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냐냐난다(Kaṭukurunde Ñāṇananda) 스님(1940~2018)]
[학문으로 수행의 길을 간 학승]
개념(槪念)과 실재(實在)
마음은 어떻게 자신을 가두는가? 우리는 대부분 세계(世界)를 있는 그대로 경험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사실 마음은, 스스로 짜놓은 틀로부터 그어 놓은 경계(境界)를, 세계의 본모습이라고 착각(錯覺)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경험은 끊임없이 새롭게 흘러오지만, 마음은, 그 경험에, 늘 자신의 욕망과 기억, 견해들을 덧씌우거나, 익숙한 잣대를 들이밀어 자신의 틀을 고수(固守)하기 때문이다. 마치 마법을 통해 죽은 호랑이의 뼈와 가죽을 부활시킨 마법사가 자신이 만든 호랑이에게 잡아먹혀 버렸다는 이야기와 같이, 우리는 자신이 빚어낸 마음의 그물 안에 사로잡힌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붓다는 마음이, 인식(認識)을 왜곡(歪曲)하고 자아(自我)라는 환상(幻想)을 키우는 원리(原理)를 망상(妄想, papañca)이라는 법칙으로 해명(解明)하고, 이를 고통(苦, dukkha)의 핵심적인 원인으로 설명했다. 망상이란, 인식에 앞서서, 마음이 대상(對象)을 있는 그대로 투영(投映)하지 못하고 주관의 편견과 관념들을 덧씌워서 끊임없이 증폭(增幅)시키는 법칙이다. 스스로 형성한 마음이 자신을 가둔다는 이와 같은 불교적 해명은 붓다의 가르침(法, dhamma)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비달마의 주석(註釋) 전통에서는 오랫동안 충분히 조명(照明)받지 못한 측면이 있다.
1971년, 스리랑카의 한 젊은 스님이 그 오래된 봉인(封印)을 깨뜨렸다. ‘지혜의 기쁨(智樂, Ñāṇananda)’을 의미하는 이름을 지닌 비구 까뚜꾸룬데(Kaṭukurunde) 냐나난다였다. 우리는 먼저 스리랑카가 상좌부(上座部) 불교의 본가(本家)로서 남방 상좌부의 권위가 오늘날에도 유지되고 있는 곳임을 주지(周知)할 필요가 있다. 기원전 3세기 아쇼카(Aśoka) 왕이 왕자 마힌다(Mahinda)를 보내 빨리어(Pāli) 삼장(三藏)을 전한 이래, 스리랑카는 2,300년 가까이 빨리어 경전과 그 주석 전통을 지켜온 자리였다. 또한 5세기경 붓다고사(Buddhaghosa)가 《청정도론(淸淨道論)(Visuddhimagga)》을 편찬한 이래, 1,500년 넘게 그 주석 전통의 권위가 지속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랜 주석 전통에서 망상에 대한 이해는 갈애(愛)・자만(慢)・견해(見)와 같은 층위에서 다만 번뇌의 또 다른 이름으로 다뤄져 왔을 뿐이다. 마음이 빠지기 쉬운 함정(陷穽)의 이름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냐나난다는 망상을 경전의 핵심 구절들과 함께 다시 읽어내며, 《초기불교 사상에서 개념과 실재(Concept and Reality in Early Buddhist Thought)》라는 저술을 통해 이 한 단어를 불교 이해의 가장 중추적(中樞的)인 표지판(標識板)으로 제시한다. 천 년 넘게 높은 자리에서 유지되어 온 주석 전통이 놓친 지점을 낮은 음성으로 짚어내는 길이 그렇게 열린 것이다.
