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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개심사
2026년 02월 18일(수요일)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의 말사입니다. 〈사적기 事蹟記〉에 의하면 654년(무열왕 1) 혜감국사가 창건할 당시에는 개원사라 했는데, 1350년(충정왕 2) 처능대사가 중건하면서 개심사라 했다고 합니다. 1484년(성종 15)에 대웅전을 중창했으며 1740년 중수하고 1955년 전면 보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구릉형을 따르면서도 산지형으로 변천한 일탑형 가람배치를 보입니다. 평탄한 지역에서 북으로 자연계단을 오르면 3단 가량으로 조성된 평탄한 사지가 보입니다. 2단에 안양루가 남면하여 서 있고 중정으로의 입구는 안양루와 무량수전 사이의 협소한 가설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심검당과 무량수전이 있고 정면에 안양루가 있는 표준형입니다. 이외에도 명부전과 팔상전 등의 당우가 남아 있습니다.
개심사 상가지역
개심사 일주문
공포가 가득한 다포집에 겹처마 맞배지붕의 풍판이 달린 일주문입니다.
무거운 지붕을 두 기둥으로 감당이 안 되는지 기둥 앞뒤에 보조 기둥을 세웠습니다.
일주문은 '기둥이 한 줄로 들어서 있는 문'으로 세속의 잡다한 번뇌와 망상을 떨쳐버리고 한마음으로 진리의 세계로 가는 상징적인 문입니다. 이 곳부터는 사바세계가 아닌 불국토가 시작됨을 알리는 문입니다.
서산 개심사 일주문은 최근에 조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일주문 상왕산개심사(象王山開心寺) 편액
편액 좌측에 구단제(丘堂題) 여원구 관지입니다.
일주문 편액은 서예가 구당 여원구(丘堂 呂元九1932~ ) 선생의 예서체 글씨입니다.
구단 여원구 (1932- )선생은 경기도 양평 출신으로 1989년 국새 제작을 맡았을 정도로 글씨와 전각에 조예가 깊은 분입니다.
일주문 뒤편
세심동(洗心洞)과 개심사(開心寺) 입구 표지석
세심동은 '마음을 닦는 고을'이란 뜻으로 소하천 물로 마음을 깨끗히 닦고 올라가면 저절로 마음이 열린다고 합니다.
개심사로 올라가는 계단
개심사가 보입니다.
경지
서산 개심사 앞에는 마음을 비추어 보라는 뜻에서 거울 경(鏡)자를 붙혀 '경지(鏡池)'라고 합니다. 세심동을 지나면서 마음을 닦았지만, 경지를 지나며 다시 마음을 되돌아 보라는 뜻입니다.
개심사가 자리한 상왕산은 꼬끼리를 뜻하므로 코끼리의 갈증을 풀어주기 위해 만들었다는 이야기와 산의 기(氣)가 세서 흘러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보통은 사찰 화재 시에 소방용수로 사용하기 위해서 연못을 만들어 놓기도 합니다.
경지 외나무다리
극락으로 가는 다리는 외나무다리라고 합니다.
안양루와 범종각
개심사 안양루
'안양(安養)'은 불교에서 '극락세계'를 뜻합니다. 안양루는 대웅보전 맞은 편에 있으며 불전 사물 중 법고, 운판, 목어가 비치되어 있습니다. 개심사에서 가장 전망 좋은 곳으로 현재는 강당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내부 바닥은 우물마루이며, 천장은 서까래가 들어난 연등천장입니다. 창방과 장여 사이의 벽에는 본생담 내용의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개심사 안양루 앞 상왕산개심사(象王山開心寺) 편액
안양루 앞편액 '상왕산개심사(象王山開心寺)' 편액 좌측에 해강 김규진서(海岡 金圭鎭書) 관지가 보입니다.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의 서예가이자 화가였던 해강 김규진(1868 ~ 1933) 선생의 예서체 글씨입니다.
일주문 편액과 안양루 편액의 글씨가 비슷하게 보입니다.
해강 선생은 큰 글씨를 잘썼다고 하는데, 가야산 해인사 편액도 선생의 글씨입니다. 해강 선생은 우리나라 최초로 사진술을 도입하여 고종황제의 어전사진사로도 활동하였습니다
범종각
주심포 겹처마의 사모지붕 건물입니다.
