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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김 명근
가도 가도 똑같은 길만 연실 차창 밖으로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가로수가 길게 늘어진 이길, 대체 어느만큼 더 달려가야만 끝을 볼 수가 있을까? 아니 그보다도 오랜 운전에 지쳐가는 내게 더 화를 돋우는 것은 조수석에 앉은 린이었다. 놈은 나와는 서너 살 아래의 나이로 동생뻘 되는 놈이었으며, 중국인으로 오래전부터 같은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휴가를 얻어 놈이 산다는 고향으로 놀러 갈 겸, 하도 제 고향 자랑을 많이 해서 한번 가보고 싶기도 해서 나선 길이었지만, 아무리 달려도 끝이 안보이니 속에서는 화가 치밀었다. 놈은 내가 속을 끌이고 있는지도 모르고 고향에 간다는 기쁨에 싱글 벙글 대고 있었다. 린은 나보다 서너 살 아래도 일을 잘해서 회사에서 특별 휴가 일주일을 내준 터였다.
“얼마나 남았냐?”
“조금만 더 가면 되요.”
“네가 그 말을 한지가 언제 인지 아냐?. 도대체 얼마나 더 가야되는지 솔직하게 말해봐.”
내가 다그치자 놈은 그만 말을 끊고 말았다. 아마도 갈 길이 아직도 먼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고향 생각에 부풀어 있는 놈에게 더 이상 야단치기가 뭐해서 잠자코 운전만 하고 있었다. 나는 놈을 이해하기로 했던 것이다. 또 그래야만 속도 편해지기 때문이었다. 중국 사람들 뻥이 심하다는 말은 들어보았지만 직접 당해보기는 처음이었다.
흑룡강성에서 출발한지가 벌써 열 시간째, 어둠이 짙어져 헤드라이트를 켜야 했다. 길옆으로는 가로수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가도 가도 차 뒷 꽁무니를 따라오고 있었다. 얼마나 더 가야 놈의 고향에 닿을 수가 있는 것인지, 이제는 부글부글 거리던 속도 어느 만큼 가라앉아 있었다. 역시 중국은 넓고도 큰 땅 떵어리 라는 것을 처음 비행기를 타고 올 때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문득 이들은 무엇을 해서 먹고사는지 궁금증이 들기도 했다.
원래 나는 시나리오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래서 인문계열의 대학에 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사촌 형이 펄펄 뛰면서 등록금 까지 대주며 단국 대 중국어과에 입학을 시켜 주었다. 막상 중국어를 배워보니 영어배우는 것보다도 열배는 힘들었다. 당시에 사촌형은 국내에서도 알아주는 대형 식품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공장에는 많은 직원들이 있었는데 모두 국내 사람들이었고, 이놈만 유일하게 중국사람 이었다. 놈은 중국인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어를 잘 구사했다. 뿐만 아니라, 부지런하고 일도 열심히 했다.
그러니까 삼년 전, 마침내 사촌형은 중국으로 들어갔다. 그때는 중국이 한국에 막 문호를 개방 할 때여서 드나드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형은 사업 할 만 한 장소를 찾아다니느라 거의 초죽음이 되어 돌아 왔다.
“아니, 형 왜 그래?”
“상혁아 말도마라. 중국 땅에서 사업할 곳을 찾는다는 것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는 것만 큼이나 힘들었다. 어찌나 헤매고 다녔는지 다리까지 퉁퉁 부었다
“미련하긴 차 빌리는 데 몇 푼이나 든다고...”
“물론 차를 렌트해서 타고 다녔지. 그렇지만 공장 부지를 찾으려면 직접 걸어 다녀야 확실히 알 수가 있었거든.”
“고생 많으셨네, 그런데 한국에서도 돈은 버는 데 왜 궂이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려고 해?”
“말도 마라. 한국 사람들 데리고 일하느니 공장 문 닫는 게 더 났다.”
“그건 무슨 말이야?”
“넌 잘 모를 거다. 한국 놈들 걸핏하면 임금 올린다고 공장 문 닫고 농성하지, 그 뿐인 줄 아냐? 노조를 만들어서 사사건건 경영에도 참견을 해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아니, 직원이 몇 명도 안 되는데도 그래?”
“한국의 웬만한 기업은 다 노조 놈들이 장악하고 있어. 아무리 놀고 쳐 먹는 놈이 있어도 노조에서 반대하면 해고도 못시킨다.”
“그렇게 까지 심한 줄은 몰랐어.”
“공장은 흑룡강성에 얻어놓았다. 식품공장인데 운이 좋았는지 거기 사장이 늙어서 문을 닫으려는 것을 내가 인수했다.”
“언제 입국 해?”
“응, 준비하는데 한 일주일 걸릴거다. 네 비자하고 비행기 표 준비 해 놓을테니 너도 준비하고 있거라.”
“알았어, 형.”
“아주 만난 김에 사진 몇 장 다오. 비자에 필요하니.”
형은 중국에 도착하고 나서 곧 연락 할 것이니 그때 입국하라는 말을 남기고 얼마 되지 않아 중국으로 떠났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만원을 갖고 중국에 가면 백배인 백만 원으로 쓸 수가 있는 시기였다. 사촌형이 다녀간 열흘 후쯤에 중국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제는 자리가 잡혀가니 너도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막상 가보니 형의 공장은 규모가 대단했다. 형의 안내를 받아 들어가 보니, 직원들도 이 십여 명이나 되는 듯 보였다. 하나같이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있었다. 형은 내가 지낼 곳이라며 공장안의 숙소로 데리고 갔다. 공장안의 숙소라 해서 소음이 심할줄 알았는데, 소음은 들리지 않았다. 형은 나를 위해 벽지도 새로 바르고 침대도 새것으로 들여놔줘서 편안하게 삼일 간을 푹 쉬었다. 공장은 2교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낮 근무조와 밤 근무조가 교대로 일을 하는 것이다. 식품 공장이라 모두 마스크에 모자까지 쓰고 있어서 그놈이 그놈 같았고, 그 여자가 그 여자인 것처럼 보였다.
“네겐 직접 중국인들을 감독하는 공장장이라는 직책을 줄 터이니 잘 해봐라. 특히 조심할 것은 이곳에는 한국 사람들도 있으니 절대 편파적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
“알았어 형, 별걱정 다 하네 나도 벌써 스물일곱이나 되었으니 형이나 나를 애 취급 하지마.”
“세월 참 빠르네, 너 초등학교 다닐 때가 엊그제 갖은데, 이젠 장가들 나이가 됐으니 말이다.”
“형도 참, 별 이야기 다하네.”
“그리고 하나, 여기서는 꼭 사장님이라 불러야 된다. 너도 회사라는 게 어떤 덴지는 알고 있지?”
“알았어요, 사장님 지금 부터라도 존칭을 붙이겠습니다.”
“원 녀석 하고는...”
형은 나를 새로 오신 공장장 님이 라고 직원들 앞에서 핸드 확성기로 소개를 했다. 무려 두 번이나 소개를 받아야 했다. 아침 조와 저녁 조, 그리고 야간 조 에서도 감독관을 한사람 임명을 했다. 그래야만 오후에 내가 퇴근을 해서 쉴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보기에도 이들은 꽤나 부지런해 보였다. 형이 왜 그 어려운 시련을 겪으며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했는지 알 것 같았다. 공장장으로 부임한지 며칠이 되던 날, 퇴근을 하기 위해 마스크를 벗던 직원들 틈에 있던 반가운 사람을 발견했다. 그러니까, 이 놈, 린이었다. 린은 이미 내가 온 줄은 알고 있었지만 차마 직원들 앞에서 아는 체하기가 그래서 내가 먼저 알아보기를 기다렸다고 했다.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라 얼싸안고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여기까지 따라와서 사장님을 도와주니 정말 고맙구나.”
“고맙긴요, 계속 직원으로 써주시니 내가 더 고맙지요.”
린이란 녀석하고 다시 만난 것이 다행인 불행인지는 몰라도 반가운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놈의 달콤한 말에 넘어가 그의 고향까지 운전수가 되어 따라가게 된 것이었다. 린의 고향에 가는 것도 가는 것이지만, 원래 중국에 로망이 있었던 터이라, 형을 졸라 겨우 일 주 일간의 휴가를 받아 린과 함께 길을 떠나게 된 것이다.
“이젠 다 왔겠지?”
한번 혼이 난 터이라 놈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여전히 길은 가로수가 빽빽한 시골길이었는데, 주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인가가 없는 것이다. 사막을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흑룡강성에서 두 시간동안은 그래도 주변에 마을은 있었는데, 시내를 벗어나 얼마 가지도 않았는데도, 길옆을 가로수만 차지하고 있는 길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외길로 접어든 것이었다.
흑룡강성에서 출발한지가 벌써 열 시간째, 어둠이 짙어져 헤드라이트를 켜야 했다. 길옆으로는 가로수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가도 가도 차 뒷 꽁무니를 따라오고 있었다. 얼마나 더 가야 놈의 고향에 닿을 수가 있는 것인지, 이제는 부글부글 거리던 속도 어느 만큼 가라앉아 있었다. 역시 중국은 넓고도 큰 땅 떵어리 라는 것을 처음 비행기를 타고 올 때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문득 이들은 무엇을 해서 먹고사는지 궁금증이 들기도 했다.
