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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6장 5절 (유대인들이 바울을 일찍부터 알았으니)
로마서 8장 29절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로마서 11장 2절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베드로전서 1장 20절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이시나)
베드로후서 3장 17절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인간 역시 사소한 계획이나 일정을 미리 알 수는 있습니다. 내일 학교나 직장에서 무슨 행사가 있는지 미리 압니다. 왜냐하면 계획된 시간표를 사전에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아는 능력은 철저히 유한하여, 내일 당장 길거리에서 누가 죽을지 살지, 어떤 돌발 사고가 날지 1분 앞의 미래도 완벽하게 예측하여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그것이 피조물과 구별되는 하나님의 전지(全知)하신 신적 속성입니다.
이 프로기노스코의 명사 형태는 '프로그노시스(Prognosis)'이며, 우리말로는 '예지' 혹은 '미리 아심'이라고 번역됩니다. 프로(미리)와 그노시스(지식/암)가 결합한 단어입니다. 신약성경에 총 2회 등장합니다.
사도행전 2장 23절: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심(프로그노시스)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베드로전서 1장 2절: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프로그노시스)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이처럼 베드로전서의 장엄한 인사말 속에도 하나님의 미리 아심(예지)이 구속의 기초로 선포되어 있습니다. 원어상으로 동사 5회, 명사 2회 도합 7회에 걸쳐 예지의 개념이 신약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예지는 온 우주 만물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일점일획도 빠짐없이 통틀어 다 아시는 하나님의 '전지(Omniscience)'하심의 한 부분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 하나님의 위대한 전지 선포를 이사야 46장 10절에서 다음과 같이 웅장하게 받아 적었습니다.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구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아직 역사 속에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의 모든 현상까지도 시간의 출발점에서 이미 다 내다보고 알고 계신다는 전지하심의 선언입니다.
시편 147편 4절에서도 "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라고 하였고, 마태복음 10장 30절에서는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은 제 머리카락이 몇 개인지 평생 세어볼 엄두도 내지 못하지만, 창조주께서는 우리의 머리카락 개수까지 실시간으로 완벽하게 파악하고 계십니다. 역대상 28장 9절에서도 솔로몬을 향해 당부하기를 "여호와께서는 모든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의도를 아시나니 네가 만일 그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라고 하였으며, 욥기 28장 24절에서는 "이는 그가 땅 끝까지 감찰하시며 온 천하를 살피시며"라고 증언합니다. 성경 곳곳에 흘러넘치는 이러한 선포들은 하나님의 전지(예지)하심이 얼마나 완전하고 빈틈없는지를 입증해 주는 구절들입니다.
② 예정 (Predestination)
반면에 예정의 의미는 지난 강의에서 충분히 고찰했듯이, 어떤 사건이 실제로 역사 속에 출현하기 전에 장차 그렇게 되도록 주권자가 미래의 운명과 경계를 미리 결정해 두는 신적 행위를 뜻합니다.
장로교식 예정론자들은 이를 개인의 구원 유무에 대입하여, 인간의 조건과 무관하게 구원받을 자와 지옥에 갈 자가 영원 전에 다 낙점되어 정해졌다고 가르치지만, 이는 성경의 보편적 구원론을 훼손하는 심각한 교리적 독단이라고 지난 시간에 짚어보았습니다. 로마서 8장과 에베소서 1장, 사도행전 4장, 고린도전서 2장에 사용된 6번의 예정 원어는 '프로오리조(Proorizo / 미리 결정하다)'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참된 예정의 본질은 특정 개인의 운명을 로봇처럼 묶어놓은 게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In Christ) 죄인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영화를 얻을 수 있다"는 '구원의 완전한 방법과 대원칙' 자체를 만세 전에 예정해 두셨다는 거대한 은혜의 설계도입니다.
2. 예지와 예정의 신학적 관계: 개미의 비유
그렇다면 이 '미리 아시는 예지'와 '미리 정하시는 예정'은 신학적으로 어떠한 관계에 놓여 있을까요? 결론부터 명쾌하게 정리해 드리면, 하나님의 예지와 예정은 구속사 안에서 밀접한 관련성을 맺고 흐르지만, 본질에 있어서는 완벽하게 독립된 '별개의 개념'입니다.