통상적인 이해에서 실재(實在)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고, 개념(槪念)은 마음이 빚어낸 결과를 가리킨다. 이 이해로부터 우리는 후자를 전자로 간주하여 믿기 때문에 고통받는다는 서사(敍事)를 도출(導出)한다. 그러나 언뜻 명백해 보이는 이 서사는 새로운 것도 아니고 불교만 고유한 것도 아니다. 불교 이외의 다른 철학과 종교에서도 이러한 서사는 쉽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불교적 해명은 개념을 벗어난 실재가 무엇인지 혹은 그 의미가 삶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해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설명은 이를 해명하기보다 ‘개념 대 실재’의 구도(構圖) 안에서 존재론적 설명에 머문다. 예를 들어 주석 전통은 세속적 진리(世俗諦, sammuti-sacca)와 궁극적 진리(眞諦, paramattha-sacca)를 이분(二分)하고, 그 구분에서 망상을 세속제로, 실재를 망상이 제거된 진제로 설명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개념을 벗어난 실재란 무엇인가?’ 혹은 ‘궁극적 실재란 어떤 세계인가’와 같은 존재론적 의문은 지속된다. 이 미해결의 자리에 다시 ‘궁극적 실재는 무위(無爲) 영역이다’ ‘열반은 생멸 너머의 절대적 평온이다’라는 형이상학적 진술로 채운다고 할지라도, 그 의문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붓다는 초월적 세계나 형이상학적 원리들을 분명하게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우리의 영적 노력에 가장 큰 도움을 준 개념들(正見)조차도 작별 인사를 해야 한다. …… 어떤 개념들을 다른 것보다 선호하여 절대적이고 불가침의 범주로 대단하게 여겨서도 안 되며, ‘궁극적 진리’(paramattha)라는 라벨이 붙은 방수통에 그것들을 [넣어] 포장해서는 안 된다. …… [아비달마보다] 더 이른 시기, 그리고 비-주석적 용례에서 ‘궁극적 진리’라는 단어는 실제로는 ‘실현해야 할 대상으로서 최상의 목표’를 의미했다.
— 《초기불교 사상에서 개념과 실재》 p.42.
냐나난다는 이 난제(難題)를 망상이 작동하는 마음의 구조 안에서 풀어냈다. 《꿀덩어리경(Madhupiṇḍika-sutta, MN 18)》에서는 망상의 구조를 “안(眼)과 색(色)을 조건으로 하여 안식(眼識)이 발생한다. 이 셋의 화합이 촉(觸, phassa)이다. 촉을 조건으로 하여 느낌(受, vedāna)이 있다. 느끼는 그것을 인식(想, saññā)하고, 인식하는 그것을 생각(尋, vitakka)하며, 생각하는 그것을 망상(妄想, papañca)한다. 망상하는 그것을 원인으로 하여 사람에게는 망상-인식-관념(papañcasaññāsaṅkhā)이 활동한다.”라고 설명한다.
이에 대해 주석 전통은 망상을 객관적인 법의 분류 속에서 외재화(外在化)했다. 그러나 냐나난다에 의하면, 망상은 사람이, 자신이 만든 개념의 그물망에 다시 가둬지는 자기-포획의 구조, 즉 인식이 일어나는 바로 그 자리에서 마음이 자기 자신을 옭아매는 ‘(인식의) 악순환(vicious circle)’이다. 이 인식의 악순환 관점에서 ‘개념 대 실재’라는 구분은 그 자체가 이미 자아론이나 존재론에 기반을 둔 망상의 산물이다. 냐나난다에게 이제 ‘개념을 벗어난 실재’는 존재론적・형이상학적으로 해명해야 할 세계가 아니라, 망상이 멈춘 자리에서 실현되어야 할 고통의 소멸, 열반적정으로서 수행과 실천의 ‘인식론적-인지 구조적’ 사건이 된다.
2. 갈레 출생부터 아일랜드 암자까지
그렇다면 냐나난다는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 냐나난다는 1940년 7월 10일, 인도양의 한 항구 도시인 스리랑카 남부의 갈레(Galle) 지구에서 태어났다. 갈레 지구는 16세기 이래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식민 통치를 차례로 거치며, 동서 문명이 만나는 길목이 되어 온 오래된 항구였다. 그는 스리랑카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싱할라족(Sinhala, ‘사자의 후예’라는 의미)의 독실한 불교 가정에서 자라났다. 스리랑카 교육 시스템은 수백 년에 걸친 식민 통치로 인해 기독교 선교사 학교를 중심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당시 전통적인 불교문화는 위축(萎縮)이 되었고 싱할라족의 정체성은 점차 희미해져 가던 시기였다.