안양루 앞 오른쪽으로 옮겨 새로 조성하였으며 아직 단청을 칠하지 않아 수수한 모습 그대로입니다.
지옥중생을 구제하는 범종이 매달려 있습니다.
범종각(梵鍾閣) 편액
예전에 걸었던 범종각 편액을 다시 걸었습니다.
호국개심대범종(護國開心大梵鐘)
일제시대에 개심사에 있었던 범종은 일본군들이 약탈해가서 무기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하였다. 지금의 범종은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인들의 만행을 사죄하는 뜻으로 그 후손되는 일본인 가족이 시주하여서 만들어진 범종입니다.
범종 외부에는 설판재자( 說新齋者) 상전조웅(上田照雄) 상전조장(上田照章) 상전□□(上田□□) 3사람의 일본인 이름이 새겨져있습니다.
예로 부터 우리나라의 범종 밑에는 항아리를 묻거나 땅을 움푹하게 파서 명동(鳴動)을 만드는 방식이 이어져 왔는데 나무 마루의 바닥에 구멍을 뚫어 범종 소리가 울려 퍼지게 하는 방식은 특이한 경우입니다.
범종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겹처마에 사모지붕을 한 건물로서 자연 그대로의 휘어진 목재로 기둥을 세우고 난간을 둘렀습니다.
개심사 해탈문
서산 개심사 해탈문은 모든 괴로움과 헛된 생각의 그물에서 벗어나 아무 꺼림낌이 없는 진리의 깨달음을 얻는 문으로 궁극적으로 번뇌와 해탈이 둘이 아니라는 뜻으로 '불이문(不二門)'이라고도 합니다.
해탈문은 얀양루 옆구리에 붙은 협문(夾門) 형태로 개심사의 중심축에서 벗어난데다 제 멋대로 생긴 기둥목이 특징입니다. 문이 작아 고개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는 왜소한 문으로 스스로 낮출수록 바른 해탈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문입니다.
개심사 해탈문 편액
해탈문(解脫門) 편액은 휴당 이계봉(休堂 李啓鳳)의 글씨입니다.
개심사 안양루 판벽
전각의 벽체는 통상 회를 바르는데, 안양루의 벽은 나무 판재로 되어 있습니다. (개심사 명부전도 벽이 나무 판재로 되어 있습니다.)
대웅전을 마주하고 있는 배치의 안양루는 자연석으로 축대를 쌓아 정면5칸 측면3칸이고 무고주 5량집으로 겹처마 팔작지붕을 세운 건물입니다.
안양루의 정면은 머름위에 이분합판문을 달았고 배면은 창호가 없는 상태입니다. 내부 바닥은 우물마루이고 천정은 서까래를 노출시킨 연등천정입니다.
개심사 안양루 뒷쪽 안양루(安養樓) 편액
'안양'이란 '극락세계'라는 뜻입니다.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로서 괴로움이 없으며 지극히 안락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말합니다.
인간 세계에서 서쪽으로 10만억 불토(佛土)를 지난 곳에 있다고 합니다.
안양루 내부에 있는 또 다른 개심사(開心寺) 편액
안양루 내부 벽화
안양루 내부에는 글을 모르거나 경전에 무지한 사람이라도 그림만으로 뜻을 이해할 수 있도록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원효대사가 해골물을 마시고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깨닫는 모습과 세조가 피부병 치료를 위해 상원사 문수전에서 기도 후, 개울에서 목욕할 때 마침 동자가 있어 등을 밀어 달라고 부탁을 하고 "어디 가서 임금님 등 밀어줬다는 얘기 하지말거라"라고 했더니, 동자가 "어디가서 문수동자가 등 밀어줬다는 얘기 하지마세요"라고 했다는 설화 등이 그려져 있습니다.
내부에는 개심사 편액과 함께 석가모니 전생의 이야기인 본생담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불교 의식구인 사물(四物)이 범종각, 법고와 목어 운판이 걸려 있습니다.
개심사 대웅전 앞 경내 모습
서산 개심사 경내는 'ㅁ'자형 가람배치이며, 규모는 작지만 단정하고 기품이 있으며 소박함마저 느껴집니다.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심검당과 무량수각, 그리고 맞은편에 안양루가 배치하고 있습니다.
