)는 우일(雨日)이고, 벽송지엄(碧松智儼) 선사님의 시제(詩題)는 시진일선자(示眞一禪子)다. 게송 내용으로 보면 벽송지엄(碧松智儼) 선사님의 게송이라고 보기에는 기구(起句)에서 우일(雨日) 시제(詩題)를 파제(破題)를 하는 소요태능(逍遙太能)의 게송에 가깝다. 시(詩)나 게송(偈頌)은 기구(起句)에서 파제(破題)가 원칙(原則)이다. 벽송지엄(碧松智儼) 선사님께서도 첫 번째 게송을 보면 게송을 지을 때 근체시(近體詩)에 운통에 맞게 게송을 지으셨다. 두 번째 게송은 그렇지 않으나 다른 선사님과는 다르게 근체시(近體詩) 작법(作法)을 따라 게송도 작게(作偈)하셨으니 말이다.
벽송지엄(碧松智嚴) 선사님은 전북(全北) 부안(扶安) 출생(出生)이고, 속성(俗姓)은 송씨(宋氏)이다. 법명(法名)은 지엄(智儼)이고 법호(法號)가 벽송(碧松)이다. 계룡산(鷄龍山) 상초암(上草庵)으로 들어가 조징(祖澄)대사 밑에서 출가하고 직지사(直指寺)에서 벽계정심(碧溪淨心) 선사의 법을 이었다. 이씨조선(李氏朝鮮)은 숭유배불(崇儒排佛) 정책으로 많은, 도첩제(度牒制)를 폐지(廢止)시키고 스님들을 환속(還俗)시켰다. 벽계정심(碧溪淨心) 선사도 취처장발(娶妻長髮)로 환속(還俗)해서 황악산(黃岳山)에 들어가 고자동(古紫洞) 물한리(物罕里)라는 곳에서 초막을 치고, 시골 촌노(村老)마냥 은거(隱居)하며 여보살(女菩薩) 신도(信徒)와 함께 낚시도 하고 땔나무 싸리 광주리를 만들어서 생활하면서 살았다. 벽계정심(淨心碧溪) 선사는 금산 최씨(崔氏)이고 법명은 정심이고 법호는 벽계(碧溪)다. 언제 누구에게 출가했는지 자세한 것은 알 수가 없고 구곡각운(龜谷覺雲) 선사의 법(法)을 이어받았다. 고려 공민왕 이전에 명나라에 가서 설당총통(雪堂摠統) 화상의 법을 받았다고 한다. 벽송 지엄 선사는 벽계정심선사(碧溪淨心禪師)가 법통(法統)을 이은 고승(高僧)임을 알고 찾아가서 도를 배우려고 왔다고 뜻을 말했다. 정심선사(淨心禪師)가 나는 도(道)를 모르고 갖고 있지도 않네, 그대가 보다시피 먹고 살기도 바쁘고 그대가 거처할 방(房)도 없지않는가? 그러니 어서 가시게나! 벽송선사(碧松 禪師)는 받지 않으려는 뜻이 확고(確固)함을 알고 나서 도를 배우려는 구도 욕심에 그날로 토굴(土窟)을 따로 짓고 벽계정심(淨心禪師) 선사와 같이 생활하며 나무도 해 다가 김천시장(金泉 市長)에 가서 팔고 광주리도 만들어서 시장에 팔아 3년간을 죽을 고생 가진 노역을 다 하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부처님 가르침은 무엇이고, 도는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물을 때마다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한마디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이쯤 되자 벽송지엄선사도 법을 구하는 구법정신(求法精神)도 퇴굴심(退屈心)이 났다. 이렇게 도(道)도 배우지 못하고 허송세월(虛送歲月)로 보낸 것이 아닌가? 자문(自問)하고 떠나기로 마음을 먹고, 여보살(女菩薩)에게 가겠다고 하면서 내가 이곳에 올 때는 도를 배우려고 왔는데, 도는 가르쳐 주지도 않고 3년간 일만 시키니, 내가 머슴 고용살이도 아니고 가겠다고 짐을 싸서 가지고 나오니. 가드래도 스님이나 뵙고 가지요,
보살이 만류해도 소용없이 떠났다. 점심때 정심선사가 산에 나무를 해가지고 오자, 보살이 지엄 수좌가 방금 떠났다고 했다, 도는 가르쳐 주지 않고 일만 잔뜩 부려먹었다고 화가 나서 떠났다고 했다. “저런 무식한 놈! 봤나? 내가 도를 왜? 안 가르쳐줘? 그놈이 도가 뭔지 몰라서 그럴지! 자고 나서 인사할 때도 도를 가르쳐주었고, 산에 가서 나무할 때도 싸리 광주리 만들 때도 도는 꼭 가르쳐 주었는데, 이 밖에 따로 도가 있나? 있다면 그건 도가 아니고 번뇌지” 벽계 정심사가 집 앞 언덕을 보니, 벽송 수좌가 막 산등성을 오르고 있었다. 벽송아!,“ 벽송아!~ 야” 이놈아~ 가드래도 도는 받아 가야 할 것 아니냐? 벽송 수좌가 불러대는 정심선사 고함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때 정심선사가 돌아보는 벽송을 향해서 주먹을 불쑥 내밀며 자~ 내 법도 받아라! 