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의 뿌리를 찾아서 - 반여동 무정마을
춤을 추는 정자, 무정(舞亭)이 있었다는 무정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파트를 분양 받아 살았던 마을
무정(舞亭) 마을은 해운대구 반여1동 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 자연마을이다. 충렬로(동래~해운대간)인 원동교를 지나 왼쪽 반여동 입구, 왕자아파트에서 메가센텀(옛 대우실업 자리)아파트까지 걸쳐 있는 마을이다. 메가센텀 아파트 위쪽 롯데2차낙천대아파트 왼쪽에는 해림사(海林寺)-옛 이름 무화사(舞華寺)가 장산 오지봉(五指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오지봉은 ‘다섯 손가락으로 거문고를 타고 춤을 춘다’는 뜻으로, 옛날 이곳에 임금님이 오면 춤을 추는 정자, 무정(舞亭)이 있었다는 전설이 있는 마을이다. 무정 부근에 형성된 마을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무정마을이라 하였다.
1904년 간행된 경상남도 <동래군가호안>에 의하면, “동래부 동상면 관내에 무정동이 있다. 당시 무정동의 호수는 11호이다. 이곳에는 김·박·문씨 등의 성씨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무정마을을 풍수지리적으로 보면 명당지가 있다. 지금의 해림사와 롯데2차낙천대아파트 사이의 골짜기인 오지봉 복수골(福水谷)에서 복물이 흘러 저습지에 연못을 이루었다. 이 연못에서 용이 등천할 것이라는 말이 있었다. 한 군데는 지금의 메가센텀 아파트 자리이고, 다른 한 군데는 왕자아파트 자리다. 이곳은 습지로 연밭이었다.
1980년 초 이곳을 매립해 왕자아파트를 건축하여 분양을 하였다. 그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 아파트를 분양받아 살았다. 무정마을은 1930년대에 일본인 히라타에이이치(平田英一)가 수영강에 둑을 쌓고 경지 정리를 하였다. 이 경작지로 대지주가 된 히라타에이이치는 마을 주민들에게 소작을 주어 쌀을 생산한 식량 수탈의 현장이기도 했다.
1978년 반여동은 해운대구(당시에는 해운대출장소, 1980년 구 승격)로 편입되어 준공업지구(1980. 4. 1. 대통령령 제9630호)로 지정되어 무정마을에 대우실업이 들어선 이후 태광산업, 삼해공업, 삼립식품 등 대규모 섬유·식품 공장이 들어서면서 여성근로자가 급증하여 인구는 여초(女超) 현상으로 바뀌었다.
오지봉 기슭에 자리 잡은 해림사는 1800년대 말에 무화사로 창건하였다. 앞에는 백양산과 마주 보고 있으나, 지금은 무정 초등학교를 비롯하여 고층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어 옛날 아름다운 경관을 막아 볼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장산 복수골 해림사로 가려면 길도 없고 다리가 없어 절로 가는 것이 여간 고생이 아니었다고 한다. 해림사 대웅전 왼쪽에 서 있는 무화교건립공덕비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길은 있으나 물을 건너야 했고 물은 건너서는 또 길을 찾아야 했던 산사(山寺)의 동구(洞口)에 신념이 장한 여러 불자들의 정성이 여기 다리로 변하여 이곳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하니 이 어찌 자비의 꽃이 아니며 육바라밀행이 아니냐”고 다리에 어린 정성을 말하고 있다. 무정마을 입구에서 중리마을로 직진하는 도로가 아시안게임선수촌 조성과 함께 개설되면서 마을은 가운데를 제외하곤 주위에는 높은 아파트 단지가 도시로 되어버렸다. 무정리 당산은 마을 동남쪽 산기슭의 4부 능선에 자리 잡고 있다. 당사의 건립 연대는 1934년이었고, 당산 안에는 위패와 신석이 모셔져 있다.
무정마을 앞을 가로질러 흐르는 수영강은 반여1동과 동래구, 안락동과의 경계를 이루며 원동교가 서 있다. 광복 이전부터 목조로 된 초라한 다리였으나, 1963년 콘크리트 다리로 개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무정마을 오지봉의 복수골 언저리를 비롯해 아파트단지가 속속 들어서면서 해림사 앞에 무정초등학교를 개교(2005. 3.)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