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버지와 함께 울었다
라임열 (羅林烈)
증언(證言) - 라임열(羅林烈) - 나는 아버지와 함께 울었다
1. 전쟁 가운데서도 나를 지켜주신 하나님
1 6.25 전란이 일어났던 1950년 8월 30일, 괴뢰군의 박격포탄이 대구 시가지에 떨어지고 있을 무렵 나는 학도병의 일원으로서 참전하게 됐다. 입대한 지 일주일 만에 최일선인 포항지구 전투에 참전한 것이다. 충분한 훈련도 없이 실전에 배치된 것이다. 19세의 학생의 몸으로 입대하여 24세에 만기 제대를 하기까지 생사의 갈림길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일을 이루 다 기록할 수가 없다.
2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전쟁터에서 털끝 하나 상함이 없이 안전하게 보호해 주신 하나님께 나도 모르게 감사하였다. 나는 유교의 가문에서 자랐기 때문에 기독교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3 1951년, 괴뢰군의 춘계대공세 때에 한국군의 일개 군단이 적에게 포위된 적이 있었다. 지휘계통은 무너지고 전의는 땅에 떨어졌다. 동서남북의 방위를 분간할 수 없는 칠흑 같은 밤에 마음이 허락하는 길을 따라 일주일 만에 용케 포위망을 벗어났다.
4 지휘관은 자기를 따라오라고 명령해서 많은 장병이 호응하고 있는데 내 마음속에서는 “그곳으로 가면 위험하다. 네가 가고 싶은 대로 가라”라고 하는 음성이 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5 한번은 김일성 고지의 전투 때이다. 이 고지는 괴뢰군이 난공불락을 자랑하는 요새로 되어 있었다. 김일성 고지는 1,200여 고지요, 아군의 최전방 고지인 가칠봉은 약 1,000 고지이어서 평시엔 몸을 노출시킬 수 없는 불리한 지형이다.
6 그러나 이날은 군단 포병의 화력으로 아침부터 하오까지 포격이 감행되어 적의 직사포 굴문이 막혀 버렸으므로 안심하고 가칠봉 고지에 십여 명이 넘는 장병들이 나와 적의 고지를 응시하고 있었고 어느 보병은 기관총으로 사격을 가하기도 했었다.
7 나는 사단의 관측장교와 한 팀이 되어서 이곳에 나와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의 마음속에서 “이곳에 있으면 위험하지 않느냐” 하는 소리가 들리는 느낌이 들어서 곧바로 낮은 곳으로 몸을 숨겼다.
8 바로 이때다. 별안간 적의 박격포탄이 우군 고지에 명중하여 5, 6명의 사상자가 생겼다. 신임 소위인 관측장교도 여기에서 전사하였다. 불과 1,2초 사이의 일이다.
9 나는 여기에서 관측장교를 대신해서 차질 없이 포격을 계속하여 작전을 수행한 공적으로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동기생들의 일부가 전속을 가기도 했으나 50명이 배속된 학병 동기 중에 마지막까지 살아서 제대한 학병은 나밖에 없었다.
10 나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동기가 되어서 대구 시내의 어느 감리교회를 나가게 되었다. 이때 나는 하늘이 살려주신 생명이기에 나보다 남을 위해 살아보리라 생각하고 신앙생활을 하였다.
11 대구는 신앙의 도시여서 봄 가을로 많은 교회에서 부흥회가 열리고 있었다. 거기에 여러 차례 참석해 보았으나 만족스러운 신앙을 정립하지 못하고 늘 안타까움을 갖고 있었다.
12 1955년 11월 경으로 생각된다. 이전에는 성결교회를 다니고 있었으나 이 무렵엔 통일교회의 식구가 되어 있었던 박마리아 씨(기성가정 최진호 씨 부인)의 인도로 누이동생과 함께 선생님을 뵙게 됐다. 이때 선생님은 7.4사건으로 옥고를 치르신 후 잠시 대구에 내려와 계실 때였다.
13 그러나 계속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 당시에 감리교회의 교적을 갖고 있었지만 동란 직후 미국에서 보내오는 구호품으로 목사와 교회의 제직 사이에 알력이 일고 있는 것을 보고 나는 교회와 차츰 멀어지고 있었다.
14 박마리아 씨가 오랫동안 이웃에 함께 살고 있었던 관계로 우리 집을 잘 알고 있었다. 그분은 6개월을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우리 집에 찾아와서 통일교회의 원리 말씀을 들어 보라고 권유하는 것이었다. 그 정성에 굴복하여 어머니를 비롯한 두 누이동생들과 막내동생을 데리고 다섯 명이 박마리아 씨의 뒤를 따랐다.
15 1957년 2월 3일, 주일이었다. 이날 예배에 참석한 이후에도 며칠간에 걸친 이요한 목사님의 원리 말씀을 듣고 실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첫째, 뜻을 이루기 위하여 섭리해 나오시는 그 하나님은 억울하고 원통한 사정을 갖고 계시는 불쌍한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16 둘째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인간의 잘못으로 초래된 억울한 죽음이라는 사실이며, 셋째로는, 다시 오시는 주님은 한국으로 2,000년 전 예수님과 같이 육신으로 탄생하신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17 그 말씀을 듣고 놀라움 속에 감격했던 일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다. 타관 땅으로 방황하던 자가 고향의 따뜻한 부모님의 품 안에 돌아온 심정이었다. 나는 나의 전 생명을 하늘의 뜻과 함께 할 굳은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첫댓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