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세계사 #92 - 고전음악가(#27)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Dmitri Shostakovich]
스트라빈스키보다 24년 후 피의 일요일 바로 다음 해인 1906년 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납니다
어릴 때부터 남다른 재능을 보인 쇼스타코비치는 13세에 페테르부르크음악원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음악공부를 시작합니다 이때가 1919년 일제치하 조선에서 31독립운동이 일어난 해입니다
28세에 발표한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부인'이 성공하여 명성을 떨칩니다 소비에트사회의 성공을 알리는 작품이라며 막 출범한 소련 정부에서 칭찬도 합니다
그러나 2년후 극장을 찾은 신임 서기장 스탈린이 오페라를 보고난 후 냉담한 반응을 보이자 그 즉시 당 기관지에서 혹평을 퍼붓습니다 한동안 그는 사상적인 의심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곧이어 시작된 스탈린의 대숙청에서 많은 동료음악가들이 체포되는 모습을 보며 공포에 사로잡힌 그는 더욱 당의 요구에 맞추어 사회주의적 성향의 음악을 계속 발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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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의 대숙청을 잠깐 살펴봅니다
레닌이 그의 잔인한 성격을 들어 자신의 후임자로는 반대하던 스탈린이 결국 1924년 소련의 서기장에 선출됩니다
서기장 취임 이후 공업화 추진 농업의 집단화 등으로 소련의 경제개발에 치중합니다 전통적인 소작농업국가에서 혼란스런 정치혁명과 내전을 거쳐 이제 유럽국가를 뒤따라가는 공업국가로의 발돋움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1937년부터 2년간 정치 경제 국방 행정 사법 문화 예술 사회 언론 과학 농업 산업 등등 전 분야에 걸쳐 당정책에 맞지 않거나 스탈린을 조금이라도 비판하거나 의심되거나 고발되거나 또는 별다른 기준없이 지목되기만 하면 비밀경찰에 의해 체포 살해 또는 강제수용소로 추방되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행동대장격인 비밀경찰의 책임자 조차 매년 숙청되고 바뀌고 합니다
나중 소련 정부의 공식발표로는 즉결 사망자만 80만명이지만 실제로는 120만명 이상으로 추정합니다
스탈린 숙청의 후유증으로 경험많은 군 지휘관들이 숙청당하는 바람에 2차대전 때 핀란드와의 겨울전쟁에서 창피한 고전을 하고 독일의 공격에 속수무책 당하기만 하였다고 평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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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쇼스타코비치로 돌아와서
소련 정부의 후원을 받기도 하고 한때 압박을 받기도 하며 음악활동을 하던 쇼스타코비치이나 그의 음악적 성과는 눈부십니다
많은 곡을 만들고 당시 유행하던 재즈나 부르스곡을 응용하기도 하던 그는 1975년 69세의 나이로 모스크바에서 세상을 떠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