원래 나는 시나리오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래서 인문계열의 대학에 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사촌 형이 펄펄 뛰면서 등록금 까지 대주며 단국 대 중국어과에 입학을 시켜 주었다. 막상 중국어를 배워보니 영어배우는 것보다도 열배는 힘들었다. 당시에 사촌형은 국내에서도 알아주는 대형 식품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공장에는 많은 직원들이 있었는데 모두 국내 사람들이었고, 이놈만 유일하게 중국사람 이었다. 놈은 중국인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어를 잘 구사했다. 뿐만 아니라, 부지런하고 일도 열심히 했다.
그러니까 삼년 전, 마침내 사촌형은 중국으로 들어갔다. 그때는 중국이 한국에 막 문호를 개방 할 때여서 드나드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형은 사업 할 만 한 장소를 찾아다니느라 거의 초죽음이 되어 돌아 왔다.
“아니, 형 왜 그래?”
“상혁아 말도마라. 중국 땅에서 사업할 곳을 찾는다는 것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는 것만 큼이나 힘들었다. 어찌나 헤매고 다녔는지 다리까지 퉁퉁 부었다
“미련하긴 차 빌리는 데 몇 푼이나 든다고...”
“물론 차를 렌트해서 타고 다녔지. 그렇지만 공장 부지를 찾으려면 직접 걸어 다녀야 확실히 알 수가 있었거든.”
“고생 많으셨네, 그런데 한국에서도 돈은 버는 데 왜 궂이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려고 해?”
“말도 마라. 한국 사람들 데리고 일하느니 공장 문 닫는 게 더 났다.”
“그건 무슨 말이야?”
“넌 잘 모를 거다. 한국 놈들 걸핏하면 임금 올린다고 공장 문 닫고 농성하지, 그 뿐인 줄 아냐? 노조를 만들어서 사사건건 경영에도 참견을 해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아니, 직원이 몇 명도 안 되는데도 그래?”
“한국의 웬만한 기업은 다 노조 놈들이 장악하고 있어. 아무리 놀고 쳐 먹는 놈이 있어도 노조에서 반대하면 해고도 못시킨다.”
“그렇게 까지 심한 줄은 몰랐어.”
“공장은 흑룡강성에 얻어놓았다. 식품공장인데 운이 좋았는지 거기 사장이 늙어서 문을 닫으려는 것을 내가 인수했다.”
“언제 입국 해?”
“응, 준비하는데 한 일주일 걸릴거다. 네 비자하고 비행기 표 준비 해 놓을테니 너도 준비하고 있거라.”
“알았어, 형.”
“아주 만난 김에 사진 몇 장 다오. 비자에 필요하니.”
형은 중국에 도착하고 나서 곧 연락 할 것이니 그때 입국하라는 말을 남기고 얼마 되지 않아 중국으로 떠났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만원을 갖고 중국에 가면 백배인 백만 원으로 쓸 수가 있는 시기였다. 사촌형이 다녀간 열흘 후쯤에 중국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제는 자리가 잡혀가니 너도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막상 가보니 형의 공장은 규모가 대단했다. 형의 안내를 받아 들어가 보니, 직원들도 이 십여 명이나 되는 듯 보였다. 하나같이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있었다. 형은 내가 지낼 곳이라며 공장안의 숙소로 데리고 갔다. 공장안의 숙소라 해서 소음이 심할줄 알았는데, 소음은 들리지 않았다. 형은 나를 위해 벽지도 새로 바르고 침대도 새것으로 들여놔줘서 편안하게 삼일 간을 푹 쉬었다. 공장은 2교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낮 근무조와 밤 근무조가 교대로 일을 하는 것이다. 식품 공장이라 모두 마스크에 모자까지 쓰고 있어서 그놈이 그놈 같았고, 그 여자가 그 여자인 것처럼 보였다.
“네겐 직접 중국인들을 감독하는 공장장이라는 직책을 줄 터이니 잘 해봐라. 특히 조심할 것은 이곳에는 한국 사람들도 있으니 절대 편파적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
“알았어 형, 별걱정 다 하네 나도 벌써 스물일곱이나 되었으니 형이나 나를 애 취급 하지마.”
“세월 참 빠르네, 너 초등학교 다닐 때가 엊그제 갖은데, 이젠 장가들 나이가 됐으니 말이다.”
“형도 참, 별 이야기 다하네.”
“그리고 하나, 여기서는 꼭 사장님이라 불러야 된다. 너도 회사라는 게 어떤 덴지는 알고 있지?”
“알았어요, 사장님 지금 부터라도 존칭을 붙이겠습니다.”
“원 녀석 하고는...”
형은 나를 새로온 공장장이라고 소개하고 감독관을 한사람 임명을 했다. 그래야만 오후에 내가 퇴근을 해서 쉴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보기에도 이들은 꽤나 부지런해 보였다. 형이 왜 그 어려운 시련을 겪으며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했는지 알 것 같았다. 공장장으로 부임한지 며칠이 되던 날, 퇴근을 하기 위해 마스크를 벗던 직원들 틈에 있던 반가운 사람을 발견했다. 그러니까, 이 놈, 린이었다. 린은 이미 내가 온 줄은 알고 있었지만 차마 직원들 앞에서 아는 체하기가 그래서 내가 먼저 알아보기를 기다렸다고 했다.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라 얼싸안고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여기까지 따라와서 사장님을 도와주니 정말 고맙구나.”
“고맙긴요, 계속 직원으로 써주시니 내가 더 고맙지요.”
린이란 녀석하고 다시 만난 것이 다행인 불행인지는 몰라도 반가운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놈의 달콤한 말에 넘어가 그의 고향까지 운전수가 되어 따라가게 된 것이었다. 린의 고향에 가는 것도 가는 것이지만, 원래 중국에 로망이 있었던 터이라, 형을 졸라 겨우 일 주 일간의 휴가를 받아 린과 함께 길을 떠나게 된 것이다.
“이젠 다 왔겠지?”
한번 혼이 난 터이라 놈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여전히 길은 가로수가 빽빽한 시골길이었는데, 주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인가가 없는 것이다. 사막을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흑룡강성에서 두 시간동안은 그래도 주변에 마을은 있었는데, 시내를 벗어나 얼마 가지도 않았는데도, 길옆을 가로수만 차지하고 있는 길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외길로 접어든 것이었다. 열 시간을 달려도 은 보이가 않았다. 장장 열 시간을 운전을 했으니 피곤함에 몸은 납덩어리처럼 무거워졌다. 팔은 물론 엑셀을 밟는 종아리까지 뻐근해 졌다. 휴게소라도 있었으면 쉬기라도 하고 점심이라도 먹을 뗀데, 휴게실은 고사하고 집이나 사람하나 구경을 못했으니 꼼짝없이 배고픈 것까지 참아야 했다.
“솔직히 말해봐라. 대체 얼마나 더 가야 되냐?”
“예, 정말 얼마 남지 않았어요?”
“잘 들어 이번에도 거짓말이면 난 다시 공장으로 돌아간다. 알았지?”
“예.”
그러면서도 놈이 싱글대기 시작한 것은 오 분쯤 더 가서였다. 나는 비로소 린의 고향이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잇었다.“
“저기 저 가로수가 비어있는 곳이요.”
“그래, 나도 보인다.”
“거기서 꺽이는 갈림길이 보일 거예요. 거기서 꺽인 길로 들어가 십분만 달리면 내 고향이 나와요.”
“그러냐?”
“예.”
갈림길로 들어선 나는 더 한숨이 나왔다. 포장도 되지 않은 험한 길이 나타난 것이다. 얼마나 길이 험한지 차뿐만 아니라, 핸들 까지 떨려서 손목이 아펐다. 그러나 십여 년 만에 고향을 찾는 놈이 얼마나 기쁠까 하는 생각으로 이젠 야단도 치지 않고 운전에만 매달렸다. 그 보다는 이 험한 자갈길 에서 펑크라도 나면 어쩌랴, 그 걱정이 더 앞섰다.
헤드라이트 불빛으로 언뜻 보기는 했지만, 린의 고향 앞으로는 커다란 강이 흐르고 있었고 다리가 놓인 게 보였다. 다리를 건너 두 집 쯤 지났는데,
“바로 저기가 우리 집 이예요” 하며 허술한 집을 가르켰다. 나는 그 집 옆에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왔다. 린은 십 여년 만에 찾은 집이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집 주위를 한바퀴 돌아보고 나서야 문안으로 들어섰다.
“형님도 들어가셔야지요.”
“알겠다.“
“내가 들어가자, 린은 자기가 일하는 공장의 공장장이라고 부모님께 소개를 했다. 중국에서는 예법을 중시한다고 해서 린의 부모님께 절을 올렸다. 연세가 칠순은 넘어보였다. 옛날 우리나라의 노인들처럼 부모님들은 늙어도 보이고 얼굴들은 삐적 말라있었다.
“린 때문에 걱정 많으셨지요?”
"아닙니다."
“린이 어릴 때부터 원래 총명해서 잘 지내고 있으리라 믿곤 있습니다.”
린은 바로 밖으로 나가 차 뒷좌석 가득 실고 온 선물꾸러미들을 들고 돌아와서는 부모님 앞에 내놓았다. 술도 아주 고급술만을 골라서 산 모양이었다. 린의 부모님은 그런 자식 놈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계셨다.
