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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2. 25.
지난 10일 발표된 삼성전자의 최신 플래그십(Flagship·旗艦)폰 ‘갤럭시 S22′를 보고 의아했습니다. 회심의 일격을 기대했던 자체 개발 최신 AP인 ‘엑시노스(Exynos) 2200′이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주력 시장에 탑재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일까요? 그리고 이것이 삼성전자의 2030년 시스템 반도체 1위 전략에 위험신호라고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목에 쓴 대로 대만의 양대 반도체 기업인 TSMC와 미디어텍, 그리고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이 한 세트로 삼성전자를 협공하고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런 의문점에 대해 풀어보겠습니다.
▲ 맨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퀄컴의 스냅드래곤 8-1세대, 삼성의 엑시노스 2200, 미디어텍의 디멘시티9000, 애플의 A15 바이오닉. /notebookcheck.net
◇ 삼성의 자체 개발 AP ‘엑시노스 2200′, 예상과 달리 갤럭시 S22의 한국 포함 대부분의 시장에 탑재 불발... 한번 밀려나면 경쟁력 회복 점점 힘들어질 수도
이야기는 지난 10일 갤럭시 S22 공개 행사에서 시작됩니다. 행사는 훌륭했고 제품의 매력도 넘쳤습니다만, 한 가지 든 의문은 스마트폰, 특히 플래그십폰의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인 AP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었다는 겁니다.
AP를 설명 드리자면,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반도체로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plication Processor)의 약자입니다. CPU(Central Processing Unit·중앙처리장치), GPU(Graphic Processing Unit·그래픽처리장치), NPU(Neural Processing Unit·신경망처리장치), 통신용 칩 등 시스템에 필요한 대부분의 기능을 하나의 칩 위에 집약한 대표적인 SoC(시스템온칩·통합반도체)이지요.
특히 플래그십폰이 새로 나올 때마다 그 제품이 어떤 AP를 썼는지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데요. 소프트웨어를 통한 카메라 성능 경쟁이 치열해지고, 화려한 그래픽의 게임과 멀티 태스킹까지 스마트폰으로 즐기게 되면서, 더 강력한 성능을 가진 AP가 요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CPU·GPU가 탑재됐는지에 따라 해당 노트북·PC의 성능·가격이 매겨지는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플래그십폰(혹은 프리미엄폰)의 AP라고 하면 지금까지 3개가 대표적이었습니다. 애플의 A시리즈, 퀄컴의 스냅드래곤 시리즈, 삼성전자의 엑시노스 시리즈입니다.
최신폰 탑재 기준으로 구체적인 제품명을 따져보면요.
첫 번째는 애플 아이폰 13 에 들어가는 A15 바이오닉입니다. A15바이오닉은 애플의 자체 운영시스템인 iOS상에서 돌아가는 칩이기 때문에,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기반의 퀄컴 스냅드래곤, 삼성 엑시노스와 완전한 동등 비교는 어렵습니다만, 3개 칩 중 가장 뛰어나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특히 전성비(전력소모량 대비 성능)에서 탁월한 기량을 보이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미국의 팹리스(반도체설계전문업체) 퀄컴의 ‘스냅드래곤8-1세대’입니다. 그동안 퀄컴은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 업체에 범용의 고성능 AP를 공급하는 최강의 업체이자 사실상 유일한 업체였습니다. 퀄컴에 견줄만한 성능의 엑시노스는 삼성 제품에만 탑재됐기 때문이죠. 스냅드래곤8-1세대는 삼성의 최신 플래그십폰 갤럭시 S22 시리즈 등을 시작으로 안드로이드 진영의 플래그십폰에 차례로 탑재될 것으로 보입니다.
세 번째가 바로 삼성의 엑시노스 2200인데요. 당초 예상과 달리 삼성의 최신폰인 갤럭시 S22에 탑재되지 못한 바로 그 AP입니다. 갤럭시 S21의 경우, 엑시노스 2200의 전작인 엑시노스 2100이 한국과 인도·유럽시장 등에 탑재됐었죠. 당시에도 미국·중국시장에는 퀄컴의 스냅드래곤 888이 탑재됐습니다.
