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4월 9일! 이 날이 무슨 날인가? 봄노래 '찔레꽃'을 찾다가 뜻 밖에 우리 지난 가슴 아픈 사건 하나를 만나게 되었는데 다름 아닌 박정 희 정권 때의 인혁당 사건이라.
관련자 8명(서도원, 도예종, 송상진, 우홍선, 하재완, 이수병, 김용원, 여정남)이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 된지 18시간만인 1975년 4월 9일 사형이 집행되었다는 이 사건은 그 후 7명이 더 고문 및 옥살이 고통 으로 사망하여 총 15명이 희생되었다 한다.(죽은 사람만) 그들의 혐의는 '북한의 지령을 받아 인민혁명당 재건위를 구성해 국가 전복을 꾀했다'는 내용이다. 국제법학자협회는 이 날을 사법 암흑의 날로 선언했다고 한다. 그리고 2007년 1월 23일 서울지방법원 재심에서 이들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면서 32년만에 사건은 일 단 매듭짓는다. 그러니 이게 뭐여?
이 사건은 '1%의 범죄 사실도 없는' 100% 조작 사건이라고 한다. 즉 수사지침에 따른 고문, 가혹 행 위, 증거 조작, 공판조서 허위 작성, 진술조서 변조, 위법한 재판 등에 의한 완전 날조극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조그만 뭔가라도 있지 않을까 하는 사람들(나같은 사람들)을 위하여 다음의 공판조서 변조 내용 을 소개해 본다.
판사: "피고인 등이 모여 어떠한 조직과 결의를 하였습니까?" 피고인: "그런 사실 없습니다."
(변조된 기록) "녜, 혁신계 동지들을 규합 과거 인혁당과 같은 통일적 조직을 하여 대정부 투쟁에 합의하 고 4인 지도부를 조직 구성하여 활동 상황을 조정한다 등을 합의하였습니다."
판사: "피고인 등 4인 지도부 정기 회합은 매월 첫일요일 10시로 정하고 지도 위원에 도예종, 서도원 을 추대하였다는데 사실인가?" 피고인: "사실이 아닙니다."
(변조된 기록) "녜, 사실입니다."
이거 하나만으로도 이 사건은 총칼 권력의 각본에 의한 억지 짜맞추기식 사건이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장준하는 과거 대통령 선거 당시 다까기마사오만은 절대 불가하다고 역설하였는데 그건 박의 과거 전력 을 두고 한 말일 것이었다. 장준하가 왜병영을 탈출하여 중경의 임정을 향한 7개월 각고의 6000리 장정을 넘어 항일 독립 전선에 가담할 때 박은 왜왕에 혈서로 충성 맹세를 하고 왜군에 자원 입대하여 만주에서 소위 독립군 토벌전 을 하고 있었으니 장준하로선 당연한 주장이리라. 박은 떳떳지 못하게도 자신의 전력을 은폐하기에만 급급했지 조국과 민족 앞에 반성하고 사죄하는 마음 이라곤 없어 보였다. 한다는 소리는 자신은 '불행한 군인'이라는 것 뿐이었는데 그게 무슨 소린가? 왜군 이 패망하자 스스로 패군지장이라며 비분강개했다는 것하고 같은 소리로 들리니.
그는 해방된 조국 대한민국에 버젓이 나설 수는 없는 인물이었다. 분수를 알고 순리에 따라 그저 조용 히 살아갔어야 될 사람이었다. 그는 시종 친일, 친공 컴플렉스에 시달린 것으로 보인다. 그로 인해 5.16 에서부터 시작하여 내내 무리수만 두다 만 사람이다.
그래 저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 어찌할 건가! 저들 가족의 구천에 서린 피맺힌 한은?
'찔레꽃'은 왜정치하에 고향을 잃고 저 북쪽 나라 만주 벌판 북간도 등지를 유랑하던 동포들이나 독립군 들의 처연한 망향가로 불려졌다고 하며, 여기선 지금 저 사건 연루 인사 중 경북대 학생회장 출신 여정 남씨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가면서 이 노래를 눈물로 불렀다고 하는데, 그래서 해마다 4월 9일 그 희생 자들을 위한 대구 추모제 행사에서 주제가로 불려지고 있다고.
그나저나 저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 불쌍해서 어떡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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