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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광장> |
바우길과 길손의 쉼터 |
기사 게재 일자 : 2010-10-14 13:44 |
이순원 / 소설가 지난 번 이 지면의 칼럼을 통해 시골의 마을과 길 이야기를 했다. 마을과 마을 사이를 잇는 옛길을 말하고, 그 길로 찾아오는 도시 사람들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그렇게 사람들이 찾아오는 시골길도 그냥 그 길을 걷기 위해 찾아오는 도시인들의 방문만으로 되살아나는 게 아니라 우선 마을이 살아야 길도 함께 빛난다는 얘기를 했다. 지난 1년 몇 개월 동안 주말마다 주거지가 있는 도시를 벗어나 마을과 마을로 오래된 길이 이어지는 시골에 내려가 있었다. 고향에 새로운 트레킹 코스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대관령에서부터 경포대와 정동진으로 이어지는 총연장 160㎞의 트레킹 코스를 찾아냈다. 오직 발품을 팔아 걷고 걸어서 찾아내고 진화시킨 길이다. 현재로선 전체 11개의 구간이니까 꼬박 열하루 동안 강원도의 산길과 마을길과 들길을 걸어 마을과 마을로 나아가는 길이다. 그것이 어디 강원도만 그러랴만 어떤 숲길과 산길도 그 길 끝에는 마을이 있다. 이렇게 1년 넘게 트레킹 코스를 개척하고 사람들과 함께 걷다 보니 확실히 전국에 ‘걷는 문화’와 ‘걷는 여가’가 빠른 속도로 퍼지고 또 정착돼 가는 것을 알겠다. 꼭 건강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이 무얼 하는지도 모르게 바빠지고 복잡해질수록 그 반작용으로 때로는 느리게 걷고 여유롭게 걸으면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충전할 시간도 필요해진 게 아닌가 싶다. 옛날에는 마을마다 이런 나그네를 위한 주막도 있었을 테고, 주막이 없는 보다 작은 마을에는 길손이 묵어갈 만한 봉놋방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 식으로 말하면 길손을 위한 ‘게스트 하우스’쯤 될 것이다. 고향에 걷는 길을 탐사하며 마음속의 큰 바람처럼 ‘도시에서는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아름다운 길’만큼이나 절실하고 아쉽게 느껴지는 게 그런 길을 걷다가 날이 저물었을 때 배낭을 풀어 놓고 휴식할 만한 쉼터였다. 그래. 둘러보면 잘 곳은 많다. 아무리 깊은 산속이라도 ‘파크’니 ‘무슨 텔’이니 하는 숙박 시설들은 여기저기 한 굽이를 돌 때마다 널려 있다. 때로는 누가 이 산속에 일부러 들어와 잠을 잘까 싶을 만큼 하나의 타운처럼 널려 있다. 그러나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그런 숙박업소들이 조금도 편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불편하다. 배낭을 메고 길을 걷다가 날이 어두워졌을 때 선뜻 들어가 몸을 누일 마음이 나지 않는다. 길을 걷는 나그네가 잠자리를 찾는 일인데도 누군가의 눈에 ‘이상하게’ 보일 것 같아 파크와 무슨 텔 안으로 편하게 걸음이 옮겨지지 않는 것이다. 11개 코스 160㎞의 걷는 길을 탐사해 놓았다고 했을 때 이런저런 걷기 동호회에서 코스 답사를 와서 가장 먼저 묻는 말도 길을 다 걸었을 때 다음날을 위한 휴식처로 편한 잠자리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길도 길이지만 한 코스가 끝나고 또 한 코스가 시작되는 마을마다에 옛날 길손을 위한 주막이나 봉놋방과 같은 길손의 쉼터가 절실했다. 그래서 여러 구간의 길이 시작되고 끝나는 대관령 아래 어느 마을에 오래 전에 지었지만 찾는 손님들이 많지 않아 문을 닫고 있던 펜션단지를 임차해 길을 걷는 사람들만을 위한 게스트 하우스를 만들었다. 그러자 이제까지 사람들 발걸음이 많지 않았던 마을로 배낭을 멘 나그네들이 찾아오고, 택시가 줄지어 들어오고 제법 사람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마을처럼 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처음엔 강원도의 바우길을 걸으러 오는 길손들을 위해 생각한 시설이지만, 점차로 이 시설이 마을 안에서 마을 주민들과는 어떻게 함께 섞이고 서로 스며드는 또다른 마을 문화를 창조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새로 받은 숙제처럼 깊은 생각을 하고 있다. 아직 걷는 길에 대해 초보자 입장이지만 내가 탐사한 길을 걸으러 오는 외지 여행자들을 볼 때 처음엔 낯선 곳에 와 낯선 길을 걷는 그들의 편의를 우선적으로 생각했지만, 점점 그들의 걷는 길만큼이나 길과 길이 이어지는 마을이 중요하고, 그들이 와서 걷는 길로 시골 마을이 새로운 활기를 띨 수는 없을지를 생각하게 된다. 이제 갓 시작하는 바우길 게스트 하우스 역시 나그네를 위한 시설로서만이 아니라 여기에 마을주민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방안이 없을지를 이렇게 저렇게 연구해 보는 것이다. |
첫댓글 언제 어느 때라도 편하게 찾아갈 수 있는 쉼터가 있다는 것이 바우길을 걷는 사람들의 발길을 가볍게 하리라 봅니다.
길손들에게도 따뜻해야 하지만, 고향과 마을에도(이웃마을에까지도) 바우길 게스트하우스가 따뜻한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걸 생각하고 연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