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희 <인류의 기원>
1. 우연하게 EBS 교양프로 <클래스 e>에서 특별한 내용을 만났다. 인류의 기원에 대한 소개다. 차분한 목소리로 화석을 통해 인류의 기원을 설명하는 강사의 모습이 무척 인상 깊었다. ‘이상희’라는 고인류학자였다. 집중해서 시청하지는 못했지만 10강에 걸쳐 이루어진 고인류학에 대한 최신의 연구결과는 매우 재미있었다. 그러다 도서관에서 2015년에 출간한 이상희의 <인류의 기원>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과학동아’에 연재한 내용을 수정보완하여 발표한 책이었다. 방송강의로 생긴 흥미는 책으로 연결되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지적 즐거움과 만날 수 있었다.
2. 이상희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는 특별한 경력을 지닌 고인류학자였다. 여성으로는 특별한 전공(?)을 연구하였다고 할 수도 있는데, 서울대 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하여 고인류학을 전공하여 오랫동안 미국의 학계에서 활동한 인물이었다. ‘과학동아’의 편집장은 21세기 발표된 인류에 대한 새로운 학설을 쉽게 설명할 인물을 찾다가 이상희 교수를 만났다고 한다. 그가 펼쳐놓은 인류의 세계는 수수께끼같은 용어 속에 간혹 익숙한 단어를 발견하기도 하였지만,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을 뒤집는 충격적인 내용이기도 하였다.
3. 세계사 교과서에 간략하게 정리된 인류의 기원에 관한 내용은 현생인류는 ‘크로마뇽인’으로 대표되는 ‘호모 사피엔스’에서 기원하였으며, 비록 유전자적으로는 직접적으로 관련 없지만 인류의 진화에 영향을 미친 인간적 특징을 가진 인류는 약 400-500만년 전 동아프라카 지역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이후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 등으로 진화되다가 현재의 인류가 등장하였고, 이후 치열한 경쟁을 통해 결국 ‘호모 사피엔스’만이 생존하게 되고 여기에서 전 세계 인류가 펴져나갔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바로 ‘아프리카 기원설’이다.
4. 고인류학의 연구는 21세기 들어 급격하게 다른 관점이 충돌한 분야이기도 하였다. 유전자적 분석이 가능해지고 발견된 화석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몇 가지 중요한 인류학적 논쟁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하나는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과의 관계이다.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와 같은 시기에 살았던 종이었다. 학계에서는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가 전혀 다른 종이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최근의 유전자 연구를 통해 현생 인류에게도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섞여 있다는 증거를 발견하게 되었으며, 네안데르탈인은 사라졌지만 그들이 갖고 있던 특징이 우리에게 남겨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5. 다른 중요한 논쟁은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다는 ‘아프라키 기원설’을 반박할 수 있는 증거의 등장과 연구 결과의 발표에 따른 ‘어디에서 인류가 시작되었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현생 인류는 약 15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는 것이 정설이었는데, 현생인류의 특징을 가진 화석들이 훨씬 이른 시기에 아시아 지역에서 발견됨으로써 현재의 인류가 하나의 계통을 통해 퍼져나간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확산되었다고 주장하는 일명 ‘다지역 연계론’이 힘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 또한 ‘다지역 연계론’이 좀더 합리적인 주장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6. 이상희 교수의 강연과 저작의 중요성은 이러한 인류의 기원에 관한 새로운 결과를 소개할 뿐 아니라 인류가 가진 특정한 편견을 깰 수 있는 인류학적 내용을 전달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의 백인들이 현재와 같은 흰 피부를 갖게된 것은 불과 5000년 전이라고 한다. 피부색은 인간을 구분짓고 차별하게 만든 가장 큰 요소였다. 그런데 피부색의 변화는 환경에 대한 적응에 지나지 않으며 그러한 진화에는 문화적 요소도 작용했다는 것이다. 자외선이 강하면 이것을 막기 위해 피부 속에 ‘멜라닌’ 색소가 많아져 피부가 검게 된다고 한다. 아프리카에 사는 인종들의 피부색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추운 유럽으로 이동한 인류의 피부색이 늦게 변화된 이유는 날씨 뿐 아니라 문화적 요인도 작용하였다. 바로 농경의 시작이었다. 농경을 시작하면서 자연에서 섭취하는 해산물이나 식물의 양이 줄어들었고 이런 결과는 비타민 D의 결핍을 초래했다. 비타민 D의 부족은 신체에 치명적인 위험을 가져왔고 이런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유럽의 인류는 피부가 점점 하애지기 시작한 것이다. 저자는 인간은 분명 진화하였지만, 진화는 결코 더 좋은 방향으로의 변화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적응을 위한 변화에 불과하다고 본다. 특별한 상황에 대한 적응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적응이 일시적으로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상황이 달라지면 그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통해 ‘진화’에 대한 인식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7. 저자는 재미있는 내용을 소개한다. 과거 무시되었던 라마라크의 ‘획득형질’ 유전이 사실이라는 점이 밝혀졌다는 것이다. ‘후생유전학’은 바로 이러한 진화의 특징을 연구하는 분야이다. 또한 인류의 기원을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찾으려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중요한 것은 발견되는 화석의 특징을 통해 그들의 생존방식과 적응을 이해하는 것이며 그런 적응 속에서 진화된 인류의 변화를 찾는 것이다. 변화는 반드시 순차적인 과정을 거치는 것이 아니며 때론 비약적인 도약을 통해 나타나기 때문이다. ‘고인류학적’ 연구를 통하여 인간이 원숭이에서 나왔다는 조롱은 의미가 없다고 본다. 생물의 개체는 각기 각자의 방식으로 진화하며 비슷할지라도 인류는 인류의 방향으로, 원숭이는 원숭이의 방향으로 진화 매커니즘이 작동하는 것이다. 생물적인 우열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각 종들이 지닌 특정한 변화 방향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8. 인류의 진화는 현재도 진행되고 있으며 진화의 속도는 오히려 빨라지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진화가 단순히 자연환경에 대한 적응 뿐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문화와 문명에 대한 반응의 결과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는 것도, 사랑니가 퇴화되다가 다시 나타나는 현상도, 인간의 수용능력이 늘어났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며, 변화의 방향은 인간의 통제능력의 확대로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현재의 인류가 하나의 특정한 종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고 다양한 종들의 결합을 통해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우리가 가진 특정 인종에 대한 편견을 줄일 수 있다. 인간의 외형적 변화는 단지 자연과 문화에 대한 적응이었다. 그렇기에 인류학 특히 고인류학은 인간이 가진 동질성에 주목함으로써 우리들이 가진 허황된 편견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첫댓글 - 인류의 기원에 관한 새로운 결과를 소개할 뿐 아니라 인류가 가진 특정한 편견을 깰 수 있는 인류학적 내용을 전달해주고 있다!!!!!