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Ὀδύσσεια〉第五篇 神視之再開與歸途之再編
제5편 신의 시야 재개와 귀환 경로의 재편
【題詩】
海上孤影入神瞳 바다 위 고독한 그림자가 신의 눈에 들어오고
一途未定命先同 길은 정해지지 않았는데 운명은 먼저 같아지네
非送非留非偶遇 보냄도 머묾도 우연도 아닌데
人間行跡自成弓 인간의 행적이 스스로 활처럼 휘어지네
誰知風浪皆有意 바람과 파도가 모두 의도를 지님을 누가 알리오
不見自由亦無縱 자유도 방종도 보이지 않고
一人之旅成線索 한 사람의 여정이 하나의 단서가 되어
一步之內入天工 한 걸음 안에서 하늘의 설계로 들어가네
【本文】
오디세우스는 여전히 바다 위에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의 존재는 더 이상 단순한 떠돎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오랜 세월 동안 그의 항해는 방황처럼 보였다. 그는 섬에서 섬으로 이동했고, 폭풍에서 폭풍으로 밀려났으며, 신들의 뜻과 바다의 변덕 사이에서 흔들렸다. 겉으로 보기에 그것은 목적을 상실한 표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방황 속에 숨어 있던 어떤 질서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별들은 흩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멀리서 보면 하나의 성좌를 이룬다. 파도는 무질서하게 부서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깊은 바다의 조류는 거대한 방향을 갖는다. 마찬가지로, 오디세우스의 여정도 혼돈처럼 보였으나 실은 하나의 보이지 않는 중심을 향해 수렴하고 있었다. 그 자신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점점 더 명확한 방향성을 띠기 시작했다.
그 방향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전적으로는 아니었다. 인간은 자신이 선택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세계는 종종 선택의 형태를 빌려 필연을 수행한다. 오디세우스가 노를 젓는 것은 그의 의지였다. 돛을 올리는 것도 그의 판단이었다. 어느 해안을 향해 나아갈지를 결정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선택들 뒤에는 그 자신조차 볼 수 없는 더 거대한 흐름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는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끌리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 결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결정되어 가고 있었다. 그것은 외부에서 조정되지만 내부에서는 선택처럼 경험되는 운동이었다. 그래서 인간은 운명을 알지 못한다. 알아버리는 순간 더 이상 인간일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올림포스에서는 다시 신들의 논의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트로이 전쟁 당시의 회의와는 달랐다. 더 이상 도시를 무너뜨릴 필요도 없었고, 영웅들의 승패를 결정할 필요도 없었다. 이제 신들이 다루고 있는 것은 전쟁보다 더 미묘한 문제였다. 하나의 귀환. 단 한 인간의 귀향. 그러나 그 문제는 결코 작지 않았다. 왜냐하면 오디세우스의 귀환은 한 개인의 이동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균형의 문제였다. 트로이는 무너졌다. 전쟁은 끝났다. 그러나 세계는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다. 어딘가에 남겨진 마지막 매듭이 있었다. 그 매듭이 바로 오디세우스였다.
제우스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번개를 다루는 신이었지만, 실상 그가 다루는 것은 질서였다. 하늘과 땅. 신과 인간. 탄생과 죽음. 그 모든 것의 균형을 유지하는 존재였다. 그리고 지금, 그 균형은 미세하게 어긋나 있었다. 이타카에는 왕이 없었다. 페넬로페는 기다리고 있었다. 텔레마코스는 성장하고 있었다. 구혼자들은 궁전을 잠식하고 있었다. 모든 것은 계속되고 있었으나 완성되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마지막 돌 하나가 빠진 아치처럼. 전체는 아직 무너지지 않았지만 완전하게 서 있지도 못했다. 오디세우스의 귀환은 단순한 귀향이 아니라, 세계 질서의 마지막 빈칸을 채우는 일이었다.