그런데 갤럭시 S21의 경우, 특히 엑시노스 2100을 탑재한 한국시장 등에서 제품에 따라 발열이 심하다는 것, 발열을 억제하기 위해 성능을 스스로 제한하는 과정에서 사용자 경험에 불편을 초래한다는 점 등이 일부 부각되면서 소비자 불만을 사기도 했죠. 그래서 후속작인 엑시노스 2200의 경우 이런 불만을 잠재울 최고의 성능을 갖출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올해 1월18일의 엑시노스 2200 출시 당시 발표에 따르면, 전작인 엑시노스 2100에 비해 인공지능(AI) 연산 능력이 두 배 이상 빨라졌고, AMD와의 협업으로 콘솔 게임기에 버금갈 만큼 그래픽 표현 능력이 좋아졌습니다.
특히 엑시노스 2200은 최신 미세공정인 삼성의 4나노(숫자가 적을수록 최신·첨단)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기대를 모았습니다. 아이폰 13에 들어가는 A15 바이오닉이 TSMC의 5나노 공정으로 만들어지는 것에 비해 일단은 더 첨단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전작인 엑시노스 2100에서 다소 미진했던 GPU 성능을 미국의 팹리스 AMD와의 협업을 통해 크게 끌어올렸다고 해서 더 관심이 쏠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지난 10일 발표된 삼성의 최신 플래그십폰인 갤럭시 S22에서 엑시노스 2200이 사실상 자취를 감추고 만 것입니다.
갤럭시 S22는 한국·인도 시장에도 엑시노스 2200 대신 퀄컴 스냅드래곤8-1세대가 들어가고요.(전작에서도 퀄컴 AP가 들어갔던 미국·중국은 이번에도 퀄컴) 유럽에 파는 S22에만 제한적으로 엑시노스 2200이 탑재될 것이라고 합니다.
▲ 2월10일 공개된 삼성의 최신 플래그십폰 '갤럭시 S22' 시리즈. 왼쪽부터 S22, S22 플러스, S22 울트라. / 삼성전자
◇ 삼성의 최신 4나노 공정 사용한 엑시노스 2200이 실패한다면, 삼성의 반도체 설계 경쟁력 저하에 그치지 않고, 파운드리의 고객 유치에도 악영향 미칠 가능성
한국시장에 내놓는 갤럭시 S22에서조차 엑시노스 2200이 아예 빠져버렸다는 것은 삼성의 자체 개발 AP의 미래에 암운을 드리우게 합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삼성 엑시노스는 안드로이드 진영의 고성능 AP로서 입지를 갖고 있었거든요. 삼성폰에만 탑재되긴 했지만 삼성 판매량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탑재 비율이 낮아지면서 삼성 자체 AP의 세계시장 점유율도 계속 줄고 있습니다.
작년 3분기 기준 AP 세계시장 점유율은 대만 미디어텍이 40%로 1위, 미국 퀄컴이 27%로 2위, 애플이 15%로 3위, 중국의 유니SOC가 10%로 4위였고요. 삼성은 점유율 5%로 5위에 그쳤습니다.
즉 엑시노스 2200이 갤럭시 S22의 한국을 비롯한 주요시장 대부분에서 빠져버렸다는 것은 삼성의 AP시장 점유율이 앞으로 더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 고성능 AP 시장에서는 그래도 입지가 있었던 과거와 달리 삼성 AP가 완전한 마이너 플레이어로 전락하거나 최악의 경우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삼성전자의 2030년 시스템 반도체 1위 전략에도 상당한 어려움을 안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차피 삼성전자 내에서 매출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은 반도체 설계, 즉 엑시노스와 같은 자체 AP 설계는 설령 사업이 쪼그라들더라도 대세에는 지장 없다고 볼 수도 있긴 합니다. 삼성의 시스템 반도체 전략에서 매출이 크고 중요한 것은 파운드리, 즉 시스템 반도체를 직접 설계하는 건 아니지만, 고객사(팹리스)가 설계한 시스템 반도체를 대신 생산해주는 수탁생산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삼성이 앞으로 8년 뒤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진짜 1위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시스템 반도체의 수탁생산뿐 아니라 설계에서도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삼성이 TSMC와 격돌하는 최첨단·초미세 공정의 경우, 엑시노스와 같은 고성능 AP가 고객사 유치를 위한 레퍼런스·미끼 상품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삼성 파운드리에 이런 미끼 상품이 중요한 이유는, 고성능 반도체 제조를 맡겨줄 고객사(글로벌 팹리스)가 TSMC보다 적기 때문입니다. 파운드리 세계시장 점유율을 보면, 삼성이 TSMC를 맹추격하는 중이긴 하죠. 2020년만 해도 TSMC가 점유율 59.4%로 압도적 1위였고, 2위 삼성전자는 13.1%로 TSMC와 큰 격차를 보였죠. 하지만 작년 3분기 점유율은 TSMC 53.1%, 삼성전자 17.1%. UMC(대만) 7.3%, 글로벌파운드리(미국) 6.1%, SMIC(중국) 5.0%였습니다. 단기적인 부침은 있지만, 크게 보면 격차를 줄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첨단 공정만 놓고 보면 TSMC가 시장을 독식하다시피 하는 상황입니다. 애플을 위시해 엔비디아·AMD 등 주요 고객사가 전량, 혹은 대부분의 자사 제품을 TSMC 최신공정을 통해 만들고 있죠. TSMC는 고객사도 많고, 거래 관계도 깊고 오래됐고, 그만큼 제조 경험과 규모 면에서도 삼성전자보다 유리합니다.