“밍밍이도 오라고 하세요.”
“오냐. 건너 방에서 막 잠이 든 것 같구나.”
“네가 가서 깨워 오거라. 손님이 오셨는데 나와서 인사도 드리라 하고.”
린은 곧바로 건너 방으로 가서 제 누이를 깨워 데리고 왔다. 낯선 나를 보고는 멈칫했다.
“밍밍아. 네 오빠를 데리고 있는 회사 분이시니 인사를 드리거라.”
“예, 안녕하세요? (닌하오마?)”
“예, 잘 지냅니다. 정말 미인이네요.”
“고마워요. 오빠를 잘 보살펴 주신다는 편지를 받았어요. 고맙습니다.”
“고맙기는요, 원래 일을 잘해서 우대를 받고 있는 것 뿐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이때 린이 나섰다.
“네 선물도 사왔다. 머리핀이며 화장품도 사왔다.”
“고마워요. 오라버니.”
이때서야 피곤해 보이는 나를 자세히 보았는지 부모님은 나보고 가서 푹 쉬시라고 했다. 방은 밍밍이가 쓰던 방이었고 그녀는 당분간 안방에서 자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막상 방에 누워 있으니 갖가지 생각들이 떠오르고 낯선 곳이라 그런지 잠도 잘 오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피곤함에도 여느 때와 같이 이른 아침에 잠이 깨어 슬그머니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고 싶어서 였다. 다리위에 올라 되돌아보는 순간, 아! 하는 감탄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영화 속에서나 볼 것 같은 정경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강은 물론 마을 전체가 짙은 안개 속에 덮여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나는 자리를 옮겨 강둑길을 걸었다. 강둑위로 난 길은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마을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많이 심어진 해바라기 밭을 보았다. 아침이라 그런지 해바라기 들은 인사라도 하듯이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밭 가운데로는 조그만 길이 나 있었는데, 그 길 끝으로 작은 집 한 채가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한참이나 둑길을 걷다가 린의 집으로 돌아왔다. 늦여름 이었지만 몸이 으실 댔다. 강가라 바람이 차가웠던 모양이었다. 린이 아침 일찍 없어진 내가 궁금했던지,
“아니 어딜 갔다 오는 거예요?” 하고 물었다.
“응, 강둑을 좀 걷다가 왔어.”
“말씀이나 하고 나가시지.”
“널 깨우면 아버지나 어머니 까지 깨실 것 아니냐, 그래서 조용하게 나갔어.”
“그래, 어디를 다녀오셨어요?”
“강둑을 한동안 걸어 다녔다.”
“아침 식사 하셔 야지요.”
“알았다.”
멀지 않아 밥상이 들어왔는데, 나를 배려해서인지 독상 이었다. 나는 마음을 써준 두 분 린의 부모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낮이 되자 린은 마을로 나갔다.
“넌 어디 가니?”
“옛날 친구들을 만나야지요. 객지에 오래 나가 있다 보니 많이 보고 싶네요.”
“알았다. 잘 다녀 오거라.”
“형님, 심심하겠어요.”
“심심하긴 새벽에 잘 안보이던 마을이며 강가 구경이나 해볼 생각이다.”
“예, 알았어요.”
그 말을 남기고 린은 바로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다시 한 번 강가 둑길을 걸었다. 어느새 해가 떠올랐는지, 나가보니 밖은 또 다른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둑길을 조금 걷다가 나는 아침에 본 해바라기 밭에 잠시 걸음을 멈췄다. 해바라기도 손님을 반기는 듯, 활짝 피어 있었다. 문득 둑 아래로 눈을 돌리니 강가에서 낚시를 하는 노인 한분이 보였다. 아침 일찍 웬 낚시질인가 싶었지만, 어딘지 모를 우수에 잠긴 뒷모습을 대하고 나니 뭔가 사연이 있어 강에 가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한나절이나 되어서 집으로 돌아오니 린도 집에 와 있었다. 나는 노부부에게 점심식사는 같이 할 터이니 밥상을 따로 차리지 마시라고 말씀을 올렸다. 나는 문득 강에서 본 그 노인이 생각이 나 린에게 물었다.
“아까 보니 어떤 할아버지가 혼자 낚시를 하던데, 너 혹시 그분 누군지 아니?”
“아, 그 할아버지요? 그 할아버지 하루도 빠짐없이 낚시를 하셔요. 내가 고향을 떠날때도 늘 낚시만 했어요.”
“그래?”
“예, 아마도 딸이 하나 있다는데 이름이 홍화라고. 저도 아직 한 번도 본적이 없어요. 아주 이쁘대요. 그래서 청년들이 말이나 걸어보려고 갔다가 그 노인에게 두들겨 맞은 놈이 한둘이 아닙니다.”
“아니 얼마나 이쁘길래 그러냐?”
“말로 표현 할 수는 없고, 왜 형님도 아시잖아요. 한국에서도 이름을 떨친, 임 청하, 왕 조연 같은 배우들, 그들도 홍화 앞에 서면 아마도 주눅이 들걸요?”
“아니, 그 정도냐?”
“예. 그리고 그 할아버지에겐 아픈 사연이 있습니다.”
“그게 뭔데?”
“그 할아버지 젊었을 때 결혼에 한번 실패 했어요. 참 그 양반 어리 숙한 사람입니다.”
“무슨 말이냐?”
“아내로 맞은 여자는 딸 하나 딸린 과부였는데, 노인하고 같이 산지 한 달도 안 되어서 딸을 남겨놓은 채 먼 도시로 도망을 쳤어요. 그래도 노인은 누가 뭐라던 개의치 않고 딸을 길렀고 여지껏 같이 사는 거래요.”
“아, 그런 사연이 있었던 거구나. 그래서 쓸쓸해 보였나 보구나.”
“노인도 좋으신 분이지만 딸 홍화도 아주 효녀랍니다. 아버지를 극진히 모신다고 해요.”
그 외에도 왕 노인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해줬지만 더 듣지는 않았다. 속으로 나도 그 처녀를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만 들어서 였다. 내가 홍화를 직접 만나 사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였기에, 우선 왕 노인과 친분을 먼저 쌓아 놓으면서 차차 홍화를 만나려는 계획을 세웠다. 우선 왕 노인을 만나기 위해 강가로 나가던 중, 마침내 해바라기 곁잎을 따고 있는 홍화를 만나게 되었다. 비록 옷은 남루했지만 린의 말대로 절색의 미인이었다.
“니 하오.” 무조건 말부터 건넸다.
“니 하오.”
중국 사람들 예의가 바르다 하더니 낯선 내게 인사말을 건넸다.
“저는 한국에서 온 상혁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 오셨다고요?
“예, 며칠 전에 이 마을로 린이라는 청년을 따라서 구경하러 왔습니다.”
“그런데, 외국사람 티가 전혀 안 나서 몰라봤어요.”
“아버님은 오늘도 강에 나가셨나요?
“예, 지금 거기 계셔요.”
“아, 그래요? 그럼 우리 다음에 만나요.”
“예.”
그녀는 수줍은 얼굴을 하면서 승낙의 말을 했다. 아마도 내가 싫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강둑에서 바라보니 왕 노인은 여느 때와 같이 강가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어차피 마음을 먹고 왔으니 과감하게 그의 곁으로 가 말을 건넸다.
“닌 하오마?”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니 황 노인은 대답대신 누구시냐고 물어왔다.
“저는 한국에서 온 상혁이라고 합니다.”
“아, 한국 사람이로 군요.”
"예, 저 마을에 사는 린의 집에 며칠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여긴 웬일이신지.”
“저도 낚시를 좋아해서 와 본겁니다. 고기는 잘 잡히나요?”
왕 노인은 대답대신 허허 대며 웃었다. 나는 그의 속내를 알기에
“낚시를 하는 대부분 사람들이 고기를 낚는 게 아니라 세월을 낚는다 하던데 노인께서도 그러하신 가 봅니다.”
“젊은 사람이 별걸 다 아는 구료.”
“가끔 놀러 오겠습니다. 린의 집에 있기가 심심해서 곧잘 이 강둑을 걸어 다닙니다. 제가 놀러 와도 불편해 하지는 마세요. 그리고 제 아버님 연세와 비슷하니 말씀도 놓으시구요.”
“그러시구료.”
“그럼 오늘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다음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왕 노인은 그러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홍화라는 처자는 물론 왕 노인에게 까지 안면을 텄으니 앞으로 얼마든지 두 부녀를 만날 수가 있어서 였다. 린의 집으로 돌아가서 린에게 홍화를 보았다고 하니 놈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정말 이뻐요?” 하고 물었다.
“마, 그렇게 궁금하면 네가 직접가서 만나.”
“에구 형님, 누구 맞아서 죽는 꼴을 보려고 해요?”
“사람을 만나는 방법부터 알고 접근해야지, 미련하게 들이대니 당연히 혼 줄이 날 수밖에 더 있겠니?”
“하여간 홍화를 만났다니 형님 정말 대단합니다.”
“정말 미인은 미인이더라. 다음에도 놀러오라는 노인의 승낙을 받았으니 이젠 자주 강가로 산책 겸 나가야겠구나.”
“정말 부럽습니다."
“참, 이 동네 사람들은 어디 가서 생필품을 사냐?"
“아, 거기는요. 왜 우리 집에 오실 때 꺽은 길목 아시지요?. 그곳으로 한 오분 쯤 더 가시면 큰 시내기 나와요?”