개심사 오층석탑
개심사를 중수한 고려 충정왕 2년(1350)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는 오층석탑은 700여 년 동안 전체적인 구조와 형태를 잘 보존하고 있습니다.
대웅전 앞 개심사 오층석탑은 아직 문화재 지정은 안되었지만, 고려시대 탑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옥개석이 상층으로 갈수록 줄어드는 비율인 감체율이 작아서 탑이 높아 보입니다.
개심사 심검당(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358호)
서산 개심사 심검당은 1997년 충남 문화재자료 제358호로 지정되었으며, 스님들이 생활하며 수행하는 건물로, '참선을 통해 문수보살이 들고 있는 지혜의 칼을 찾는 집'이란 뜻입니다.
심검당은 한옥집 느낌으로 단청을 하지 않아 소박한 모습입니다. 1962년 건물 해체 수리 시 발견된 상량문에서 성종 8년(1477년)에 3중창하였으며, 영조 때 6중창을 거쳤고, 1974년에 보수하였습니다. 개심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상량문에 시주자의 이름과 박시동(朴時同)이란 목수 이름까지 들어가 있어 건축사적으로 그 가치고 크다고 합니다.
개심사 심검당(尋劒堂) 편액
심검(尋劒)은 마음의 본성을 칼에 비유한 말로 선방(禪房)의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개심사 심검당 우측 설선당(說禪堂) 편액
심검당에는 '설선당(說禪堂)'이라고 씌여진 편액이 하나 더 걸려 있습니다.
설선당은 불법을 설하시면서 선(禪)을 수양하는 곳입니다.
개심사 심검당 덧대어진 건물
원래의 건물은 심검당 현판이 걸려 있는 오른쪽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이었으나, 왼쪽에 지붕이 살짝 낮은 'ㄱ' 자형 건물을 덧붙여서 규모를 늘렸습니다.
지붕의 앞부분은 겹치마, 뒷부분은 홑처마의 맞배지붕이며, 기단석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그 위에 배흘림이 가미된 기둥을 세워 자연미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휘어진 나무를 기둥으로 그대로 살린 조선 초기의 건축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편 이 건물에서 발견된 상랑문에는 시주자의 이름과 박시동이라는 목수 이름까지 있어 건축사적으로 그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심사 무량수각
서산 개심사 무량수각은 원래 수명장수를 상징하며 무량수불로도 불리는 아미타여래를 모시는 불전입니다.
그러나 개심사 무량수각은 스님들이 기거하는 승방과 종무소로 사용되며, 아미타부처님이 아닌 관세음보살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정면 6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불교에서는 짝수를 쓰지 않는데, 6칸인 것은 처음에 5칸으로 지었다가 한칸 늘렸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건물의 주련에는 아미타불을 항상 마음속에 두고 염원하면 극락정토에 왕생하게 된다는 나옹선사의 나옹집(懶翁集) 답매씨서(答妹氏書)의 내용을 적은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阿彌陀佛在何方(아미타불재하방) 아미타불 어느 곳에 계실까
着得心頭切莫忘(착득심두절막망) 마음에 간직하여 잊지 말것이니
念到念窮無念處(염도염궁무염처) 생각생각 이어가다 생각조차 끊긴 곳에 이르면
六門常放紫金光(육문상방자금광) 육문에서 금빛광명 찬란하게 나오네
무량수각(無量壽閣) 편액
무량수각의 편액은 추사 김정희 선생이 귀향 가는 길에 들러서 썼다고 합니다.
관세음보살
아미타불을 봉안해야 하는데 아미타불의 협시인 관세음보살상이 대신 봉안되어 있습니다.
개심사 대웅전(보물 제143호)
개심사 대웅전은 정면 3칸, 옆면 3칸으로 되어 있으며, 지붕은 맞배지붕의 건물로 지어진 대웅전은 창방과 평방을 갖춘 다포집의로 주간포가 2개씩 설치된 다포식 공포로 되어있습니다.
특히 소 혓바닥처럼 길게 삐져나온 살미의 초제공과 이제공 끝은 아라래 향한 수서형으로 다포계 초기의 양식입니다.