이 암울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19세기 말, 서구화에 맞서 민족의 정신을 되찾으려는 ‘불교 부흥 운동(Buddhist Revival)’이 거세게 일어났다. 이 운동은 단순히 종교적 차원을 넘어, 식민 지배 아래 억눌려 있던 싱할라족의 자존감을 회복하고 전통 지식을 보존하려는 민족주의적 저항의 성격을 띠었다. 그 역사적 결실 중 하나가 바로 1892년 갈레에 세워진 마힌다 칼리지(Mahinda College)였다. 그 이름 자체가 기원전 3세기 이 섬에 처음 빨리어 삼장을 전한 마힌다 장로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듯이, 마힌다 칼리지는 기독교 중심의 식민 교육에 대응하여 불교적 가치관을 중시하면서도 현대적 교육을 제공하는 선구적 기관이었다. 냐나난다는 식민 정부의 동화(同化)정책이라는 시대 상황 속에서도 마힌다 칼리지 속의 교육 시스템, 즉 빨리어와 불교 교리의 기초를 익히며 자신이 태어난 섬의 종교적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흡수해 갔다.
청년이 된 냐나난다는 페라데니야(Peradeniya) 대학교에 진학하여 빨리어를 전공하고, 1962년 졸업과 함께 모교의 빨리어 전임 강사로 임용되었다. 그는 강의실에서 빨리어 문법과 아비달마의 법수(法數), 경전 주석의 내용들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동료 가운데는 후일 하와이대학교에서 초기불교 철학 연구자로 이름을 떨치는 데이비드 깔루빠하나(David J. Kalupahana) 같은 인물도 있었다. 안정된 자리, 동료 학자들과의 지적 교류, 평생 심취하게 될 빨리어 문헌들, 그 모든 것이 청년 냐나난다를 학자의 길로 이끌고 있었다.
그러나 냐나난다는 어느 날 학자의 길에서 스스로 내려왔다. 냐나난다가 출가하게 된 정확한 동기는 본인만이 알 것이나, 그가 후일의 《문답(Questions and Answers)》(2016)에서 “지금 법이 ‘와서 보라(ehipassika)’라고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저 지금 있는 자리에 머물며 논리를 통해서 법을 이해하고 싶어 합니다.”(p.28)라고 말한 대목이나, 그의 스승 냐나라마 마하테라(Ñāṇārāma Mahāthera)가 자주 인용했다고 회고한 “이 길과 그 길을 직접 가 본 사람의 길은 서로 다른 것이다”(p. 41)라는 구절을 자신도 즐겨 인용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그의 내면에는 학문적 성취가 채워 줄 수 없는 깨달음에 대한 깊은 갈증이 자리 잡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경전을 개념적으로 설명하는 것과 경전이 가리키는 실재를 직접 경험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임을 미리 자각(自覺)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1967년, 냐나난다는 학자의 자리를 내려놓고 도단두와(Dodanduwa)의 아일랜드 암자(Island Hermitage)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출가는 안락한 자리에 대한 포기가 아니라 더 깊은 물음을 향한 결단이었고, 그가 발길을 옮긴 아일랜드 암자는 단순히 숲속의 은거처가 아니었다. 아일랜드 암자는 20세기 초 독일 출신의 냐나띨로까 마하테라(Ñāṇatiloka Mahāthera, 1878~1957)가 세운 이래, 서구적 합리성과 불교의 수행 전통이 만나, 지적인 정교함과 실천적 엄격함을 동시에 추구하던 상징적인 장소였다. 냐나띨로까 스님은 출가 전에는 안톤 귀트(Anton W. F. Gueth)라는 이름의 촉망받는 전문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하다가 불교에 매료되어 수행의 길에 들어섰다. 예술적 영감을 찾기 위해 인도로 길을 나선 그는 1903년 미얀마에서 사미계를, 1904년 스리랑카에서 구족계를 받아 유럽 대륙 출신 최초의 상좌부 비구가 되었다(《불교평론》 99호 ‘세계의 불교학자 38. 냐나띨로까’ 참조). 예술적・지적 문화를 체화한 서양인들이 불교 수행 전통에 귀의한 이 사건은 당시 서구 사회에 불교가 단순한 철학적 관심을 넘어 실천적인 종교로 뿌리내리는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다. 그로 인해 아일랜드 암자는 삶의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하던 서양인들이 모이는 중심지로 자리 잡게 되었다.