“그러냐? 그럼 이 마을 사람들은 버스도 안 들어오는데 어떻게 시내를 오가냐.”
“아, 그건요, 마을 뒤쪽으로 시내 가는 지름길이 뚫려 있어요. 그 길을 타면 한 이십여 분쯤 걸리니 키로 수로 따지자면 오 키로 쯤 되겠네요.”
“그래?”
“그런데 왜 갑자기 시내 타령을 하세요?”
“아, 언제 한번 다녀오려고.”
그리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린이란 놈이 같이 가자고 하면 곤란한 일이 있어서 였다.
나는 곳 바로 시내를 향해 차를 몰았다. 정말 린의 말대로 마을로 들어오는 그 꺽인 길에서 몇 분 안가니 제법 커다란 시내가 나왔다. 한 바퀴 돌아보니, 별의별 상점들이 다 있었다. 나는 먼저 술부터 샀다. 그리고 미처 준비하지 못한 린의 부모님께 드릴 선물도 샀다. 돌아오려다 문득 뭔가 한 가지를 빠쳐놓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금은방으로 갔다.
“어세 오세요.”
금은방 주인은 오십대쯤 보이는 사람으로 내가 들어가자 고개를 숙여 인사까지 했다.
“저 반지를 하나 살까 해서 왔는데요.”
“손을 먼저 내미시고, 어느 마디에 착용하실지 말씀해주세요.”
“저... 사실은 누구에게 선물을 하려고 합니다.”
“같이 오셔야 하는데 사정이 있으신 모양이군요.”
“예, 그렇습니다. 스무 살 쯤 되는 여성인데, 선물을 하려고 합니다.”
“아, 그러시군요. 몇 돈이나 하시려고요.”
“두 돈정도 하면 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평균적인 사이즈로 드릴 터이니 만일 가져 가셔서 혹 안 맞으면 같이 와서 껴보고 바꿔가세요.”
“예, 그리하지요.”
나는 주인이 건네주는 반지를 소중하게 윗 주머니에 간직하고는 시내를 벗어나 나왔다. 린의 마을에 도착하는 대로 린의 부모님께 사온 선물을 드렸다. 중국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술 종류였다.
“아니, 이런 걸 왜 사와요. 린을 잘 보살피고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인데요.”
린의 어머니가 선물을 받아들며 말을 했다.
“아닙니다. 한국 사람들도 예의는 깍듯이 지킵니다.”
“아뭏든 고마워요. 잘 마시리다.”
나는 다시 강둑길을 걸었다. 머릿속엔 온통 홍화의 생각만 가득해서 였다. 그날은 해바라기 밭에 홍화는 없었다. 나는 왕 노인이라도 만나려고 강둑 아래로 내려가니 노인은 여전히 낚시 대를 강물에 드리우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니 자네가 여긴 웬일인가?‘
“이렇게 경치가 좋은 데 술 한잔 마시며 구경을 하려구요.”
“허허, 자네도 풍광을 즐길 줄 아는가 보네 그려.”
“예, 어르신. 저희 나라에서 이렇게 좋은 경치를 볼 수 있는 곳은 한곳도 없습니다. 우선 제가 술 한잔 따라 올리겠습니다.”
“이런, 자네에게 신세를 지게 될 줄이야.”
“신세라니요. 아닙니다. 한잔 받으시지요.”
나는 미리 가져간 봉지에서 술은 물론 잔까지 꺼내 왕 노인에게 술을 조심스럽게 따라 올렸다. 왕 노인이 술을 좋아한다는 말은 이미 린을 통해 들은 바 있기에 준비해간 것이다.
“자네도 한잔 하게나.”
“저는 술을 좋아하지만 많이 마시지는 않습니다.”
“그럼, 독한 술이니 반잔만 이라도 마시게.”
“예, 어르신.”
나는 반잔만 마시는데, 웬 놈의 술이 그리 독한지. 입안이 타는 듯 똑 쏘았다. 하지만 아무런 티를 내지 않고, 왕 노인이 술을 다 마실 동안 기다리다가 린의 집으로 돌아왔다.
“형님, 또 거기 갔다 오시는 거지요?”
놈은 내 행적을 꿰고 있는 듯 말을 했다. 나는 “맞아.” 하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어느새 보름날이 되었는지. 밖은 대낮처럼 밝았다. 나는 달 구경이며, 강 구경을 하며 술이라도 한잔 마시고 싶어 포도주를 싸들고 강가 둑으로 나갔다. 달밤에 보는 강의 정경이 그야말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나는 둑길을 걷다가 문득 강가로 시선을 돌렸는데, 순간 아! 하는 탄식이 절로 흘러 나왔다. 거기 똑 같은 자리에 왕 노인이 낚시 줄을 강물에 드리우고 앉아 있었다. 나는 왕 노인이 놀랄까 싶어 일부러 헛기침까지 하며 강 아래로 내려갔다.
“아니, 이 밤중에 자네가 여기 웬일로 왔는가?”
“예, 어르신. 달이 뜨니 너무 강 경치가 좋아 구경삼아 나왔습니다.”
“그런가?”
“예.”
“아무튼 자네도 풍광을 좋아하는가 보군.”
“예, 이런 풍광을 어디 가서 보겠습니까? 저절로 발걸음이 옮겨져 왔습니다. 그런데 어르신은 밤에도 낚시를 하시는가 봅니다.‘
“허허, 강에 빠진 달을 건지려 하네.”
“제가 뵙기로는 어르신은 꼭 옛날의 이 태백이 같습니다.”
“그건 과찬의 말이네. 그저 나는 이렇게 세상을 잊고 지내는 게 좋을 뿐이야.”
나는 노인의 말속에 들어있는 심중을 알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홍화를 버리고 간 그 여자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르신, 오늘도 한잔 하셔야지요?”
“아니, 자네는 어찌 그리 내 맘을 잘 꿰고 있나?”
“저 역시 많은 일을 겪었다면 겪은 사람입니다. 우선 한잔 받으시지요.”
나는 노인에게 한잔 가득히 술을 따라드렸다.
“포도주라 약한 술인데 입맛에 맞으실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사람아 술을 가려 마시면 그게 어디 술꾼이란 말인가?”
“사실 저도 오늘은 술에 취하고 싶어서 강가로 나온 겁니다.”
“자네도 무슨 사정이 있는가 보이.”
“실은 저...”
“뜸들이지 말고 말해보게나.”
“저 모래면 흑룡강성으로 돌아갑니다. 형님인 사장님과 돌아가기로 약속한 날이 모래 입니다.”
“이런, 이런 좋은 술친구 하나 두었는가 싶었는데 다시 잃어야 하다니.”
“어르신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비록 말씀은 많이 하시지는 않으셨지만, 그동안에 어르신께 배운 게 많습니다.”
"나는 그저 한낱 무식한 촌부에 지나지 않네. 낚시만을 유일한 낙으로 여기고 소일하고 있을 뿐이네.“
“어르신, 술 한잔 다시 따라 올리겠습니다.”
“그려, 자네도 마시게.”
“예, 어르신.”
“내 비록 나가 다녀본 적은 없지만, 자네같이 선량한 사람은 처음보네.”
나도 그날은 꽤 많은 술을 마셨다. 아무리 약한 술이라도 많이 마시다니 취기가 올라왔다.
역시 술이란 좋은 것인가 보다. 강가의 경치가 더 아름답게 보일뿐더러 왕 노인과도 절친한 사이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한참 후에 왕 노인이 말을 이었다.
“이보 게 젊은이.”
“예, 어르신.”
“혹시 내일은 시간이 있겠는가?”
“모레 떠나니 마지막으로 강변을 한 번 더 돌아보려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음, 잘되었네. 내일 강둑에 나올 때 누추하지만 내가 사는 집에 한번 와 주겠나?”
“예. 그러나 민폐가 되지는 않을 런지요.”
“이 사람아 민폐라면 내가 더 자네에게 끼친 게 아닌가? 내일 하루는 낚시 대를 접고 집에 있겠네. 그러니 점심때 들러서 식사라도 같이 하게나.”
“예, 알겠습니다. 저를 위해 시간을 내주신다니 고맙습니다.”
“찬은 별로 없으니 그리 알게나.”
“초대 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왕 노인과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오는 내내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 토록이나 가슴속에 연민만을 간직하고 지내온 홍화를 만난다는 기쁨에서 였다. 잠도 오지않아 거의 뜬눈으로 지새우다 시피 밤을 보냈다. 다음날 점심때가 되어 홍화의 집으로 향했다. 약속한대로 왕 노인은 낚시를 접고 집에 있었다. 짐작이지만 아마도 강가에서 낚시를 한 이후 처음 쉬는 것 같았다. 나는 미리 사놓은 배갈이라는 중국술을 다섯 병이나 들고 황 노인의 집을 방문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누추했지만 안에 들어가 보니 모든 것이 정갈해 보였다. 아마 홍화는 부엌에서 식사 준비를 하는 모양인지 안에는 없었다. 왕 노인은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어서 오게나. 그런데 웬 술은 이렇게 많이 사들고 오는 건가?”
“여기는 술 살 곳도 없으니, 어르신 낚시할 때 얼마나 술 생각이 많이 나시겠어요. 그래서 많이 사온 겁니다.”
