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들은 영원하리
" 배~움~만이 보~배 아 닌 성~균~관~대~학 ~ 인(仁)~의(義)~예(禮)~지(智) 그 자랑인 우리~대학교~ " 온누리 가장 오랜 배움의 마을로 시작하는 성균관대학교 교가를 마음속으로 부르고 있으리라. " 야 ~아 ~너 오랜만이다 " " 반갑다 야~ 너 얼마만이냐 " 문을 열고 회식장소로 들어서는 성균관대학교 약학대학 12회 동기들의 반가움으로 터져 나오는 인사말들이다. 재학 시절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친다. 되돌릴 수 없는 지난 날의 추억은 언제나 그리웁고 아름답기만한 것일까. 1학년말 무기약공 재시험이 있는 날이다. 자칭 같은 클럽에 한 녀석이 걸려든 것이다. 공교롭게도 크리스마스 전날이다. 명동에서 멋진 파티를 하려던 계획에 찬물을 끼얹는 모양새가 아닌가. 지원사격을 약속하면서 모두 재시험에 합류를 한다. 그 중에 한 친구가 재시험 당사자의 이름을 적은 것이다. 담당 조교가 모를 리가 없다. 친구에 대한 의리심(?)이 유급(留級)이라는 날벼락을 맞는다. 한달여만에 C의과대학 입학시험에 합격을 한다. 지금은 신경외과 전문의로 모 지방의 요양병원 병원장의 명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이련가 생각하기 나름이 아닌가. 시험이 끝나는 날이면 명동에 학사주점으로 달려간다. 대여섯평 정도의 주점은 항상 학생들로 붐빈다. 뿜어대는 담배연기로 실내를 그득 메우고 있다. " 써니야 ! 장덕善아 ! 너는 나의 첫 사랑 여인이다 1964년 12월 24일 나미가 " . " 이순자 가스나야 ! 니는 배신자 아이가 나쁜 年아 ! 시비월 시비일 합천의 술통이 " 벽면에는 켜켜히 쌓인 앙금의 넋두리가 빼곡하다. 인간의 사랑은 아가페(agape)냐 에로스(eros)인가. 아가페와 에로스가 복합된 아가로스(agaros)이더냐. 성(SEX)를 전제로 하는 에로스만이 인간의 형이하학적인 존재일 뿐이다. 경험과 개념(槪念)을 초월한 순수 이성(理性)의 칸트 철학도 소주잔에 올리는 단골 메뉴이다. 빈대떡 한 접시에 4홉들이 소주병만이 계속 추가된다. 끝없는 토론은 논쟁터가 되어 아집(我執)만이 오갈뿐이다. 결론은 언제나 각자 주장한 생각이 결론인 셈이다. 아가페만을 주장하던 칸트라는 녀석은 어디에 있는가. 출가 못한 자식들에 대한 속앓이 때문으로 울화병이 도진 것이냐. 드링크 한 병을 아니면 알량한 처방 한 장을 더 받으려고 발품을 접은 것인지 모르겠다. 교문 근처의 할머니집은 약대생의 단골 식당이다. 식당이라야 너댓명 정도 자리하면 만원이다. 흰 머리칼을 곱게 빗어 넘기고 앞니는 한 두개가 없다. 국수 빈대떡 막걸리등이 생각나면 수시로 찾는 곳이다. 차디찬 도시락을 먹노라면 뜨끈한 국수물을 한컵 내어주곤 하던 분이다. 언제나 환한 얼굴로 자식처럼 반겨주는 할머니가 생각난다. 어느 날 몇 녀석들이 작당을 하고 창경원 담치기를 한다. " 대학생이라는 놈들이 이런 몹쓸 짓을 하면 어떡해, 학교에 알릴까 엉! " 경비원에게 붙들려 야단도 맞는다. 밖에서 헤매다가 느즈막하게 실험실 PLATE로 다가선다. 교수님은 정성분석 실습 강의에 열중이다. 실험 파트너 여학생이 FLASK를 탁하고 내려친다. 박살이 날 수밖에 없다. 옆에 숨소리까지 들리는 불편한 적막감이 흐른다. 어이없고 애처럽다는 표정의 시선들이 나에게 쏠린다. 여학생은 창가에서 눈물을 쏟고 있다. 무슨 말을 하겠는가. 눈만 멀뚱하게 껌뻑일 뿐이다. 그녀는 졸업후에 미국으로 떠난다. 약사가 아닌 교회전도사로서 생을 마감한다. 지금도 저 하늘 어디에선가 동기들을 보고 있을 게다. " 미안하다. YH야 ! 약학은 물론이며 약사가 무엇인지 관심도 미련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 늦었지만 이제야 고백을 한다. 대학 3년차였으리라. 전국 약학대학 총연합회 주최로 체육대회와 음악회를 개최한다. 음악회의 합창단을 구성키가 만만치 않다. 서울 소재 이화여대 숙명여대 덕성여대 동덕여대를 순회하며 합창단원을 구걸해야만 될 형편이다. 같은 써클이었던 ♡♧여대 K라는 여학생도 흔쾌히 수락한다. 서울시민회관에서 음악제가 열리는 날이다. 준비 관계로 바쁜 와중에 그녀는 줄기차게 뒤를 좇는다. " K야, 너도 빨리 무대로 올라가야지, 응 " 막무가내로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다. 무슨 말을 듣고 싶은가. 답답할뿐이 아닌가. 공(公)과 사(私)를 잠시 혼동한 모양이다. 언제이던가 어느 지방의 약사회 임원이라는 소식에 반갑기도 하지만 애써 외면할 수 밖에 없는 게 아닐까. 