쉽게 분류하면, 예지는 하나님의 무한한 지적 '능력(Attribute/Capacity)'의 한 측면이고, 예정은 그 능력을 기반으로 삼아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행하시는 의지적 '행위(Act/Decision)'의 일종입니다. 아는 것은 지식의 영역이고, 정하는 것은 선택과 결단의 영역입니다.
하나님께서 장래의 어떤 구속사적 사건을 예정(프로오리조)하실 때, 그분이 미래를 환히 내다보시는 예지(프로그노시스)의 능력을 기초로 삼으시거나 그것을 참고하여 계획을 예정하실 수 있습니다. 예컨대 영원 전 시간의 축 위에서 아담과 하와가 자유의지를 남용하여 타락할 미래의 현상을 미리 내다보시고(예지), 그 타락한 인류를 건져내기 위해 "오직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를 통해서만 인간이 구원을 얻게 하겠다"는 구원의 마스터플랜을 세워 만세 전에 확정(예정)하신 경우입니다. 그러나 예지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시더라도, 하나님은 우주의 주권자이시기에 자신의 기쁘신 뜻에 따라 어떠한 법적 원칙을 주도적으로 결정하여 예정하실 수도 있습니다.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구원 유무와 관련해서, 전지하신 하나님께서는 지구 역사상 태어날 특정 남성과 여성의 일생 행로가 최종적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이미 창세 전부터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완벽하게 알고 계십니다. A라는 사람이 마지막 순간에 주님을 영접하여 구원에 들어갈지, B라는 사람이 끝까지 복음을 거절하여 멸망의 길로 내려갈지 여호와께서는 미리 다 아십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소름 끼치도록 중요한 진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누가 구원받고 누가 멸망할지 완벽하게 내다보시는 '하나님의 예지(미리 아심)' 능력이, 그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과 최후의 운명을 절대로 속박하거나 인과적으로 강제하지 않는다는 철칙입니다.
하나님이 내가 장차 복음을 거절하고 지옥에 갈 미래를 미리 아셨기 때문에 내가 멸망당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내가 내 인격적인 자유의지를 가지고 주님의 음성을 끝까지 거부하는 선택을 행할 것이기 때문에, 전지하신 하나님은 시간 축을 초월하여 그 미래의 팩트(Fact)를 그저 있는 그대로 '미리 내다보고 알고 계실 따름'입니다. 하나님의 미리 아심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구속하지도 않고, 어떠한 선택을 하도록 1%도 강제하지 않습니다.
이 신학적 신비를 명쾌하게 깨닫기 위해서 제가 즐겨 드는 '탁상 위 개미의 비유'를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 하얗고 평평한 탁자(테이블)가 하나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 탁자 저편 끝 모퉁이에는 개미가 살짝 스치기만 해도 단번에 목숨을 잃는 무서운 '독극물(독약)' 한 방울이 떨어져 있습니다. 지금 개미 한 마리가 탁자 위에 올라와서 기어가기 시작합니다.
저는 탁자 위 높은 곳에서 시야를 넓게 확보하고 전체 공간을 입체적으로 다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개미의 동선을 가만히 지켜보니까, 이 개미가 일직선으로 계속 기어가다가는 정확히 3분 후에 저 모퉁이에 있는 독극물을 밟고 죽게 될 행로가 제 눈에는 환히 미리 내다보입니다. 저는 개미의 미래의 운명과 결말을 완벽하게 예지(미리 앎)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탁자 바닥을 기어가는 개미의 시야는 대단히 좁고 제한적입니다. 자기 눈앞의 1cm밖에 보지 못합니다. 저 앞에 무서운 독극물이 웅크리고 있는지 없는지 전혀 모른 채, 개미는 자기가 가고 싶은 방향을 선택해 묵묵히 기어갑니다. 1분 후, 2분 후, 개미는 점점 더 독극물 가까이 다가갑니다. 저는 개미가 조금 있으면 저 독을 밟고 죽을 것을 명확히 압니다. 3분 후, 개미는 마침내 독극물을 밟고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저의 예지대로 결말이 성취되었습니다.