따라서 후발주자인 삼성전자가 고객을 끌어오려면, 그만큼 경험을 쌓아야 할 뿐 아니라 실제 양산제품의 성능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여줘야만 합니다. 현재 상황을 보면요. 냉정히 말해 삼성의 자체 개발 AP 정도가 확실한 고객일 뿐입니다. 현재 삼성의 최신 4나노 공정에선 엑시노스 2200과 더불어 퀄컴의 스냅드래곤8-1세대가 생산되고 있기는 한데요. 퀄컴을 유치할 수 있었던 것도 어찌 보면, 퀄컴 입장에서는 초대형 고객인 삼성 스마트폰의 구매력을 이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삼성이 파운드리 입장에선 퀄컴을 고객으로 모셔야 하지만, 스마트폰 업체인 삼성은 퀄컴이 모셔야 하는 특급 고객이니까요. 퀄컴 AP를 삼성 스마트폰에 많이 써준다는 조건으로, 퀄컴이 자사의 최신 AP를 삼성 4나노 공정으로 만들도록 유인할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이런 관계성이 적은 다른 해외 팹리스라면, 아직 대부분이 TSMC를 선호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삼성 파운드리 입장에서 가장 바람직한 모델이라면, 이번 엑시노스 2200처럼 삼성이 자체 개발하고 (삼성 파운드리를 통해) 자체 생산한 AP가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돼야만 삼성전자의 파운드리가 더 많이 인정받을 테고, 그에 따라 더 많은 외부 고객사를 끌어들일 수 있겠죠.
그런데 엑시노스 2200이 갤럭시 S22에 거의 탑재되지 않으면서, 이런 선순환 구조가 무너질 위기에 놓였다는 겁니다.
탑재가 불발된 큰 원인 중 하나로 낮은 수율(收率)이 지목됩니다. 여기서 수율이란, 전체 AP 생산량 중 실제로 스마트폰에 탑재 가능한 정상품이 나오는 비율을 뜻하는데요. 파운드리 입장에선 수익률과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지만, 고객사 입장에선 주문량을 정확히 받아갈 수 있느냐와 직결된 아주 중요한 사항입니다.
게다가 수율이 나쁘다는 것은 공정 안정화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미일 수도 있는데요. 이 경우 품질테스트를 통과해 실제 스마트폰에 장착된 이후에도 불량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품질체크라는 것이 모든 것을 완벽히 테스트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어떤 조건에 대한 테스트를 통해 결함 제품이 출고될 확률을 최소화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최종 출고 시의 불량률을 최소화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생산량 전체의 품질을 안정화하는 것, 즉 수율을 높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전성비, 발열 문제 등인데요. 배터리 용량과 제품 공간 등에 극심한 제약을 받는 스마트폰 특히 고성능폰의 경우 더 적은 전력으로 최대 성능을 내는 것. 그리고 발열을 억제하는 것(이 두 가지는 연동하는 측면도 있습니다)이 매우 중요한데요. 이 부분에서 기대에 다소 못 미친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엑시노스 2200의 갤럭시 S22 대량 탑재가 무산되면서, 삼성 4나노 공정 자체에 대한 고객사 불신이 나올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삼성 4나노로 함께 생산되는 퀄컴의 고성능 AP 스냅드래곤8-1세대와 관련해서도 일부 클레임이 나오고 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최첨단 공정을 써줄 고객사(팹리스)를 TSMC로부터 빼앗아와야 하는 삼성전자가 어려운 상황에 놓일 수 있습니다. 삼성이 자체 설계한 AP를 자신들의 첨단공정에서 만들고도 제대로 성능을 내지 못한다면, 고객사가 이 공정을 믿고 써주기 어려울 테니까요.