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려고 기둥머리에 짜 맞추어 댄 부재를 공포라 하는데 이러한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것을 주심포라고 하고,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있는 것을 다포라고 합니다. 개심사 대웅전은 주심포계와 다포계가 절충되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개심사 괘불석주
괘불석주는 괘불을 내걸기 위해 법당 앞에 세운 돌기둥으로 현재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개심사 대웅보전(보물 제143호)
개심사 대웅보전은 정면 3칸, 옆면 3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반 배흘림 기둥에 주심포와 다포양식이 혼합된 절충식 건물입니다.
창호는 교창이 없으며, 어칸은 문짝의 폭을 줄여 4분합 빗살문으로 달았고, 협칸은 3분합 빗살문을 달았습니다.
보물 제143호로 신라 진덕여왕 5년(651년)에 지은 후, 조선 성종 6년(1475)에 불에 타 없어져, 조선 성종 15년(1484년)에 중창하였습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고쳐지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개심사 대웅보전(大雄寶殿) 편액
대웅보전의 편액과 주련은 성종 15년(1484년)에 지어진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두가지 모두 동일 인물의 필체로 보이는데, 누구의 글씨인지는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개심사 대웅보전 불단
대웅보전에는 주불로 목조 아미타여래좌상과 협시로 관음보살입상과 지장보살입상이 모셔져 있는데, 전각 이름과는 맞지 않습니다. (통상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이 모셔져 있습니다.)섬세하게 조각된 연화좌대 위의 아미타불은 보물 제1619호로 현존하는 목조 불상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통상 아미타불은 좌우에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하는데, 전각의 이름과 협시 보살이 맞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이는 부처님과 보살을 모실 당시 중생의 염원에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을 모시지만, 개심사 대웅전에는 아미타불(보물 제1619호)과 그 양옆에 관음보살과 지장보살 함께 모셨습니다.
아미타여래를 주존으로
좌우에는 화려한 보관을 쓴 관음보살과 민머리의 지장보살이 협시를 이루고 있습니다.
아미타불은 연꽃 대좌 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있고,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은 입상이지만 불단에 다리 부분이 가려져 보이지 않습니다.
삼존볼 모두 아미타여래 9품인 중 하품중생(또는 중품하생)의 수인을 하였고, 지장보살의 오른손에는 육환장이 쥐어져 있습니다.
개심사 대웅보전 관경변상도
대웅보전 내 후불탱화인 '관경변상도'는 <관무량수경>에서 서방 아미타 정토를 관하는 16관법을 표현한 불화입니다. 화면 상단에는 아미타불,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을 중심으로 권속들이 모여 있는 설법회 장면이 묘사되어 있고, 하단에는 설법인을 한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배치되어 있고, 삼존불 주변으로 12위의 보살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아미타불 바로 옆에는 마하가섭과 아난존자를 비롯한 10대 제자가 자리하고 그 밑으로 범천과 제석천을 비롯한 사천왕고 천자, 천녀 등이 있습니다.
관경변상도는 영조 43년에 왕, 왕비, 세손의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 제작하였는데, 1991년 문화재 절도단이 대웅전 벽을 뚫고 훔쳐가서 지금은 모작품이 걸려있습니다.
목조 아미타여래좌상(보물 제1619호)
서산 개심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2004년 발견된 복장물의 묵서명에 의해 고려 충렬왕 6년(1280)에 보수한 것이 밝혀졌습니다.
불상을 조성하여 50~100년이 지나면 개금 등의 보수를 하기 떄문에 조성 시기는 대략 12세기 말에서 13세기 초 사이일 것으로 보며, 이런 추정에 의해 현존하는 목조 불상 중 가장 오래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몸을 앞으로 약간 숙겨 길상좌로 좌정한 이 아미타여래상은 단정하면서도 중후하며 알맞은 신체 비례를 보여주는 데다, 조각기법도 매우 정교하고 세련되었습니다. 손갖춤(수인)은 하품중생인을 짓고 있습니다.
머리에는 정상계주와 중간계주가 표현되었는데, 머리와 육계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습니다. 얼굴은 반듯한 이마, 반쯤 뜬 눈, 우뚝한 콧날과 뚜렷한 인중, 부드러운 입술, 살집이 적당한 뺨 등이, 위엄을 보이면서도 자비로운 느낌을 줍니다.
주목해서 보아야 할 것은, 뚜렷하면서도 엄숙하게 표현된 이국적인 얼굴, 왼쪽 어깨에 몇가닥의 짧은 종선으로 처리된 옷주름과, 그 아래로 자리잡은 Ω형의 겹주름 등등입니다.