자, 이 비유 속에서 개미가 독극물을 밟고 죽은 진짜 원인이 무엇입니까? 높은 곳에서 시야를 넓게 가지고 그 개미가 장차 죽을 미래를 미리 정확히 내다보았던 '나의 지식(예지)'이 개미의 다리를 강제로 붙잡고 이끌어서 독극물 위로 밀어 넣은 것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저의 예지 능력은 개미의 걸음을 유도하거나 강제하는 데 단 1%의 물리적 영향력도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개미는 철저히 자기가 기어가고 싶은 의지대로 걸어갔을 뿐이며, 단지 높은 시야를 가진 저는 개미가 행할 미래의 사실을 '미리 내다보고 알고 있었을 뿐'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의 관계가 이와 완벽하게 똑같습니다. 무한한 우주의 시야를 가지시고 영원한 과거부터 영원한 미래까지 통틀어 한눈에 내다보시는 전지하신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죄인들이 인생 행로 속에서 어떠한 결단과 선택을 내릴지 손바닥 보듯 환히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A가 구원받고 B가 멸망한다"는 것을 미리 다 내다보시는 하나님의 예지라는 지식이, B의 의지를 강제로 꺾어서 죄악의 길로 밀어 넣거나 구원받지 못하도록 묶어버리는 게 결코 아닙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고귀한 자유의지의 인격적 책임감을 가지고 스스로 믿음과 불신을 선택하는 것이며, 하나님은 무한한 차원에서 그 결과를 그저 온전히 예지하고 계실 따름입니다. 하나님의 예지는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습니다.
3. 하나님의 5대 기본 속성과 자유의 섭리
구원과 영생에 관한 한, 인간의 운명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선조적으로 부여해 주신 우리의 '선택과 반응'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기계적인 강제를 행치 않으십니다. 디모데전서 2장 4절은 하나님의 애틋한 본심을 이렇게 명시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베드로후서 3장 9절에서도 사도의 필치로 확증하십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디가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모든 사람이 한 영혼도 빠짐없이 다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보편적 우주적 대원칙인데, 칼뱅주의식 예정론처럼 처음부터 지옥 갈 자들을 정해놓고 멸망으로 밀어 넣으신다면 이는 성경에 흐르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공의의 성품을 완전히 왜곡하는 거짓 교리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신성에는 절대적이고 완전한 '자유(Freedom)'가 흐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최초에 창조하실 때, 로봇이나 인형으로 만들지 않으시고 창조주 본연의 성품을 닮은 가장 고귀한 선물인 '의지의 자유와 선택의 자유(자유의지)'를 인간 존재의 뼛속 깊이 새겨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본질상 피조물의 자유를 억압하거나 부자유하게 속박하시는 강제적 폭거를 절대로 행하지 못하십니다. 왜냐하면 부자유와 강제는 하나님의 완벽한 성품에 전면 저촉되고 위배되는 어둠의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구원사 경륜과 관련하여 나타나는 창조주 하나님의 가장 결정적인 '5대 기본 속성'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랑 (Ahabah / 아하바): 하나님의 제1본질입니다. 사랑이시기에 세상을 지으셨고, 사랑이시기에 죄인을 살리려 독생자를 내주셨습니다. 모든 창조와 구원의 출발점입니다.
자유 (Chuppah / 자유): 인간에게 선택의 권리와 의지의 자율성을 부여해 주신 거룩한 속성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로운 반응과 인격적 연합을 기대하십니다.
거룩함 (Kadosh / 카도쉬): 죄와 완벽히 구별된 신성의 완전한 정결함이자 본질적 특질입니다.
공의 (Mishpat / 의): 외모나 신분으로 차별치 않으시고 오직 중심의 믿음만을 보시며 우주를 공평무사하게 심판하시는 정의의 저울입니다.
신실함 (Hesed / 헤세드 / 인자): 한 번 맺은 언약과 약속을 영원토록 변치 않고 신실하게 이행하시는 미쁘시고 인자하신 사랑의 성실성입니다.
이 하나님의 위대한 5대 기본 속성(사랑, 자유, 거룩함, 공의, 신실함) 중에서 구원의 지평을 흔드는 핵심 기둥이 바로 '자유'입니다. 자유는 결코 훼손될 수 없는 하나님의 보장입니다.