예를 들어 냐나뽀니까 마하테라(Nyanaponika Mahāthera, 1901~1994)도 냐나띨로까를 스승으로 모시고 출가했다. 그는 출가 전에는 지그문트 페니거(Siegmund Feniger)로 독일 하나우(Hanau)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베를린에서 독일어 불교 문헌을 접했다. 냐나뽀니까는 냐나띨로까의 저작을 읽고 출가를 결심하여 1936년 사미계를, 이듬해에 구족계를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적국인(敵國人)으로 분류되어 5년간 수용소에 억류되기도 했지만, 경전 연구를 이어 나가 후일 현대 상좌부 불교의 고전이 된 《불교 명상의 핵심(The Heart of Buddhist Meditation)》(1954)을 내놓았다. 1958년에는 불교출판협회(BPS)를 창립하여 냐나난다를 비롯한 후학의 든든한 멘토가 되었다. 한편, 아일랜드 암자는 영국 출신의 수행자 냐나위라 비구(Ñāṇavīra Bhikkhu)가 출가했던 곳이기도 했다. 그는 실존주의 철학을 통해 불교에 다가가면서도 실존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는 출구로 불교를 받아들였고, 주석 전통의 도그마를 걷어내고 붓다의 원음으로 직접 돌아가려 한 치열한 수행자였다.
냐나난다가 발길을 옮긴 자리에는 그렇게 두 흐름이 이미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과 직접 대면한 적은 없을지라도 아일랜드 암자의 정신적 토양은 냐나난다로 하여금 종교적 권위나 주석 전통의 사변적(思辨的) 정합성(整合性)을 넘어 경전의 다르마를 실재로 드러내도록 만드는 데 깊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냐나난다는 닛사라나 바나야(Nissarana Vanaya) 수도원으로 거처를 옮기기 이전에 두 번째 저술인 《마음의 마술(The Magic of the Mind)》(1974)의 원고를 마쳤다. 《초기불교 사상사에서 개념과 실재》에서는 ‘망상-인식-관념’이 전제된 인식 속에서 ‘개념 대 실재’의 구분으로부터 ‘개념 없는 실재’에 대한 추구가 일어남을 밝혔다면, 《마음의 마술》에서는 마술사가 스스로 무대를 세워 환상적인 향연을 펼치듯이, 마음 자체가 스스로 만든 환영을 다시 비추는 자기-반영의 무대임을 드러냈다. 냐나난다는 특히 《거품 덩어리의 비유 경(Pheṇapiṇḍūpama-sutta)》에서 오온(五蘊)의 실체 없음을 비유하며 “비구들이여, [식(識, viññāṇa)]은 마치 마술사와 그의 제자가 큰 네거리에서 환술(幻術)을 보여주는 것과 같다”라고 설명하는 부분에 주목한다. 냐나난다는 이 비유에서 식이 외부를 비추면서 동시에 자기-환영으로서의 명색(名色, nāmarūpa)을 비추는 의식 활동임을 읽어낸다. 《마음의 마술》에서는 이 통찰을 연기(緣起, paṭiccasamuppāda)의 구조 속으로 가져와 식이 ‘무명(無明, avijjā)-행(行, saṅkhāra)-식-명색’의 조건화 속에서 일어나는 의식의 흐름이며, 식과 명색의 상호 순환 관계 속에서 자기-환영이 강화되어 나타남을 드러낸다. 더 나아가 냐나난다는 《깔라까라마경(Kālakārāma-sutta)》에서 “여래는 보이는 것을 보면서, 보이는 것을 [떠나서] 생각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보여야 할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보는 자를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구절이 식이 만드는 환영에 대한 집착을 벗어난 길임을 강조한다. 열반(涅槃, nibbāna)이란 연기의 조건화로부터 마음의 환영이 멈춘 자리, 즉 고통이 소멸한 자리이지,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아는 의식 활동이 사라진 초월의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3. 수행승의 삶으로