아테나는 여전히 그를 보호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이 이해하는 보호와는 달랐다. 그녀는 그를 대신하여 싸우지 않았다. 그의 길을 모두 치워 주지도 않았다. 그를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지도 않았다. 그녀가 하는 일은 훨씬 미묘했다. 귀환이 가능한 최소 조건을 유지하는 것. 절망이 완전히 승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 희망의 불씨가 마지막 순간까지 꺼지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아테나의 보호였다. 신의 개입은 대개 기적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계속 인간으로 남을 수 있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여백에 가깝다.
반면 포세이돈은 여전히 저항하고 있었다. 그의 분노는 사라지지 않았다. 바다는 여전히 거칠었고, 폭풍은 여전히 길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어느새 그의 저항도 변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귀환 자체를 부정하려 했다. 이제는 귀환을 늦추고 있었다. 그 차이는 작아 보인다. 그러나 실은 결정적이다. 부정은 끝을 의미한다. 지연은 결국 도착을 전제로 한다. 포세이돈 자신도 완전히 인정하지 않았지만, 세계는 이미 귀환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운명을 멈출 수 없었다. 다만 늦출 수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바다는 여전히 격렬했으나, 그 격렬함 속에도 어딘가 피로가 깃들기 시작했다.
그 사이, 오디세우스는 계속 움직였다. 그는 방향 없이 떠도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이미 설정된 수많은 가능성의 경로 사이를 통과하는 존재였다. 어떤 길은 막혀 있었다. 어떤 길은 열려 있었다. 어떤 길은 돌아가야 했고, 어떤 길은 기다려야 했다. 그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선택들은 점차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하고 있었다. 마치 수많은 강줄기가 결국 하나의 바다를 향해 흘러가듯.
폭풍이 그를 덮쳤다. 하늘은 갈라지고, 파도는 산처럼 솟아올랐다. 배는 부서질 듯 흔들렸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세계가 움직일 때는 언제나 마찰이 발생한다. 새로운 질서가 형성될 때마다 오래된 질서는 저항한다. 폭풍은 그 저항의 형태였다. 운명이 길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필연적 마찰이었다. 오디세우스는 그것을 단지 시련이라 여겼다. 그러나 더 깊은 층위에서 그것은 귀환이 만들어지는 과정이었다.
그는 또 하나의 섬에 도착했다. 육지가 보였다. 모래가 보였다.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그는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이곳도 끝은 아니라는 것을. 이곳은 목적지가 아니다. 다음 이동을 위해 잠시 고정되는 좌표일 뿐이다. 그의 삶 전체가 이제 하나의 거대한 문장이 되어 가고 있었다. 섬들은 쉼표였고, 폭풍은 물음표였으며, 기억은 괄호였고, 희망은 아직 쓰이지 않은 마지막 마침표였다.
그리고 어느 날 밤, 별빛이 검푸른 바다 위에 흩어질 때, 오디세우스는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을 느꼈다. 무언가가 자신을 앞으로 밀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생존 의지가 아니었다. 고향을 향한 그리움만도 아니었다. 더 깊은 무엇이었다. 마치 자신보다 더 큰 이야기 속에서 자신이 한 문장을 맡고 있다는 느낌. 그러나 그는 그것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살아갈 수는 있어도, 그 전체 구조를 동시에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는 아직 전체를 보지 못했다. 바다만 보았다. 파도만 보았다. 별들만 보았다. 그러나 그 별들 너머에서, 그 파도들 너머에서, 그 긴 시간의 너머에서, 귀환이라는 거대한 구조는 이미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오디세우스는 알지 못한 채 그 구조의 중심을 향해 조금씩, 그러나 결코 멈추지 않고, 다가가고 있었다.
【篇末評】
이 편에서 귀환은 더 이상 인간적 선택이 아니다. 귀환은 “신적 질서가 세계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구성한 구조적 필수 경로”이다. 오디세우스는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꼭두각시도 아니다. 그는 “선택처럼 경험되는 구조 속의 인간”이다. 〈오디세이아〉는 이제 표류의 서사가 아니라 “조정된 귀환이 인간에게 어떻게 경험되는가”의 서사가 된다.
첫댓글 잠시 머무르면서
공부하고 갑니다.
더운 날씨에
잘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