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견인과 배교의 문제에서 어느 하나의 단일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한쪽에서는 신자라도 넘어질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경고하면서도, 다른 한쪽에서는 하나님이 신자들을 결코 넘어지지 않도록 지켜주신다고 약속한다. 이런 성경의 이중적 태도 때문에 사람들은 어느 하나를 확실하게 주장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 어떤 것이 성경의 가르침인가?
‘견인’(堅忍)은 참고 인내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칼뱅주의의 견인론에서 참고 기다리는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인간이 잘못하더라도 그를 구원하기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칼뱅주의는 견인을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견인’(堅忍)을 ‘견인’(牽引)으로 해석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는 마치 인간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견인차에 이끌려가는 자동차처럼 성도들을 구원으로 하나님이 끌고 가신다는 믿음을 갖게 한다. 이런 해석이 가능한 것은 아마도 칼뱅주의 사상이 전혀 배교의 가능성조차 인정하지 않는 신학적 논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반대로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견인하는 주체는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다. 참고 견디는 주제가 인간이므로 아르미니우스주의는 언제든지 배교가 현실적으로 열려있다. 따라서 인간이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을 지키지 못하고 인내하지 않는다면 구원의 반열에서 떨어져 나갈 수 있다.
하지만 성경은 견인의 주체가 하나님이며 동시에 인간이라고 말한다. 하나님도 우리를 붙들지만 인간도 하나님을 견고히 붙잡는 주체다. 따라서 견인의 주체는 이중 구조로 되어 있다. 하나님도 인간을 참고 기다려주시고, 인간도 하나님을 굳게 붙잡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된 신자가 배교할 가능성(can)을 열어두지만, 실제로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지는 않을 것(will not)임을 믿는다.
[회중주체적 조직신학], 462-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