1972년, 냐나난다는 아일랜드 암자를 떠나 미티리갈라(Meetiri-gala)의 닛사라나 바나야(Nissarana Vanaya) 승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곳에서 그는 현대 스리랑카의 위대한 스승인 냐나라마 마하테라 문하에서 재수계를 받으며 새로운 수행적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전의 거처였던 아일랜드 암자가 서양인 비구들의 지적 토양 위에 붓다의 법을 철학적・실존적으로 탐구할 수 있었던 자리였다면, 닛사라나 바나야는 불교 숲속 수행 전통(araññavāsi)이 엄격히 보존된 곳에서 법을 직접 체험하고 자증(自證)하는 자리였다. 특히 냐나라마 마하테라는 스리랑카에서 위빠사나(vipassanā) 수행의 정밀(精密)한 지도자로 명성이 높았는데, 그는 정형화된 수행의 단계적 도식에 함몰되기보다 법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한 직관적 통찰(intuitive insight)을 강조했다. 이러한 스승과의 만남은 냐나난다의 생애에서 결정적인 전환이 되었다. 훗날 냐나난다 필생의 역작 《열반: 고요해진 마음(Nibbāna: The Mind Stilled)》에서 “[이 책들을] 나의 수계 스승(upajjhāya)이신 고(故) 마타라 스리 냐나라마 마하테라께 헌정한다”라고 명시하는데, 이는 스승 냐나라마가 단순한 계화상(戒和尚, upajjhāya) 이상으로 제자의 정신적 삶을 책임졌던 ‘영적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음을 드러낸 것이다. 냐나난다는 닛사라나 바나야 승원에서 언어와 개념을 분석하던 학승의 길을 넘어, 실재의 고요함을 체득하는 수행승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이후 냐나난다는 16년 동안 닛사라나 바나야 승원에서 법을 자증하는 깊은 침묵의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닛사라나 바나야 승원은 1967년, 콜롬보에서 약 42km 떨어진 캄파하(Gampaha) 지역의 울창한 열대우림에 세워졌다. 이 승원은 붓다의 법을 현대에 구현하고자 했던 설립자 아소카 위라라트(Asoka Weeratne)의 서원에 의해 설립되었다. 승원은 그의 서원에 따라 초기불교 ‘숲속 수행 전통’의 계율과 두타행(dutaṅga)을 몸소 실천하도록 수행자의 고립과 정진을 엄격히 규율했다. 이는 숲속에 머묾이라는 자발적 고립으로부터 마음의 혼란을 잠재우고, 외부 대상에 끌리는 의식의 흐름을 제어하며, 개념적 인식의 연쇄를 끊어내어 열반으로 이끄는 데 기여했을 것이다. 그 수행의 내용에 대해 직접적으로 전해지진 않지만, 그가 저술한 이후의 저작들, 예를 들어 《지(止)와 관(觀)을 향하여(Towards Calm and Insight)》(2013) 《촉(觸)의 기적(The Miracle of Contact)》(2015) 등으로부터 그 수행 내용을 엿볼 수 있다.
《촉의 기적》에서는 접촉(phassa)에서 느낌(受, vedanā)이 일어나고, 이 과정을 갈애(taṇhā)라는 재봉사가 식과 명색을 꿰매어 그 식의 반영으로서 실재라고 믿는 세계(名色)가 드러남을 설명한다. 냐나난다의 수행은 인식이 생성되는 지점인 ‘촉(phassa)’의 구조를 해부하는 데서 시작했을 것이다. 12입처로부터 6식이 발생하는 촉의 순간은 곧 갈애(渴愛)가 식(識)으로 하여금 명색(名色)을 기워내는 순간이다. 범부는 마음이 개념을 통해 환영을 만들어 내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망상의 구조에서 고통을 반복한다. 따라서 냐나난다는 촉의 발생 시점에 주의를 기울여 ‘있는 그대로(yathābhūta)’를 ‘있는 그대로(tathābhūta)’ 올바르게 여리작의(如理作意, yoni-so-manasikāra)함으로써 [개념을 실재로] ‘투영하지 않는 식(ani-dassana-viññāṇa)’의 증득을 수행법으로 제시한다.
《지(止)와 관(觀)을 향하여》에서는 사마타의 집중을 통해 마음의 동요(動搖), 산만(散漫) 등의 충동(衝動)을 조절하고, 위빠사나의 관찰을 통해 마음이 부리는 마술 쇼의 환영을 간파(看破)할 것을 권한다. 마치 바늘을 줍는 코끼리 코처럼 한 번에 하나씩 행하도록 집중하고, 마치 탁구 선수가 공을 놓치지 않듯이 일상의 매 순간을 관찰하라는 것이다. 냐나난다는 이를 통해 분노와 악의를 가라앉히고 자애(mettā)에 머물기를 권유한다. 그리고 이는 열반적정(涅槃寂靜)의 지혜를 통해 더 나은 세상을 구현하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이라고 명시하는 통찰로 이어진다(《더 나은 세상을 향하여(Towards A Better World)》).