관음보살
지장보살
개심사 대웅보전 천장
대웅보전 불단위에는 닫집이 없고, 천장은 서까래가 그대로 노출된 삿갓모양의 삿갓천장(연등천장)으로 주심포 양식의 건물에서 볼 수 있는 형태입니다.
불상 위에만 반자 3개를 가설하여 운궁형 닫집을 잠업하고 가운데는 용을 그리고, 양 옆에는 구름 문양을 그려 넣었습니다.
개심사 대웅보전 신중탱
신중탱은 불법승(佛法僧) 삼보를 수호하는 호법신을 그린 불화입니다. 화면 구성은 상단 왼쪽에 범천과 제석천을 주존으로 일월천자가 에워싸고, 오른쪽에는 예적금강과 주악천녀가 모여 있으며, 구름을 경계로 화면 하단은 위태천을 중심으로 무장한 신장들을 배치하였습니다.
개심사 신중탱은 고종 32년(1895)에 충청도를 대표하는 수화승 금호당 약효와 정련, 행열 등이 조성한 불화입니다.
신중탱 부분
하단 중앙에는 동진보살이 부처님을 향한 합장한 모습과 좌우에는 사천왕을 배치하였으며, 상단 중앙에는 예적금각이 삼두삼목팔비를 한 모습을 취하고 있습니다.
예적금강은 삼면다비의 형상으로 얼굴은 어금니가 위로 솟고 머리카락이 역발한 분노한 모습이며, 목에는 해골 목걸이를 걸었으며, 4개의 손 중 한 손에는 칼을 들고 다른 손에는 금강저를 들고 있으며, 다른 두 손은 합장하고 있습니다.
위태천 동진보살은 깃털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었으며 합장한 팔뚝 위로 금강저를 가로질러 들고 있습니다.
개심사 대웅보전 칠성탱
대웅보전 내 칠성탱은 고종 24년(1887)에 제작되었는데, 능호(能昊)스님이 밑그림을 그리고 수화승 상옥, 금지, 오성, 묘연 등이 제작하였으며, 치성광여래를 본존으로 좌우 협시로 일광·월광보살이 있고, 칠원성군과 자미대제, 28수 등이 화면에 그려져 있습니다.
칠성탱 부분
북극성을 여래화한 치성광여래를 본존으로 좌우 협시로 해와 달을 상징하는 일광·월광보살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남무대성인로왕보살(南無大聖引路王菩薩)
인로왕번은 죽은 자의 영혼을 극락세계로 인도해 주는 안내자로 죽은 자가 좋은 곳으로 가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이 깃발을 앞세웁니다. 인로왕번은 상여에 앞서 가는데 인로왕번 양쪽에 근 매듭을 달아 위엄있게 장식합니다.
인로왕번은 사십구제 때 죽은 사람의 영혼을 극락세계로 인도한다는 인로왕 보살을 모시고 나가는 깃발이며, 번인 깃발 하나에 다양한 매듭이 여러 개 맺어져 있습니다.
개심사 영산회괘불탱(보물1264호)
가로 5.8 m 세로 10.1m 크기의 이 불화는, 1772년(영조 48)에 11명의 화승이 힘을 모아, 임금과 왕비 및 세자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고자 조성한 것입니다. 이 불화는 붉은 색과 녹색의 보색 대비 및 화불과 모란꽃 무늬 연꽃 등의 장식적 요소들이 잘 어울린 화려함을 보여주는 당대의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색채는 주로 붉은 색과 녹색을 사용하였는데, 아름답고 복잡한 문양이 매우 화려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비현실적인 신체 비례와 복잡한 문양에서, 18 세기 후기 불화의 특징을 살필 수 있는 작품입니다.
화기(畵記)에 "대영산괘불탱" 이란 명칭이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거대한 본존불 입상의 머리광배 좌우에 비로자나불 좌상과 노사나불 좌상이 조그맣게 묘사된 것으로 미루어 비로자나불의 화신 석가모니불로 추정됩니다.
석가모니불의 둥근 얼굴과 당당한 어깨, 길고 굵은 팔과 짧은 하체 등은 다소 둔중해 보입니다. 우견 편단 불의(佛衣)에는 문양이 화려하며, 무릎 부근에도 영락으로 치장했습니다.
