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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세 천사의 기별
♦마음 열기
*찬양의 시간: 찬미가 345장 우리 구주 십자가의 보혈로
*촛불신앙과 등불신앙의 차이를 알고 계십니까? 나의 신앙은 나의 힘과 정성으로 빛을 내는 듯 보이지만 금방 꺼져버리는 ‘촛불신앙’입니까? 아니면 끊임없이 성령을 통해 공급하시는 힘으로 참된 빛을 내는 ‘등불신앙’입니까?
♦생각 열기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1888년 미네아폴리스 총회에서 논쟁이 되었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세 천사의 기별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1. 논쟁의 배경: 1880년대 후반에 이르러 재림교회는 새로운 정체성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 문제를 가장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재림교회 신앙이 서로 연관된 두 가지 범주의 진리 체계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첫째 범주는 재림교인들이 다른 기독교인들과 더불어 공유하고 있는 교리들, 즉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서만 얻어지는 구원의 교리를 포함하여 성경의 중요성, 세상의 구속주로서 예수의 구속사적 역할 등과 같은 교리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둘째 범주는 앞서 4장에서 이미 논의되어진 재림교회의 기둥같은 특별한 교리들을 포함하고 있다. 재림교인들은 19세기의 유럽 사회가 향유한 풍성한 기독교 문화적 배경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다른 기독교인들과 함께 공유하고 있던 교리들은 특별히 강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요컨대, 이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침례받은 교인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설교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것이 저들의 생각이었다. 재림교인들은 그러한 논리에 따라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특별한 교리들을 전하는 것만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렇게 함으로써 저들은 사람들을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로 개종시키려고 했다. (재림교회 신앙의 정체성을 찾아서, 109)
지난 40여 년 동안 이러한 복음전도 방식은 재림교회를 다른 일반 기독교회와 분리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엘렌 화잇은 미네소타 주의 미네아폴리스에서 개최된 1888년 대총회와 관련된 글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재림교회는 이제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한 복음의 기별”을 설교해야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세상 사람들이 더 이상 재림교인들은 율법, 오직 율법만을 말하고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거나 믿지 않는다고 말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TM 92). 결과적으로 1888년대 후반에 이르러 재림교회는 자체의 신학을 수정하는 과정을 밟아나갈 수밖에 없었다. 재림교회 신앙에서 재림교회적인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재림교회 신앙에서 기독교적인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의해서 도전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이 나타났다.
미네아 폴리스 총회 갈등의 배경: 재림운동이 종말적 위기의 중심에 있었음. 1860년대 국가개혁협회와 그 외의 다른 그룹들은 미국을 기독교 국가로 만드는 일을 강력하게 추진함. 일요일의 신성성을 수호하고자 하는 열망을 포함하고 있었다. 1880년대 초에 이르자 일부 개신교인들은 재림교인들을 주일 성수를 수호하는 정책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이라고 여기게 됨. 1882년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W.C화잇을 일요일에 태평양 출판소에서 일을 했다는 이유로 체포하면서 본격적으로 논쟁이 불붙음.
1888년 5월 21일 블레어 상원의원은 “주일”을 “종교 예배일”로 권장하기 위한 법안을 미 의회에 제출함. 1840년대 재림운동이 시작된 이래 미국의 국회 앞에 제안된 첫 번째 법안이었음. 재림교인들은 이 법안이 가지는 예언의 중요성을 인식함. 재림교회 지도자들이 이런 종말적 인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교단이 견지하고 있는 예언해석과 율법에 대한 신학적 입장들 가운데 몇 가지 내용들의 유효성을 재검토하기 시작한 몇몇 사람들에게 단호하고도 감정적 반응을 보였었는지 이해할 수 있음.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들이 제기한 의문들은 최후의 위기의 대를 맞이하여 재림교회의 정체성 중에서도 핵심이 되는 내용을 공개적으로 위협하는 것이라고 판단함. (상게서, 111)
2. 여전히 책의 백성들인가? 권위의 문제: 교단이 설립된 지 40년이 지난 시점에서 몇몇 지도자들은 초기의 재림기별의 창시자들이 배척했던 교리적 권위의 원천들을 훨씬 더 많이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엘렌 화잇은 그 문제를 민감하게 여기고 곧 개최될 대총회에 참석할 대표자들에게 1888년 8월에 한 통의 편지를 보내어 재림교회 신앙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권위는 성경이 권위임을 지지하였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내의 전통주의자들은 엘렌 화잇의 이러한 직접적인 권면에도 불구하고 1888년에 교단을 뒤흔든 성경적, 신학적 문제들을 다루면서 성경적 권위 대신에 적어도 4가지 형태의 인간적인 권위에 의존했다.