16년간 이어진 긴 침묵과 수행의 성과는 스승의 권유와 동료 수행자들의 요청으로 비로소 깨어나 세상으로 이어졌다. 열반(涅槃, nibbāna)에 관한 법회가 그것이다. 이 법회는 1988년 8월 12일부터 1991년 1월 30일까지 격주로 이어졌고 모두 33회로 마무리되었다. 열반에 관한 법회에서는 망상(妄想)의 멈춤이 곧 열반이라는 핵심 명제, 식(識)은 거울이 아니라 스스로 형성한 환영(幻影)의 무대라는 진단, 연기 구조에서 식과 명색의 순환을 자기-환영을 유지하는 윤회로 통찰하는 해석 등을 설명하며, 열반이 먼 미래나 존재론적 위상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팔정도(八正道)를 완성하는 바로 그 순간에 실현되는 상태임을 보였다. 나냐난다가 법회에서 강연한 내용은 카세트테이프로 녹음되어 곧 스리랑카 전역의 승려와 재가 수행자들에게 손에서 손으로 전해졌다. 냐나난다의 독창적인 법 해석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으나, 동시에 주석 전통을 지지하는 보수적인 종단과 비구들에게는 큰 충격을 주었다.
보수적인 비구들은 냐나난다의 해석을 ‘급진적이고(radical) 이단적(heretic)’이라고 비판하며 추방자(outcast)로 대해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요가난다 비구(Bhikkhu Yogānanda)에 의하면, 이러한 ‘이단’ 프레임은 단발적 사건이 아니라 냐나난다 비구에게 평생을 따라다닌 지속된 흐름이었다. 비판의 핵심은 첫째, 망상의 멈춤이 곧 열반이라는 명제에 있다. 주석 전통에서 열반은 무위법(無爲法)으로서 존재론적 위상을 지닌다고 설명하는데, 냐나난다는 열반을 망상의 자기-증식이 멈추는 인식론적・인지 구조라고 설명한다는 것이다. 둘째, 연기의 다른 해석에 있다. 주석 전통에서 연기는 찰나법의 인연상속 이론과 12법의 삼세양중인과설(三世兩中因果說)로 설명되지만, 냐나난다는 연기를 망상 인식의 전개 과정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법회가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권위 있는 스승 냐나라마의 옹호 덕분이었다. 냐나라마 마하테라는 이 법회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닛사라나 바나야의 공식적인 요청으로 수행된 것이고, 상좌부의 숲속 수행 전통의 절차에 따른 것임을 공언했다. 그로 인해 33회의 설법이 이루어졌고, 이는 후일 《열반: 고요해진 마음》 7권으로 출간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4. 우리에게 남겨진 유산
1992년, 스승 냐나라마의 입멸 이후, 냐나난다는 데와레가마(Devalegama)의 뽓굴갈라 아란냐(Pothgulgala-arañña)로 거처를 옮겼다. 정글에 있는 바위를 파서 만든 동굴 암자에는 무상(無常, anicca)을 상징하는 해골과 뼈 그림들, 붓다의 고행(苦行像), 법에 관한 책 몇 권이 전부였다. 냐나난다는 그곳에서도 숲속 수행 전통에 따라 하루에 한 끼만 먹고 외부와의 접촉을 최소화하며 수행과 함께 전법 활동을 유지했다.