실제로 안 좋은 소식도 들리고 있는데요. 퀄컴이 현행 스냅드래곤8-1세대의 차기 버전인 스냅드래곤8-1세대 플러스는 삼성 4나노 대신 TSMC 4나노 공정으로 만든다고 합니다. 삼성 파운드리의 고객 유치가 일단 충분한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지요.
특히 AP는 한번 탑재가 불발되면 경쟁력 회복이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개발 경쟁이 매우 치열하고 돈과 인력도 아주 많이 드는 분야인데, 고객사로부터 피드백을 못 받고 자금 회수가 안 되면, 개발을 지속하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조직 내 입지도 좁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 삼성전자 파운드리 공장이 위치한 경기 평택캠퍼스. / 삼성전자 제공
◇ TSMC 4나노로 만든 대만 미디어텍의 ‘디멘시티 9000′, 퀄컴 제치고 안드로이드 진영 고성능 AP의 왕좌 노려... 2분기부터 디멘시티 9000 탑재한 중국 플래그십폰 쏟아질 듯
그런데 문제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지금까지 중저가·가성비 스마트폰용 AP를 주로 만들었던 대만의 팹리스 미디어텍이 고성능 AP시장을 정면으로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게 심각한 이유는 미디어텍이 최근 내놓은 안드로이드 플래그십폰용 AP인 ‘디멘시티(Dimensity) 9000′이 엑시노스 2200은 물론이고 스냅드래곤8-1세대보다도 성능이 더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실제로 이 AP가 탑재된 스마트폰이 출시되기 전이기 때문에 정확한 성능 비교는 어렵습니다만, AP 단계에서 하는 공개테스트에서는 안드로이드 플래그십폰용 AP의 최강자, 애플의 최신 AP인 A15 바이오닉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안드로이드 진영 AP라는 평가까지 나오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디멘시티 9000은 TSMC의 최신 4나노 공정에서 만들어지죠. 미디어텍의 디멘시티9000이 안드로이드 진영 최고의 AP로 떠오른다면, 그것은 미디어텍의 설계가 뛰어나서이기도 하겠지만, TSMC의 4나노 공정이 뛰어나서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냉정히 말해서 삼성과 TSMC가 전부 4나노 공정을 한다고 해도 같은 4나노가 아닐 수 있음을, TSMC가 미디어텍의 최신 AP라는 결과물을 통해 고객사에 과시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죠. 삼성 파운드리가 첨단 미세공정을 도입하고, 그 공정에 가장 먼저 삼성의 자체 개발 AP를 투입해 고성능을 뽑아내 본보기를 보임으로써 다른 외부 고객사를 끌어들이는 전략, 즉 자체 AP를 삼성 파운드리의 미끼상품처럼 사용하는 전략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반면, 그 반대의 사례 즉 TSMC의 첨단 4나노 공정과 미디어텍의 고성능 AP가 세트로 맞물리면서 선순환하는 구조는 제대로 효과를 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퀄컴이 삼성 4나노로 만들던 자사 최신 AP의 다음 버전을 TSMC 4나노 공정으로 옮긴다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퀄컴 입장에선 안드로이드폰 진영의 최고 AP 지위를 미디어텍에 뺏긴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재작년까지 AP시장 세계점유율에서도 1위였던 퀄컴은 작년 3분기 점유율이 27%로 미디어텍(40%)에 압도적으로 밀리고 있는데요. 중저가에 이어 하이엔드 시장마저 미디어텍에 빼앗긴다면 끝인 거죠. 그러니 퀄컴으로선 TSMC로 공정을 급하게 옮겨서라도 미디어텍의 공세를 막아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인 겁니다. 결과적으로 TSMC·미디어텍의 협공이 대성공을 거둔 겁니다.
이 두 업체의 성공은 실적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미디어텍과 TSMC는 작년에도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는데요. 올해 1월 들어 더 좋아지고 있습니다.
미디어텍의 올해 1월 매출은 전년 동월 대비 23.1% 증가한 435억 대만달러(약 1조9000억원)로 1월 기준 사상 최고였습니다. 디멘시티 9000의 양산·출하가 시작됐고, 와이파이 6용 칩, 전원관리 칩 출하가 계속 호조였기 때문입니다. 올해 1분기 매출은 1312억~1415억 대만 달러로, 분기 기준 역대 최고였던 작년 4분기보다도 2~10% 높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한편 TSMC는 올해 1월에 월별 기준 사상 최대 매출을 올렸습니다. 1721억 대만 달러(약 7조4000억원)로 전년 동월 대비 36% 증가했습니다.