서산에 노을이 아무리 황홀하게 빛추어도 해는 곧 지는 것이 아니랴. 동기 동창인 K,H,K라면 생각이 바뀌었을런지는 모르겠다. 약사고시 일주일을 남기고 시험장인 이대 앞에서 합숙을 한다. 서울 8개 약대생들의 Y써클의 회원들이다. 마음은 급해지고 일주일만 연기하면 좋겠다. 시간은 언제나 내 앞으로 오는 것이라고 믿었다. 촌음(寸陰)이 이리도 귀하고 소중할 줄은 몰랐으리라. 마냥 잡고픈 심정이다. E대 SJS라는 여학생은 여유만만이다. 명동의 클래식 다방으로 음악감상을 가잔다. 결국은 끌리다시피 들어가지만 음악소리가 들릴 리가 없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하루 전날 밤에 시험문제가 꿈에 나타나기도 한다. 시험을 치르면서 모두가 웃었다고 실제로 출제되었으니 말이다. " 결혼 전에 저는 동거한 여학생이 있습니다. 바로 저 뒤에 앉아 있는 모약사회 여약사 회장 SJS입니다. " 대한약사회 공식 석상에서 마이크를 잡고 설치는 순간도 있다. " 최회장 정말이요 ? 그런 얘기를 하면 어떻게 해 , 그럼 어디 한번 나와봐요 " 작고한 고(故) 민♣식회장의 명령조의 한마디다. 망설이지도 않고 뛰쳐나오는 그녀로 인하여 꽉 메운 연회장은 웃음소리와 탄성으로 박수까지 터져 나온다. 바로 명동 클래식 다방으로 가자고 보채던 바로 그 녀이다. 둘이 손잡고 "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님이 부르는 소리있어 " 이라는 명곡을 불러제낀다. 동기들은 70년대 초부터 제약업계 사원으로 아니면 개국약사로서의 직장을 선택한다. 3만원 전후의 월급에다 영업사원 출장비 일당 500원이 고작이다. 500원도 아끼고 쪼개어 쓰면 200원 정도가 남기도 한다. 가끔은 집안에 쌀독이 바닥이 날 때도 있다. 외상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냉장고 세탁기 전화는 언감생심일 시절이다. 슬하에 아들 딸 시어머니 시동생 그리고 시누이들의 눈치도 살펴야 했을 아내에게 죄인일 뿐이다. 70대 중반을 넘기고 80으로 향하고 있는 동기들이 어찌보면 기특하고 대단한 인물들이다. 거부정한 모습에 온 몸의 근육과 조직은 찌그러들고 망가진 상태이다. 앉았다 일어날 때면 어이구 소리가 절로 나온다. 동기들의 이름도 모두 기억치 못한다. 저 녀석이 최 ~~~ 누구더라. 중환자실을 오가며 몇몇달을 죽음의 문턱에서 헤매던 친구도 함께 옆 자리에 있다. 지팡이에 의지는 할 망정이지만 규상이는 하늘이 도운 모양이다. 지금도 요양병원에 누워 오늘 내일을 장담키 어려운 동기도 있다. 생명을 부지키 위해 주치의를 찾으며 약복용은 하루 일과의 시작이다. 한 마디로 종합병원의 모든 진료과의 단골 고객으로 70대 노객들인 셈이다. " 정남아 ! 미안하다, 내가 지금 건강이 너무 엉망이야, 완쾌되어 너를 다시 서울에서 볼 수 있을런지 모르겠구 ~~~~~ " 제대로 말을 잇지를 못한다. 십여년 전에 미국에서 전화로만 통화를 주고 받은 친구의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 얼마 뒤에 운명을 달리했다는 전갈을 받는다. " 잘 있어" " 잘 가거라 " 한 마디 인사도 없이 저 세상으로 훌쩍 가버린 벗들이 오늘 따라 가슴을 적신다. 인간의 운명은 걸어온 결과물일진데 그 공든 탑은 어디에 있는가. 약사(弱士)가 아닌 약사(Pharmacist, 藥師)라는 명찰을 평생 가슴에 달고 살아온 성대약대 12회 동기들은 어떤가. 낙규 재명 기봉 병구 낙소 길군 규상 홍구 정남등 이 자리에 참석한 아홉명이 그 시절을 끗끗하게 살아온 오늘의 주인공들이렸다. 길군 낙소 기봉 재명 병구등 다섯명은 40여년 이상 개국약사의 길을 걷고 있는 참 약사가 아닌가. 건강상의 이유로 약사면허증을 장농 깊숙히 반납하고 있는 친구도 있으리다. 낙규는 재활병원에서 캠퍼스 커플인 아내도 관리약사로 약국에 출근중이다. 50년 넘게 오로지 제약업계만을 섭렵한 홍구는 CEO 위치의 임원으로 재직중이다. 약학의 전문가로서 국민보건과 약업에 충실해야 한다는등의 약사윤리강령을 들먹이지 않아도 우리에게 약사라는 천직은 운명이 아닐까. " 아 ~ 그 친구 사랑하는 아내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자 모두 두고 며칠전에 운명했어 " 이 한 마디의 카톡이 운명의 끝이련가. 12회 동기들은 영원할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는 데도 말이다.
2019년 1월 17일 무 무 최 정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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