“고맙네, 그런데 내 딸 홍화는 이미 알고 있겠지?”
“예, 오가며 낮은 익히고 있었습니다.”
"저 놈의 계집애 정말 효녀네. 다른 처자 같았으면 벌써 이 애비 홀로 놔두고 도시로 갔을 거야.“
그리고는 부엌에서 점심 준비를 하는 홍화를 잠깐 방안으로 불러 들였다. 비록 부엌 떼기 같은 남루한 옷을 입고는 있었지만 미모만큼은 가릴 수가 없었다.
“인사 하거라. 귀한 손님이시다.”
“안녕하세요?”
“예, 그동안 잘 지내셨지요?.”
“예, 그런데 어려운 걸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곧바로 점심상 올리 겠습니다”
홍화는 바로 부엌으로 나갔다. 엣날 집이라 주방 같은 것은 없었다. 홍화가 점심상을 봐 오자,
“너도 와서 같이 먹거라.”
“예, 그러면 제 밥도 가져오겠습니다.”
홍화는 부엌에 나가 밥그릇을 하나 더 들고 왔다. 우리들...이라고 하기에는 그렇지만 홍화와 나는 마주 앉았고, 왕 노인은 가운데 앉아 다 같이 식사를 했다. 나는 맛있다는 듯, 하오츠, 하오츠를 연발하며 뚝딱 밥 한 공기를 비웠다. 반찬이 보잘것없어 미안해 할까봐 맛있게 먹는 척을 한 것이었다. 밥상을 물린 뒤에 홍화가 설거지를 할 무렵, 나는 내친김이라 여기고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저, 따님과 함께 해바라기 밭을 좀 돌아봐도 될까요? 언젠가 귀국하면 저도 시골에 가서 해바라기를 심어 보려고요.”
“아니 자네가 농사를 짓는다는 말인가?”
“예, 저희 부모님이 노후를 위해 시골에 사놓은 땅이 좀 있습니다. 가끔 내려가 농작물을 심어 가꾸고 있습니다.”
“참 여러 가지로 마음에 드는 청년이구먼, 홍화를 데리고 밭을 돌아보게나.”
“예, 알겠습니다.”
왕 노인이 부엌에 있는 홍화를 부르더니.
“애야, 손님이 해바라기 밭을 한번 돌아보고 싶다고 하니 네가 잠시 안내를 하거라.”
“예 아버님.”
그리해서 정말 긴 시간 동안 가슴 속에만 품고 살았던 그녀와 단둘이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해바라기는 모종으로 심는 게 아닌가요?”
“아녜요. 씨를 부리면 저절로 자라요. 여기는 땅도 습해서 해바라기가 잘 자랍니다. 곁순이나 따주면 되요.”
나는 듣는 척은 했지만 홍화의 말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 세상사람 같지 않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였다. 어찌 그리 뒷모습까지 아름다운지...나는 그만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야 말았다.
“홍화.”
“예?”
앞서 있는 그녀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다짜고짜 다가가 끌어안았다. 나는 그만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고 입술을 포개었다. 홍화는 뒤로 물러서는듯하더니 이내 가만히 서있었다. 그녀에게서는 해바라기 향기보다도 더 달콤한 향기가 풍겨왔다. 아주 짦은 순간 이었다. 나는 곧 그녀를 풀어주며 말을 했다.
“미안해요. 홍화, 너무 아름다워서 나도 모르게 실수를 한 모양입니다.”
그녀는 대답 없이 돌아섰는데, 언뜻 보니 눈에 이슬이 맺혀 있었다. 나는 후회가 들었다.
‘저리도 순진한 처자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일까?’
홍화는 아무 일도 없는 척 부엌으로 들어갔다. 아마도 눈물을 씻어내고 방으로 들어오려는 것 같았다.
“그래, 구경은 잘했나?”
왕 노인이 물었다.
“예, 따님께서 해바라기 심는 방법도 자세하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렇구먼, 부디 좋은 기억을 지니고 공장으로 돌아 가게나.”
“예, 어르신.”
“부디 만수무강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이런 나 같은 촌부에게 이리도 대우를 해주다니...”
“아닙니다. 세상에는 어르신 같은 어진 분은 없습니다.”
“그리고 저...홍화에게도 선물을 하나 하려고 합니다.”
“이런 내 딸한테까지 마음을 쓰다니. 그래, 무엇을 준비 했는가?”
“조그만 가락지입니다. 한국 여자들은 저 나이쯤 되면 반지는 물론이려니와, 팔찌며, 귀걸이며, 목걸이 까지 안하고 다니는 장신구가 없을 정도로 치장을 하고 다닙니다. 지난번 따님을 보니 몸에 아무것도 착용을 하지 않고 있더군요. 그래서 돌아가는 길에 작은 선물 하나 준비 한 것입니다.”
“너무 고마우이.”
그리고는 부엌에 있는 딸을 불러들였다. 홍화는 아버지 앞에 무릅을 꿇고 안잤다.
“저 청년이 네게도 선물을 하나 준다니 부담 갖지 말고 받거라.”
“예, 아버님. 아버님 말씀 따르겠습니다.”
나는 반지가 담긴 곽을 꺼내어 그녀에게 건넸다.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장촌에 와서 아버님께 입은 은혜에 비하면 반지하나 드리는 게 민망할 정도입니다. 이제 내일이면 공장으로 가야 하기에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왕 노인께 큰절을 올렸다.
“부디 만수무강 하세요.”
나는 이 말을 남긴 것을 끝으로 그의 집을, 아니 홍화를 뒤로하고 린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 저녁부터 이것, 저것 차에 싣고 , 공장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그날 밤 역시 나는 잠을 거의 이루지 못했다. 아주 긴 밤이었다. 나는 다음날 린의 부모님께 하직 인사를 올리고 린과 함께 차에 올라 장촌을 떠나 왔다. 다리 위를 지나며 연실 뒷창을 통해 뒤를 바라보았다. 해바라기 밭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솟구쳐 오르는 아픔을 견디며 왕 노인과... 아니 홍화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짜이찌엔, 짜이찌엔
장촌을 떠나 공장으로 돌아오는 내내 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홍화는 아름다운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녀를 생각하며 차 핸들을 잡으려니 손도 내손같이 않았다. 몇 번이나 도로변의 가로수에 부딪칠 뻔 했다.중국의 도로는 대부분 산의 계곡을 깍아 만든 길이 많아 자칫하면 대형사고가 난다. 린이란 놈은 갑자기 운전이 서투러진 내속을 훤히 꿰뚫고 있다는 듯 말을 건네 왔다.
“형님, 홍화 생각대문에 그러시지요?”
“그래, 이제 숨길게 뭐가 있겠느냐.”
“예뻐서 그래요?”
“그렇기는 하지만 의 아버지를 모시는 효심이 정말 아름답게 보였어.”
“장촌 에서도 마을 사람들은 다 홍화를 칭찬해요.”
“세상이 넓으니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살지.”
“갈때는 천천히 가요.”
“왜, 일하기 싫으냐?”
“아니요?”
“그럼.”
“형님, 안전운전 하시라고요.”
“아무튼 고맙다.”
새벽같이 장촌에서 출발을 했음에도 흑룡강성에 도착하니 어느덧 저녁무렵이 되어가고 있었다. 공장안으로 돌아가니 여느 때와 같이 직원들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린과 함께 사장실로 찾아가 삼촌을 만났다.
“그래. 잘 다녀왔느냐?”
“구경만 잘했지요. 그런데.”
“그런데?”
“한 이틀만 더 있다가 오도록 허락해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뭔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나잘 다녀온 것 아니더냐? 이제 너도 공장에서 중요한 일을 하나 하거라“
“무슨 일이요?”
“부사장 자리를 마련했다. 사무실도 별도로 잘 만들어 놨다.”
형은 나를 데리고 바로 사장실 옆에 새로 지은 사무실로 데려갔다. 책상위엔 부사장 김 상혁이라는 명패가 올려 져 있었다.
“이런 자리를 뭐러 만들어요. 일이나 잘하면 될 것인데.”
“사실은 말이다.”
형은 정색을 하며 말을 이어갔다.
“내 생각에는 네가 한 이년 더 여기에서 일을 해줘야 하는데, 너의 부모님이 반대를 하셔서 마련한 자리야. 부사장이 자리에 없으면 일이 안된다고 하려는 거지. 아니 실제 내가 거래처를 마련하려고 나가다니면 공장을 실질적으로 운영해줘야 할 사람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야. 그동안 많은 곳에 거래처를 텄고 공장도 증설해야 하고. 여러 가지 할 일이 태산같아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믿을 사람이 너 밖에 더 있겠니?”
형이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는 형의 손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보았다. 얼굴에까지 긴장감이 도는 것을 보니 내 부모님의 전화 인 듯싶었다. 형은 바로 수화기를 내게 건네주었다.
“여보세요?”
“응 상혁이구나.” 어머니의 전화였다.
“예 어머님, 저 상혁이입니다.”
“너 언제나 고국에 돌아올게냐?”
“일이 바빠서요.”
“너 장가드는 것보다 더 급한 일이 어디 있다고 일 핑계를 대는 게냐. 이미 네 색시감을 골라 놓았으니 사진을 보내면 보도록 해라.”
“어머니, 저 솔직히 여기 중국에서 사귀는 여자가 있어요.”
