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굴 지나다
이영백
어렴풋이 사람 살아온 삶이 마치 세상의 굴을 통과하는 기분이다. 인생 참 어쭙잖지만 태어나고, 유아기를 거쳐 인간 생활의 기본을 배우는 여러 단계에 산다. 학창기, 청춘 넘는 청춘의 홍역기, 결혼과 동시에 뼈 저리는 삶의 전쟁기, 소복소복 자식 늘고 재산 늘고 나이 늘고 그렇게 지나온 사람살이 행복기에서 황혼을 맞은 황혼기다. 한 사람의 인생 굴은 길고도 긴 굴임에 틀림없다.
굴은 설치되어 있다. 인생의 굴을 시작하다. 누가 만들어 주지 않아도 인생의 굴은 저마다 준비되어 있다. 그 굴속으로 아무런 증명서도 없이, 하이패스로 찍어 주지 않아도 모두가 꿀 발린 굴속처럼 찾아든다. 혹 처질세라 무수한 경쟁을 뚫고 사람들 모두가 무시무시한 굴속으로 자꾸 파고들어간다.
이제껏 상상도 못하던 해저터널인 거가대교 속으로 지난해 오가고 두 번 통행하여 보았다. 생전 처음 해저 굴속으로 지날 때는 두려움이 왔다. 처음엔 다리 위로 시작하다가 차츰 바닷물 속으로 진입하였을 때 바짝 긴장도 하였다. 그것이 시속표지인 80, 60, 50, 40이라는 속도표시가 나타나 더 무서웠다. 지금 생각해도 해저터널을 만들려고 생각한 사람은 최초로 누구인가? 그래도 다시 섬이나 육지로 올라왔을 때는 “아, 이제 살았구나.”하면서 안도의 숨을 내 쉬었다. 확실히 해저터널 통과는 새로운 경험이다. 한 번쯤은 경험하여 보시라.
요즘같이 좋은 시대를 만나 예전 88올림픽고속도로가 확장되어 “광대고속도로”라고 이름이 달라졌다. 하필 이름 좋은 것도 많을 텐데 광대가 무엇인가? 국토지리 시설명명에서 원칙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두문자를 사용하다보니 저절로 광주-대구에서 두문자로 “광대”가 되고 말았다. 光大가 예전의 광대인 줄 알았네. 확장된 그 고속도로를 통과하면 터널이 수도 없이 많다. 평지를 통과하여 고속도로 만들려면 토지 보상가가 비싸서 저절로 산 속을 뚫어 갈 수밖에 없는 것이 경제의 원칙일 것이다.
나의 인생 굴은 어떠한가? 난 학창기를 어렵게 보냈다, 중고를 모두 아르바이트 하고, 대학 비록 초급대학 2년제인 교육대학에 입학하였어도 아르바이트하였다. 생활비, 등록금을 버느라 1인 5중(대학생, RNTC4기 군대, 가정교사, 자취, 풍금치기)생활을 힘겹게 하였다. 발령이 나지 않아 “하처가(何處可)”로 기록하여 발령이 어디라도 나도록하여 두 달 기다려 발령이 났다. 1년 벌어 결혼하고, 교사 생활 8년 지나 퇴직하고 또 직업을 바꾸었다. 긴 터널 속에서 앞이 안 보이는 생활을 하며 정년 3년 두고 명예퇴직 하였다.
긴 터널에서 나와 지금 글을 쓰고 있다. 이제 터널 모두 지났는데 황혼이다.
첫댓글 엽서수필 시대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