그 순간 지엄선사가 확철대오(廓徹大悟) 깨달았다. 삼년 고생 고생이 결실을 보는 순간이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고승대덕(高僧大德)이었던 벽계정심(碧溪淨心) 선사는 왜? 취처장발(娶妻長髮) 환속(還俗)했는가? 연유(緣由)다. 이조(李朝) 태종(太宗) 불교사태(佛敎沙汰)로 머리를 기르고 취처(娶妻)하고 환속 속가로 나온다. 환속(還俗) 이름도 “거덜 첨지라고 부르고 예쁘게 생긴 과부(寡婦) 여신도(女信徒)를 아내로 얻어 산다. 그런데 부인 거벙네는 1년을 살아도 과부요, 2년 3년을 살아도 이름만 영감 부부지 밤은 남남인 외로운 과부신세(寡婦身世)였다. 세상 세태가 그러하니, 은거환속(隱居還俗)이다. 참다못한 여인은 스님! 저는 오늘 갈랍니다. 왜? 가시려고 하나? 첨지께서는 이름만 영감이지 저는 항상 과부 신세를 면치 못하니, 이렇게는 더, 이상 살 수가 없네요. 그렇다면 할 수 없지, 그러나, 저러나 3년 동안 밥 빨래 해주느라고 수고(受苦)가 많았네, 그동안 수고비(受苦費)로 이 은 표주박 하나 주겠네, 거벙네 여인은 그 표주박을 받아가지고, 나오다가 동구 밖 옹달샘에서 목이 말라 물 한 모금 떠 마시고 팔자 신세타령하다가 옹달샘가 나뭇가지에 표주박을 걸어 놓고 떠났다.
3년간 이곳저곳을 떠돌아 찾아다니며 노후 말년 사랑할 영감 하나 얻어보려고 하였으나 누구 하나 살자는 남정네가 없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래서 같이 살아도 과부 신세지만 그래도 과부 신세를 면하려면 거벙네 첨지 영감이 낫겠다, 싶어서 생각이 났다. 그래서 3년 만에 또 다시 거벙네 첨지 영감을 찾아와서 인사를 드렸다. 내 그대가 다시 올 줄 알았네! 어떻게 아셨소? 그 이유를 알고 싶으신가? 3년 전에 내가 준 표주박은 어찌했나? 물었다, 부인 거벙네는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그러면 그 자리에 가서 보시게나, 아직도 그대로 있을 걸세, 어째서요? 내가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서 중이 되기를 5백 번이나 하였는데, 처음 중이 되면서 지금까지 남이 주지 않는 것은 가져본 일이 없네. 그래서 그 인덕(仁德) 인과로 무엇이든 내 것, 이라는 이름만 지어놓으면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한 다네. 그러니, 부인도 금 생에 만난 인연법(因緣法)으로 내 것이니, 아무도 손대지 못한 것이지. 첨지(淨心禪師) 영감 말을 듣고 부인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밑져봐야 본전임 셈 치고 옹달샘 가에 가보았다. 3년 전에 나뭇가지에 버리고 간 표주박이 그대로 있었다. 이것을 본 과부댁(寡婦宅) 인과법칙(因果法則)이 털끝만치도 어긋남 없이 여법(如法)함을 믿게 됐고, 정심선사(淨心禪師)를 따라 죽을 때까지 받들어 모셨다는 선화(禪話)다. 벽계정심(碧溪淨心) 선사(禪師) 법맥(法脈) 도맥(道脈)은 이렇다. 태고보우(太古普愚)--환암혼수(幻庵混修)--구곡각운(龜谷覺雲)--법계정심(碧溪淨心)--벽송지엄(碧松智嚴)--부용영관(芙蓉靈觀)--서산휴정(西山休靜)--부휴선수(浮休善修)로 법통(法統)이 계승(繼承)되었다고 전한다. 벽계정심(碧溪淨心) 선사(禪師)는 선맥(禪脈)은 벽송지엄(碧松智嚴) 선사에게 전하고, 교맥(敎脈)은 정연법준(淨蓮法俊)에게 전법(傳法)했다. 조선불교(朝鮮佛敎) 500년 탄압(彈壓)으로 실낱같은 법통법맥(法統法脈)이 이렇게 이어져 온 것은 선사(禪師)들의 위법망구(爲法忘軀) 구법행각(求法行脚)이 이루어 놓은 결실(結實)이다. 인연법(因緣法)이라는 것이 ”참 묘(妙)하지 않는가? 그때 벽송지엄선사가 벽계 정심선사를 찾아가지 않았다면 어찌 됐을까? 오늘은 벽송지엄(碧松智嚴) 선사(禪師)의 게송(偈頌)을 평측운목(平仄韻目)을 맞추어 반추(反芻)했다. 여여법당 화옹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