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테의 돈으로 세상 읽기 84
비빔밥과 신호등
한글날은 1990년에 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가, 2013년에 다시 공휴일이 되었다. 한글날이 공휴일로 재지정 되기까지 한글학회의 노력이 컸다. 한글의 역사적·문화적 가치와 국가 정체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한글날이 공휴일로 제정되어 국민적 기념일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언어 유통과 사용 국가 경제력과의 상관관계는 흥미로운 주제다. 나타나는 현상은, 강력한 경제적 영향력을 가진 국가의 언어가 국제적으로 널리 사용된다는 사실이다. 경제 강국의 언어는 해당 국가와의 무역이나 비즈니스 기회를 찾기 위해 다른 국가에서 학습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영어는 전 세계 기업들이 채택하는 표준 언어로 자리 잡았고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에게 더 많은 취업 기회와 경제적 이익이 제공되고 있다.
최근 언어 유통과 관련하여 대두되고 있는 또 다른 주제는 디지털 기술과의 상관관계다.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특정 언어의 유통을 더욱 강화한다. 영어는 이미 디지털 기술과 정보통신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언어로 자리 잡았고, 많은 온라인 콘텐츠가 영어로 제공된다. 이는 영어가 정보의 생산과 유통에서 중요한 매개역할을 해 왔기 때문에 이러한 정보기술 용어들은 이미 다른 언어로 대체 불가능하다.
문화적 영향력과 소프트 파워가 언어 유통에 미치는 영향도 눈여겨봐야 한다. 문화 콘텐츠를 생산하고 배포할 능력이 크면 그들의 언어가 널리 유통되기 때문이다. 최근 해외에서 일고 있는 한국어 열풍이 좋은 예다. 한국어는 소위 K-팝, 한국 드라마, K-푸드 등 한류로 인해 배우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물론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확산하는 일은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국력과 그 나라의 문화적 영향력은 바늘과 실이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가 10월부터 한국어를 외국어로 채택하여 가르친다고 한다. 교내 외국어 교육 기관인 ‘랭귀지 센터’에서 이뤄지는 한국어 강의는 유럽권 8개 국가 언어를 포함하여 12번째 외국어다. 심지어 아프리카에서도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다. 그곳에서 운행되는 한국의 중고 버스는 부러 한글 지명을 지우지 않고 다니기도 한다.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한국어도 매력적인 상품이 되고 있다.
한국으로 유학 오는 외국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외국인 학생 수는 23만 명에 근접하여 전년 대비 14.8% 증가한 수치다. 현재 체류 외국인은 250만 명을 웃돌고 이중 절반은 취업자일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누구보다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길 열망하는 외국인들이다.
하지만 한국어는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괄시받는 선지자와 닮은 구석이 있다. 수많은 세계인이 매일 같이 한국을 향해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 있는데 정작 한국에서 한국어는 안녕하지 못하다. 거리의 간판은 국적을 알 수 없는 외래어투성이고 이름만으로는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기 어렵다.
알아보기 힘든 것이 어디 간판뿐이겠는가. 디지털 기술발달과 사회변화는 필연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낸다. 머리를 싸매고 학습하지 않으면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지는 신조어들은 외계인의 말과 다름없다. 여기에 더해 휴대전화가 보급되면서 퍼지기 시작한 단축어와 은어들은 세대를 구별하는 시험지가 되었다.
한국어의 수난은 ‘고맙읍니다’를 고집하는 기성세대에 그치지 않는다. 학생들의 문해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중고생 수업에서‘조짐이 보인다’는 말에 누굴 조진다는 욕이냐고 반문하고 ‘마음이 아리다’라는 말을 설명해 주니 그냥 ‘헐’이라고 표현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한단다.
학생들 국어 실력 하향화는 자료에서도 나타난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발표한 ‘2023년 국가 수준 학업 성취도 평가 결과’에 따르면 심각할 정도다. 중학교 3학년의 경우 2017년 국어 실력이 보통 이상인 학생이 84.9%이었으나 매년 학력이 떨어져 작년에는 61.2%에 머물렀다. 고등학교 2학년은 보통 학력에 미치지 못하는 학생이 절반이다.
젖을 빨 때부터 배운 한국말이 참 어렵다. 이렇게 어려운 언어를 배우겠다는 외국인들이 안쓰럽다. 그들이 ‘고맙습니다’와‘감사합니다’를 대상에 따라 달리 하는 것을 알려면 머리에 쥐가 난다. 글쓰기는 더 까탈스럽다. 일본어에도 없는 띄어쓰기는 뇌세포를 연결하는 시냅스조차 띄어 놓는다.
말을 글로 옮기는 일은 외국인들만 겪는 어려움이 아니다. 한국인들도 상당수가 글쓰기 공포증을 갖고 있다. 카톡에 문자 하나 남기는 것도 두렵다는 것이다.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일수록 글쓰기를 더 어려워한다고 한다. 받침이 틀리거나 조사 하나라도 잘못 쓰면 대학교 졸업장이 수난이다.
반면 문법은 개들에게나 주라는 사람들도 있다. 사전에 없는 자음 모음 비빔밥에 방언까지 고명으로 얹어버리면 국적 불명의 언어가 된다. 그들은 뜻을 소화하는 것은 상대의 몫일 뿐 해석의 오류나 비용(시간)과 불편은 괘념치 않는다. 문법이 교통신호등만큼이나 중요한 사회규칙이라는 점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언어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너무’라는 부사가 대표적이다. ‘너무하다’는 행동을 도에 지나치게 하거나, 일정한 정도나 한계를 넘어 지나치다는 뜻의 동사와 형용사다. 모두 부정적인 문맥에 써야 하지만 사람들은 ‘너무’를 너무 남발한다. 최근에는 ‘너무’의 뜻을 확장하여 긍정문에도 쓰고 있다.
정작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이는 작가들이다. 그들은 카톡에 줄임말을 쓰거나, ‘너무 감사하다’라는 말을 쓰길 여전히 주저한다. 말 많은 말, 비빔밥을 만들면 경박하고 신호등을 지키면 꼰대? 소릴 듣는다. 어려워서 사랑스러운 한국어가 살아남을지는 국력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