심지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어떠한 자유까지 허락하셨는가 하면, 바로 창조주의 명령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먹어 스스로 파멸의 길로 걸어 내려갈 수 있는 '타락할 자유'까지도 억압하지 않고 보장해 주셨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인간의 자유를 강제하시는 부자유의 신이었다면, 하와가 손을 뻗어 선악과를 따려고 하던 그 결정적인 순간에 하늘에서 벼락을 내리시거나 천사를 보내 덜미를 톡톡 치시며 "하와야, 지금 뭐 하는 짓이냐!"라고 강제로 손을 꺾어 따먹지 못하게 막으셨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하셨다면 인류에게 죄가 들어오지 않고 죽지 않았겠지요.
그러나 그렇게 행동하시는 순간, 인간의 내면에는 창조주가 심어주신 영광스러운 존재의 자유가 박살 나고, 부자유한 속박과 노예 기계의 비참함이 영구히 고착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를 힘으로 짓밟는 독재자가 아니시기에, 타락의 비참한 결과를 뻔히 다 내다보고 슬퍼하시면서도 인간이 가진 고귀한 자유의 선택 권한을 끝까지 간섭하지 않고 존중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유의 징벌로 인해 죄인들이 치러야 할 참혹한 사망의 대가를, 로봇 강제가 아닌 '자기 아들을 십자가 제단 위에 매달아 친히 대신 목숨으로 담당하시는 대속의 사랑(구원)'의 방법으로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철저한 자유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날에도 어떤 절망한 영혼이 다리 위에서 투신자살을 감행하려 할 때, 성령 하나님께서는 마음속 깊은 곳에 끊임없이 세미한 음성으로 "사랑하는 자녀야, 결코 그렇게 인생을 포기하면 안 된다"라고 눈물로 호소하시고 권고하십니다. 그러나 천사를 보내 물리적인 쇠사슬로 몸을 꽁꽁 묶어 강제로 집으로 가라고 끌고 가지는 않으십니다. 인간의 선택과 의지의 자유를 억압하지 않으시는 것이 우주의 통치 철학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는 오늘 당장 예수를 믿지 않을 자유도 있고 박해할 자유도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그 그릇된 자유의 남용을 멈추고 온 마음을 다해 생명의 구주이신 예수를 믿고 구원에 도달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4. 신학 강의 최종 종합 요약과 결론
오늘 여든일곱 번째 시간으로 고찰한 '예지와 예정의 관계'에 대한 신학 강의 전체 내용을 최종 요약정리하겠습니다.
첫째, 예지(프로그노시스)란 하나님께서 미래의 모든 장래 일을 시간 축 이전에 완벽히 내다보시는 신적 지식의 능력이며, 온 우주의 만사를 다 아시는 하나님의 '전지하심'의 한 측면입니다. 반면에 예정(프로오리조)이란 하나님께서 장래의 구속사적 사건과 원칙을 만세 전에 주권적으로 미리 결정해 두시는 의지적 '행위'의 일종입니다. 아는 것과 정하는 것의 엄연한 질적 차이입니다.
둘째, 인류의 구원 행로에 있어서 하나님의 미리 아시는 예지 능력이 특정 개인의 구원 유무나 멸망의 운명을 절대로 속박하거나 인과적으로 강제하지 않습니다. '탁상 위 개미의 비유'가 명쾌하게 입증하듯이, 높은 시야를 가진 자의 미리 아는 지식이 개미의 걸음을 구속하지 않으며 개미는 자기 의지대로 걸어가 사망에 이른 것뿐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미래를 영원 전부터 완벽히 예지하시지만 그 예지 지식이 인간의 선택을 유도하거나 구속하지 않습니다.
셋째, 어떤 인간이 최종적으로 어떠한 운명의 결말에 처하게 될지 전지하신 하나님은 다 예지하시지만, 인간이 구원을 받느냐 멸망을 당하느냐를 가르는 최후의 실제적인 마스터 키는 요한복음 3장 16절, 사도행전 16장 31절, 히브리서 11장이 한결같이 선포하듯이 오직 구원의 대원칙인 인간의 인격적 '믿음' 여하에 달려 있습니다. 믿음이 관건입니다.
넷째, 자유는 하나님의 거대한 5대 기본 속성(사랑, 자유, 거룩함, 공의, 신실함) 중의 하나로서 우주 안에서 결코 훼손되거나 침해당할 수 없는 신성 철학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로봇으로 대우치 않으시고 인간에게 심지어 창조주의 명을 거역하고 타락할 수 있는 치명적인 자유까지 존중해 주실 만큼 자유의 가치를 귀하게 여기십니다.