현재 TSMC의 시가총액은 16조2100억 대만달러(약 693조원), 미디어텍의 시총은 1조7900억대만 달러(약 77조원) 수준입니다. 파운드리만 하는 TSMC의 시총이 삼성전자 시총(436조원)보다 60%가량 더 높고요. 미디어텍의 시총은 삼성전자·LG에너지솔루션·SK하이닉스에 이어 코스피 4위에 해당합니다.
▲ 대만 TSMC 본사의 로고. / TSMC
◇ 삼성의 AP와 파운드리 경쟁력 동시에 회복 못하면, 2030년 시스템반도체 1등 달성은 물론, 삼성 스마트폰의 프리미엄 지위마저 위태로워질 수도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이 삼성 시스템 반도체 전략의 핵심인 파운드리뿐 아니라, 삼성 스마트폰의 경쟁력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미디어텍의 디멘시티9000은 올 2분기부터 중국의 오포·비보·샤오미·아너(Honor·화웨이에서 분리독립한 브랜드) 등의 최신 플래그십폰에 차례로 탑재될 예정인데요. 만약 디멘시티 9000이 탑재된 중국 스마트폰이, 퀄컴의 최신 AP 탑재 스마트폰(예를 들면 갤럭시 S22) 성능을 능가하기라도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요?
그렇게 된다면 올해 2분기 혹은 하반기부터 안드로이드 진영 플래그십폰의 시장 판도에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삼성이 중저가에선 중국폰의 공세로 고전해 왔지만, 플래그십폰에선 아직 안드로이드 진영의 최강자로 군림해 왔는데요. 혹시라도 객관적 성능에서 밀린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요. 삼성이 천명한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의 입지 회복이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전세계 안드로이드 플래그십폰 시장에서의 점유율 방어마저 어려워질지 모릅니다.
그리고 미디어텍의 맹공에 맞서야 하는 퀄컴, 고성능 AP시장 방어에 다급해진 퀄컴이 TSMC에 더 의존하게 될 수도 있죠. 삼성전자로서는 AP시장을 잃고, 파운드리 고객 유치도 어려워지고, 플래그십폰인 갤럭시 시리즈의 성장에도 악영향을 받는 ‘트리플 악재’를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한 첫 번째 단추가 이번 엑시노스 2200의 성공이었을지 모릅니다. 수율이 높고 성능이 뛰어났다면 갤럭시 S22에 대거 탑재됐을 것이고, 그것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삼성 파운드리의 경쟁력 향상, 삼성 프리미엄폰의 판매 향상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그게 잘 안되면서, 반대로 미디어텍과 TSMC라는 대만 팹리스와 파운드리, 이 두 업체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성능을 끌어올린 중국 플래그십 스마트폰의 역풍이 곧 크게 불어닥칠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물론 삼성에 비장의 무기가 있기는 합니다. 4나노 공정 도입 초기에 다소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공정 안정화를 빠르게 이뤄낼 수도 있고요. 그보다 더 확실한 것은 차세대인 3나노 공정에서 양상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TSMC가 계획 중인 3나노가 기존 기술의 연장선에 있는 반면, 삼성의 3나노는 획기적인 성능 향상을 도모할 수 있는 신기술(GAA·게이트올어라운드)을 도입했기 때문에, 삼성 파운드리가 앞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죠. 게다가 TSMC의 3나노 공정이 예상만큼 빨리 진척되고 있지 않다는 루머도 돌고 있기 때문에, 아직 TSMC와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승부를 속단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한 쪽이 기술적으로 뛰어나다 하더라도 수율이나 공정의 안정성, 양산품의 실효 성능 등에서 앞으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엑시노스 2200의 탑재 불발이라는 ‘사건’을 시작으로 삼성전자의 팹리스·파운드리·스마트폰 경쟁력에 트리플 악재가 닥칠 가능성을 짚어봤습니다만,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고요. 파운드리 분야의 괴물기업인 TSMC 등과 맞서 첨단공정 경쟁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분전 중인 삼성전자의 모습이 대단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가능성 차원의 악순환 고리를 끊고, 대만·중국 기업의 총공세에 맞서 끝까지 승리해 주길 기원해 봅니다.
최원석 국제경제전문기자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