몸광배에는 모란 덩굴무늬로 채워져 있다. 몸광배의 가장자리에 여덟 분의 화불 역시 머리광배와 같은 자세와 유사한 손 모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몸광배의 맨 밑 좌우에는 두 보살이 합장한 자세로, 머리에는 보관, 몸에는 천의를 걸치고 있습니다.
요사채
수행중 출입금지라는 표지판이 있습니다.
개심사 명부전
정면 3칸, 측면 3칸의 주심포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서산 개심사 명부전은 지장보살을 모시는 전각으로 조선 인조 24년(1646년)에 세워졌습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에 공포가 새 날개 모양인 익공양식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전각 내부 천장은 서까래가 그대로 노출된 연등천장이며, 바닥은 우물마루를 깔았습니다. 벽은 안양루처럼 판재로 마감하였습니다. 개심사 명부전은 기도의 효과가 크다고 하여 참배객들이 끊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개심사 명부전은 지장보살과 시왕을 모신 전각입니다.
지장보살은 목조이고, 시왕과 인왕상은 흙으로 빚은 상입니다.
지장보살은 저승세계의 명부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모두 구원하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고 명세한 보살이고, 시왕은 저승세계에서 죽은 자의 죄를 심판하는 10명의 왕입니다.
개심사 명부전은 인조 24년에 지어진 건물로, 안쪽에 기둥을 세우지 않아 공간이 넓어 보이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는 대웅전과 비슷한 양식입니다.
개심사 명부전 (冥府殿) 편액
명부란 어두울 명(冥), 마을 부(府), 즉 어두운 마을, 저승을 뜻합니다. 명부전은 대웅전보다 한 격이 낮고 독립된 공간에 배치합니다. 사후세계는 인간세계보다 1/4크기로 작아 전각도 대웅전보다 작게 조성한다고 합니다.
불단 가운데에는 지장보살이 앉아 있고, 양옆에 무독귀왕과 도명존자가 서 있습니다. 무독귀왕은 사람들의 약한 마음을 없애 준다는 왕입니다. 도명존자는 사후세계를 경험하고 이승에 들어와 자신이 본 바를 세상에 알린 왕으로, 젊은 스님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불단 양옆에는 시왕상과 시왕의 재판을 보조하는 판관상 및 실무관인 녹사의 상이 배치되어 있으며, 양쪽 끝에는 불교의 수호신인 인왕상이 서 있습니다. 출입문 좌우에는 사람과 같은 크기의 사자상이 서 있습니다.
개심사 명부전 불단
명부전에는 주불로 지장보살이 모셔져 있고, 좌우 협시로 육환장을 들고 있는 도명존사와 무독귀왕이 있습니다.
지장보살은 인도 브라만 가정의 딸로 태어나 어머니가 지옥에서 고통 받는 것을 보고 지옥에 찾아가 지극한 효심과 정성으로 기도를 하여 어머니를 지옥에서 구했다고 합니다. 무독귀왕은 지장보살이 지옥에 갔을 때, 길을 안내해 주었다고 합니다.
지장보살
지장보살은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왼손에는 연화를, 오른손에는 보주 또는 육환장(석장)을 들고 있는데 이 곳의 지장보살은 아미타여래 9품인 중에서 중생하품(또는 하품중생)을 취하고 있습니다.
명부전 염라대왕상
명부전 시왕중 다섯번째는 염라대왕입니다. 염라대왕은 지옥을 다스리는 주재자로 저승에서 지옥에 떨어지는 사람이 지은 생전의 선악을 심판하는 왕입니다. 머리에는 불교 경전인 금강경을 쓰고 있습니다.
개심사 명부전
목조지장보살상을 중심으로 흙으로 빚어 채색한 조선 후기의 시왕(十王)과 역사상(力士像)이 모셔져 있는 명부전입니다.
문 좌우에는 입을 벌리고 있는 나라연금강(아금강역사)과 입을 다물고 있는 밀적금강(훔금강역사)이 지키고 있습니다.