“아니, 중국여자와 결혼을 하겠다는 거냐?”
“죄송해요. 중국이나 한국이나 혈통은 같잖아요.”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하지만, 넌 외아들로 집안의 대를 이을 놈이야. 친구들 동창 모임에 나가면 친구들이 며느리와 손주 자랑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수다를 떨어 이놈아. 네 어미는 그냥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밥만 먹고 나온다.”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형님네 공장도 저 없으면 안돌아가요. 제가 부 사장직을 맡아서 형님 은 맘 놓고 자재상이며 판로 등 거래처 트러 다니느라 경황이 없어요.”
“네 나이도 생각하려무나. 네 사촌형같이 사십이 넘도록 사업한다고 노총각으로 늙어갈 셈이냐?”
“아직 삼십도 안 되었는데 왜 그리 재촉을 하세요?”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게냐? 삼십이면 한국에서는 노총각이야. 애미 애비도 나이가 드니이제 며느리가 해주는 받 얻어먹고 싶다.
“용서 하세요. 조금만 삼촌일 돕다가 고국에 돌아갈께요.”
“알았다. 가급적 빨리 돌아오거라.”
“예 어머니.”
옆에서 어머니와 통화하는 내용을 대충들은 삼촌이 한마디 했다.
“네 말대로 이년 만 더 도와주다 한국으로 가거라. 암만 색각해도 홍화를 못 잊어 그러는 것 같은데, 사람일이란 모르는 거야. 그동안 시집을 갔을 지도 모르고.
“아니, 그런데 삼촌이 어떻게 홍화를 알지요?”
“린에게서 들었다.”
“이놈, 그대로 두면 안 되겠네요. 입이 그리 싸서 한번 혼 줄을 내야겠네요.”
“내가 감을 잡고 다그쳐서 알아낸 것이니 그대로 두 거라. 그런데 홍화가 아직까지 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을지는 모르겠구나."
“아녜요. 삼촌, 홍화는 효심이 깊어 아버지 곁을 쉽게 떠나지 못할 겁니다.”
나는 삼촌의 말을 듣고 나서는 마음에 조급증까지 생겼다. 하루라도 빨리 가서 그녀를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만 급할 뿐 일 년의 세월을 정신없이 사업에만 매달리다 보니 시간 내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마침내 나는 이듬해 봄이 될 무렵 형에게 장촌에 다녀오겠다고 이번에는 일반 통행 식으로 말을 했다. 형은 집요한 나의 요구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여전히 일주일의 시간을 주어 그리도 그립던 장촌과 홍화를 만나러 가게 되었다. 물론 린도 같이 데려가기로 했다. 그가 있어야만 식사와 잠자리를 해결할 수 있을뿐더러 심부름도 시킬 수가 있어서였다. 아, 장촌. 꿈에서도 나타나던 홍화. 나는 시내에 들러 린의 부모님께 드릴 선물과 낚시도구를 샀다. 린과 내가 다시 오자 부모님은 여간 반가워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하룻밤은 예의상 린의 집에서 자고 다음날 아침 일찍이 홍화의 집으로 달려갔다. 마침 홍화는 밭에 나와 해바라기를 심고 있었다.
“잘 지내셨어요?”
홍화는 나를 보자 일손을 멈추고 반갑게 맞았다.
“어떻게 또 오셨나요?‘
“솔직히 홍화씨가 보고 싶어서 왔어요.”
그녀의 얼굴은 금시 수줍음에 엷은 홍조가 띠어졌다.
“아버님도 여전히 건강하시지요?
“오늘도 일찍 낚시터로 나가셨어요.”
“그러, 어르신 먼저 뵙고 오겠습니다.”
나는 새 낚시도구와 사갖고 온 술을 들고 강둑 아래로 내려갔다.
“아니, 이게 누군가. 자네가, 자네가 와 주었구먼.”
“예 어르신, 건강해 보이시니 다행입니다. 영 장촌의 강풍경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다시 찾아왔습니다. 무엇보다도 어르신 생각이 나서요.”
“그래? 그렇지? 나도 가끔 자네 생각을 했네, 우리 홍화도 자네 안부를 궁금해 하더구먼.”
‘그래요? 잘해준 것도 없는 데요“
“그런데 뭘 들고 온 건가?”
왕 노인은 내가 무겁게 들고 온 낚시가방이 뭔지를 모르고 물어왔다.
“예, 어르신께 선물 할 것이 있어서 오다가 낚시 도구를 사 갖고 왔고 배갈 술은 장터에 들러서 사왔습니다.”
“이런 이렇게 고마울 대가 내가 뭐라고......”
“어르신, 공장에 돌아가니 하루하루 사는 게 번거롭고 복잡해서 당촌 생각이 절로 나더군요. 세상살이가 다 부질없어 보입니다.”
“한참 나이에 그런 생각을 하면 쓰나.”
“어르신처럼 강에서 세월을 낚으며 소일 하는 게 제일 행복할 것 같습니다.”
“허허, 좋은 친구를 하나 만난 네 그려.”
“예전에 쓰시던 낚시 대는 거두고 새 낚싯대를 쓰시지요.”
나는 가져온 낚시도구를 가방에서 꺼내어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드렸다.
“이런 건 안 사와도 되는구먼.”
“아닙니다. 야광찌가 있어서 그믐밤에도 낚시하기가 편합니다.”
“그런가? 아무튼 고맙네.”
“아까 보니 홍화씨가 혼자 해바라기를 심던데 같이 가서 일을 해도 괜찮을까요?”
“이 사람아, 뭘 그런 걸 다 허락을 받으려고 하나. 참 예의바른 친구로구먼.”
“어르신께서는 낚시하고 계셔요. 저는 홍화씨한테 잘 배워서 고국에 가면 꼭 해바라기를 심을 겁니다.”
“알아서 하게나.”
나는 왕 노인께 배갈을 한잔 따라 올리고 일을 하고 있는 홍화의 밭으로 갔다.
“아버님은 뵈셨어요?”
“예, 홍화씨와 같이 해바라기 심을 거라고 허락받고 왔습니다.”
나는 팔소매를 걷어 부치고 호미를 하나 달라고 했다. 호미는 하나에 없다고 해서 린의 집에 가서 빌려갖고 왔다.
“어떻게 심는 거지요?”
“한 뼘 반만큼 거리를 두고 씨앗은 두 세알씩 심어놓으면 되요.”
나는 팔소매를 걷어 부치고 홍화와 함께 밭을 누볐다. 혼자 하려면 하루해가 저물어야 될 터인데 둘이 부지런히 심으니 한나절 만에 해바라기는 다 심어졌다. 점심 식사 때가 되자, 홍화는 아버지를 오시라고 해서 셋이 같이 앉아 식사를 했다. 이번에는 홍화와 같이 연인처럼 재잘거리며 같이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는 곧 린의 집으로 향했다.
“형님, 옷 꼴이 그게 뭐요?”
린은 내 바지춤에 흙이 묻어있는 것을 보고는 물어왔다.
“아, 홍화하고 같이 해바라기를 심어서 그래.”
“홍화 하고 둘이서요?”
“그래, 밥도 먹고 왔으니 이따 저녁에서 먹을 거다.”
“이젠 홍화랑 잘 되가는 모양이네요.”
린은 부럽다는 듯 말을 했다. 그 다음날도 나는 강변으로 나갔다. 점심때가 지나서였다. 아직은 밥을 같이 먹기에는 부담스러운 면이 있어서였다. 그날따라 왕 노인의 안색이 어두워보였다. 내가 곁으로 다가가자 뜻밖의 부탁을 해왔다.
“나도 자네와 홍화가 서로 좋아하는 것을 잘 알고 있네. 그렇지만 지금 홍화마저 없으면 나는 사는 낙이 없네. 이건 자네에게 부탁할 일은 아니지만 내 소원하나 들어주겠나.”
“말씀하세요. 어르신.”
“이젠 나이가 드니 마음대로 나 다닐 수도 없고, 솔직히 외롭기도 하네.”
“나는 왕 노인과 헤어진 홍화 어머의 이름을 그녀에게 들어서 알고는 있었으나, 먼저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자네 며칠 휴가 기간이 남아있으니, 홍화 어머니를 찾아주지 않겠니?”
이건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 같은 일이 아닌가? 그래도 갈때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승낙을 했다
“홍화 어머니의 이름은 림짜이링 이라고 하네. 혹 만나면 내가 평생을 기다리고 있다고 전해주게.”
“예, 알겠습니다. 어르신.”
나는 그길로 시내로 나갔다. 그리고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다가 우연히 한 식당의 주인에게 홍화 어머니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러니까 홍화 어머니가 홍화를 데리고 왕 노인에게 온 것은 무자비하게 폭력을 행사하는 전 남편을 피해서 딸이라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만일 딸을 데리고 있는 왕 노인의 거처를 안다면 죽일 거라는 소문까지 돌았다. 그 후 홍화 어머니는 시내의 한 식당에서 얼마간 숨어서 일을 하다가 북경으로 올라갔다는 것이다. 천우신조 였는지. 그 식당 주인은 홍화 어머니가 일을 하고 있는 북경 식당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었다. 그녀가 북경으로 간지 얼마 안 되어 홍화 친부는 술 중독으로 여기저기를 떠돌다가 숨을 거두었다고 했다. 나는 북경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홍화 어머니의 식당 전화번호를 들고 그 길로 북경으로 향했다. 그러나 북경에 도착을 해서 그 식당으로 전화를 하니 한 달 전에 홍화 어머니가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갔다는 말을 했다. 도대체 이 넓은 바닥에서 어떻게 홍화의 어머니를 찾을 것인가? 우선 나는 먼저 일을 하던 그 식당으로 가봤다. 조그만 단서라도 얻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어디로 갔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힘없이 돌아서는 내개 안타까웠는지, 식당 주인은 서랍 속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내게 들려주었다.
