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타고 흐르는 옛노래
엄영아
아버지께서 일본에서 돌아오시던 날이다. 낮에 집에 오신 아버지 때문에 모두가 분주해졌다.
옥순이는 마루에 먼지를 닦고 일하는 아줌마는 대구포를 찢어 술안주로 준비하느라 바쁘다.
아버지는 축음기(유성기)를 사 가지고 오셨다. 축음기판에 바늘을 올리니 노래가 흘러나왔고 아버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셨다.
아버지는 그날따라 안방이 아니라 대청마루로 술상을 차려 오라고 하셨다.
엄마가 마루로 나오셨다. 아빠는 엄마의 등에 손을 두르시고 엄마의 손을 아빠의 어깨에 올려놓고 댄스를 하셨다. 발을 맞춰 마루를 오가며 춤을 추는 모습이라니. 다섯 살배기 어린 나는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문 뒤로 몸을 감추고 한쪽 눈만 빼꼼 내놓고 이 모습을 훔쳐보았다. 우리 집 대청마루는 워낙에 넓고 평소에도 빤짝거렸지만 그날 마루는 더욱 넓고 빛났다.
조용하신 아버지는 축음기를 사오신 후로 술을 드시면 자주 엄마랑 춤을 추셨다. 엄마의 고운 옥색 한복이 마루 위에서 그네를 탄 듯 나풀거렸다. 고운 엄마의 미소를 바라보던 아빠는 나라를 정복한 용사처럼 늠름한 모습으로 엄마를 꼭 껴안고 춤을 추셨다.
노래를 즐겨 부르시던 우리 아버지. 어릴 때 열병을 앓아 목소리는 쉰 듯했지만 박자와 음정은 정확했다. 우리 집에서 같이 살던 노래 잘하는 막내 이모는 "형부는 노래를 잘 부르시네요" 하며 아버지의 노래를 즐겨 들어주었다. 가끔 놀러 오시는 외삼촌도 가요를 자주 부르셨던 걸 생각하면 외가는 노래에 소질이 있었던 것 같다.
이모는 기가 막힌 목소리를 가졌다. 대문 밖에서 들으면 축음기에서 나오는 소리인지 이모가 부르는 소리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노래를 아주 잘 불렀다. ‘그네’ ‘바위고개’ ‘동심초’ 이런 가곡을 들을 때면 지금도 이모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오래전 이야기지만 이모는 동네 근처 결혼식장에 불려 다녔다. 이모는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결혼식당 주인이 축가를 부탁하려고 학교로 찾아올 정도였다. 이모는 축가를 불러주고 받은 용돈을 항상 ‘모리나가’ 우유통에 저금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좋은 일에는 방해되는 일이 많다더니 이모는 고등학교 졸업반 때 늑막염을 심하게 앓아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그래도 이모는 소망을 잃지 않았다. 그 무섭고 징그러운 지네를 한약에 섞고 약탕관에 달여 열심히도 먹었는데 병세는 나아지질 않았다. 이모는 그렇게 음악대학에 가고 싶어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내게 주어진 사역을 끝내고 은퇴한 뒤로 가끔 남편과 함께 가요무대를 시청한다. 어릴 적 축음기를 통해 듣던 노래가 나도 모르게 기억 어딘가에 저장되었나 보다. 수적천석(水適穿石).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고 아주 오래전 들었던 옛 가요와 가곡이 세월을 스며 나와 가사까지 생각난다. 옛날 노래는 거의 다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라 스스로 놀란다.
오늘은 하얀 모시를 즐겨 입으시던 고상한 아버지와 가곡을 잘 부르시던 이모가 더욱 그립다.
(5/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