1) 스미드와 버틀러는 둘 다 당시의 쟁점들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자신들의 전문적인 견해를 사용하고자 했다.
2) 저들이 의존한 인간적인 권위의 둘째 영역은 행정적 권위였다.
3) 하나의 교리적 논점을 확립시키기 위해서 재림교회의 전통에 의존하는 것이었다.
4) 스미드-버틀러 진영은 전통적 재림교회 신앙을 고수하기 위해 교단에서 결의한 교리적인 진술들을 열정적으로 활용하였다. 저들은 이러한 진술들이 1888년 이전의 재림교회 신학을 견고하게 확립시키게 해 준다고 생각하였다. 스미드-버틀러 진영은 신학적이고 성경적인 성경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엘렌 화잇의 권위에 호소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그의 반복된 요청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상게서, 115)
1888년 이후에 나타난 또 다른 한 문제는 엘렌 화잇의 저술들을 덜 건전한 방식으로 사용하는 관례가 발생한 것이었다. 이러한 관례는 20세기 들어서 많은 재림신자들이 활용한 관례였다. 존스가 바로 이 문제의 선두에 있었다. 1890년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던 존스는 현대적 예언의 선물에 권위를 부여하고 또한 그것을 활용하는데 있어서 초기 재림교회 지도자들과 엘렌 화잇의 입장과 대립되는 4가지 그릇된 전례들을 재림신자들에게 제공하였다.
1) 1890년대에 존스가 엘렌 화잇의 저술들에 대해 가졌던 가장 기본적인 오류는 그녀의 저술들과 성경과의 관계를 그가 잘못 이해한 것이었다. 그는 1894년에 “예언의 선물들: 그 실재와 목적”이란 제목의 기도주일 낭독문을 작성했는데, 그 낭독문에서 “증언을 올바르게 사용하는”유일의 방법은 “그 증언들을 통해 성경을 연구하는”것이라는 사상을 발표하였다. 이 시점에 이르러 존스는 엘렌 화잇의 저술들을 성경에 대한 “무오의”주석으로 설명하면서 성경이 그녀의 저술들에 종속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HM Extra, 1894. 12. 12). 물론 그것은 엘렌 화잇이 미네아폴리스에서 거절한 바로 그 입장이었다.
2) 존스는 화잇의 글을 축자영감의 방식으로 이해하였다.
3) 존스는 화잇의 저술들은 오류가 없거나 실제적인 오류가 없다고 믿었다.
4) 존스는 엘렌 화잇의 저술들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그 진술에 내포된 역사적이고 문학적인 의미들은 중요하지 않다고 보았다. 이러한 사상 때문에 존스는 결국 재림기별을 계승한 세대들과 함께 하지 못하고 교회를 떠났다. 화잇은 그녀의 독자들에게 자신의 저술들을 해석할 때에는 시간과 장소, 문맥적 요소들을 고려하라고 정규적으로 권면하였다. (상게서, 120)
3. 예수를 높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세 천사의 기별: 1888년 대총회 기간동안에 다룬 두 번째 신학적 이슈는 구원론에 관한 것이었다. 많은 재림교인들은 예수를 바라보는 일에 실패하고 있었고, 그분의 신성과 공로, 그리고 인류를 위한 그분의 변함없는 사랑에 그들의 시선을 고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주시기 위해 명령하신 바로 그 기별이다. 그것은 셋째 천사의 기별로서 큰 소리로 외쳐지고 엄청난 양의 성령의 능력을 수반하게 될 기별이다.(TM, 91,92).
엘렌 화잇은 존스와 와그너를 신임했지만 그것이 그녀가 이 두 개혁자들이 가르친 모든 가르침에 동의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1873년, 켈로그(M.G.Kellogg)는 세계의 역사를 그림으로 표현한 ‘잃어버린 낙원에서 회복된 낙원으로 이르는 생명의 길’이라는 제목의 석판화를 만들었다. 그림의 중심에는 나무에 걸려있는 하나님의 법과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모습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었다. (재림교회신학발전사, 멀린버트. 124).