“우리 집에서 일 할 때 찍은 사진 이예요. 홍화 어머니를 찾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고맙습니다. 사장님,”
“사진속의 홍화 어머니는 우울한 모습이었다. 아마도 장촌에 두고 온 딸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여기 북경에는 일손이 많이 부족해서 홍화 어머니는 멀리 가지 않았을 거예요.”
“그렇군요.”
나는 막막한 심정을 안고 북경의 식당 촌을 누비고 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홍화 어머니를 만났다. 그 어머니에 그 딸이라는 속담대로 어머니는 곱고도 아름다웠다.
“홍화 어머니 되시지요?”
“홍화라니요.”
홍화가 어렸을 때 이름도 지어주지 못하고 떠났기에 자신의 딸 이름도 모르고 있었다.
“장촌의 왕 노인으로부터 심부름을 온 사람입니다.”
“아, 왕노인. 내가 죄가 많지요. 그러나 그때 홍화를 그집에 맡기지 않았으면 지 친부에게 맞아 어디 불구라고 되었을 것이지요.”
“어머님, 저는 홍화와 결혼을 약속한 사이이니 장모님이라고 불러도 되겠네요. 아직도 왕 노인은 어머님을 장촌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럴 수가. 정말인가요?”
“예, 홍화 하나만을 바라보고 늘 어머니 생각을 하시며 낚시로 소일하고 계십니다.”
“그 양반 미안하기도 하고 딱하기도 하군요.”
“어머님, 이젠 그만 고생하시고 여생을 장촌에 귀향해서 편히 지내시지요. 저도 갖은 것은 없지만 물심양면 돕겠습니다.”
나는 홍화의 모친이 결심을 하도록 하루를 북경에서 머물었다. 차를 몰고 먼 길을 달려오다 보니 피곤해서 저절로 잠이 왔다. 다음날 눈을 뜨는 대로 식당으로 달려갔다. 만일 홍화 어머니가 귀향을 거절하면 모든 일은 허사가 되고 마는 것이다. 나는 마음에 조바심이 났다.
“잘 쉬였는가요?”
홍화 어머니는 식당에 그대로 있었다.
“예, 어머님은요.”
‘나는 짐 싸느라 밤새 잠 설쳤어요.“
“그러시다면.”
“그래요. 면목은 없지만 장촌으로 내려가 왕 노인의 아내로 살아갈 생각입니다. 오랜 타지 생활이 이젠 지겹기도 하구요.”
나는 홍화 어머니의 짐을 트렁크에 싣고 홍화 어머니와 함께 장촌으로 내려왔다. 길은 멀어도 마음은 가벼웠다.
홍화의 어머니는 집으로 들어가 홍화를 붙잡고 한동안 눈물로 용서를 구했다.
“아니예요, 어머니. 돌아오신 것만으로도 행복해요.”
“고맙구나. 아버지는 어디에 계시냐?”
“어머니 없는 동안 매일 강에가서 사십니다.“
“그래? 같이 내려 가보자꾸나.”
“여보, 저예요.”
“아니 이게 꿈이냐 생시냐”
왕 노인의 눈에서는 눈물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그때 정말 미안했어요. 하지만 홍화를 위해서 어쩔 수가 없었어요.”
“홍화는 제 어미 없이 저리도 잘 자랐오. 오히려 내가 홍화에게 보살핌을 받았으니
미안해하지는 마시구료.“
이번에는 홍화 어머니가 나를 가르키며 한마디 하셨다.
“저 젊은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못 만났을 거예요. 홍화에게 마음을 두고 있으니 짝을 맺어 주는 게 어떠할 런지요.”
“나도 공감은 가오만, 두 사람의 마음을 확실히 알아야 허락을 하던지 할 게 아니오.”
마침내 나는 홍화의 부모님에게 허락을 받는 마지막 관문을 남겨놓고 있었다. 이미 서로에게 마음이 끌린 뒤라 긴장은 하지 않았다.
“홍화야. 너는 어찌 저 사람을 생각하느냐?”
“그저 좋은 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냐? 그럼 자네에게 묻겠는데, 고생만 한 우리 홍화 잘 데리고 있겠는가?”
“예, 지금이라도 업어주고 싶습니다.”
“그러면, 두 사람의 결혼을 승낙하겠네. 하지만 국제결혼은 까다롭다고 들었네. 그래도 추진할 생각인가?”
“불구덩이에라도 뛰어들 각오가 되어있습니다.”
“알았네. 자네가 홍화 어머니도 모셔왔으니 이젠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 나도 딸아이가 결혼하는 모습을 보고 싶으니 결혼식은 중국에서 올리게.”
“예, 고맙습니다. 장인어른.”
“시내에 작은 예식장이 있으니, 그곳에서 예식을 올리자고.”
그리해서 나는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홍화와 중국에서 백년가약을 맺게 되었다. 나는 우선 부모님에게 혼이 날줄 알면서도 사실을 알렸다. 막상 결혼을 올린다니 더 이상 어쩔 수가 없던지 어머니가 축복의 말씀을 해주셨다.
“부디 홍화라는 여자가 좋은 사람이기를 바란다. 우리 내외는 비행기 타기도 어렵고 해서 결혼식에 참여는 하지 못할 것 같으니 그리 알거라.”
“어머니, 여기서 올리는 결혼식은 형식상이고 한국에 내려가면 정식으로 친척과 지인들 모시고 다시 결혼식을 올릴 것이니 너무 서운해 하지 마세요.”
“알았다. 거기 예식은 너의 삼촌에게 전화해서 제대로 진행하라고 이르마.”
“고맙습니다. 어머니, 여기 일도 어느 정도 마무리 하고 고국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그리 하거라. 아들이라고 하나 있는데 궂이 외국에까지 가서 고생시킬 필요는 없구나.”
중국에서의 결혼식은 단촐 하게 치루어졌다. 장촌 마을에서도 린의 부모님이 초청한 하객이며 그래도 한 마을에 사는 왕 노인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참석을 해주었다. 형님은 내가 홍화와 결혼식을 한다하니, 못 말리겠다며 오후의 공장 문을 닫고 종업원들과 같이 참석을 해주었다. 썰렁할줄 알았는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오셔서 축하를 해주었다. 신부의 아름다운 모습에 하객들 모두가 넋을 잃고 있었다. 눈부신 드레스에 쌓인 그녀는 꽃보다도 아름다웠다. 나는 신부에게 들려질 꽃다발을 최고의 가격이 나가는 것으로 들려주었다. 하객들이 넋을 잃은 것보다는 오히려 내가 먼저 넋을 잃었다. 저리도 아름다운 처자와 백년가약을 맺을 것이니 말 그대로 한 백년 다정하게 살아가리라 다짐을 했다.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은 북경의 만리장성을 다녀왔고, 신혼살림은 미리 준비한 아파트에서 시작했다. 나는 한 달쯤 같이 홍화와 지내다가 부모님의 연세도 지긋하시고 나를 몹시도 그리워하셔서 일단 한국으로 돌아왔다.
“며느리는 안보여 줄게냐”
아버지는 못내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내색을 하셨다.
“수속을 밟기가 까다롭기도 하고 홍화는 한국어를 배우겠다고 학원을 다녀 두어 달 쯤 있다가 귀국하게 될 겁니다.”
“한족과 결혼하면 많은 서류들이 필요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하루라도 빨리 처리가 되었으면 좋겠구나.”
나는 이미 각국 대사관으로 혼인 신고를 하려고 다녀봤으나 까다롭게 굴어 차라리 대행업체에 천만 원이 넘는 금액을 지불하고 대행을 위임했다. 그만큼 중국본토배기인 한족과의 결혼식은 어려웠다. 마침내 지루한 시간들이 지나고 그녀가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에 올랐다는 전화를 받았다. 내가 한국에 오기 전에 휴대폰을 하나 개통해 주었던 것이다. 이제 홍화는 그토록 이나 진한 향기를 내뿜는 해바라기보다 더 향기로운 모습으로 내 곁에 영원히 있어줄 것이다. 나는 곧 입국장으로 달려갔다. 두 달 만에 보는 홍화는 더 아름다워 보였다. 나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가 끌어안았다.
“네가 왔구나. 정말 왔구나. 꿈은 아니겠지?”
“저도 반가워요. 꿈을 꾸는 것 같아요.”
공항의 손님들은 마치 우리 둘이 영화 촬영을 하는 것처럼 보여 구경을 했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피해 얼른 밖으로 나왔다.
“오느라 힘들었지? 다리가 부었을 거야.”
“예, 다리에 붓기가 조금 있어요.”