'아'는 산스크리트 어에서 시작을 의미하고, '훔'은 끝마침을 의미합니다. 즉 시작과 끝을 뜻합니다. 인왕상의 발에 감긴 긴 천은 천의(天衣)를 상징하는데, 하늘을 나는 능력을 지녔음을 보여줍니다. 서민의 삶과 가까운 대왕들의 상은 무섭다기 보다는 오히려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개심사 청벚꽃나무
개심사 팔상전
서산 개심사 팔상전은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담은 탱화를 보관하는 전각으로 팔상(八相)은 부처님의 일대기 여덟 장면을 의미합니다.
1980년대 수해로 철거됐다가 복원에 소요되는 사업비 4억원을 문화재청과 충남도, 서산시가 비용을 분담하여 다시 지었습니다. 팔상전은 대개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좌우에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이 협시하고 있습니다.
팔상전
개심사 팔상전(八相殿)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홑처마에 맞배지붕 건물로서 1982년 수해로 멸실되었나 2016 년 10월 명부전(冥府殿) 뒤 원래 있었던 자리에 복원되었습니다.
단청은 모루단청으로 단아하게 하였습니다만 이 곳은 일반인 출입을 금하고 있어서 가까이에서 볼 수 없었습니다.
팔상전(八相殿) 편액
팔상전에 걸려 있는 그림은 석가모니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그린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비람강생상(毘藍 降生相),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녹야전법상(鹿野轉法相),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을 팔상도라고 합니다.
팔상전은 문수보살상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문수보살상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도솔천에서 내려오는 상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룸비니 동산에서 내려와서 탄생하는 상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사문에서 나가 세상을 관찰하는 상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성을 넘어가서 출가하는 상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설산에서 수도하는 상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보리수 아래에서 마귀의 항복을 받는 상
녹야전법상(鹿野轉法相)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포교하는 상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는 상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8폭을 각각 그려서 봉안하거나 2개씩 한 폭에 묶어 4폭으로 구성하기도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부처님의 전 생애를 모두 묘사하고 있는 것도 특징 중의 하나입니다. 현전하는 탱화 중 중요한 것으로는 통도사, 쌍계사, 운흥사, 개심사, 선암사, 송광사, 해인사의 팔상도를 꼽을 수 있습니다.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비람강생상(毘降 生相),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녹야전법상(鹿野轉法相), 쌍림열반상(林涅槃相)
개심사 배롱나무
서산 개심사 배롱나무는 2020년에 보호수로 지정되었는데, 지정 당시 수령이 150년이 된 매우 큰 나무로 높이가 8m에 달하며 이 배롱나무 꽃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개심사를 찾기도 합니다.
경지(鏡池)에 있는 배롱나무도 보호수 입니다.
개심사 경허당
사립문 대신 한 발 길이의 나무막대를 걸쳐 놓았습니다.
서산 개심사 경허당은 근대 선불교의 중흥조 경허(鏡虛, 1849 ~ 1912)선사가 머물었던 곳입니다. 경허선사는 9세 때 경기도 의왕 청계산 청계사로 출가하여 동학사 강주를 하고 있을 때, "소가 되더라도 콧구멍 없는 소가 되어야지"라는 말을 전해듣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경허 스님의 속명은 동욱(東旭), 법명은 성우(性牛), 법호는 경허(鏡虛)로 조선말기 침체된 불교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였습니다. 만화강백의 뒤를 이어 동학사 강사가 되어 후학을 양성하였습니다. 그의 새로운 선풍의 진작은 경허의 삼월(三月)로 불리는 만공(滿空, 1871~1946) , 혜월(慧月, 1861~1937) , 수월(水月, 1855~1928) 등으로 이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경허당(鏡虛堂) 편액
개심사 보장각
서산 개심사 보장각은 개심사의 성보박물관으로 14점의 보물이 있습니다.
보장각(寶藏閣) 편액
송원(松原) 관지가 보입니다.
산신각으로 가는 길
산신각 가는 길에 바라본 개심사
개심사 산신각 올라가는 계단
경허당을 지나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개심사 산신각이 나옵니다.
산신각
정면 3칸, 측면 1칸의 전각입니다.
산신각(山神閣) 편액
개심사 산신각 산신탱
서산 개심사 산신각에는 호랑이를 거느린 산신을 그린 산신탱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다른 산신탱과 마찬가지로 이곳의 호랑이 역시 용맹스러고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친근감 넘치는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개심사 해우소
해우소 안에는 사람 허리 높이의 칸막이만이 되어 있습니다.
우물(수각)
뒤돌아본 개심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