스미드-버틀러, 그리고 그의 동료들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는 과거의 죄들을 처리하는 것이라는 자신들의 신념에 따라 개심 이후에도 칭의가 계속 유지하는 것은 행함으로 말미암는 칭의의 결과라고 생각하였다. 미네아폴리스 이후에도 계시록 14:12에 대한 자신들의 율법의 적 견해를 계속 유지했다. 재림교회 전통주의자들의 핵심 단어는 순종이었다. 하지만 구원에 대한 사상의 두 번째 흐름 역시 재림교회의 역사 속에 존재해왔는데 제임스 화잇은 1850년에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한 자유롭고 완전한 구원”을 주장함으로써 그러한 시각을 강조하였다(PT, 1850, 4, 66). 이러한 두 번째 시각을 확장한 사람이 바로 존스와 와그너였다. 이들의 핵심 단어는 믿음이었다.
1883년 엘렌 화잇은 그림을 다시 새시고 제목을 ‘생명의 길 그리스도’로 바꾸어 새롭게 출판했다. 새로 만들어진 석판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중간에 배치하고 같은 선상에서 하나님의 법을 없앴다. 이 사진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가 강조된 1888년 총회가 있기 5년 전에 출판되었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십자가 중심으로 대쟁투 주제를 이해함>
화잇부인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와그너 박사가 그것을 우리 앞에 제시했을 때 나는 율법과 관련된 그리스도의 의의 기별 속에 진리의 아름다움이 있음을 보았다. 그것은 내가 계시를 받을 때마다 항상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고자 하신 그 빛과 완전히 조화를 이룬다.” (MS 15, 1888). 그러나 몇몇 전통주의자들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에 대한 지나친”강조로 인해 재림교회 신앙이 “이전에 가르쳐 왔던 선한 옜 교리들로부터 떠나게”되지 않을까 염려하였다. 몇몇은 엘렌 화잇에게 편지하여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에 대한 강조가 셋째 천사의 선포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묻거나 혹은 그것이 역사적 재림교회 신앙으로부터 떠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의 가르침은 “참으로 셋째 천사의 기별, 혹은 진리”라고 답했다. (RH, 1890. 4. 1. 193).
화잇부인은 미네아폴리스 총회 직후에 미네아폴리스의 핵심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셋째 천사의 기별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은 선포되었지만 예수의 믿음은 그것과 동일한 중요성을 가진 채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회에의해 선포되지 못했다. 율법과 복음은 함께 전파되어야 한다.” 예수의 믿음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그녀는 계속 이렇게 말했다. 그것(예수의 믿음)은 “언급되고는 있지만 이해되지는 못하고 있다.” 예수의 믿음이란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나르는 자가 되었다는 것, 즉 그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구세주가 되었다는 것을 믿는 믿음을 의미한다. … 그는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취하셨고 우리는 그의 의를 취하게 되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충분하고도 완전하게, 그리고 전적으로 믿는 믿음이 바로 예수의 믿음이다.“ 따라서 재림교인들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붙잡을“필요가 있다. 그녀는 계속된 기록에서 이것이 그녀에게 새로운 빛이 아니었다고 강조하면서 그녀는 이것을 1844년 이래 계속해서 설교해왔다고 했다(MS 24, 1888).
이처럼 엘렌 화잇은 존스와 와그너와 함께 예수의 믿음을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이해하기에 이르렀다. 이 해석들은 둘 다 헬라어 본문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해석들이다. 이러한 적절한 해석과 더불어서 재림교회는 계시록 14:12에 율법과 복음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분명한 이해를 처음으로 가지게 되었다. ”셋째 천사의 큰 외침은 죄를 용서하시는 구세주이신 그리스도의 의의 계시 안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이것은 영광으로 온 땅을 환하게 비출 그 천사의 빛이 비추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경고의 기별을 받아들이고 ... 그리스도를 높이 든 모든 이들의 사역이기 때문이다.“ (RH, 1892. 11. 22. 722).
엘렌 화잇이 말한 바 그 분명한 의미는 1888년이 시작되면서 재림교회는 처음으로 계시록 14:12의 완전한 신학적 의미를 적절하게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며, 아울러 재림교회가 받아들였던 그 구절은 재림의 때에 나타날 위대한 추수(계14:14-20)가 있기 전에 그 마지막 기별이 온 땅에 전파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교단은 큰 외침의 기별을 가지게 되었다. (재림교회 신앙의 정체성을 찾아서 132)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신념의 네 가지 단계: 1) 교리: ”지계표“ 또는 ”기둥“이라고 표현한 기본 신념. 안식일, 예수님의 재림, 대쟁투, 조건적 불멸설, 하늘성소의 두 단계봉사, 엘렌 화잇의 예언적 사역과 마지막 대에 나타날 영적 선물 등.