나는 차안에서 홍화의 다리를 주물러주었다. 한참이나 주무르자 편한 모습을 했다. 나는 그길로 부모님이 계시는 서울로 향했다. 홍화는 숲처럼 울창한 아파트 단지를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나는 속으로 걱정을 많이 했다. 만일 부모님이 홍화를 못마땅하게 여긴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그 걱정 이었다 그러나 막상 집으로 들어가서 인사를 시키니 나보다도 더 며느리 감을 좋아하셨다. 그녀는 어디서 배웠는지, 나의 부모님께 큰절을 올리고 만수무강하시라는 덕담도 했다. 나는 음식은 어찌 할까 걱정을 했는데. 그녀는 오자마자 팔소매를 걷어 부치고 주방에 나가 하루세끼를 온갖 반찬을 다 만들어 식탁위에 올려놓았다. 부모님은 입 맞에 맞는다며 며느리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말, 다행이구나.”
“무슨 말씀이세요?”
“요즘 한국여자들은 시집와서도 저렇게 시부모 봉양을 안 한단다.”
“먹고살만해서 그래요.”
추운 겨울이 어느새 지나고 봄이 무르익을 무렵, 부모님은 말씀대로 정식으로 예식을 올려주셨다. 신부 드레스를 입고 대기실에 앉아 있는 홍화를 보기위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아니. 내가 친구들 결혼식에 안 가본 곳이 없는데 저런 미인은 처음보네.”
“나도 그래, 성식이 저놈 처복하나는 잘 타고 났는가 보이.”
먼 친척 두 분이 연실 신부 실을 훔쳐보며 말을 나누었다. 홍화는 신부에게 들려지는 꽃다발보다도 더 예뻤다. 우리 둘의 신혼 여행지는 제주도였다. 나도 제주도는 처음이었고 홍화도 바다를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 넓은 바다가 그녀에게는 신기하게 보인 것 같았다. 우리는 제주도의 이곳저곳을 들러보고 올 때는 싱싱한 감귤을 한 상자 사들고 왔다.
부모님을 봉양하고 산지 석 달쯤 지나자 아버지가 우리를 불러 앉혀놓고 말을 꺼냈다.
“이젠 우리를 위해서 애쓰지 말고 고향에 있는 땅을 가서 일구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나는 눈길을 돌려 홍화를 바라보았다. 홍화 역시 고향에서 농사를 지었으니 어렵지 않게 응해주었다. 우리는 대충 짐을 챙겨 고향으로 내려갔다. 이미 부모님이 사람을 시켜 집을 수리해서 새집과 같이 집은 깨끗했다. 아마도 부모님은 아무래도 눈치가 보일 것이니 따로 살림을 차려준 것 같았다. 원래는 도시의 아파트를 임대하려는 것을 내가 막아섰다.
“아버님, 저희 적성에는 도시 생활이 맞지 않아요. 그리고 직장을 구하려면 한동안 무의도식 해야 되구요.”
네 직장이야 아버지가 얼마든지 좋은 곳을 알아봐서 넣어 줄 텐데 왜 고집을 피우려 드느냐.“
“홍화도 농사일이 밝아요. 우리 둘이 내려가면 별일 없이 잘 지낼 거예요.”
“그래? 그럼 가서 고생을 하거라. 우리도 더 늙으면 그리로 갈 터이니 가족끼리 오순도순 살아보자.”
“알았어요 아버님, 그럼 간단한 짐이나 꾸려서 내려가겠습니다.”
몇 개 안될 줄 알았던 짐은 막상 챙기려니 꽤 많았다. 차 트렁크는 물론 뒷좌석을 꽉 채웠다.
집안은 용역업체를 시켜 다 청소를 했음에도 홍화는 마음에 안 들었는지. 직접 걸레를 들고 벽이며 천장까지 닦아내었다. 저러다 몸살이라도 나면 어쩔까 싶기도 했다. 시골에서의 생활은 서울과는 전혀 딴 판이었다. 나는 종종 백화점으로 홍화를 데려가 화장품이며 생필품을 사들고 왔다. 홍화는 생전 화장품을 처음 보았다.
“이걸 왜 얼굴에 발라요?”
“그걸 바르면 영양분이 얼굴에 흡수되고 피부도 좋아져요. 그러니 한번 써 봐요.”
“예.”
그녀에게 있어서 거울도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앞에 앉으니 자기 모습이 전부 드러나 보였다.
“한국에는 별게 다 있네요?”
‘중국이라고 없을 리 있나? 당신이 안 사봤으니 낯선 것이지. 앞으로 배울게 더 많아 질거야. 참 해바라기 심을 때 되지 않았나?“
“씨앗은 내가 시내의 종묘상에 가서 사오리다.”
“같이 가요. 혼자 있기 싫어요.”
그녀는 처음에 타국에 와서인지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나는 오히려 그것이 즐거웠다. 운전할 때 심심하지도 않을뿐더러 어디를 데려가든 미모로 인해 나까지 빛나기 때문이었다. 무슨 종묘상이 해바라기 씨만 없다고 했다. 나는 천상 인터넷으로 주문을 했다. 길어야 삼일이면 도착을 한다. 컴퓨터를 들여 놓은지 오래되었지만 홍화는 처음에 별로 관심이 없다가 내가 이런 저런 정보를 듣고 시중에 없는 물건들을 주문해서 사용하자, 자기도 배우겠다고 했다. 나는 전원의 온 오프와 자판을 누르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거울도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앞에 앉으니 자기 모습이 전부 드러나 보였다.
“한국에는 별게 다 있네요?”
“중국이라고 없을 리 있나? 당신이 안 사봤으니 낯선 것이지. 앞으로 배울게 더 많아 질거야. 참 해바라기 심을 때 되지 않았나?“
“씨앗은 내가 시내의 종묘상에 가서 사오리다.”
“같이 가요. 혼자 있기 싫어요.
그녀는 처음에 타국에 와서인지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나는 오히려 그것이 즐거웠다. 운전할 때 심심하지도 않을뿐더러 어디를 데려가든 미모로 인해 나까지 빛나기 때문이었다. 무슨 종묘상이 해바라기 씨만 없다고 했다. 나는 천상 인터넷으로 주문을 했다. 길어야 삼일이면 도착을 한다. 컴퓨터를 들여 놓은지 오래되었지만 홍화는 처음에 별로 관심이 없다가 내가 이런 저런 정보를 듣고 시중에 없는 물건들을 주문해서 사용하자, 자기도 배우겠다고 했다. 나는 전원의 온 오프와 자판을 누르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영특해서인지 금방 컴퓨터를 배웠다. 내가 배울 때보다도 빨랐다. 아침상을 물리고 밭을 돌아보고 있는데, 마침 택배차량이 와서 해바라기 씨가 도착했다고 포장박스를 전해주었다. 마침내가 중국에서부터 꿈꿔왔던 해바라기를 직접 심게 된 것이다. 홍화는 나보다도 더 좋아했다. 나는 농자재상에 가서 검은 비닐을 사왔다.
하루는 해바라기 씨를 심으려고 홍화와 같이 밭으로 나가려는데, 문밖에 검은 승용차 한 대가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누군가 싶어 가까지 가니 부모님이 차에 계셨다. 나를 보자 바로 차에서 내리셨다.
“그래 농촌에서 살만 하더냐?”
아버지가 물으셨다.
“예, 막상 해보니 그리 어렵지는 않네요.”
“그래? 다행이구나. 네놈 보다는 며느리가 보고 싶어서 왔다,”
어머니는 홍화를 안다시피 어깨를 감싸 안고 한동안 그대로 계셨다.
“그래, 힘들지는 않더냐?”
“아뇨? 오히려 재미있어요.”
“그럼 다행이구나. 아직 손주 소식은 없더냐?”
이 말에 홍화는 얼굴이 빨개진 채 대답을 하지 못했다. 부끄러웠던 것이다. 부모님은 허름한 건너 방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날 다시 서울로 올라가셨다. 아버지는 차에 오르기 전에 나를 부르시더니 돈이 든 봉투를 하나 건네주셨다. 내가 용돈을 드리지는 못할망정 부모님에게 돈을 받으니 여간 미안한 게 아니었다. 사실 내 주머니에는 농자재며 씨앗을 사들이느라 가지고 있던 돈을 거의 다 쓴 상태였다. 부모님을 배웅하고 난 뒤 나는 농자재상에 가서 검은 비닐을 사왔다.
“그게 뭐예요?”
무엇이든 홍화에게는 낮선 것들 뿐 이었나보다.
“아, 우리나라는 풀이 많이 자라서 비닐을 덮고 씨를 뿌려야해.”
“한국에서는 해바라기 심는데도 별게 다 필요하네요.”
나는 대답대신 웃음을 지어 보였다. 우리 둘이는 백여 평이 조금 넘는 밭에 해바라기 씨를 정성껏 심었다. 이제 여름이 되면 화사하게 피어날 것이다. 나머지 밭에는 찬거리로 쓸 야채와 옥수수를 심었다. 홍화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군말 없이 일을 거들었다. 추운 곳에서 살았는지 홍화는 여름 견디기를 힘들어했다. 여름에 할 일은 나 혼자 묵묵히 해냈다. 마침내 자라기 시작한 해바라기가 꽃을 피웠다. 홍화는 고향을 간 것처럼 기뻐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의 인연을 맺어준 저 해바라기 꽃 아마도 그녀의 가슴속에나 내 가슴속에나 그때 해바라기 꽃밭에서 입을 맞추던 기억을 영원히 추억으로 간직하며 살아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