최종적인 결론을 선언합니다. 지난 시간의 예정론 비판에 이어, 오늘 살펴본 예지와 예정의 관계 구조를 통틀어 내릴 수 있는 선명한 신학적 결론은 "예정론은 인간의 운명을 묶어놓은 숙명론이 결코 아니며,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이 만세 전에 예정해 두신 유일한 구원 방주인 '예수 그리스도'를 내 자유의지를 다해 영접하고 힘써 믿는 자발적 선택의 결과"라는 위대한 복음의 진리입니다.
우리를 기계적 꼭두각시로 다루지 않으시고, 고귀한 인격적 자율성을 부여하사 "힘써 여호와를 알라, 나를 믿고 생명을 얻으라"고 다정하게 손 내미시는 자유와 사랑의 아버지를 바라봅시다. 내게 주신 고귀한 자유의지의 선물을 죄악의 방종에 남용하지 말고, 오직 생명의 구주이신 예수를 온전히 선택하여 믿고 순종하는 일에 전적으로 드림으로써, 하늘의 온전한 아들들이 되는 영광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것으로 예지와 예정에 대한 깊은 성경 어휘 강의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또 다른 귀한 성경의 보화 어휘를 가지고 성도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그때까지 주님의 신실한 은혜 안에서 평안히 계십시오. 안녕히 계십시오.
📌 핵심 요약 정리
예지(Foreknowledge)와 예정(Predestination)의 명확한 단어 정의:
예지 (프로그노시스 / 신약 7회 사용): 시간의 축 이전에 역사 속에 일어날 모든 사건과 현상인 '사상(事象)'을 하나님이 사전(창세 전)에 완벽하게 알고 계시는 신적 지식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전지(全知)'하심의 한 측면임.
예정 (프로오리조 / 신약 6회 사용): 어떤 사안이 출현하기 전에 장차 그렇게 성취되도록 주권자가 경계를 쳐서 미리 정해두는 의지적 '행위'의 일종임.
'탁상 위 개미의 비유'를 통해 본 예지와 자유의지의 관계:
높은 시야를 가진 사람이 탁자 끝 독극물을 향해 기어가는 개미의 결말(3분 후 사망)을 환히 내다보고 '미리 알고 있는 지식(예지)'이 개미의 걸음을 구속하거나 강제하지 않음. 개미는 철저히 자기 의지대로 걸어가 독을 밟은 것뿐임.
이와 완벽히 똑같이, 인류 역사 전체를 한눈에 내다보시는 하나님의 '예지' 능력이 특정 인간의 구원과 멸망의 행로를 절대로 속박하거나 원인으로서 인과적으로 강제하지 않음. 인간은 하나님이 부여해 주신 고귀한 자율적 책임을 가지고 스스로 믿음과 불신을 선택하는 것임.
하나님의 5대 기본 속성과 '자유'의 섭리:
인간의 구원사와 관련하여 나타나는 하나님의 핵심 속성은 사랑, 자유, 거룩함, 공의, 신실함(인자)의 5대 기둥으로 짜여 있음.
특히 '자유'는 결코 침해당할 수 없는 신적 통치 철학으로서,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인간에게 창조주의 명을 거역하고 파멸할 수 있는 '타락할 자유'까지 보장해 주실 만큼 인간을 기계가 아닌 인격체로 대우하심.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를 힘으로 억압하는 부자유를 행치 않으시며, 자유의 남용으로 생긴 죄의 비참한 결말을 자기 아들의 십자가 대속의 희생으로 대신 책임져 주신 자비의 하나님이심.
구원의 최종 관건과 성도의 영적 도달점:
요한복음 3장 16절, 사도행전 16장 31절, 히브리서 11장(믿음장)이 일관되게 입증하듯이 인간의 구원과 영생을 가르는 최종 관건은 영원 전의 무조건적인 기계적 결정이 아니라, 선포된 복음 앞에 인간이 인격적 자유의지를 바르게 구사하여 응답하는 현재적 '믿음' 여하에 100% 달려 있음.
따라서 숙명론적 예정론은 성경의 보편적 구원론과 정면으로 상치되는 오류이며, 성도는 내 선택과 의지의 자유를 다해 하나님이 예정해 두신 유일한 구원의 통로인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고 순종하는 참된 신앙의 지평으로 나아가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