2) 가르침: 믿음을 시험하는 문제들은 아니나 교회가 받아들인 신앙 또는 생활상의 문제(채식주의,양심적 병역거부, 카페인 사용금지, 종교적 자유와 정교분리 등)
3) 다수 또는 소수 견해: 공식적으로 교리 또는 가르침이라고 인정하지 않았지만 재림교인들 중 다수를 포함한 무리의 입장이나 신념. 이것은 종종 믿음의 핵심적인 문제가 아닌 이념을 포함한다(갈라디아서에 나타난 율법, 비건생활습관의 필요성, 그리스도의 죄된 인간성, 노조에 합류하지 않을 것 등)
4) 개인적인 입장: 이것은 극히 소수(예를 들면 한 지역교회)의 입장을 뜻함. (재림교회신학발전사, 멀린버트, 141)
4. 전망: 이상의 모든 관점에서 볼 때 1888년의 미네아폴리스 총회를 둘러싼 사건들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역사에서 잊지 못할 충격적인 것이었다. 재림교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두 단계의 하늘성소봉사, 안식일, 조건적 영혼불멸설 등과 같은 독특한 교리들을 계시록을 중심으로 해서 나타나는 종말론적 예언의 구조와 더불어 잘 구성하였으며, 그러한 교리들을 사랑해왔다.
그러나 두 번째로 제기된 질문, 즉 재림교회 신앙에서 기독교적인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교회에 하나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마치 두 개의 건축용 금속판들이 서로를 향해 충돌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에, 이후 100여 년 동안 교단 내에서 여전히 출렁거리는 충격파를 일으켰다. 1888년의 사건이 낳은 비극들 중의 하나는 전통적 재림교회 신앙을 지지했던 지도자들이 은혜와 믿음에 대한 새로운 가르침들을 과거에 가졌던 율법 중심의 재림교회 신앙에 대한 도전으로 보거나 심지어는 그것을 부인하는 것으로 이해했던 것이었다. 그들은 그것들을 서로 용납될 수 없는 것으로 보았다.
재림교회에서 정말로 필요한 것은 재림교회 신앙을 초기교회와 종교개혁으로부터 상속된 기독교의 메시지가 가지고 있는 포괄적인 구조 속으로 이끌어 들이는 것이었다. 존스와 와그너는 그러한 상호보완성을 조망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였다. 엘렌 화잇은 특별히 메시아로서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을 강조함으로써 그 상호보완적 방법을 제안하였다. 이러한 이해로 인해 재림교회 신앙은 계시록 14:12에 나타난 셋째 천사의 기별이 가진 “두 부분,” 즉 율법과 복음이 함께한다는 사실을 확립하였다. (재림교회 신앙의 정체성을 찾아서, 153)
한편, 1900년에서 1920년 사이에 적어도 다섯 가지의 신학적 논쟁점들이 재림교회 신앙 내부에서 발생하였다.
1) 거룩한 육체파 운동으로, 재림 전에 인간의 몸이 물리적으로 완전하게 된다는 사상을 강조함으로써 극단적으로 나아갔다.
2) 켈록과 와그너와 같은 재림교회 지도자들의 영향력 아래서 교단 전체를 휩쓸었던 범신론적 사상의 물결과 관련된 것이었다.
3) 성소제도와 그 봉사에 대한 재림교회의 전통적 이해를 거절한 발렌저의 사상과 연관된 것이었다.
4) 존스와 와그너에 의해서 제시된 성결-오순절 운동으로 그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성령이 각 교인들에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시기 때문에 조직은 더 이상 필요 없다는 논리에 따라 교회 조직을 부인하기도 했다.
5) 단 8:13의 “매일”과 관련된 논쟁이 연장된 것으로 해스켈과 다른 몇몇 사람들은 그 “매일”이 로마 이교주의를 의미한다고 이해하는 소위 옛 견해를 강조하였고, 프레스콧과 다른 몇몇 사람들은 그 “매일”이 하늘성소에서의 그리스도의 제사장적 중보 사역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상게서, 154)
♦ 적용하기
1. 나는 요한계시록 14:12의 말씀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 믿음을 지킨다는 의미에 대해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온전하게 이해하고 경험하고 있습니까?
2. 나는 신앙의 중요한 점과 주변부의 주제들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그것을 설명할 수 있습니까?
3. 나의 신앙의 모든 권위를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다 두고 있습니까?
♦ 기도시간
1.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이론만이 아닌 체험적으로 알 수 있도록
2.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성령께서 보다 선명하게 깨닫고 경험시켜 주셔서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갈 수 있도록
3. 오늘 깨달은 내용과 함께 개인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