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맨의 보자기
이병금
오전 9시, 섭씨 44도를 찍은
뚜껑 열린 마을을
X맨과 함께 지나왔다
거리엔 이따금 자동차들만 달려갔고
가로수들이 텅 빈 마을을 지키는 병사 같았다
작은 창이 눈알처럼 박힌 도서관에 들어서자
아이들이 개구리처럼 뛰어놀았다
이제 이곳은 책을 보는 곳이기보다 방공호랄까?
의자에 기댄 노인들은 더는 할 일이 없다는 듯
무서운 경고에도 줄어들지 않는 탄소배출량과
지구평균온도 상승의 가속도!
인류의 마지막 페이지에 자신도 합류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은 듯도 했다
낮에는 공공시설에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다가
X맨과 함께 사람들은 해가 꺾인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니까, 아직은 에너지를 관리할 수 있을 만큼
국가 시스템이 작동한다
X맨,
이젠 뻥 뚫린 우리의 우주선으로 가는 거야
5평의 주택은 침대 하나에 화장실, 간단한 조리대
아침마다 공공주택의 창문을
우주선의 조종석으로 착각한 몇천 명의 사람들이
화단에서 발견되곤 했다
그러나 그들의 비행 실력이 뛰어나서
다른 행성으로의 진입을 성공했다고 믿고 싶다
그런 용기도 실력도 없는
양파, 파파파, 나는 X맨과 함께
별들과 가까워지는 밤이면
집 앞을 지키는
작고 여린 잎들을 떠올린다
잎의 갈퀴가 타버린 채 묻고 있었다
우린 인간들이 범인이라 생각해
백 년에 섭씨 1도씩 지구온도를 올리다가
삼십 년, 십 년으로 가속도가 붙었잖아
너희들이 지구에서 사라지는걸
두 눈 뜨고 지켜보고 싶어!
찢어진 보자기를 던지고
코발트색 보자기를 펼쳤다
그리곤 나를 빤히 올려다보던 나뭇잎을 쓰다듬었다
몸통이 1mm나 될까?
그 꽃나무는 잎 가운데 분홍 꽃잎을 피워올렸는데
뜨거운 바람에 헛누래진 머리카락처럼 엉켜 있었다
오, 피기도 전에 늙어버렸구나!
꽃나무 가족을 위해 범죄자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양파 껍질처럼
벗기고 벗길 수 있는 마음?
X맨,
내가 가진 마음 보자기를 펼쳐
분홍 잎을 감싸주는 것?
보자기에 하늘을 담고 구름을 불러
물줄기의 목도리로 너를 안아주는 것
그렇게 너와 함께 여기
XXXXX
인간이 살았었다고
그가 사라진 자리는 아린 하늘빛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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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금
1998년 『시와시학』 등단. 시집 『저녁 흰새』, 『어떤 복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