냐나난다와 문답을 통해 직접 대면한 요가난다 비구는 냐나난다가 붓다의 고행상처럼 치열한 수행자의 모습이긴 했지만, 무장해제를 당할 정도로 순수하고(innocent) 가식이 없으며(unpre-tentious) 친절했다(friendly)고 회고했다. 요가난다 비구가 스스로를 소개하자 냐나난다는 자신의 머리를 툭 치고 웃으며, “당신은 어떻게 탈출할 수 있었소?”라고 유머를 던지기도 했다(《법에 대한 질문과 답변》 중에서). 이 유머의 의미가 출가의 계기를 물어본 것인지, 혹은 망상으로부터 벗어남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해석하는 이에게 남겨진 즐거운 수수께끼일 것이다. 냐나난다 스님에게는 깊은 사상의 무게와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이 함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1997년에 냐나난다는 ‘법보 출판 재단(Dharma Grantha Mudra-na Bharaya)’ 출판 신탁을 설립하여 자신의 모든 저작들을 법공양(法供養, dhammadāna)으로 무상 배포하기로 결단했다. “법은 값으로 매길 수 없다(Dhamma is priceless)”는 원칙 아래 자신의 모든 저작권을 신탁에 귀속시켜 어떠한 상업적 이용도 불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그에 따라 오늘날 그의 모든 저작은 사이트 “[망상의] 그물을 통찰하기”(https://seeingthroughthenet.net/)에서 무료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냐나난다는 건강이 악화하는 가운데서도 수행과 저술을 멈추지 않았다. 《연기: 속박과 해탈의 비밀(The Law of Dependent Arising)》은 장기간의 투병 중에서도 자신의 사상과 수행 체계를 정교하게 완성해 낸 역작이었다.
2018년 2월 22일, 냐나난다는 투병 끝에 77세의 나이로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 냐나난다 스님의 혜안이 한국불교와 깊게 맞닿아 풍성한 교류로 이어지지 못한 점은 못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런 가운데서도 한국에서 출가한 비구니 아눌라 스님은 냐나난다의 저술을 《마음이란 무엇인가》(2002), 《위빠사나 명상의 열쇠 빠빤차》(2005)로 번역하여 국내에 소개함으로써 사상적 가교 역할을 했다.
어떻게 자신이 만든 개념의 그물에서 벗어날 것인가? 냐나난다가 천착해 온 이 화두는 열반이 무엇이며,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촉발했다. 비록 주석 전통의 비판도 있었지만, 현대의 학계나 수행처에서는 붓다의 원음이 지닌 생명력을 현대적 언어로 복원해 냈다고 평가한다. 냐나난다는 망상을 단순한 번뇌의 목록이 아닌, 인식이 일어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자신을 옭아매는 ‘개념적 증식’ ‘인식의 악순환’으로 규명했다. 이로써 학계에는 초기불교 철학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수행자들에게는 실재의 고요함을 체득하는 실질적 지도를 제시한 것이다. 우리는 남이 만들어 놓은 무대가 아니라, 스스로 지어 올린 마술 쇼의 환영에 속절없이 포획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주장이다. 냐나난다는 마음이 부리는 이 정교한 마술의 구조를 꿰뚫어 봄으로써 스스로 쳐놓은 망상의 그물 활동을 멈춘 자리에서 실현해야 할 인식론적 해방을 열반으로 이해하도록 안내한다. 즉 열반은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자리거나 미래의 보상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인식의 악순환을 끊어냄으로써 즉각적으로 실현되어야 할 고통의 소멸이자 적정 상태라는 것이다.
많은 현대인은 과학과 자본을 통해 물질적 풍요를 누리지만 역설적으로 상대적 박탈감과 끊임없는 비교, 자아라는 관념이 만들어 낸 불안 속에서 고통받고 있다. 우리가 겪는 이 실존적 고통 역시 마음이 투사한 결과이고 열반은 그러한 왜곡된 인식이 멈춘 ‘있는 그대로’의 자리라는 점에서, 냐나난다의 가르침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살아서 전해진다.
[우동필]
전남대 철학과에서 석사・박사학위 취득. 동국대 불교문화 연구원에서 박사후과정 수행. 초기불교 철학의 현대적 이해를 연구 중이다. 주요 저술로 《체계적인 Pali어 문법》 교재와 〈십이연기 존재 설명-하이데거와 비교하여〉 〈초기불교와 인지-자연주의 윤리〉 〈구사론의 십이연기〉 〈찰나법연기의 자이나교 기원설〉 외 논문 다수. 은정학술상, 선리연구원 학술상, 원효학술상 등 수상. 현재 전남대 호남불교 문화연구소 연구교수.
![[태전서당]대구/한자/한문](http://t1.daumcdn.net/cafe_image/cf_img2/img_blank2.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