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방송과 라디오를 통틀어 가장 많이 에어 플레이되고 있는 노래는 아마도 이기찬의 '또 한번 사랑은 가고'와 왁스의 '화장을 고치고' 일 것이다. '가을=발라드' 라는 공식은 거의 적중하지만, 요즘처럼 이렇다할 대박 앨범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 단연코 두 노래의 인기는 정상의 자리에서 쉽게 내려올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두 노래에 도전장을 낸 곡이 있으니, 바로 엄정화의 이번 7집 앨범 [화]의 타이틀곡인 '다가라'.
엄정화는 '여름=댄스' 라는 공식에는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다. 작년 발표한 6집 [Queen Of Charisma]도 한창 발라드들이 기세를 떨칠 때, 앨범을 발표했고, 이번에도 차트 상위권의 앨범들이 발라드로 인기를 모으고 있을 때, 앨범을 내놓은 것을 보면 이제 어느 정도 그런 계절 공식이나, 앨범 발매시기에 유달리 촉각을 곤두세우는 풋내기 가수는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꽃이 만개하듯, 엄정화가 활짝 폈다는 의미인지 '花'라는 앨범 타이틀과 함께 흑백의 엄정화를 담아낸 매혹적인 사진들은 어느 누구라도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이끌리어 자연스레 손이 가게 앨범재킷을 장식하고 있다. 엄정화는 단연코 우리 가요계의 몇 안 되는 굵직한 여가수라는 존재라는 것은 무시할 수 없다. 항시 트렌드를 잘 읽는 작곡가와 작사가들의 곡들을 수록하고 있으며, 그녀가 새 앨범을 들고 나오면 모든 매스컴은 그녀가 보여줄 다채로운 볼거리에 주목을 하고 있고, 그녀는 대중들의 그런 기대에 부응하듯 화려하다 못해 혼을 쏙 빼놓을 것 같은 외모와 의상으로 대중들의 보는 욕구를 충분히 만족시킨다. 이번에는 좀처럼 잘 입지 않았던 짧은치마에 오드리 헵번을 연상케 하는 앞머리를 강조한 헤어스타일, 그리고 그녀의 나이를 가늠할 수 없게 만드는 아주 상큼한 모습이 대중들을 유혹하고 있다. 그녀의 이미지 메이킹은 단연 최고다.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과 매력적인 포인트를 캐치하는 것 이외에도 자신의 앨범 컨셉을 가장 정확하게 대중들에게 알리면서 약간의 틈새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모습을 선사한다.
지난 6집 [Queen Of Charisma]가 기대 이상의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 것을 감안한다면 이번 앨범에서 엄정화는 꽤 많은 신경을 쓴 듯 보이기까지 한다. 앨범 전체적으로 살펴봤을 때, 댄스 음악 앨범으로 수작으로 손꼽히는 앨범까지는 아니더라도 중간 이상을 퀄리티는 가지고 있다고는 말할 수 있다. 먼저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으로 현재 급속도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다가라'는 엄정화와 콤비를 이뤄 그녀의 빅 히트곡을 만들어낸, 신문지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삼각관계의 주인공 주영훈이 만든 복고적인 향취가 강한 디스코 곡이다. 곡의 진행이나 비트가 70-80년대의 디스코를 생각나게 하는 심플한 리듬에 10대들이 열광하는 정신없는 댄스보다는, 강렬한 분위기는 약하다 하더라도, 세련된 느낌에 쉬운 멜로디와 따라 부르기 용이하다는 것에 이 노래에 강점이 숨어 있을 것이다. 이 노래가 엄정화에게 댄싱 퀸이라는 타이틀을 수여했던 '포이즌'이나' 배반의 장미', '몰라'처럼 강한 댄스 비트를 자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 노래 못지 않게 엄정화의 매력을 잘 표현하는 노래임에 틀림없다. 엄정화는 섹시하면서도 애절한 듯한, 감미로운 보이스 컬러를 가지고 있다. 그녀의 가창력이 뛰어나다고 칭찬하기에는 약간 부족한 점이 없지 않지만, 그녀의 보이스 컬러는 섹시한 댄스곡이나, 우수에 젖은 발라드가 적절하게 어울리는 목소리다. 그렇기에 그녀가 히트시켰던 댄스 넘버들을 이외에도 '후애'와 '하늘만 허락한 사랑' 등등의 발라드 넘버들이 꾸준하게 리퀘스트가 되는 것을 보면 그녀가 가지고 있는 목소리의 장점을 짐작할 수 있다. 이번 앨범에도 엄정화의 음색을 강조한 발라드 넘버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니 품에 안긴 채로', '항상 그랬듯', '어쩔 수 없는 일', '하얀 기도', '아직..' 등은 지난 발라드 넘버들처럼 인기를 모을 지는 미지수이지만 앨범 안에서 감미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한 몫 한다. 앨범의 첫 곡인 'All I Wanna Do'나 김건모가 노래의 마지막 부분에 피처링을 하면서 우정을 과시한 윤일상 작곡, 이승호 작사의 '괜찮아요'는 '다가라'와 함께 인기를 모을 것으로 예상이 되며, 어쿠스틱한 분위기와 함께 멜로디컬한 느낌을 강조하는 'Grey', 김형석표 댄스 넘버인 'Moonlight', 주영훈의 예전 히트곡을 연상케하는 '죄와 벌' 등의 수록곡에서는 기존 엄정화의 분위기와 수록곡에서 벗어나지도, 그렇다고 파격적이지도 않은 중간 정도의 위치에 서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엄정화의 이번 앨범은 20대 여성을 타겟으로 했다고 할 수 있다. 복고적인 성향이 간간히 드러나는 수록곡에, 앨범을 장식하고 있는 그녀의 흑백 사진들, 엄정화의 타이틀곡에서도 이번 앨범이 드러내고 있는 특징들을 쉽게 찾아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이번 앨범은 그녀의 여느 앨범들이 그렇듯 어느 정도 계산된, 타겟을 향한 화살세례는 정확한 적중률을 보일 것으로 보이며, 올해 여가수들이 이렇다할 히트를 기록한 앨범을 발표하지 못한 것을 감안한다면 엄정화의 화려한 컴백이 어느 정도 체면치레 정도는 해 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녀의 적중률이 그녀가 입고 나오는 옷이나 헤어스타일이 장식하는 패션 쪽으로 화살을 맞출 것인지, 아니면 가수 엄정화로 선보이는 노래들로 대중들의 마음을 뚫을 것인지는 두고봐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